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라에서 마련한 임시 회의장 구석 방에 지성준과 함께 갇혔다.
“저 빌어먹을 자식은 왜 데려온 거야!”
“화신 주제에 무어라?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네 태도가 싹수가 노랗더니, 본성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야!”
나름 특별 대우였다. 한국에서 S급 게이트를 경험해 본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특별 대기실까지 마련해 주었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오자마자 싸움판이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좀 말려 봐.”
“……귀찮게, 진짜.”
최지혁은 씩씩대며 근처에 있는 소파 쿠션을 냅다 뜯어서 던져버렸다.
“정신 사나우니까 닥쳐!”
퍽! 쿠션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에 준우는 앞에 놓인 녹차를 홀짝 마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형. 나이스 샷.”
“…….”
나는 준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뭔가 표정이 해탈한 듯 보였다.
“준우야. 혹시 무슨 일 있었니.”
내가 나지막이 물어보자 준우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애국심 불타오르는 중이야.”
“…….”
준우의 말에 최지혁의 시선이 꽂혔다. 마치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 같았다.
“어제 다큐 봤거든요. 그거라도 안 보면 긴장할 것 같아서.”
최지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게 속삭였다.
“……저 자식도 이상해.”
그에 준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형. 다 들려요.”
“제기랄.”
나는 흘끗 밖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다른 헌터들을 상대로 주의사항 같은 걸 배포하는 것 같았다.
뭐, 주의사항이랄 게 있나 싶다.
어차피 던전이 어떤 식으로 형성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또 그 안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른다.
“짜증 나네…….”
지성준이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내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쪽은 내 성좌를 노예로 부리겠다, 뭐 이거야?”
“아니, 말을 왜 그렇게 해요? 노예라니요. 너무 비인간적이잖아요. 조력자라고 해요, 조력자.”
“그거나 그거나!”
에그로스는 지성준이 본인을 혐오하거나 말거나 우아한 태도로 준우가 마시고 있던 녹차를 쓱 앗아가며 말했다.
“네가 감히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에그로스의 말에 지성준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지랄? 반년 전까지만 해도 최지혁한테 들러붙으려고 한 주제에.”
“들러붙다니, 나는 두 명의 화신을 충분히 거느릴 능력이 되어 그렇게 한 것이다. 우매한 인간.”
아, 또 시작이네. 나는 인상을 팍 쓰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거기, 외계인. 듣는 인간 기분 나쁘거든요? 적당히 싸우고 자리에 안 앉아?”
“…….”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그때였다.
밖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지성준의 직속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문을 열었다.
“처, 청장님. 게이트 열렸답니다!”
“……제기랄.”
***
지성준은 바빠 보였다. 전화가 못해도 20통은 온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 처리를 왜 그딴 식으로 하는데! 정보원이란 놈들이 아직도 던전 정보를 못 물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 안 그래도 우리 측 정보원이 정보를 물어오려고 해도, 워낙 극비 사항이기 때문에……. 일단 북한 측 S급 헌터들이 내부로 진입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거 궁금해서 물어봤냐? 세 시간 전에 헌터들 들어간 건 이미 지상파 뉴스 다 타서 지나가는 개도 알고!”
-“저희 측 정보원이 안 그래도 접촉하고 있는 상황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정보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미국 애들은 벌써 던전 정보 다 입수했다는데 제정신이냐? 걔들이 우리나라에 딱 하나 있는 S급 무기 내놓으면 정보 뿌리겠다고 정확히 1분 50초 전에 연락 왔는데 뭘 기다려!”
-“죄, 죄송합니다. 청장님.”
“죄송? X발, 죄송? 국정원 대가리 나오라 그래! X발, 지들이 게이트 안 들어간다고 일 막 하는 거야, 뭐야!”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확히 3시간 전에 북한 측 헌터가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제기랄, S급 정도면 기본적으로 통신 아이템 하나쯤은 가지고 갔을 텐데.”
