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45)

헛웃음이 나왔다. 준우가 디버프를 걸고, 에르켈의 스킬이 중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능력치는 꿈쩍도 안 했다.

겨우 방어력 10% 깎였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시끄러우니까 토 달지 마!”

지성준의 말에 최지혁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는 착실히 이쪽으로 날아오는 무기들을 팔아 재꼈다.

상식적으로 저놈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최지혁, 좌회전!”

“제기랄!”

최지혁이 핸들을 꺾자마자 몸이 크게 흔들렸다.

“주군! 저 녀석들은 무기를 계속 창공에서 조달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끝도 없다!”

에르켈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마스터! 저 비행물체에서 뭐가 나온다!”

리온의 말에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백 대의 거대한 비행물체에서 대포 같은 게 우웅, 소리를 내며 밖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저딴 애들 상대할 시간 없어! 엘드리치만 찾으면 돼!”

최지혁이 소리쳤다.

그에 지성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장, 거대한 황금 새장 들고 있는 놈만 찾아!”

둘이 뭔가 알고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엘드리치라는 걸 잡아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

그것도 둘만.

“…….”

어차피 내가 성좌인 것도 들킨 마당에 도대체 뭘 자꾸 숨기려고 저렇게 에둘러 말하나 싶었다.

아, 물론 사실 지성준과 준우는 내가 성좌고 나발이고 별로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슬쩍 뒤에 있는 에그로스만 봐도 답이 나왔다.

나는 전혀 성좌처럼 안 생겼다 이 말이지.

“형! 어떻게 전국 팔도 돌아다니면서 찾아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닫으려면 찾아야지! 어쩔 건데? 그리고 김 서방 아니고 거인족 엘드리치야. 달라!”

준우가 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다른 헌터들은 뭐 하는데요!”

그에 지성준이 말했다.

“38선 넘어오는 거 막아야 할 거 아니야! 그 인간들까지 이쪽으로 넘어오면 다 뒤지는 거야, 그냥!”

그때였다. 콰과과광! 소리와 함께 하늘에 떠 있는 함선에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확히 우리 쪽으로 말이다.

나는 경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에르켈! 방어 스킬 10번 중첩!”

“알겠다, 주군!”

레벨이 많이 오른 에르켈이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검 끝에 하얀 빛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곧 파앗! 소리와 함께 넓게 펴지며 우리를 감쌌다.

“야, 성좌! 어제 우리 얘기했지?”

내 말에 에그로스는 똥 씹은 표정으로 손을 대충 휘적거렸다.

그러자 놈의 눈이 시뻘겋게 타오르더니 곧 주변에 있던 거인들의 눈이 똑같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

척척척, 거인들은 빠르게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고, 곧 장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콰과과광!

“제기랄, 채유라, 눈 감아!”

나는 최지혁의 말대로 눈을 꼭 감았다.

투두두둑.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질퍽질퍽한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저런 잔인한 장면은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에그로스의 말에 최지혁이 소리를 내질렀다.

“만족 같은 소리 쳐 하고 있어! 제정신이야? 저 자식들을 방패 삼아서 터트리면 어쩌자는 건데!”

“나는 당신 성좌님께서 하란 대로 내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최지혁이 제 오른손으로 내 손을 만지며 물었다.

“괜찮아?”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괜찮으니까 최지혁, 앞에 봐.”

내 말에 뒤에 얌전히 있던 준우가 소리쳤다.

“그러니까, 김 서방도 아닌데 걔를 여기서 어떻게 찾아요오! 이렇게 날아다니면서 일일이 다 찾아보자고요? 막말로 저 함선 같은 데 있으면 저기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뒤를 홱 돌아서 지성준의 표정을 보았다.

음, 준우 말이 맞는 것 같다.

환장하겠네.

“DMZ 근처에 있는 놈들 다 이쪽으로 끌고 왔으니까 곧 보고 올라올 거야. 그때까지 저놈들 공격 피하기만 하면 돼.”

지성준이 말했다. 때아닌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사전에 이미 얘기가 됐었나? 엘드리치의 존재에 대해서?

기분이 상당히 찝찝했지만 일단 그게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지성준은 인벤토리에서 통신장비를 꺼내고 무어라무어라 바쁘게 말하기 시작했다.

“야, 지성준 성좌.”

나는 뒤를 보며 에그로스에게 말했다.

“너 아까 그거 계속 써.”

내 말에 에그로스가 당황한 듯 움찔거리며 말했다.

“내 세계는 이미 멸망했기 때문에 권능을 계속 쓸 수 있는 능력이,”

그리고 나는 싱긋 웃으며 놈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시킨 대로 안 해?”

