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145)

최지혁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유라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이기적인 문장들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지혁은 그의 인생 최초로 의젓한 사람이 되어 보이기로 했다.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구제 불능 애새끼가 아닌,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던 티비 속 주인공처럼.

“이번에는 무모한 짓 안 했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싫어.”

“집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유라야. 일상으로 돌아가자. 응?”

“너 두고 내가 어떻게 가!”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유라가, 아무리 저렇게 나와도 본심을 꺼내면 안 된다.

“싫어. 지금은 아니야. 응? 조금만 더 있다 갈래. 최지혁. 너도 나 보내기 싫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어?”

붙잡고 싶다. 그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니까, 남아서 나 좀 봐 달라고 빌고 싶었다.

네가 시키는 대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가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나 같은 건 금방 잊을 거야. 나보다 나은 사람들 많으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데. 싫어. 나 눈 높아. 그런 놈들 없어.”

유라의 눈가가 새빨개졌다. 부은 것 같다.

그 때문이다. 애초부터, 유라가 만든 선을 넘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힘들어하진 않았을 텐데.

그래도, 좋았다. 그를 위해 저런 말을 해주는 것도 좋았고, 난생처음 받아보는 애정 어리고 애탄 눈빛을 다른 사람도 아닌 유라에게 받아보는 것도 사무치게 좋았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눈물이 고였다.

최지혁은 숨을 참았다. 불쌍해 보이면 안 된다.

애원하면 안 된다.

“나 가기 싫어. 너 나 없다고 또 밥 굶으면 어떡해.”

“밥 잘 먹을게.”

“잠 안 자면.”

“잠도 잘 잘게.”

사실 자신 없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 최지혁,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 안 갈래.”

유라가 그의 목을 감싸고 입술을 맞춰왔다.

밀어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될 리가 있겠어. 배 속에서 욕심이 자꾸 꿈틀꿈틀 기어 올라왔다.

“같이 가자. 응? 가는 법이라도 같이 알아보자. 나도 왔는데 너라고 왜 못 가.”

유라가 더 세게 그를 껴안았다. 유라가 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헛된 희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가지 말라고 할까? 지금이라도 매달릴까?

그래서, 그동안 계속 준비하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이기적인 그는 결국 그 단어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이니까.

정말 마지막이니까.

이제 유라를 볼 수 없으니까.

“……유라야. 사랑해.”

마지막까지 애써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척을 하면 뭐 해.

결국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아니,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

품 안에서 유라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최지혁은 곧바로 후회했다.

나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어야 했다.

기억해 달라고, 나 잊지 말라고.

버리지 말아 달라고. 사실 네가 시킨 대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잘 자신이 없다고.

세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이미 그의 품에서 유라는 영영 떠났는데.

그의 세상은 이미 멸망했다.

이제 살아갈 의미가 정말 없는데 어떡하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숨도 쉴 수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쳐다보건 다 상관없었다.

“거짓말이야.”

이제 정말 끝인 건가?

“나 안 괜찮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목구멍이 꽉 막혀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유라야……. 나도, 나도 데려가.”

최지혁은 유라가 있던 자리에 얼굴을 묻고 완전히 무너졌다.

“내가 잘못했어. 유라야. 내가, 잘못했어……. 다 거짓말이야. 나 안 괜찮아.”

이제 정말 유라는 없다. 영원히.

“네가 없어도, 멀쩡하게 살아갈 자신 없어. 없다고. 내가 어떻게 그래! 그러니까, 나 데려가. 나 좀, 유라야…….”

처음처럼. 아무것도 없던 그때처럼. 원래대로 돌아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유라야, 나 이제 어떡해. 어떻게 살아…….”

“지혁지혁, 정신 차려라.”

아니,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다.

유라가, 남기고 간 흔적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만약에, 내가 내 세계로 돌아가 버리면 최지혁 씨는 혼자잖아요. 당장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정도는…….”

유라의 말이 다 맞았다.

유라가 그녀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면 최지혁은 혼자다.

“유라야……. 유라야…….”

“형. 그만하면 됐어요…….”

그런데, 너무 착한 채유라는, 그냥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를 위해서 흔적을 잔뜩 남기고 갔다.

잊지도 못하게, 죽지도 못하게, 놓지도 못하게.

***

“지혁지혁. 그 방에서 좀 나와라.”

빌어먹을 악마 새끼.

최지혁은 제 머리를 쥐어뜯는 리온을 마음껏 째려봐 주었다.

“최지혁 네가 뭔가를 착각하는 모양인데, 주군이 남기고 간 유산은 정확히 삼등분해야 한다. 너만의 집이 아니라, 이 말이다.”

어차피 저놈들이 하는 말은 다 개소리였기 때문에 굳이 주의 깊게 들을 필요는 없었지만 최지혁은 일단 입을 닫았다.

