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들어오느냐! 천지신명님이 노하신다! 아아아아악!”
나는 지금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 상태였다. 벌써 다섯 군데나 소박맞았다.
“……왜지.”
“유라야, 이제 포기하고 호텔,”
나는 최지혁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쑤셔 넣어 주고 다시 고민했다.
왜! 뭐가 문제냔 말이야!
나는 최지혁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최지혁도 그걸 원했고.
드라마에서 봐서 잘 안다. 귀신 같은 거 보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힘만 세진 줄 알았더니 왜 이상한 걸 보고 앉아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제사 때는, 갑자기 로또 번호를 불러주시길래, 필요 없다고 한 거밖에 없어.”
“……나, 나 이해가 안 돼.”
“유, 유라야. 다시 물어보고 올까? 괜히 관심 받을까 봐 필요 없다고 했는데, 다시.”
최지혁은 횡설수설 알 수 없는 말을 떠들었고, 나는 다시 최지혁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우리 집에도 있니? 귀신?”
내 말에 최지혁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가소롭다는 듯이 하! 웃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야차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놈들은 진즉에 잡아 죽였지. 어딜 감히.”
나는 최지혁의 머리통을 쓱쓱 쓸어주었다.
그래, S급 외계인도 잡는 인간인데 귀신이라고 못 잡을까.
괜한 걱정을 했나 싶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근데 진짜 귀신이 있어?”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귀신인지 뭔지 알 게 뭐야. 어차피 나도 그런 건 제사 지내러 갈 때 처음 봤어.”
“평소에는 안 보여?”
“없던데.”
나는 최지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집 근처에 있는 애들 다 잡았다며.”
“그건 혹시 몰라서 뒤져봤지.”
최지혁이 내 손길이 좋은지 제 머리를 더 들이밀었다.
참, 스킨십이 1차원적이야.
나는 허허 웃으며 최지혁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어차피 여기서 힘 쓸 일 없어. 간혹 가다 걸리는 애들도 잡몹 수준이라고.”
최지혁이 내 허리를 바짝 안았다. 그리고 쓱 주변을 보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내 뺨에 제 뺨을 부볐다.
사람 지나다니면 한 소리 듣는 걸 알고 저러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사는 거 안 답답해?”
내 물음에 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답답해. 난 원래 일반인이었어.”
요즘 들어 살짝 불안하긴 했다. 최지혁은 나와 내 세계에서 10년도 더 살았다.
10년 동안 사건사고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결혼 전에는 나름 아무 일도 없었다. 힘쓸 일이 딱히 없었으니까.
문제는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다.
나도 이미 최지혁의 힘에 익숙해져 있었고, 어차피 남자라고는 최지혁밖에 안 만나서 뭐가 이상한지 몰랐다.
애 둘을 양팔에 휘뚜루마뚜루 얹고 가는 남자는 흔하지 않다. 그것도 6살짜리와 4살짜리를.
저번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러고 애들 단풍 구경 시켜준다고 등산 갔다가 큰일이 날 뻔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애 유치원 운동회에서 솔이 남자친구 아빠 이기겠다고 전속력으로……. 환장한다.
온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난 너 곤란하게 할 생각 없어.”
최지혁이 내게 빠르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슈퍼히어로 영화 그만 봐. 나는 그런 거 할 양심도 없고 시간도 없어. 승진해야 해.”
어이가 없었다. 그놈의 승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재미 들린 모양이다.
하기야, 사회적 지위는 애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하니까.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 최지혁의 입술에 입을 여러 번 맞춰 주었다.
“언제는 일 때려치운다며?”
“네가 안 된다며. 칼퇴인 내가 양보하라며.”
내 말에 최지혁이 풀죽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양보할 테니까 이제 무당집 그만 가고 호텔,”
나는 최지혁의 입을 막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뒤에 있는 작은 천막을 보았다.
“최지혁. 사주 보자.”
“젠장.”
***
“둘이 결혼했어?”
최지혁은 퉁명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만에 둘만 있는 시간인데 자꾸 다른 놈들이 끼어든다.
그냥 유라한테 싫다고 한마디 하면 되는 문제이긴 했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세상에. 남편 팔자가…… 기구하구만, 기구해.”
중년 여자의 말에 유라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막 신기 있고 이런 거 아니죠?”
“그걸 내가 우째 아누.”
“사주는 못 봐요, 그런 거?”
최지혁은 유라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지루하다. 격렬하게 둘만 있고 싶었다.
그런데 유라의 눈빛이 반짝거려서 입만 꾹 다물었다.
“신기는 개뿔이 신기. 온갖 잡귀들이 마주치자마자 꽁무니 빠지게 도망갈 상이구만.”
중년 여자가 최지혁의 얼굴을 척 가리키며 말했고, 거기에 또 유라가 심각하게 물었다.
“헉, 관상도 보세요?”
“쓰여 있잖나.”
“아. 간판에 쓰여 있네?”
최지혁은 대충 유라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보자, 보자. 오. 아내분은 아주 그냥 사주에 돈이 그득그득해.”
재밌나 보다. 유라의 눈이 흥미로 반짝거렸다.
“정말요?”
“부동산 관심 많지? 득도 많이 봤고.”
“헐, 네. 좀.”
중년 여성은 허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자, 보자……. 20대 초반에 조금 안 좋은 일 있었네?”
“엥? 글쎄요.”
여자의 시선이 순간 최지혁에게 향했다.
최지혁은 잠깐 선득한 느낌을 받았다.
“흠, 본인이 그렇게 못 느꼈으면 말고.”
최지혁은 인상을 구기고 똑바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있다.
