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45)

“도대체 어쩌자고 데려오는 건데.”

최지혁이 운전대를 붙잡고 불안한 듯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아오, 그럼 그 집에 애기도 있는데 거기 놔두고 와? 놔두고 왔다가 지성준이 쟤한테 또 뭔 짓 할 줄 알고. 서약 반지 다 끼웠잖아. 괜찮아. 괜찮아.”

“아니, 괜찮긴 뭐가 괜찮은데. 강준우랑 지성준 그 자식이 언론에 네 정보라도 불어버리면 어쩌려고!”

최지혁의 말에 뒤에 있던 준우가 기 빨린 목소리로 말했다.

“혀엉…… 다 들려요.”

“젠장, 강준우 너 여태까지 들은 거, 다른 데 불면 죽여버린다.”

“아오, 형 저를 뭘로 보는 거예요! 얘기 안 해요, 안 해!”

나는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 준우에게 말했다.

“준우야. 미안.”

“형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괜찮아, 유라야.”

“…….”

최지혁은 아직도 불안한 듯 핸들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최지혁. 그러다가 핸들 부서져.”

“……아.”

최지혁이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가볍게 핸들을 다시 잡았다.

“그런데 유라야. 진짜 이거 데려가도 돼?”

“웁! 우우우웁!”

“좀 납치 같……. 크흠.”

준우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옆에 묶여 있는 에그로스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오히려 잘됐어. 최전방에 세우지, 뭐.”

나는 회사 식구들에게 줄 방어구 키트를 사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일 아침 일찍 DMZ 쪽으로 이동할 거니까, 그 전에 회사 사람들한테 이것 좀 나눠줘.”

와르르르, 차 안에 아이템이 수북이 쌓였다.

“……그런데 유라야. 저번에 네 성좌가 돈이 많다고 그랬잖아.”

준우가 망설이듯 내게 말했고, 최지혁은 그에 또 발끈하며 준우의 말을 잘랐다.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그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최지혁의 팔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차피 같이 다니다 보면 준우도 알게 될 건데 또 왜 그래. 응? 괜찮다니까.”

“난 아무도 못 믿어.”

“형, 저 다 들린다니까요?”

어휴, 최지혁 잘나가다가 또 저래.

최지혁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최지혁 말이 맞았다. 내가 성좌인 걸 들키면 안 됐다.

그런데 어떡해. 그렇다고 눈앞에서 지성준이 눈이 맛탱이가 간 채로 잡아먹힐 뻔했는데 그걸 내버려 둬?

물론 최지혁은 내버려 두라고 말하겠지만 일단 나는 그게 안 됐다.

“아아아아, 몰라몰라. 이미 물 엎질러졌고, 못 주워 담아.”

“그러니까 그걸 왜,”

“아, 몰라! 그래서, 지성준 그대로 쟤한테 먹히게 내버려 뒀으면. 그럼 우리 정부 연줄 싹 다 사라지고 쟤 지성준 몸 가지고 사이비 종교 교주 하는 거야!”

“……사이비, 맞긴 한데, 그래도,”

“아군으로 사이비 교주가 나아, 아니면 게이트 관리청 공무원이 나아?”

내 말에 준우가 상큼하게 대답했다.

“공무원!”

“…….”

“봤지?”

최지혁은 말하기를 포기한 느낌이었다.

나는 최지혁의 오른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부터 치우자. 응?”

“……알았어.”

최지혁은 입술을 앙다물고 도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한참 후, 겨우 입을 열어 한마디 내뱉었다.

“강준우. 말 함부로 해서 미안하다.”

“……헐. 네.”

솔직히 과장 보태서 울 뻔했다.

최지혁이 달라졌어!

***

“푸하!”

최지혁은 에그로스를 식탁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입에 붙인 절연 테이프를 냅다 떼어 버렸다.

“……빌어먹을.”

에그로스는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듯이 고개를 떨궜다.

나는 팔짱을 끼고 에그로스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지성준 몸에 강림하려고 했지?”

내 말에 에그로스가 대답했다.

“감히 성좌의 말을 거역한 죄, 또한 내 시야를 차단한 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정말 그게 다야? 단지 마음에 안 든 거면 다른 화신을 찾아서 떠나면 될 텐데.”

에그로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우물쭈물 답했다.

“그런 얼굴은 흔하지 않다.”

“…….”

“제기랄, 기분 더럽게.”

최지혁의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지성준의 외모를 칭찬하는 발언이 매우매우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칭찬해줬다.

“괜찮아. 너도 잘생겼어!”

“…….”

최지혁의 얼굴에 생기가 확 돌았다.

“윙크하지 마!”

“에이, 좋으면서. 그렇지? 응? 맞지?”

최지혁은 시뻘게진 얼굴로 내 입에 제 엄지를 물렸다.

조용히 하라는 뜻 같았는데…….

좀 거시기하다?

일단 나는 별말 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도대체, 뭐지? 당신들?”

그때였다. 에그로스가 돌연 우리들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반적인 성좌와 화신의 관계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지? 성좌, 당신은 억지로 끌려 내려온, 헉!”