저놈들은 유라에게 명령이라도 받은 듯 최지혁을 챙기고 있었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밥은 알아서 챙겨 먹어라, 지혁지혁.”

“지성준이 시킨 중국발 빌런 처리는 안 할 거냐, 최지혁.”

“그리고 그 방에 처박혀 있으면 마스터 냄새는 다 지워지고 네 냄새만 남는다. 정신 차려라.”

최지혁은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끌려 나와 빌어먹을 천사와 악마 사이에 앉았다.

“벌써 2년이 넘었다, 최지혁. 그런다고 주군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정신 차려라.”

“맞아, 지혁지혁.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어차피 술도 안 마시는 주제에 매일 주군 방 쳐들어가서 질질 짜는 거 안 지겹나?”

최지혁은 시끄러운 거실 한복판에 앉아 그냥 피식 웃었다.

“지혁지혁 실성했다. 이거 못 고쳐. 못 고쳐.”

정말 거짓말처럼, 세상의 멸망이 멈췄다. 게이트도 더 이상 열리지 않았고, 지구가 부서진다거나 하는 불상사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미 열린 게이트로 인한 생태계 변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미 생겨나 버린 각성자 집단들은 서로 파가 완전히 갈려버렸다.

사회에 섞여 민간인들과 같이 안정적인 법 체계 안에서 살아가거나.

아니면 사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본인들의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워나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1차원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범죄를 일으키거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빠르게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한 건 최지혁 하나뿐이었다.

“너어무 마스터가 시키는 것만 하는 거 아니냐, 지혁지혁. 먹고 자고 가끔 지성준이 시키는 일 깔짝깔짝 해서 어차피 쟁여놓고 쓰지도 않을 돈이나 벌어오고. 마스터 방에 처박혀서 안 나오고.”

그 스스로도 한심한 거 알고 있었다.

아마 유라가 보면 바로 그의 등짝이라도 때리지 않았을까 싶다.

“심지어 주군이 시킨 대로 잘하는 것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먹는 행위나 자는 행위를 하는 거지 제대로는 안 한다, 최지혁.”

“그건 나도 알아, 비둘기.”

“모르는 것 같아서 다시 한번 강조해줬다. 박쥐.”

똑바로 살겠다고 다짐은 많이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한심한 새끼라 그게 잘 안 됐다.

딱히 삶의 목표도 못 찾겠고, 유라가 없는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지혁지혁. 그런데 오늘 준우준우 힐러 협회 임원 취임식 있는 건 아냐.”

“맞다. 최지혁. 강준우가 오늘 안 오면 대실망이라고 20번 강조했다.”

“빨리 꼬까옷 입어라, 지혁지혁.”

최지혁은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 4시라고 했다. 가긴 가야 했다. 안 그러면 단체로 찾아와서 또 시끄럽게 굴 테니까.

그러면 또 유라 생각이 자꾸 나서, 조금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최지혁은 옷장을 열었다.

유라가 골라준 옷들이 한가득 차 있었다.

옷을 고르면서 세상 행복한 얼굴로 그에게 입혀보던 유라가 떠올랐다.

또 보고 싶어졌다. 큰일이었다.

어차피 못 보는 거 아는데.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또 한 번, 정신 착란 아이템이라도 구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어차피 사봤자 강준우나 지성준이 노발대발할 게 뻔했다.

그리고 또 뼈아픈 말을 내뱉을 거다.

유라가 실망할 거라고.

어차피 만나지도 못하는데 실망할 게 어디 있나 싶으면서도, 그게 두려워서 멀쩡하게 사는 척이라도 하는 자신이 좀 웃겼다.

2년이나 지났지만 사방이 유라의 흔적투성이였다.

최지혁은 유라가 골라줬던 향수를 가만히 보다가 이번에도 쓰지 못한 채로 가만히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향수는 쓰면 닳으니까, 아껴야 한다.

“지혁지혁 넥타이 삐뚤어졌다.”

“…….”

딱 한 번만 볼까. 사진.

최지혁은 반사적으로 넥타이를 만지며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아마, 지금 열어보면 계속 붙들고 있겠지.

유라가 이곳에 있으면서 가족사진을 안 보는 이유가 있었다.

보면, 계속 보고 싶어진다. 미련이 자꾸 남는다.

결국 최지혁은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배경화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유라가 사진을 많이 남겨 놓은 이유를 알았다.

막상 떠날 때는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다는 듯 굴었지만 사실 유라는 준비를 많이 해놨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인상 찌푸리지 말고 웃으라니까?”

우울해졌다. 유라가 보고 싶었다. 유라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유라가 떠나버린 그 순간부터 찾아봤지만 결국 못 찾았다.

물론 찾는다고 해도…… 유라가 그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 말고도 유라를 좋아할 사람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유라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최지혁은 보잘것없는 사람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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