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145)

그냥 멍했다. 꿈인가? 모르겠다. 얜 왜 비 맞은 생쥐 꼴로 여기 있지? 여기가 어디지?

머리가 너무 핑글핑글 돌아서 눈에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에휴, 멍청한 놈들. 나는 더 정리하다 오지.”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유라야. 정신 차려, 유라야. 응?”

“최지혁. 흐윽, 나 무서워…….”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덜덜덜 떨었다.

아직도 상상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눈앞의 최지혁의 품에 안겼다.

“나 집에 갈래.”

“유라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집에 가자. 응? 집에, 보내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유라야.”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최지혁, 나 무서워.”

나를 껴안은 팔이 덜덜덜 떨렸다. 밖에서는 뭐가 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점차 정신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

주변이…… 난장판이었다. 내가 갇혀있던 원통은 이미 작살난 지 오래였고, 바닥에는 사람들이 숨만 헐떡거리면서 쓰러져있었다.

그걸 에그로스가 일일이 치우고 있었고.

이게 뭐지 싶었다.

얘가 왜 여기 있으며,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며, 또…….

“유라야, 내가, 내가 미안해. 이제 갈 수 있어. 보내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자.”

최지혁의 눈에 초점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최지혁은 지금…….

“네가 왜 여기 있어.”

손이 덜덜덜 떨렸다. 왜 비 맞은 생쥐 꼴인가 싶었는데 저 멀리 입구 근처를 보니 커다란 물 양동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피를 너무 많이 뒤집어써서 최지혁이, 나 놀랄까 봐 일부러 물이라도 끼얹고 들어온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전신이 이렇게까지 젖어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피 냄새가 어디서 나나 싶었더니, 미친 최지혁.

“너, 이게 뭐야.”

몸이, 만신창이였다. 이런 상처는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도 한 번도 못 봤는데, 심장이 아까보다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고! 너 왜 이래. 포션 어디다 두고, 아, 흑.”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안 아픈가? 어차피 이렇게 물어봤자 최지혁이 내놓을 대답은 하나였다.

“유라야.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최지혁, 왜 이래. 빨리 인벤토리 열어. 응?”

피가, 안 멈췄다. 최지혁이 멍청해서 포션을 안 마셨을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망할 개새끼들이 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바보야, 여길 오긴 왜 와!”

“지켜준다고 했잖아. 왜 당연한 걸 물어봐.”

환장하겠다. 지키긴 뭘 지켜, 자기 목숨이나 지키지 왜 자꾸 나한테 목숨을 걸어.

쓰게 웃는 최지혁을 보니까 막,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유라야. 괜찮아. 응? 괜찮아.”

최지혁이 정신없이 나를 안고 어울리지도 않는 위로를 한답시고 열심히 토닥여 주었다.

그것도 한껏 다정한 말투로.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나약해서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긴장이 풀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최지혁, 흑, 나, 나 이대로 갇히는 줄 알고.”

“괜찮아, 유라야. 내가, 다 처리했어. 이제 집에 가자.”

“싫어. 같이 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알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무책임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최지혁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목 놓아서 울어버리는 바람에.

“같이 가자, 최지혁. 응? 나랑 같이 가. 내가 책임지고 밥 먹여줄게. 응? 나 완전 책임감 있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 최지혁. 안 되면 내가 무당이라도 찾아가서 빌게.”

“유라야. 그렇게 울면 너무 힘드니까, 조금만 참자. 응?”

최지혁이 성치도 않은 몸으로 나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혼자 안 왔어. 잘했지?”

혼자 안 왔다고?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안 남았어, 유라야.”

나는 최지혁을 이리저리 살폈다. 병원이라도 가야 했다. 피가 안 멎잖아.

“최지혁. 포션 먹어. 응? 아프잖아.”

“안 아파. 아무것도 아니야. 유라야.”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최지혁은 자연스럽게 내 눈을 가렸고, 최지혁을 따라온 에그로스가 빠르게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

“화신. 두 시간 남았다.”

“…….”

최지혁은 나를 안고 빠르게 어딘가로 향했고, 그러자 폭음 같은 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X발, 야, 최지혁! 여기!”

지성준 목소리였다. 이상했다. 왜 저 인간 목소리가 들리지?

“후환이 쥰네 두렵네. 한 시간 버틴다, 최지혁. 이번엔 구라 아니지?”

“확인했잖아.”

