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45)

Epilogue.

후회했다.

유라가 지난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라고 했지만 후회가 되었다.

끝까지 그는 유라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게 없었다.

“야, 안 자냐?”

“응.”

“너도 참 징하다.”

지금이 아니면 유라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얘기는.”

“내 빌어먹을 성좌야 신났지. 굳이 강림 안 해도 본체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으니까. 내가 별의별 꼴을 다 봤다지만 진짜 이게 뭐냐?”

지성준이 한숨을 푹 쉬며 그의 앞에 앉았다.

“그래서 진짜로 네 여자친…… 그러니까 성좌님께서 멸망하지 않은 세계의 사람이고, 그 세계의 신들이 네 성좌님을 찾는다고?”

“……어.”

최지혁은 조심스럽게 유라의 손을 잡았다. 그냥, 다 꿈 같았다.

“그래서 멸망한 세계이긴 하지만 일단 신 출신인 내 구 성좌 협박해서 염탐을 시킨 거고.”

“응.”

지성준이 기가 찬다는 듯 헛바람을 내쉬며 말했다.

“X발. 신 같은 거 얼어 뒤진 줄 알았는데 있긴 있단 얘기잖아?”

“그래서 뭐라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사형선고라도 듣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야, 뭘 쫄고 그러냐? 한번 보내기로 다짐했으면 깔끔하게 보내줘.”

“……연합 애들은.”

“일단 막고는 있는데…… 글쎄다. 병원까지 쳐들어올 모양인 것 같아. 차라리 사람들 많은 곳으로 나가 있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생각이 있으면 대중들 눈치는 보겠지.”

지성준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최지혁의 등을 대충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시아끼리 이미 뭉치기로 합의 끝났어. 불상사 생기더라도, 일단 대륙은 안전해. 어차피 넌 그딴 거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 알아는 두라고.”

최지혁은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차라리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서 유라를 품에 안고 안 놔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할까?

유라는 답답해하겠지. 지금도 답답해하는데.

“나 때문이야.”

“…….”

전신이 덜덜덜 떨려왔다. 유라를 노리는 존재들이 너무 많았다. 무너져있는 사회도 아니고, 멀쩡히 잘 굴러가는 사회집단 속에서 유라를 지켜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무리 회귀 전 능력들이 살아났다고 해도, 집단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이다.

최지혁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땅굴 적당히 파라. 그러다가 네 성좌님 노하신다. 그리고 눈이라도 좀 붙여라. 그 꼬라지로 있다가는 있던 정도 떨어지겠다.”

***

생각보다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방심한 게 맞았다. 사회가 살아있고,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게 이 정도로 그에게 치명적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그가 없는 1년동안 여러 정부들은 헌터들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벌써 그들을 통제할 장치를 개발했다.

그것도 양질의.

심지어 각개전투를 즐겨 하던 S급 헌터들 또한 개새끼들처럼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놈들은 생각보다 철저했다. 단 5초였지만 당한 건 당한 거였고, 유라를 품에서 잃은 멍청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최지혁, 바로 자신이었다.

끝까지 무능하기 그지없었다.

“이런다고 덜 잔인해 보일 것 같아?”

촤악. 물 양동이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끔찍한 피 냄새가 어느 정도 가신 것 같았다.

최지혁은 망설임 없이 앞에 있던 놈들을 치워버렸다.

비명이 들리는 것도 같지만 일단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시야에는 오로지 유라만이 들어왔다.

“아직 이상한 짓은 안 당한 것 같은데. 그만 흥분하지?”

“개새끼들……. 죽여버릴 거야.”

눈이 돌아갔다. 애초에 가장 큰 잘못은 최지혁 그 자신이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 뒤집혔다.

감히, 누굴 건드려.

전부 터트려 버리고 싶었다. 유라의 털끝이라도 건드린 놈들의 손톱을 다 뽑아 버리고, 평생을 고통에 울부짖게 만들고 싶었다.

“허. 숨통만 안 끊어놨지 거의 죽여놨으면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화신.”

하지만 최지혁은 가까스로 이성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놈들의 목을 어떻게 따야 하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유라를 꺼내야 했다. 최지혁은 맨손으로 빌어먹을 원통을 열었다.

