소설리스트

남주들과 외딴섬에 갇혀버렸다 (8)화 (8/234)

3. 나를 싫어하는 남자와 외딴섬에서

산에서 내려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바로 새로운 잠자리를 찾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어젯밤 잠들었던 해변에서 하룻밤만 더 지내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섬을 탈출해야겠어. 시간이 날 때마다 섬을 정찰하는 게 좋겠군.”

에녹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섬을 정찰하는 건 내게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좋아요. 할 일이 많네요. 일단 지금은 먹을 걸 좀 구할까요? 이대로라면 섬을 탈출하기도 전에 굶어 죽을 것 같아요.”

앉기, 서기 등의 단순 동작을 사용하는 데도 열량이 소비된다.

오늘 안에 제대로 된 열량 섭취를 하지 못하면 내일부터는 이 섬에서 살아남는 게 힘이 들 거다. 힘이 없으니, 마물도 당연히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거고.

“아. 혹시 불은 지필 줄 알아요?”

내 물음에 에녹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긍정의 대답을 했다.

“할 줄 안다. 로말리잔 전투에서 낙오된 적이 있었거든.”

로말리잔 전투, 낙오.

두 단어만 들어도 그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소설에서 생존 능력은 에녹을 따라올 남주가 없을 것 같다.

일단 상념은 접고 나는 에녹과 함께 작살을 만들었다. 작살을 다 만들면 내가 바다 사냥을 하고 에녹이 불을 지피기로 했다.

“잠깐, 영애가 사냥을 한다고?”

내가 작살을 만지며 물고기 사냥 준비를 하고 있자 에녹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작살 낚시는 열대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가 오지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바닷가가 아니라 강가에서 사냥을 한 거였지만…….’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어떻게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믿어 보세요.”

나는 팔뚝을 두드리며 듬직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에녹은 내 말을 믿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에녹이 사냥을 하고 내가 불을 피우는 게 낫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불 피우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을 요한다. 곧은 홈을 판 부드러운 나무에 단단한 나무 막대를 마찰시키며 불을 지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낚시라고 근력이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요령이 있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니까 괜찮을 거다.

“뭐, 낚시에 실패한다면 해초나 조개 채집이라도 할게요. 해안가에 물이 빠질 때, 바위들을 치우면 삿갓조개나 딱지조개를 채집할 수 있거든요.”

나는 종아리까지 찢어져 있는 드레스 자락을 조금 더 걷어 묶었다.

무릎 위로 치마가 걷혀서 맨다리가 드러났는데 그걸 보고 에녹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그의 귓불이 붉어진 것도 같은데…….

뭐 저리 쑥맥처럼 굴지? 여자 다리 처음 보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작살을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일단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인 곳을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우선 파도가 치는 바위 틈을 먼저 살폈다. 역시나 파도에 밀려온 작은 물고기들이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물고기들을 주워 돌로 빻은 뒤, 바다에 뿌렸다. 큰 물고기들을 유인해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한참 시간이 흐르자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물고기들을 보며 타이밍을 재다가 물속으로 작살을 내리꽂았다.

처음 몇 번은 실패했지만, 스무 번 정도 이 짓을 반복하고 나니 그래도 납지리처럼 생긴 물고기 두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하드코어 캠핑을 즐길 때부터 생각했지만, 나는 야생이 체질인 것 같다.

베X 그릴스도 아니고 뭐 이런 거에 기뻐하나 모르겠지만, 성취감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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