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145)

외전.

최지혁은 나를 한참 동안 안고 내 뺨에 제 뺨을 부볐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유라야. 유라야.”

“……우씨, 왜 울어. 네가 울면 나도 눈물 나잖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울음을 억지로 참고 최지혁의 등을 쓸어주며 꺽꺽대는 그를 달랬다. 아까는 내가 울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최지혁 차례인가?

“유라야, 이거 꿈 아니지?”

“꿈 아니야. 너 군대 두 번 가야 해. 지금 문제가 심각하다고. 정신 차려!”

“유라야…….”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최지혁은 양복을 입고 있지 않았는데, 왜 양복차림이지?

심지어 내 방 서류더미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최지혁의 민증은 24살이 아닌 26살로 되어 있었다.

단순한 오류인가? 도대체 2살을 어디서 얻어온 거냐고 최지혁에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그런걸 대답 할 정신까지는 없어 보였다.

최지혁은 실신할 것처럼 울고 있었으니까.

꼭 죽었다 살아난 사람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지혁. 울지 마. 응? 꿈 아니야. 나 앞에 있잖아.”

내 말에 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내 품에 안겼다.

몸집이 커서 다 안 들어왔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안아줬다.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딱 하나는 알겠다.

엿 될 뻔했다는 거.

아까 그 이상한 공간에서 만약 최지혁을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차에 치여서 죽었다.

생각해 보니까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유라, 야, 나 숨, 숨이.”

“최지혁 미쳤어?! 숨 쉬어! 숨!”

최지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숨까지 헐떡대며 내게 더 가까이 붙었다.

“벼, 병원 갈까? 응?”

내 말에 최지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웅얼댔다.

“너무 좋아…….”

그리고 나는 최지혁의 정수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 인간이 누구 간 떨어지라고 고사 지내나.

“장난해?”

“……아니.”

내가 쏘아붙이자 최지혁이 고개를 빼꼼 들고 내 눈치를 봤다.

얘를 어쩜 좋지?

“아무튼 그만 울고. 우리 할 일 많아. 은행 가서 계좌에 돈 있는 거 확실한지 알아봐야 하고 문서도 일일이 진짜인지 확인해 봐야 해. 그리고 옷도 사야지.”

“응.”

최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또 못 믿겠는지 나를 꽉 껴안고 부르르 떨었다.

결국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최지혁. 설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없어. 아니야.”

최지혁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빠르게 눈물을 닦았다.

“일단 세수하고 와.”

“…….”

내 말에 최지혁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잡고 있는 제 손을 꼼지락거렸다.

설마 혼자 가기 싫다는 건가.

최지혁은 숨을 꿀꺽 삼키더니 아주 느릿하게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침대에 앉아서 문서들을 살펴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진짜 모르겠다.

도대체 이 문서들은 뭘까?

486억은 또 뭐고? 최지혁의 세상은 어떻게 된 거지? 리온이랑 에르켈은? 준우는? 회사 사람들은?

내 핸드폰은 이제 완전히 원래의 모습을 찾아버렸다.

그 세계에서 찍었던 사진들, 그리고 모든 연락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제일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입영통지서는 뭐냔 말이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최지혁, 이제 좀 괜찮아?”

나는 근처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최지혁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에 최지혁은 아까보다 더 수척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나를 냉큼 안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내 물음에 최지혁이 잠깐 뻣뻣하게 굳었다.

“……아.”

그리고 인상을 확 찌푸리며 내 눈치를 흘끔흘끔 봤다.

“왜?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잠깐 연락 좀…….”

어이가 없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의 손이 반쯤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인벤토리.”

머리가 쉴 새 없이 굴러갔다. 최지혁의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인벤토리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작동이 된다……?

최지혁은 통신 아이템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삑삑삑 눌렀다.

- “……형? 그 앞에 있는 사람 누구예요……?”

그러자 최지혁의 앞에 작은 홀로그램 같은 게 뿅 떠올랐다.

최지혁은 냅다 내 머리를 제 가슴팍에 박아 버렸다.

나는 그냥 가만히 멍이나 때렸다.

뭐지.

최지혁의 손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 “아, 하하하하! 아하, 세, 세상에! 유라야, 무, 무사히 도착했구나!”

준우 목소리였다.

최지혁은 그제야 나를 제 품에서 놓아주었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지혁지혁, 멍 때리지 말고 소환이나 해라!”

최지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좁은 자취방에 거대한 리온과 에르켈이 뚝, 떨어졌다.

머리가 아파왔다.

진짜 뭐지.

“역시, 지혁지혁은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 마스터가 다 해. 그렇지?”

리온이 앞에서 엄지를 척 날리며 웃고 있었고, 에르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최지혁을 쓰윽 훑었다.

“질질 짰군. 최지혁.”

“……너네 가.”

그리고 최지혁이 가차 없이 리온과 에르켈을 보내버렸다.

나는 어색하게 화면을 향해 손만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게 뭐야?

- “유라 양.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까 나중에 연락해! 쉬어!”