에그로스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그러자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무시무시한 놈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에그로스는 꽤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의 아이템 상점을 뒤졌다. 은신 스킬이 있다면 좋을 텐데, 괜히 썼다가 목표를 잃고 다시 DMZ 쪽으로 놈들이 내려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지성준 말대로 저놈들이 남한으로 넘어가면 정말 큰일이었다.

얼핏 보이는 북한의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점령이 1시간도 되지 않아 완료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하늘에서는 폭탄이 수도 없이 떨어지면서 시설, 민간인, 동물, 무엇 하나 제외할 것 없이 막무가내로 터트려 버렸다.

우리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콰앙!

최지혁이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이 에르켈의 방어막을 처참하게 부쉈다.

타고 있는 자동차가 휘청거리며 거꾸로 휘릭 뒤집혔다.

안전벨트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추락했을 것이다.

“에르켈, 방어 다시!”

“알겠다, 주군!”

다행히 최지혁이 지난 던전에서 먹인 보스의 핵 덕분에 에르켈은 많이 강해져 있었다.

그때였다.

“찾았어. 금강산 쪽으로 핸들 틀어!”

지성준이 최지혁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에 최지혁이 대답했다.

“미친놈아, 금강산이 어딘지 말로 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

다행히 준우가 최지혁에게 뭔가를 척 건넸다.

“형, 내비게이션!”

***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려 100만 원짜리 S급 자동차의 보닛은 날아간 지 오래고, 에르켈과 리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금강산 이름 모를 바위에 처박혀 생사를 오갔을지도 몰랐다.

“엘드리치 위치 파악됐어. 정상까지만 이동하면 돼.”

지성준이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마 위성으로 위치 파악이 된 모양이었다.

“김 서방 찾기가 안 돼서 다행이에요.”

준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최지혁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상까지 빠르게 가려면 공중에서 이동하는 법이 제일이지만 그러다가는 저 빌어먹을 폭탄에 맞아 죽을 수 있었다.

또한 놈들의 시야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바닥에서 개미처럼 이동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우리의 전력을 계산해 보았다.

딜러로는 최지혁과 지성준, 그리고 리온이 있다.

디버프는 지성준의 성좌가 확실하게 넣어주고 있는 것 같고.

힐러는 준우가 알아서 하고 있고, 탱커의 역할은 에르켈이 톡톡히 잘 해주고 있었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이 말이었다.

“리온, 일단 준우 안고. 에르켈, 넌 나 안아.”

기동성은 지성준과 최지혁 둘 다 좋으니 나와 준우만 체력을 아끼면 될 것 같았다.

“이대로 정상까지 등산하죠? 둘 다 등산은 껌 아닌가?”

나는 최지혁과 지성준을 가리키며 말했고, 최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다른 거 필요 없고, 너만 신경 써. 알겠어?”

도대체 저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나만 신경 쓰라니.

옆에 있던 지성준의 표정이 대놓고 썩어들어갔다.

“야. 최. 너 염장질하냐?”

그리고 준우는 산뜻하게 한마디를 툭 뱉었다.

“저기요. 그러고 있을 시간 없거든요, 저희? 빨리빨리 가죠?”

***

우리는 무작정 산을 올랐다. 비록 등산로는 아니지만 어차피 날개 달린 리온과 에르켈은 저공비행으로 훌쩍훌쩍 산을 넘어갔다.

최지혁과 지성준은 펄쩍펄쩍 잘만 뛰어다녔고, 에그로스도 한껏 불만스러운 얼굴로 지성준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갔다.

와중에 거인들은 귀신같이 우리를 눈치채고 무기를 던져댔지만 내가 다 팔아버렸다.

“아싸, 벌써 오백만 원.”

그에 옆에서 잘 따라오고 있던 지성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를 툭 뱉었다.

“저건 사기야.”

그에 에그로스가 가소롭다는 듯 한마디를 얹었다.

“높은 등급의 성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배은망덕한 화신아.”

“……뭐?”

음, 저대로 놔뒀다가는 또 싸우겠거니 싶어서 나는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좀 말리라고 하려 했는데…….

“주군. 최지혁의 표정이 이상하다.”

에르켈이 내게 속삭였다.

“아.”

에르켈의 말대로 최지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다.

아까, 지성준과 최지혁이 둘이서만 의미심장하게 얘기하던 것.

엘드리치의 존재는 어디서, 어떻게 알아낸 건지.

만약 둘만 아는 그 엘드리치라는 몬스터의 능력 때문에 공포심이 든 거라면, 왜 지성준의 표정은 멀쩡한지.

내가 최지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저런 표정을 딱 두 번 봤었다.

첫 번째.

내가 처음 수상한 스트리밍 방송에서 최지혁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최지혁이 유명해지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무작정 찾아왔을 때.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최지혁은 지금 공포에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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