“아, 예. 빨리 꺼져.”

말도 안 된다. 지성준이 왜 여기 있어? 최지혁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거두자 검은색 차가 보였다.

최지혁은 망설임 없이 나를 안고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에 탄 이름 모를 사람들 여럿이 총을 빼 들고 차창 밖을 향해 쏴대기 시작했다.

최지혁은 친절하게 내 귀를 막아주며 큰 소리로 물었다.

“몇 분 걸립니까.”

“10분만 이동하면 바로 설치해둔 이동 포털입니다.”

최지혁의 몸이 뜨거웠다. 출혈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옆에 올라탄 에그로스는 불안해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편해 보이는 반바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슬슬 나머지랑도 인사해야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작정 옷을 받아 입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핸드폰이 잡혔다.

다행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포션을 사서 최지혁에게 먹이려 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에그로스가 한심하다는 듯 내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인간들이 무슨 수작을 썼는지 몰라도 그런 거 안 통해요. 주인님.”

그에 최지혁이 황급하게 말했다.

“유라야. 안 아파. 괜찮아.”

“안 아프긴 뭐가 안 아파.”

나는 더듬거리며 최지혁의 얼굴을 만졌다. 그에 최지혁은 눈을 가만히 감았다.

꼭 내 손길이라도 느껴보려는 사람처럼.

속상해 죽을 것 같았다.

최지혁은 웬만한 공격에는 꿈쩍도 안 하는데. 엄청 튼튼한데.

왜 이 꼴이냐고. 원래 이런 상처 나도 금방 나았다.

“유라야. 울지 마. 머리 아파.”

최지혁 말대로 너무 울어서 머리가 진짜 아프긴 했다.

그래도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

타고 있는 차는 계속 덜컹거렸고, 한참을 기다리자 차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포털 개방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말과 함께 최지혁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유라 양. 잘 왔어. 이쪽으로 가자.”

그리고 그곳에는 도경 아저씨와 회사분들이 서 있었다.

“어휴, 그동안 면회신청이 안 돼서 조마조마했는데 이제라도 보니 다행이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최지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지혁은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모양이다.

“이선우 씨, 여론은 어떻습니까.”

“아, 방금 연구소에서 답변 왔습니다. 인공위성에 이상한 기류가 잡힌다고 했고, 금방 공중파 탈 예정입니다.”

최지혁이 나를 꽉 껴안았다.

“유라야, 리온하고 에르켈.”

최지혁의 말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에르켈과 리온을 소환했다.

“마스터!”

“주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진짜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왜 여기 있는 거고, 여기는 어디지?

군부대 같았다.

“유라야!”

“……왔냐.”

“형, 세상에, 무슨 일이야. 꼴이 왜 그래요.”

준우가 사색이 된 얼굴로 최지혁의 몸을 살폈다.

그러자 초록빛이 최지혁을 완전히 감쌌다.

그리고 아물지 않던 상처가 점점 아물기 시작했다.

“아, 안티 에스퍼…… 뭔 중이병 같은 이름인가 했더니 효과도 중이병 같네.”

준우가 최지혁의 옆에서 투덜대며 말하다 옆에 있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유라야. 상태는 어때. 괜찮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어.”

나는 떨리는 눈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이게 다 뭔지 설명이라도 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 시간 남았다. 화신.”

최지혁의 옆에 있던 에그로스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이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최지혁이 나더러 집에 가라던 거.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모인 이유.

“유라 양. 그, 어쩔 수 없이 정체를 다 알게 됐어.”

도경 아저씨가 최지혁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침착하게 내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고 들었거든?”

그리고 아저씨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있는 내 손을 잡고 계속 말씀하셨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집에 있는 가족들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그동안 고마웠어, 유라 양.”

최지혁이 힘드니까 울지 말라고 했는데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럴 수는 없다.

“유라야. 많이 못 찾아가서 미안. 그리고 나도 그동안 고마웠어…….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인사 오래 못 해서 아쉽다.”

준우가 내게 쓰게 웃으며 말했다. 울먹거리는 게 다 보였다.

“자, 한 시간밖에 안 남았으니까, 둘이서 얘기하게 두죠.”

이영 변호사님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봤던 사람들이 나한테 자꾸 작별인사 같은 걸 하기 시작했고, 최지혁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현실이 파악됐다.

최지혁의 집에 갈 수 있다는 말은 진실이었고,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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