최지혁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헝클였고, 옆에 있던 준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형, 근데 미국 쪽에서 정보 줄 테니까 S급 아이템 하나 내놓으라고 했잖아요. 그냥 저희가 가지고 있는 거 하나 넘기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에 최지혁이 무섭게 표정을 굳히고 준우에게 말했다.
“……장난해? 아이템 출처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건데.”
“그냥, 뭐…… 저번에 일본 S급 갔을 때 얻었다?”
“…….”
준우의 말에 최지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나는 준우에게 엄지를 치켜 세워주며 말했다.
“오, 역시 강준우 똑똑해.”
“그치? 지성준 씨한테 물어볼까?”
“바빠 보이긴 하는데…….”
우리는 지성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아주 난리가 났다.
어지간히 열 받는 모양이었다.
“일을, 똑바로, 하라고! X발, 나 좋으라고 이 짓 하냐? 나라 망하고 싶어? 똑바로 하라고, 똑바로! 인간들이 위기감이 없어! 제기랄!”
나 같아도 열 받을 것 같긴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물론 회귀 전보다는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겠어?
아까 보니 이 긴박한 상황에서조차 국방부와 게이트 관리청 등, 각 부서들의 미묘한 견제가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창밖을 무료하게 쳐다보았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변해 있었고, 저 멀리는 푸른 숲이 쫘아악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저어어어 멀리서 보라색 빛이 넘실거리는 것도 같…….
잠깐만, 저거 뭐야.
“어…….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최지혁!”
나는 냅다 최지혁을 불렀다.
최지혁은 후다닥 내 옆으로 다가와 하늘을 바라보았고, 때마침 방문이 덜컥 열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터졌습니다! 북측에서 구조 요…….”
그때였다.
번쩍! 빛이 펑 터지듯 실내를 가득 채웠고, 형광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쿠르르릉! 땅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빛기둥 하나가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X발, 저게 뭐야.”
지성준이 말했다.
“뭐긴 뭐야. 잠깐이라도 수명 연장하겠다고 몰려오는 녀석들이지.”
그리고 에그로스가 대답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만 쳐다보았다.
저런 건 영화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유럽 S급 게이트 터지는 걸 뉴스에서 보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측정등급 SS+입니다!”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도 모르게 준우와 최지혁의 손을 꽉 잡았다.
음, 큰일 난 것 같았다.
왜냐면, 하늘에서 보라색 빛으로 된 구멍 같은 게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몬스터였다.
그것도, 아파트만 한, 사람 모양 몬스터 말이다.
몬스터는 피부가 완전히 새하얬다. 꼭 거대한 대리석 인형 같았다.
지구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복장에, 각자 거대한 창 비슷한 걸 하나씩 들고 있었다.
“…….”
나는 반사적으로 지성준과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둘 다 표정이 상상 이상으로 창백해져 있었다.
특히 최지혁의 얼굴은 완전히 백지장이 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웬만한 몬스터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최지혁이 저런 표정이라니.
그 정도로 심각한 몬스터인가?
그냥 거인 아니야?
“둘 다 뭐 하고 있어? 안 나가?”
나는 급하게 리온과 에르켈을 소환했다.
“오우……. 마스터, 나오자마자 저게 뭐냐.”
“보면 모르나. 악마. 거인이다.”
“…….”
그때였다. 지성준이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나 저 새끼들 알아.”
“…….”
최지혁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상황 웃기게 돌아가네. 제기랄.”
지성준이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제 머리를 쓰윽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번엔 뒤통수치지 마라, 최지혁.”
“……닥쳐.”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최지혁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성준의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다.
“강준우, 채유라랑 후방에서 잘 따라와.”
“네 형.”
의심스러웠다.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갑자기 불안해하는 건지. 어째서 지성준 눈치를 보는 건지.
또, 묘하게 내 눈치는 왜 보는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마, 마법사다!”
저 멀리 있는 몬스터 중 하나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공격을 날렸기 때문이다.
보랏빛 에너지 뭉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최지혁은 인벤토리에 있는 망치를 꺼내 이쪽으로 날아오는 에너지 덩이를 향해 던져버렸다.
파지지지직!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에너지 덩이가 궤도를 잃고 하늘로 튀었다.
“다들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