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45)

긴장이 됐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전보다 덜 위험한 상태라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경제도 조금 회복되어서 사람들 표정도 활기가 있었다.

물론 음식점이나 편의점을 들어갈 때마다 내가 먹을 것에 위험 물질이 들어있지는 않나 검사하는 건 좀 귀찮았다.

최지혁이야, 이미 일반인의 경지를 넘은 지 한참 되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나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유라야. 이제 들어갈까?”

최지혁이 내 옆에 찰싹 붙은 채로 말했다. 아직 세 시간밖에 안 됐는데. 좀 이르지 않나.

“벌써?”

“…….”

최지혁의 시선이 내 등 뒤로 향했다. 그리고 표정도 험악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응, 알았어. 가자, 이제.”

나도 눈치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지금,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괜히 겁이 났다.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황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때였다.

콰과광!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최지혁의 품에 뛰어들었다.

소리가 난 쪽에는 검은색 복면을 쓴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제기랄.”

우리를 따라오던 한국 측 헌터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말도 안 됐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이렇게 공격한다고? 대놓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빠르게 핸드폰을 들고 리온과 에르켈을 소환했다.

아직 에그로스는 믿을 수 없다.

저번에 라탄을 서번트로 삼았을 때도 내 명령대로 따르지 않은 전적이 있었으니.

명령에 빈틈이 있다면 분명 빠져나가려 할 거다.

“리온, 에르켈, 일단 소형화하고 숨어있어.”

나는 리온과 에르켈을 내 옷 속에 숨긴 채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망설임 없이 나를 꽉 안은 채로 뒷문을 향해 달려갔다.

“대피 부탁드립니다!”

“A조 후문 대기 중입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주변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생포해서 국적 확인 바람.”

무전기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괜히 나오자고 했다.

아니지, 대충 견적을 보니 다들 헌터 같은데 설마 병원에 계속 있었다 한들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여기라고 뭐 달라? 사람은 병원보다 이곳이 더 많았다. 번화가이니 말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거기서 거기다 이 말이다.

“최지혁 헌터님, 게이트 관리청 지성준 청장님 직소속 헌터 안창환이라고 합니다. 채유라 님 저희 측에서 모시겠습니다.”

와중에 누군가 최지혁에게 말했고, 최지혁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 남자를 가차 없이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어디서 구라를 까. 내가 그 정도 신원 파악도 안 해놨을 거라고 생각하나? 난 네 얼굴 처음 보는데.”

“커헉!”

최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눈을 가리며 말했다.

“감고 있어. 그냥 그렇게 있어.”

나는 최지혁의 말대로 눈을 꾹 감았다. 쾅! 쾅! 쾅! 폭발음과 함께 우우웅거리는 시동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첩보영화도 아니고 이게 뭐야.

“엄마!”

몸이 붕 떠올랐다. 최지혁은 빠르게 달리고 있었고, 뭔가 찍히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은 계속 감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최지혁, 애들 안 꺼내도 돼?”

“아직.”

나는 실눈을 뜨고 최지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얘 뭔데 지붕 위에 올라와 있어?

아래에서는 한국 측 헌터들과 검은 복면을 쓴 인간들이 대낮 도시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었다.

“미쳤네. 작정했나 봐.”

어이가 없어서 헛바람이 훅훅 빠져나갔다.

“우리 어디로 가? 다시 병원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내 말에 최지혁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품 안에 있는 리온이 설명해 주었다.

“저놈들 다 S급 헌터들이다, 마스터.”

“뭐? 거짓말하지 마, 말도 안 돼.”

S급 헌터들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움직인다고?

뭐가 아쉬워서?

이곳에 떨어지기 전, 그러니까 최지혁이 회귀하기 전 S급 헌터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절대 어딘가에 속하는 경우가 없었다.

가족이 국가 요직이거나, 특별한 사명감이 있지 않은 이상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 경우는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S급 헌터들은 거의 대부분 특정 길드의 수장이나 그에 준하는 계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S급 여러 명이 집결할 수 있지? 돈으로 유혹한다 해도 웬만한 금액에는 꿈쩍도 안 할 텐데?

순식간에 우리가 올라와 있는 건물 지붕을 사람들이 포위했고, 그 뒤로는 한국 측 헌터들이 복면을 쓴 사람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코인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거다.

최지혁이랑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내가 지금 믿을 구석은 최지혁밖에 없으니까…….

짜증 났다.

그냥 내 처지가 거지 같아서.

그때였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쓱 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오랜만이야?”

물론 최지혁은 신경도 안 쓰고 도망갔다.

“답답하게 왜 아직도 처리를 못 하고 앉아있어. 제기랄. 채유라, 눈 감아.”

“X발, 사람 말하는데!”

역시 최지혁. 어그로에 함부로 끌리지 않는다.

“저 또라이가, 잡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저 목소리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하지만 분명 우리를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산 채로 포획한다!”

