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진짜 이걸 고도의 전략가라고 칭찬해 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밥팅이라고 욕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삐딱하게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죄지은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열심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낯간지러워서 못살아, 진짜.”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워 죽겠다, 진짜.
“본인을 좀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는 게 어때? 응?”
내 말에 최지혁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널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면 좀 생각을 해봐, 생각을. 왜 좋아하겠어?”
“…….”
최지혁은 답이 없었다.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허, 환장하겠네.”
나는 한숨을 쉬고 앞에 곰처럼 앉아 있는 인간의 어깨를 잡았다.
그에 최지혁이 또 크게 움찔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하게 말할게. 나 너 게이트 들어가는 거 싫어. 또 다치면 어떡해.”
“……채유라,”
“알아. 나도 모순적인 거.”
나는 최지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최지혁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때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 어떡해.”
나는 최지혁의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겁먹은 게 맞았다.
“또 경험하기 싫단 말이야.”
어린애 같은 행동인 것도 알았다. 내가 보내기 싫다 해서 최지혁이 게이트에 안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나도 내 두 눈으로 봤다.
최지혁의 세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일반적인 능력으로는 살아남지도 못한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최지혁의 세상은 완전한 무법지대였다.
정부도 없고, 질서도 없고. 그냥, 끊임없는 침략과 약탈, 그리고 폭력뿐.
“유라야.”
그때였다.
최지혁이 앉아 있는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겨 나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괜찮아.”
그리고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최지혁이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꼭 나한테만 특별하게 구는 것 같아서 느낌이 아주아주 이상했다.
“……안 다칠게. 걱정 안 시킬게.”
최지혁은 나를 꼭 안은 채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네가, 불안해하지 않게 노력할게. 유라야.”
최지혁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좀, 더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최지혁의 가슴팍에 내 얼굴을 처박고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분명, 화면 밖에서 4년 동안 그를 지켜봐 왔으니까, 최지혁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쉰 후 고개를 들어 최지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턱에 입을 맞췄다.
“나도.”
“…….”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최지혁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숨 막히는 정적이 어색해 몸을 꿈틀대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소파에 똑바로 눕혀져 있었고, 내 위에는 최지혁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빰 빠바밤빰빰~”
난데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아주 오케스트라로다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최지혁은 깔끔하게 연락을 무시하고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어떤……!”
최지혁은 한껏 짜증이 오른 얼굴로 내 위에서 내려와 제 핸드폰을 들었고,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 ‘지성준’
나는 최지혁이 더 열 받기 전에 냉큼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아버렸다.
“여보세요.”
- “뭐야, 최지혁 여자친구?”
“왜요.”
최지혁은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말했다.
“왜 네가 받아!”
“빨리 용건만 말하고 끊어요. 왜요.”
최지혁은 내게서 핸드폰을 앗아가려고 시도했지만 저런 식으로 시늉만 할 거면 시도는 왜 하나 싶었다.
나는 최지혁을 소파에 얌전히 앉혀 놓고 통화 모드를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 “X됐어. 북한에 S급 열렸어.”
“…….”
“…….”
***
“유라야,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급하게 군 회의장으로 집결했다.
준우는 잔뜩 굳어있는 채로 내게 물었고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였다.
급하게 모인 회의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반은 군인, 반은 헌터들이었다.
“제기랄, 전이랑 상황이 완전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망했어. 돌아온 의미가 없다고!”
지성준이 불안한 듯이 최지혁을 향해 속삭였다.
“젠장, 준비가 하나도 안 됐어. 아직 S급 각성자도 많이 없다고.”
최지혁은 그런 지성준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지 똑바로 잡지. 저기 영감탱이가 쳐다보잖아.”
나는 바로 최지혁을 째려보았다.
“영감탱이가 뭐야, 영감탱이가!”
“…….”
아무튼 지성준은 조용해졌고,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우리에게서 떨어져 앞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얼굴이었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폐쇄된 국가였고, 만약에 여기서 각국에 도움을 요청할 시 또 영토 문제로 난리가 날 수 있다.
“북한 S급 게이트 대책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팠다. 맨 앞에는 국방부 장관이 서 있었고, 그 뒤로 통일부고, 외교부고 높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헌터들은 제일 꼬랑지였다.
“접촉해야 합니다. 만약 게이트가 터지기라도 하면 가장 피해받는 건 다른 곳도 아닌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건 게이트를 떠나 영토와 정당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순식간에 회의장이 시끄러워졌다.
“만약에 접촉이 성공해서 우리나라 헌터들을 다 보내면 한국에서 터진 게이트는 누가 처리합니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 측도 이미 3명의 S급 헌터들이 각성했다는 국정원의 정보가 있습니다. 이건 별개의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별개의 일입니까! 후를 생각하십시오! 최악의 상황으로 게이트가 터져 북한 전체가 전복이라도 된다면 그 땅은 무법지대가 됩니다! 자칫하면 3차대전까지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란 말입니다!”
“3차 대전이라니, 너무 가셨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헌터들이 숙연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성준도 비교적 앞 좌석에 있었지만 한 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그만큼 골치 아픈 문제였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최지혁이 회귀하기 전, 내가 보았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달라졌다.
그것도 완전히.
나는 소음차단 아이템을 작동시키고 최지혁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 때문은 아니겠지? 자의식 과잉이겠지?”
내 말에 최지혁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채유라. 너 때문 아니야.”
최지혁이 내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최지혁은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앞을 쳐다보며 내게 말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너 때문 아니야.”
“…….”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당한 최지혁의 말과 달리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준우는 많이 긴장되는지 조금 떨고 있었고,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찬찬히 이곳에 있는 길드들을 살펴보았다.
사이언, 파랑, 데블스 등등. 못해도 국내에 있는 굵직굵직한 길드 대부분이 참석한 것 같았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에 있는 헌터분들은 앞으로 있을 북한 S급 게이트 사태에 최전방에 배치되어…….”
앞에서 사람들이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솔직히 잘 들리지 않았다.
뭔가 큰일은 난 것 같고, 실감은 안 났다.
내 세계가 아니라 그런가?
최지혁은 이미 멸망을 한번 겪어서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치지만 당장 옆에 있는 준우의 얼굴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대충 짐작은 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형, 그래서 저희 이제 어떻게 돼요? 괜찮겠죠? 네?”
“호들갑 떨지 마. 어차피 터질 거 터진 거니까.”
최지혁이 조금 짜증 나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S급 터지는 속도를 보니, 북한 말고도 여러 개 더 생길 거야.”
“…….”
“알고 있었잖아. 멸망.”
나는 최지혁을 대신해 충격먹은 준우를 토닥였다.
“괜찮을 거야. 아직 우리나라는 정부도 탄탄하고, 헌터 시스템도 다른 나라랑 다르게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니까. 영향이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민간인들은 안전할 거야.”
준우의 손이 벌벌벌 떨렸다.
“준우야. 괜찮아. 응? 영 불안하면 안전 지역이라도 꾸릴까?”
“……미안. 자꾸 긴장하게 되네. 형은 멀쩡해 보이는데…….”
준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에 나는 최지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고 최지혁은 아차 싶은지 꽤 괜찮은 격려를 툭 뱉었다.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S급 게이트 안에서 멀쩡하게 살아 나온 거 너희 둘밖에 없어. 전 세계에서.”
“…….”
“그리고 뒤를 봐. 너만 긴장한 거 아니니까.”
준우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준우보다 배는 더 긴장한 듯 보이는 헌터들이 침울하게 앉아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어떻게든 해결할 거니까. 그렇게 만들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