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준은 제 물결 모양 단검을 들고 당장이라도 제 성좌를 죽일 것처럼 굴었다.
“크흑!”
성좌는 목이 졸린채로 신음을 토해냈고, 지성준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흥분한 것 같았다.
“유, 유라야.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준우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에 최지혁이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말리긴 뭘 말려. 죽게 놔둬.”
“형, 그게 아니라, 성좌라면서요. 그러면 뭘 많이 알지 않을까요? 정보 안 빼요?”
“……아.”
준우의 말에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그리고 동시에 튀어나갔다.
“지성준, 멈춰!”
“스탑, 스탑! 타임!”
최지혁은 다급하게 지성준의 팔다리를 포박했고, 준우도 스킬까지 쓰며 최지혁을 도왔다.
하지만 지성준은 이성의 끈이 끊긴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고! 저 개자식, 내 손으로 끝내주겠어. 빌어먹을, 내가 저 자식 때문에!!!!”
큰일 났다. 지성준이 이성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지성준은 진짜 제 성좌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소리쳤다.
“예서 깼다!”
“……!”
순간 지성준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황급하게 꺼낸 무기를 정리하다, 굳게 닫혀있는 조카의 방 문을 확인하고 쓰윽, 소리를 지른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우, 자칫하면 무서워서 지릴 뻔했다.
“하하, 뻥인데.”
“…….”
“크흠, 지금 죽이는 것보다는 앞으로 열릴 S급에서 총알받이라도 시키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러니, 준우야!”
나는 황급하게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놨고, 최지혁의 뒤에서 지성준을 잡고 있던 준우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럼요! 효율이 두 배! 하하하! 성, 성좌면 신 아닌가? 전력이 늘어났네요, 하하하하!”
그에 최지혁에게 잡혀 있던 지성준이 준우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빌어먹을 손가락 두 개 치워! 두 배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으아아악!”
그리고는 최지혁에게서 벗어나려 마구 발버둥을 쳤다.
그 몸부림에 불안해서 심장이 쿵쾅 대기 시작했다.
최지혁도 딱히 인내심이 긴 스타일이 절대 아니…….
“새끼야, 가만있어!”
우당탕탕! 뭐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상큼하게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버리며 생각했다.
음, 역시 우리 집으로 안 데려오길 너무 잘했다.
역시 나는 똑똑해! 하하!
제길.
***
“원래, 애기가 잠귀가 어두운 편인가 봐요?”
“……제기랄.”
지성준도 생각이 있는지 최지혁과 싸우려고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겨우, 겨우 안정을 되찾고 난장판이 된 거실 한가운데 앉아서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제 성좌를 노려보았다.
“자, 이제 말해봐요. 도대체 아까 무슨 상황이었어요?”
내 말에 지성준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알면서 뭘 물어? 저 빌어먹을 자식이 내 영혼을 먹어치우는 상황이었지.”
지성준의 말에 지성준의 성좌, 그러니까 에그로스가 음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히! 화신 주제에 건방지구나! 네놈이 건방을 떨어 내가 내린 정당한 징벌이었거늘!”
집이 우르르르 흔들렸다. 나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절연 테이프 같은 거 없어?”
“……그걸 왜 찾는데?”
“있지?”
내 말에 최지혁이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인벤토리에서 테이프를 꺼내 주었다.
“……아니, 형. 그게 인벤토리에 왜 있어요?”
“이삿짐 정리 아직 안 했어.”
“……보통 이삿짐을 인벤토리에 넣고 이사를 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교류하는 헌터가 너밖에 없는데.”
나는 최지혁이 준우와 노닥거리는 동안 절연 테이프를 적당히 잘라서 성좌의 입에 딱! 붙여 놓았다.
“웁! 우웁!”
“아, 이제 좀 조용하겠다. 애 깨우자는 것도 아니고. 왜 소리를 질러, 소리를.”
내 말에 지성준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예서 방에 방음장치 아이템 설치해 뒀어.”
뭐야,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지성준에게 대답했다.
“오……. 그래도 방금 귀청 터지는 줄 알았으니 입을 막은 건 잘한 선택이다! 그치, 최지혁?”
내 말에 최지혁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하던 말이나 계속해 봐요.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성좌가 강림을 하려고 한 건데요?”
내 물음에 지성준이 피식 웃으며 턱짓으로 나와 최지혁을 가리켰다.
“지금 그것보다 니들이 할 말이 더 많을 텐데? 네 여자친구가 왜 성좌고, 또 어디서부터 구라였던 거야?”
최지혁은 지성준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거 궁금해하지 말랬을 텐데.”
“X발, 그게 왜 쓸데없는 건데? 그리고 궁금한 걸 나더러 어쩌라고. 대한민국 게이트 관리 청장으로서 이 정도 질문도 못 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준우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욕을 많이 할까?”
“글쎄. 습관 아닐까?”
“공직자면 좀 줄이지.”
순간 지성준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휙 돌아왔다.
“다 들려!”
그에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 실수.”
“저도 실수.”
