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145)

결국 도경 아저씨랑 선우 씨가 최지혁을 뜯어말려서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성주호가 도대체 왜 간도 크게 이쪽으로 쳐들어왔나 했더니, 지금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서 범죄자 출신 각성자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범죄자 출신 각성자들은 인터넷 사용 금지라 최지혁이 아직도 낮은 등급의 헌터인 줄 안 듯했다.

웃기지도 않다. 아니, 우리 회사 이름까지 알아내서 찾아온 놈이 우리가 S급 들어갔다가 나온 얘기는 못 봤나?

진짜 바보도 아니고.

머리가 호빵으로 되어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유라 양, 그런데 진짜 지혁 군 안 말려도 되나?”

나는 대충 최지혁이 씩씩거리면서 나간 사무실 문을 쳐다보았다.

‘지성준 이 자식, 관리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도경 아저씨에게 대답했다.

“뭐, 따질 거 따지러 간 건데 말릴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국방부 쪽이랑 행정안전부하고 게이트 관리청 셋이 신경전 있는 것 같던데. 거기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오겠죠, 뭐.”

“아, 하긴. 요즘 뉴스 보니 그 셋이 아주 난리도 아니더만. 각성자들 관리를 본인들이 하니 마니…….”

“그것 때문에 관리가 허술해져서 성주호도 탈출할 수 있었나 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멍청하게 어딜 쳐들어오는 건지.”

지성준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지성준의 행보는 괜찮다고 본다.

아무튼, 지성준이 아무리 회귀자에다가 날고 기어도 정치판에 들어가 굴러먹으려면 힘이 필요했다.

최지혁도 그걸 아니까 기꺼이 이용당해 주는 거고.

“경고만 하고 온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각성자 출신 범죄자를 지성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관리하면 우리 입지가 조금 애매해질 수 있어서.”

“유라 씨, 진짜 지성준 그분 대통령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선우 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 하기에는 나이가 좀…….”

내 말에 이영 변호사님이 말했다.

“20년 지나면 또 모르죠.”

오, 20년이라. 좀 까마득한 얘기였다. 20년…….

당장 여기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최지혁의 세계는 요지경이었는데 20년을 버틸 수 있긴 할까?

나는 백색소음처럼 틀어놓은 TV 화면을 보았다.

- “안동 A급 게이트 피해 장소에 도착해 있는 YBC 김강현 기자입니다. 최근 늘어난 게이트로 인해 시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치달았으며, 이렇게 수도권을 벗어나면 헌터들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 즉 게이트 진압 실패 위험도가 올라가는 상태입니다.”

도경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또 서울 집값 오르겠구만. 어쩐지 강남사태 때도 죽어라 안 떨어지더만.”

“헐. 아저씨, 그럼 저희 아직도 집 못 사요?”

내가 뜨악해서 아저씨에게 말하자 옆에 있던 선우 씨가 아차 싶은지 내게 말했다.

“아, 쉬신다 해서 아직 말씀 못 드렸는데, 최근에 S급 게이트 갔다 오신 이후로 협찬 목록이 몇 개 들어왔거든요?”

그리고 패드에 띄운 정리 파일과 이메일을 쭈우욱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일단 LJ건설 쪽에서 서초 쪽 아파트 협찬 하나 들어왔는데 혹시 미팅 가능하냐고 묻더라구요. 일단 조건부터 물어봤는데 SNS에 홍보 한 번만 해 주시면 바로 채유라 헌터님 명의로 계약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씀 주셨어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LJ? 꽤 유명한 건설회사 아닌가? 거기서 갑자기 우리한테 집을 준다고?

그것도 최지혁이 아니라 내 명의로?

“아, 여론 체크를 해봤는데요, 사실 이번 S급 던전 활약상은 유라 씨가 독보적이라고 보는 분위기라…… 협찬도 유라 씨 쪽으로 문의가 다 쏠렸구요. 그리고 유라 씨 활약이 상상 이상으로 여파가 커서 생각보다 협찬이 많이 들어왔어요. 너무 많아서 제가 몇 개 임의로 추리긴 했는데, 그래도 따로 들어온 광고하고 협찬 회사 리스트 정리한 거 보내드릴게요.”

나는 살짝 입을 벌리고 선우 씨를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우트론은 최지혁이 죽였고, 뉴스에서도 내 얘기는 별로 없던데?

“아, 혹시 몰라서 SNS랑 커뮤니티 사이트 조사해서 여론들 정리해 뒀는데, 보여드릴까요?”

“네? 엥? 언제요?”

“유라 씨하고 최지혁 씨 쉬실 때요. 원래 매스컴에 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건 필수적이라…….”

선우 씨의 말에 도경 아저씨가 박수를 치며 한마디 하셨다.