“문제는…… 남편 사주가 이 세상 사람 사주가 아닌데. 아주 그냥 젊은 시절이 찬란하구만? 지금 마누라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
“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가자고 할까? 최지혁은 유라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유라의 표정은 진지해져 있었다.
“댁네들은 이런 데 오면 안 돼. 그냥 살어. 보아하니, 여자 마음만 안 변하면 아무 일 없이 편안히 살어.”
“아니, 왜요?”
“왜긴 왜야. 알면서 뭘 물어? 그리고 거기 남편. 나 노려보지 말고. 무섭다, 무서워!”
그 말에 유라가 급하게 일어나며 물었다.
“잠깐, 잠깐! 귀신, 그러니까 그…….”
여자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답했다.
“거참, 귀신이 뭐야. 신도 때려잡을 상이라니까 그러네! 여기 오기 전에도 무당집 찾아갔다 죄다 쫓겨났지?”
“…….”
최지혁은 입술을 꾹 다문 유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유라의 걱정은 받으면 기분이 좋다가도 좋지 않다.
유라가 불안해하면 그도 불안해지니까.
“네 남편을 걱정할 게 아니라 귀신을 걱정혀! 뭘 그런 것 가지고 호들갑이야. 축하해, 아내가 마음 변할 일은 없겠구만. 가봐!”
결국 쫓겨났다.
최지혁은 그냥 건물 앞에서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게 밥이나 먹자니까.”
그때였다. 유라가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최지혁은 딱딱하게 굳었다.
왜 울지? 왜? 설마 뭐 잘못했나?
여기서 밥 먹자는 얘기를 꺼내면 안 됐나?
유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허리를 덥석 껴안았다.
“자기야.”
“……읏.”
저 호칭은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됐다. 배 속이 여전히 꿈틀거렸다.
“속상해. 네 팔자가 기구하긴 뭐가 기구해.”
“…….”
유라가 그를 더 꽉 껴안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그때…… 나 없이 어떻게 살았어?”
“…….”
최지혁은 그제야 알았다. 유라는 10년 전 그날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있었다.
저 여자가 쓸데없이 이상한 말을 꺼내서 그렇다.
유라를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니.
틀린 말이 아니라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지냈어. 그냥…… 네가 시킨 대로 잠도 자고 밥도 먹긴 했어.”
유라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최지혁은 유라와 지내며 상당히 솔직해진 편이었다.
굳이 거짓말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계속 후회했어. 빌어서라도 잡아 놓을걸.”
최지혁은 유라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런데, 어차피 빌어서 널 내 옆에 붙여놔도 후회했을 거야. 난 너한테 사랑받고 싶으니까.”
유라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잘됐잖아?”
유라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일반인이 아닌 편이 사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이제는 최지혁도 유라를 잘 알았다.
이럴 때는 부끄러워하는 거니까 가만히 만지작거리고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여기 처음 왔을 때 계속 불안해했던 거야? 또 혼자 남겨질까 봐?”
최지혁은 유라의 말에 코끝을 찡긋거렸다.
또 들켰다. 역시 비밀을 만드는 건 좋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혼자 못 자는 거고?”
최지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아니었다.
어차피 10년이나 지났고, 애들도 있는데 갑자기 원래 세계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왜 대답이 없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음. 배 안 고파?”
최지혁은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아, 그건 그냥 흑심이다?”
“…….”
유라가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
다행이다. 밥팅이 소리는 안 들었다.
그가 안도하거나 말거나 유라는 그의 품에 안겨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자기야.”
“응.”
가슴이 간질거렸다. 큰일 났다. 최지혁은 이 뒤에 올 말을 알고 있었다.
“호텔 가서 밥만 먹어?”
“……제길.”
신사같이 굴고 싶은데 다 망했다. 최지혁은 냅다 유라를 들고 차로 달렸다.
“엄마야! 또 시작이야! 최지혁 급발진!”
그리고 바보처럼 웃었다. 어차피 유라는 그가 웃는 걸 좋아해서 모양 빠지게 웃어도 상관없다.
유라가 저도 웃기다는 듯 최지혁의 입꼬리를 매만졌다.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이래.”
“이건 힘자랑 아니야. 못 드는 놈들이 이상한 거야.”
유라가 그의 말에 웃으며 입을 맞춰 주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왜, 그의 과거에는 이런 삶을 경험할 수 없었을까?
정말 그의 사주가 그렇게 거지 같았던가? 단순히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모르겠다.
일단 지금 최지혁은 행복하다.
“있잖아, 유라야.”
“응. 왜?”
“넌, 지금 삶이 행복해?”
지탱할 가족이 생겼고, 비빌 언덕이 생겼다.
“안 행복할 게 뭐 있어? 왜, 넌 안 행복해?”
“아니.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그거면 됐다.
“그래서 오래 살 거야. 그러니까 너도 오래 살아야 해.”
“당근 빳다지. 증손주까지 보고 갈 거야.”
“…….”
물론 그 말에 잠깐 솔이의 남자친구 얼굴이 스쳐 지나가 불쾌해졌다. 하지만 상관없…….
“난 걔 마음에 안 들어.”
“이 양반이 뭐래.”
상관없지 않다! 갑자기 속에서 열불이 끓었다.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어디서 결혼 타령이야? 용납할 수 없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시동이나 걸어.”
“쓸데없다니! 나는 아직 증손주까지 볼 마음의 준비가…….”
그때였다. 유라가 운전석으로 냉큼 넘어와 그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항상 보여주는 얼굴로 웃었다.
“데이트 안 할 거야?”
늘 이런 식이었다. 유라는 그를 잘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최지혁은 유라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입 맞추며 말했다.
“유라야, 사랑해.”
“나도.”
-남주가 내 후원을 좋아해!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