한국어를 쓰니까 한국인들 집단인가?

“통역 아이템 사용 중이야. 한국 애들 아니야.”

다행히 최지혁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쟤는 뭐…….”

그때였다. 우리 쪽으로 하얀색의 동그란 물체가 데구르르 굴러왔고, 최지혁은 빠르게 그 물체를 피했다.

하지만 순간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 흰색 물체에서 무언가 휙! 빠져나왔다.

“커헉!”

순식간이었다.

최지혁이 나를 놓쳐버렸고, 누군가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와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최지혁은 몸을 크게 뒤틀며 나를 붙잡은 사람의 손목을 잡았지만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꼭 감전이라도 당한 사람 같았다.

최지혁의 눈이 휙, 돌아가 있었다.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이상했다. 갑자기 이럴 리가 없는데? 뭐지? 뭐가 문제지?

“이거 놔, 최지혁! 꺅!”

순간 나를 잡고 있던 누군가가 내 목을 확 졸랐다.

뭔가를 할 새도 없었다. 리온과 에르켈은 어째서인지 내 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무언가가 내 코와 입을 막았다.

정신이 순식간에 혼미해졌다.

“핸드폰 뺏어. 이동한다.”

마지막 기억은, 누군가가 영어로, 내게 무어라 말했다는 거.

그리고 찾아온 건 암전.

***

- ‘마스터, 큰일 났다.’

그건 나도 대충 알겠다. 다행히 리온과 에르켈을 노출시키지 않은 덕에 어딘가 숨어있는 모양이었다.

“아, 정신이 좀 드십니까?”

어이가 없었다. 내 옷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꼭 환자복 같았다. 원피스 형태의 헐렁헐렁한 그런 옷 말이다.

‘망했네?’

주머니가 없었다.

이 인간들이 내 핸드폰에 관해 뭔가 알고 일부러 옷을 갈아입힌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다만.

나는 일부러 내 앞에 있는 백인 여성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뭔데 다짜고짜 영어로 질문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는 세계 멸망 저지 프로젝트 연구원 레이첼 프리먼이라고 합니다.”

내가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머리가 아파 왔다.

나는 대충 주변을 쓱 살펴보았다.

꼭 취조실 같았다.

최지혁은 어떻게 된 거지? 심장이 공포로 두근거렸다. 기절하기 전에 본 최지혁은 뭔가에 당해서…….

아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자.

나는 정신을 바로잡았다. 최지혁은 세니까 괜찮을 거다. 괜찮아야 했다.

“영어는 웬만큼 할 줄 아신다 하여 부득이하게 통역사는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극비리로 취급되는 프로젝트인지라.”

여자가 싱긋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불였다.

뭐가 어쩌고 어째?

“유라 양의 신변은 지금부터 저희가 보호할 예정입니다. 연구소 위치는 3일 주기로 변동될 예정이니 한국 측에서 유라 양을 찾을 확률은 낮을 겁니다.”

기가 찼다. 저걸 자랑이라고 떠드는 건지 협박이라고 하는 건지.

일단 나는 입을 닫고 있었다. 못 알아듣는 척해야지.

“그러니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마시고. 인류를 위한 일입니다. 조용히 협조해 주시죠.”

조용히 협조는 개뿔. 나는 조용히만 있을 예정이었다.

일단 저 여자 말은 무시하는 게 맞는 것 같고.

나는 다음 행동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조치는 취해야 했다.

과연, 지금 시기에 리온을 내 옆에 두는 게 맞을까, 아니면 에르켈을 두는 게 맞을까?

최지혁의 신변부터 알아봐야 했다.

- ‘둘 중 아무나 짧은 반바지 하나만 구해 와줄래? 주머니 있는 걸로.’

- ‘내가 가겠다, 주군.’

지시를 내리고 나니 긴장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무장한 남자들 여럿이 나타나 내 쪽으로 척척 걸어왔다.

“이동하시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심지어 이 인간들이 우악스럽게 잡은 팔이 너무 아팠다.

“이거 놔! 악! 아파……! 아프다고!”

최지혁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괜찮은 거 맞겠지? 최지혁은 튼튼하니까, 갑자기 그렇게 나가떨어졌어도…….

아니, 최지혁이 당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일 아닌가?

“생체조직검사부터 시작해.”

“예. 알겠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다. 검사? 뭔 검사! 단어가 어려워서 못 알아들었지만 뉘앙스를 봐서는 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자존심 상하고 너무 미안하지만, 최지혁이 보고 싶었다.

“좀, 시끄럽네. 비명 못 지르게 입 막아.”

“예.”

남자가 내 입에 무언가를 채웠고 나는 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꺾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핑글 돌았다.

- ‘마스터, 쟤들 죽일까?’

리온의 말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가만히 있는 게 좋았다.

최지혁은 분명 나를 데리러 올 거다. 그러니까, 곤란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려면 나는 조용히 있어야 했다.

최대한 안전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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