도경 아저씨가 부랴부랴 뭔가를 하더니 화면이 삑, 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최지혁에게 안긴 채로 여전히 멍하게 화면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최지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건 도대체 뭔 표정이냐.

“최지혁. 설명해.”

내 말에 최지혁은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우물쭈물 대답했다.

“인벤토리…… 안에 든 물건은 다 쓸 수 있는 것 같고…… 내 세계 멸망은 막았어, 유라야. 걱정할 거 없어.”

“리온이랑 에르켈은 뭔데?”

“……원래, 서번트는 성좌가 아니라 화신에게 종속되는 거라……네가 돌아간 이후로 바로 나한테…….”

혼란스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뭐, 어차피 항상 그래왔듯 이해할 수 없는 건 안 하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나는 그냥 대충 웃으며 최지혁을 껴안았다.

“됐어. 연락은 나중에 하고 옷이나 사러 가자. 옷은 인벤토리에 안 넣어 놓지 않았어? 없지?”

내 말에 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최지혁 카드로 다 긁어 버려야지. 486억 언제 다 쓰냐.”

내 장난기 어린 말에 최지혁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다 줄 수 있어.”

그리고 삐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최지혁에게 안긴 채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얼씨구, 다 주긴 뭘 줘?”

아, 뭔가 내가 상상한 재회는 이게 아니었는데.

최지혁은 예고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쩐지 전화를 더럽게 안 받더라.”

“……여보.”

나는 반사적으로 최지혁을 내 뒤로 숨겼다. 그런다고 숨겨지겠느냐마는.

“아, 하하하하, 엄마……아빠…….”

오랜만에 봐서 당장이라도 엄마랑 아빠한테 가고 싶었지만 나는 상황파악을 할 줄 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일단 가만히 있었다.

망했다. 제대로 망했다.

“너 동거하니?”

***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까먹었다. 엄마 아빠랑 저녁 약속 있었던 거.

“악! 엄마!”

“미쳤어. 미친 게 분명해.”

최지혁은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 얼어 있다가 엄마가 내 등짝을 때리기 시작하자 다급히 내 앞을 막았다.

“어, 어머님. 죄송합니다!”

“채유라. 너, 나와.”

“그러니까, 어머님. 제가 그냥 막무가내로 들어온 거고 유라 아무 잘못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최지혁의 말에 얼탱이가 없어서 빽 소리를 질렀다.

“뭔 소리야. 내 손 잡고 들어왔으면서 뭘 막무가내로 쳐들어왔대!”

그리고 아빠가 뒷목을 잡았다.

“나는 집에 갈란다. 난, 난 이 꼴 못 봐.”

“가긴 어딜 가, 애가 동거를 하는데!”

엄마가 밖으로 나가려는 아빠의 손목을 질질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차마 동거가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다.

진짜로 동거를 하긴 했거든.

최지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연신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고, 나는 깊이 고민했다.

아씨, 어떻게 해결하지.

“채유라. 뭐야? 맨날 처박혀서 게임만 하더니 진짜 동거야? 너 대답 똑바로 해.”

엄마의 말에 최지혁이 뜨끔하며 고개를 더 푹 숙였다. 무슨 얼차려 받는 사람 같았다.

“동거 아니고, 얘 방금 왔어! 방금!”

내 말에 엄마가 좀 누그러졌다.

“……남자친구야? 애 얼굴 꼬라지가 왜 이래?”

엄마가 최지혁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고, 최지혁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최지혁이 방금까지 엉엉 운 사람 같아서 물어본 모양인데 쟤는 곧이곧대로 안 들었나 보다.

내가 못 살아.

“영화 봤어. 엄청 슬픈 영화.”

내 말에 엄마는 무슨 말이냐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최지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말했다.

“배우 준비하는 애야?”

그리고 아빠가 뒤에서 조용하게 말했다.

“뭐……. 튼실하게는 생겼네.”

최지혁은 그 말에 멍하니 얼어있다가 곧 말뜻을 이해했는지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어이가 없었다. 거의 5년이나 봤지만 저렇게까지 과도하게 예의 바른 최지혁은 처음이었다.

“얘, 우리가 뭐 잡아먹니?”

“아, 아닙니다!”

당황했다. 100퍼센트 당황했다.

아빠는 상당히 억울한 표정으로 다 들리게 투덜댔다.

“딸내미 곱게 키워서 남 주네, 남 줘.”

민망했다. 상당히 민망했다.

“아빠, 그러지 말고 우리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약속 있는 거 깜빡했다. 응?”

나는 공략이 쉬운 아빠에게로 재빨리 다가가 알랑방귀를 뀌었다.

아빠가 금세 얼굴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유라 남자친구라며. 어휴, 대충 싼 거 먹고 끝내려 했는데 갈비로 바꿔야겠네.”

그에 엄마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빠에게 말했다.

“난 이 근처 갈비집 별로야. 저번에 갔던 데로 가.”

“예, 예.”

느낌이 매우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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