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야. 마스터가 어딜 가.”
리온이 당황한 듯이 에그로스의 멱살을 붙들며 말했다.
“마스터. 이 새끼가 말하는 한 시간이 도대체 뭐야?”
리온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내게 물었고, 멱살을 잡힌 에그로스는 짜증 난다는 듯 리온에게 말했다.
“어차피 상관없다고. 안 뒤진다고 몇 번 말해. 정신 좀 차리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리온이 뭐라도 설명해 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혁지혁, 네가 설명해봐라. 마스터 어디 가? 어디 가는데?”
리온의 말에 대답한 건 다름 아닌 에르켈이었다.
“계속 갈망하던 고향에 돌아가겠지. 알고 있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 거지, 박쥐.”
에르켈의 말에 리온이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아.”
“정신 차리고 나와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최지혁만 쳐다보았다.
목에 물먹은 솜이라도 낀 듯 말문이 콱, 막혀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머리도 아프고, 몸도 욱신거렸다.
근육통인 것 같았다.
“얼마 안 남았다. 시간.”
최지혁이 억지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최지혁의 말과 동시에 하늘이 새카맣게 변했다.
일식인 것 같았다.
“유라야. 있잖아.”
“…….”
“그동안…… 미안했어.”
나는 무작정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는 아니었다.
최지혁이 아무리 날 보내준다고 계속 말해왔어도,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했는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이번에는 무모한 짓 안 했어.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야.”
주제에 침착한 척한다고 저러고 있는 걸 보니까, 앞이 잘 안 보였다.
“싫어.”
“집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 유라야. 일상으로 돌아가자. 응?”
“너 두고 내가 어떻게 가!”
나는 최지혁의 손을 덥석 잡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지금은 아니야. 응? 조금만 더 있다 갈래. 최지혁. 너도 나 보내기 싫잖아.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어?”
매달리면 안 되는 거 알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는데, 말도 안 돼.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나 같은 건 금방 잊을 거야. 나보다 나은 사람들 많으니까.”
나는 마구 고개를 저었다.
“아, 그게 무슨 말인데. 싫어. 나 눈 높아. 그런 놈들 없어.”
“너도 인정하잖아. 나는 성격도 안 좋고, 배배 꼬였고, 그리고 가진 것도 없는데 나보다 나은 놈들이 왜 없어.”
최지혁이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닦아 주었다.
억지로 웃으면서 그러고 있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누가 봐도 안 괜찮은 얼굴이었다.
“네가 가진 게 왜 없어. 통장에 240억이랑 서울에 40억짜리 집도 매매해 놨는데 네가 왜 거지야!”
“……유라야.”
“네 이름으로 주식도 샀잖아. 그거 이윤 150퍼센트였단 말이야.”
“…….”
최지혁이 내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억지인 거 나도 안다.
“내 걱정 할 필요 없네. 네 덕분에 나 부자 됐다.”
최지혁이 쓰게 웃으며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나 가기 싫어. 너 나 없다고 또 밥 굶으면 어떡해.”
“밥 잘 먹을게.”
“잠 안 자면.”
“잠도 잘 잘게.”
할 말이 없었다. 최지혁 말이 맞았다. 나는 어차피 집에 갈 수 있으면 무조건 가야 했다.
이 세계는 나한테 너무 위험했다.
“멸망은?”
“안 해.”
“어떻게 아는데?”
내 물음에 최지혁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때, 나 따라서 왔을 때……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엘드리치가 말했어. 다 계획이었다고. 이 세상을 구원할.”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네 세계 사람들도 봤어. 찾으러 왔더라.”
내 손을 붙잡은 최지혁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곧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사람들은 네가 필요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최지혁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계속 참고 있었던 모양인지 최지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제 눈물을 닦았다.
“약속했잖아. 보내준다고. 물론, 내가 보낼 방법을 찾은 건 아니지만…….”
최지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거짓말 안 했어.”
최지혁의 어깨가 들썩였다.
“나 때문에…… 안 겪어도 될 일, 겪게 해서 미안해.”
“…….”
“나 때문에,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최지혁. 나 아직 네 말 이해 못 했어. 사과하지 마. 왜 그래, 진짜.”
“욕심내서 미안해.”
최지혁이 나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살며시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 순간까지도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해.”
최지혁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닦아 줘야 하는데, 나도 정신이 없어서 손이 안 올라갔다.
“유라야,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없던 일로 치고, 나는 너 걱정할 일 없게 잘 살 테니까, 그렇게 살자.”
그리 말하는 주제에 최지혁은 내 손을 놓지 못했다.
“싫어. 최지혁,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 안 갈래.”
“유라야. 감히, 내가 너한테 마음 품어서 미안해.”
나는 막무가내로 최지혁의 목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최지혁이 스쳐 지나갔다. 최지혁 말대로 돌아가면 평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최지혁의 손이 내 허리를 잡았다. 떨어져 있기 싫었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최지혁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고 해도, 절대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최지혁이 내 아랫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나는 최지혁의 뜨거운 호흡을 삼켰다.
정말 마지막인 건가? 나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최지혁의 옷을 꽉 움켜쥐었다.
“같이 가자. 응? 가는 법이라도 같이 알아보자. 나도 왔는데 너라고 왜 못 가.”
할 수 없는 일, 헛된 희망을 바라게 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시간 다 된 것 같다. 유라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다.
“생각보다…… 빠른 것 같다. 그렇지?”
최지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라야. 사랑해.”
순식간이었다.
화면이 꺼지는 것처럼 주변에 있던 모든 게 사라졌다.
새카만 배경 속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목이 따가웠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게 뭐냐고 따지고 싶었다.
여기가 어디야. 이제 최지혁을 다시는 못 보는 건가?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이렇게 허무하게?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와중에 주변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주머니에 있던 내 핸드폰이 우웅, 울렸다.
아무 생각도, 아무 힘도 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아직 현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알고 보면 여태까지 일어난 일들이 다 내 망상 아닐까?
우웅.
눈치 없는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최지혁, 이 나쁜 새끼. 끝까지…….”
어차피 보내줄 거였다면 사랑한다고는 왜 말했는데?
난 그 말도 못 해줬는데.
하지만 내가 죄책감에 휩싸여 있거나 말거나 내 핸드폰은 미친 듯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1-A지구 한반도 지부 영혼 관리 지원팀입니다.
현 시점 이후로, 귀하는 지구 1-A로 귀환합니다.
일전 있었던 차원홀 사고로 인해 발생된 폐기 차원 불시착 오류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해당 건은 관리팀에서 빠르게 복구 중입니다.
오류에 대한 원하시는 보상을 해당 번호로 보내주십시오. 최대한 빠르게 의견을 반영하여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