파지직. 잠금 장치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팔에 엉겨 붙었다.

최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팔뚝을 태우는 듯한 고통을 참고 그대로 유라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장치를 부쉈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에그로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

“……싸가지하고는. 자.”

다행히 유라의 몸 상태는 멀쩡했다. 수면 가스에 당한 것만 빼면.

다시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다 죽여버리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유라가 안 된다고 했으니까. 전부터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고 당부, 또 당부했다.

부탁했으니까 들어줘야 했다. 최지혁은 그의 품에 안겨 바르르 떠는 유라를 바짝 안았다.

“최지혁. 흐윽, 나 무서워…….”

유라가 정신을 차리고 내뱉은 첫마디였다.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떨고 있는 건 분명 유라였는데, 유라의 그 한마디로 겁에 질려 버린 건 최지혁, 그였다.

죽고 싶었다. 꾸역꾸역, S급까지 성장하면 뭐 하나.

빌어먹을 S급 헌터도 아니고, 민간인들이 만든 특수 물체에 당해서 유라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나 집에 갈래.”

“유라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집에 가자. 응? 집에, 보내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유라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최지혁, 나 무서워.”

진짜 죽어버리고 싶었다. 무능한 새끼. 도움도 안 되는 새끼.

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 빌어먹을 새끼에게 안겨 왔다.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유라의 상태가 평소와 많이 달랐다.

안정, 안정시켜줘야 했다. 뭐라고 위로라도 해줘야 했는데.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유라야, 내가, 내가 미안해. 이제 갈 수 있어. 보내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자.”

그래도 유라는 금방 제정신을 찾았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물이라도 끼얹고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유라는 귀신같이 그가 평소 상태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너 왜 이래. 포션 어디다 두고, 아, 흑.”

차마 각성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무기에 당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과 달리 사회가 건재해서 그런지 몰라도, 각성자들을 통제할 무기가 이 정도로 발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최지혁은 그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우는 유라를 안고 무조건 똑같은 문장만 내뱉었다.

괜찮아. 집에 갈 수 있어.

그가 만들 수 있는 문장이 몇 개 없어서, 울고 싶었다.

다행히 최지혁이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는지 유라는 긴장을 놓은 채로 그의 품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지혁, 흑, 나, 나 이대로 갇히는 줄 알고.”

최지혁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냥, 남들처럼 최대한 다정하게. 그의 불안감을 들키지 않게.

“괜찮아, 유라야. 내가, 다 처리했어. 이제 집에 가자.”

그렇게 달래주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싫어. 같이 가.”

숨이 턱턱 막혔다. 유라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져서, 최지혁 그 자신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다.”

유라가 못 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은 들었으면 했다.

매달리고 싶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염치없이 매달리고 싶었다.

“같이 가자, 최지혁. 응? 나랑 같이 가. 내가 책임지고 밥 먹여줄게. 응? 나 완전 책임감 있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 최지혁. 안 되면 내가 무당이라도 찾아가서 빌게.”

유라의 말에 최지혁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면 유라는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최지혁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어봤자 유라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안 왔어. 잘했지?”

유라를 품에 안으니 그제야 벌어진 상처가 조금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안티 에스퍼 무기 덕에 포션이 안 들어서 큰일이다.

유라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니, 그의 상처를 보고 많이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다.

최지혁은 빌어먹을 연구소를 빠져나가면서 끊임없이 유라를 제 눈에 담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한국 측과는 이야기가 끝났다.

정말 유라의 세계의 존재들 말처럼 그들은 유라를 찾으러 왔다. 그리고 그의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어차피 게이트 때문에 생테계도 혼란이 온 상태고, 이능력이 이 행성을 지배했기 때문에 더 이상 평행차원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뭐, 그런 연유로 태양계를 완전히 주인님 세계로 편입시킬 건가 봐.’

유라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전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다.

유라는 안전한 세상으로, 유라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세계로.

최지혁은 품 안에 안겨 있는 유라를 더 세게 껴안았다.

마지막 온기를 조금 더 느껴보고 싶었다.

이기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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