“…….”
지성준은 기가 빨린다는 듯 맥없이 자리에서 축 늘어진 채로 말했다.
“요즘 일한다고 성좌 시야 차단 아이템을 너무 많이 썼어. 그것 때문에 저 자식도 빡친 상태였고.”
지성준의 말에 나는 최지혁에게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그런 아이템이 있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최지혁과 내가 열심히 눈빛을 교환하고 있으니 지성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한마디 툭 뱉었다.
“너네 뭐 하냐. 물어봐 놓고 집중 안 하냐?”
그에 준우가 익숙하다는 듯 초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듣고 있어요.”
“……너네 회사는 무슨 교육 같은 거 받냐? 다들 단체로 약 먹은 것도 아니고 상태가 왜 이래? 아니, 나한테 왜 그러는데?”
“약은 포션 빼고는 안 먹는데요.”
준우의 말에 지성준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하! 하하하하! 제기랄. 포션…….”
그리고는 못마땅한 얼굴로 최지혁을 쓰윽 훑어보았다.
“뭘 봐.”
당연히 최지혁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성준을 노려보았다.
“오호라, 그래서 그랬구만?”
지성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피식 웃으면서 바닥에 다리를 쫙 펴고 앉은 채로 등 뒤 소파에 고개를 턱, 기댔다.
“아무튼 요즘 들어 저 자식 몰래 일 처리 한다고 소통 차단 아이템을 너무 많이 썼어.”
지성준의 말에 나는 묶여 있는 지성준의 성좌를 쳐다보았다. 상당히 분한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면 니들이 궁금한 건 다 불지 않았나? 이제 네 차례예요.”
지성준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에그로스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쫙! 떼어 버렸다.
“자, 내 정보는 아직 말하기 싫고, 너부터 자기소개 시작.”
“…….”
에그로스는 내 눈치라도 보는 듯 밧줄에 묶여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흘끔흘끔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간 없어. 빨리.”
“채유라, 뭐 해!”
최지혁이 펄쩍 뛰며 내 허리를 낚아채 제 무릎 위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는 당황한 듯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쟤가 무슨 짓 하면 어쩌려고 자꾸 그러는데.”
그래서 나도 똑같이 속삭여줬다.
“쟤 나한테 쪼는 거 못 봤어? 나 생각보다 짱 센 것 같은데.”
“그래도! 속임수면 어쩔 건데. 갑자기 이렇게 네 손목이라도 잡고 어디로 끌고 가면!”
최지혁이 내 손목을 턱 잡으며 협박하듯 말했다. 음, 굳이 시범으로 보여주시니 좀 쫄리긴 하는데.
“그럼 어떡해?”
“내가 대신 물어보…….”
그때였다.
“너네 또 뭔 짓 하냐.”
지성준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준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자주 저래요.”
“……장난하냐?”
그에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준우에게 말했다.
“강준우, 저 자식 주둥이 좀 닫으라 해.”
“들었죠?”
“…….”
아무튼 지성준은 효과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고, 최지혁은 나를 제 옆에 딱 붙여 놓은 채로 그 자리에서 물었다.
“말해. 네 정체.”
최지혁의 질문에 에그로스는 입이 바짝 마르는 듯 새빨간 혀로 제 입술을 슥, 훑었다.
에그로스는 초콜릿색 피부에 매혹적인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여성체였다.
머리는 흑단 같았고, 홍채는 꼭 반짝이는 자수정 같았다.
“……나는, 질투, 매혹, 욕망의 여신. 나의 신도들은 나를 아름다운 물병, 에그로스라 부르지.”
순간 에그로스가 입고 있는 실크 재질의 붉은색 드레스가 물결치듯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다. 감히 너희 같은 인간들이 함부로 나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으냐.”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웅웅웅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나는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눈 감아!”
쨍그랑! 형광등이 깨지고, 에그로스에게서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하게 사람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고 꽉 안았다.
“……눈을 떠라, 우매한 인간들이여.”
“다들 눈 뜨지 마.”
어렸을 때 신화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신의 진짜 모습을 본 인간은 죽는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는 멀쩡할까 싶지만, 이론상으로는 나도 성좌다.
그것도 지성준의 성좌인 에그로스보다 높은 등급의 성좌 말이다.
지글지글, 에그로스가 밟고 있는 대리석 바닥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멈춰야 했다.
이러다간 집에 불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들고 있는 핸드폰을 흘끗 바라보았다.
“지성준 씨. 너 저 성좌 계약 끊고 싶다 했죠?”
“……채유라, 너 뭐 하려고!”
“마침, 내 서번트 자리가 하나 남아서.”
“미쳤어?!”
내 물음에 최지혁이 크게 움찔거리며 내 허리를 무작정 제 쪽으로 껴안았다.
“무지몽매한 인간들! 탐욕의 불꽃에 완전히 사라져라!”
아오, 최지혁 이놈의 과보호 돌아버리겠다.
하지만 얘가 이런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쏘냐.
“너나 사라져라!”
나는 핸드폰을 냅다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