최지혁이 텁, 에그로스의 목을 잡아버렸다. 한마디라도 더 지껄인다면 그대로 꺾어주겠다는 얼굴이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넌 어디서 왔는지, 왜 떨어졌는지, 다시 네가 있던 곳으로 가는 방법이 있는지.”

최지혁에게 목이 잡힌 에그로스가 컥컥대며 겨우 말했다.

“어떻게, 일개 화신 주제에……!”

“대답 안 해!”

우렁찬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음, 일단 나는 가만히 있었다. 최지혁이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행동하는 거겠지?

괜히 내가 말 얹었다가 분위기만 깰 수 있다.

“커헉……! 보면, 보면 알 수 있다……! 멸망하지 않은 세계선의 존재……! 우리 차원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

음, 솔직한 감상으로 뭔 소린가 싶었다.

굉장히 오글거렸다.

최지혁에게 나 먼치킨 맞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분위기 깨지 말자!

“그러한 존재가 나를 잡아당겼는데, 안 당하고 배겨?”

에그로스가 최지혁을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또 다른 멸망이 겨우 목숨 부지하겠다고 넘어온 모양이야.”

그리고는 나를 보며 굽신거리듯 이야기했다.

“멸망하지 않은 차원의 성좌님. 어때, 나랑 거래 하나 해 보지 않겠어요?”

나는 대충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북쪽에서 커다란 기운이 느껴집니다. 맞지요?”

“본론부터 말하지?”

내가 삐딱하게 묻자 에그로스는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력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되게 선심 쓰듯 말한다, 너?”

나는 대충 짝다리를 짚으며 말했다.

“야, 너 인질이거든? 상황 파악 좀 해줄래? 네가 나한테 거래니 협상이니 제안할 처지가 아니라고.”

나는 최지혁을 내 뒤로 보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자꾸 화신, 화신 하면서 은근히 무시하는데, 짜증 나니까 적당히 하시지?”

“…….”

“또. 나 성좌라고 부르지 마. 나는 니들하고 다르다고. 똑같은 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 더럽단 말이야.”

나는 에그로스의 턱을 잡고 놈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네가 쓸 수 있는 공격 스킬, 능력, 기타 등등 다 읊어. 당장 내일 써먹어야 하니까.”

“…….”

“아, 또! 지성준 그 인간 몸에 들어가려고 시도만 해봐. 확! 그 끈 끊어 버리고 소멸시켜 줄 테니까. 알겠어?”

“……예.”

“뭐 해? 설명해.”

나와 최지혁은 그렇게 3시간가량 에그로스를 들들 볶아 나름의 이득을 얻었다.

확실히 성좌라 그런지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최지혁 그 이상이었다.

아, 물론 이 평가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또 본인이 저 성좌보다 약하다고 땅굴 파고 들어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나는 최지혁의 손을 잡고 방에서 나와 버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 시가 넘었다.

“난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어.”

최지혁은 착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최지혁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걱정 마. 나도 몰라.”

“……유라야. 그게 말이야?”

“아, 졸리다. 빨리 씻고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내가 시치미를 떼자 최지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넌…….”

최지혁이 괜히 분위기를 잡길래 나는 물끄러미 최지혁을 올려다보았다.

또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고.

나는 괜스레 기대를 하며 손을 꼭 모으고 가만히 있었다.

“도망 안 가고 싶어?”

“……에라이.”

나는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또 대단한 말 한다고 뜸 들이는 줄 알고 또 속았다!

“왜, 왜 그러는데?”

“야. 너 내가 함부로 분위기 잡지 말랬지!”

“…….”

나는 괘씸한 최지혁의 가슴을 주먹으로 열심히 때렸다. 어차피 간지럽지도 않을 거 좀 더 세게 치려다 말았다.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왜?”

“이거 못 막으면 초토화되는 거 아니야? 기껏 지성준하고 너하고 열심히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켰는데 무너지면 안 되지. 나도 잘하면 여기 눌러앉을 수도 있는데.”

“…….”

최지혁이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는 입이 자꾸 바싹 마르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 마. 상황이 좀 복잡해지긴 했어도, 무려 성좌를 포섭했잖아? 이거 완전 대박인 거 아니야? 너 성좌 본 적 있어, 최지혁?”

내 말에 최지혁이 시뻘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유라야.”

나는 최지혁이 꼭 저리 다정하게 내 이름 부를 때마다 심장이 철렁하더라.

“왜, 왜 그렇게 불러?”

내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자 최지혁이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얼굴로 내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나는 매일 보는데.”

최지혁의 손이 부드럽게 내 뺨을 쓸었다.

“네가 내 성좌잖아.”

이 인간이 꼭 기대하고 있을 때는 헛소리하더니 방심하고 있을 때 이렇게 훅 들어오더라.

“아, 하하하.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그걸 물어본 게……. 근데 좀 덥다. 여름 지났는데 왜 이러지? 하하.”

“유라야.”

“…….”

최지혁이 나를 번쩍 들어 주방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게 제 머리를 기대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불안해.”

“응?”

내가 되묻자 최지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을 정정했다.

“……저 성좌 새끼 마음에 안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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