“확실히 유라 양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단 말이야.”

“선우 씨 뽑은 건 아저씨인데요……?”

“난 유라 양이 좋아한다길래 뽑았지.”

나와 아저씨가 서로 당황하는 사이에 이영 변호사님이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하셨다.

“정확히는 그때 저희 회사에 지원하는 연예계 종사자가 없었죠.”

“…….”

“…….”

“운이 좋았네요.”

***

선우 씨가 아주 꼼꼼히도 정리해 주었다.

개중에는 특별 기간에만 회원가입을 받아서 못 들어가는 대형 커뮤니티도 있었는데, 선우 씨 말로는 본인 아이디가 10개나 있단다.

지금은 나라가 이 꼴이 돼서 가수 생활을 못 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선우 씨는 팀과 연예계 생활에 애착이 있어서 어떻게라도 해 보겠다고 많이 만들어 놨다고 했다.

“마스터. 내가 지혁지혁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맞혀볼까?”

리온은 감자칩을 입에 털어 넣으며 최지혁을 보고 낄낄댔다.

최지혁은 정색하며 리온에게 경고했다.

“닥쳐라.”

리온은 그런 최지혁을 가볍게 무시하고 입을 쭉 내밀며 최지혁의 흉내를 냈다.

“왜 썬 그 딴따라 자식 그냥 냅둬? 잘라. 나 그 새끼 싫어!”

“악마. 최지혁은 이제 새끼라는 저급한 단어는 쓰지 않는다.”

“뭔 소리야. 마스터 뒤에서 열심히 쓰고 다니는 거 내가 봤는데?”

리온의 말에 최지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꼭 정곡이라도 찔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대충 리온과 에르켈에게 훠이훠이 손짓하며 말했다.

“너네 가.”

“좋은 시간 보내라, 지혘,”

리온은 결국 헛소리하다가 에르켈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참, 거짓말 더럽게 못 한다.

나는 최지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너.”

“……!”

최지혁은 평소처럼 움찔거리며 소파 끝으로 딱 달라붙었다.

“어디 가서 거짓말하지 마.”

내가 강조하듯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최지혁에게 말하자, 최지혁은 입을 앙다문 채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표정에 다 보이는 거 알고 있지?”

최지혁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불만을 토로했다.

“채유라, 너 봤잖아. 나 거짓말 잘해.”

최지혁은 곧 본인의 인성질 역사를 주르르 읊기 시작했다.

“청룡 길드 기억 안 나? 그때도 멍청한 길드장이 엿 먹이려고 하길래 거짓 정보 풀어서…….”

어이가 없었다.

“야. 자랑이야?”

“…….”

내 말에 최지혁이 아차 싶었는지 한껏 올라간 눈썹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어휴, 진짜 이 인간을 어쩌면 좋지.

나는 최지혁의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웃어댔다.

최지혁은 내가 왜 웃는지 영 모르겠다는 듯 나를 뚱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곧 본인도 나를 따라서 씨익 입꼬리를 올리더니 마주 웃어주었다.

그런 최지혁을 보니 갑자기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최지혁이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본 것 같다.

“거짓말하지 마?”

최지혁이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해도 돼.”

“……왜?”

최지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꽤나 진지해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정직하게만 살아? 내 말은 그런 식으로 거짓말할 거면 다른 사람한테 들킬 게 뻔하니까 하지 말란 건데?”

“…….”

순간 최지혁이 냅다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어깨에 제 턱을 쓱 올리고 가만히 숨을 몰아쉬었다.

“유라야.”

이 인간이 왜 또 이름은 그렇게 부르고 난리람.

나는 바짝 굳은 채로 최지혁을 흘끗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살포시 눈을 감고 내 귓가에 중얼거렸다.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게 싫어?”

그리고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움찔거리자 최지혁은 조금 더 강하게 나를 바짝 끌어안았다.

“난 이해가 안 가.”

쿵쾅쿵쾅. 심장 소리가 고요한 집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최지혁이 이제 S급 각성자가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심장 소리가 꼭 북소리 같았다.

“……왜, 날 걱정하는, 우으읍!”

“에라이, 나는 또 분위기 잡길래 뭐 대단한 소리 할 줄 알았는데 장난해!”

순간 분위기가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최지혁의 주둥이를 잡고, 있는 힘껏 그를 째려봐 주었다.

우씨, 진짜 분위기 잡길래 얘가 무슨 소리를 하려나 기대했는데!

“악! 왜 때려!”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 부리지 말라고 몇 번 말해!”

나는 최지혁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며 뒷목을 잡았다.

“그리고, 내가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너 보름 넘게 병원에서 의식도 못 차리고 뻗어있던 거 뻔히 옆에서 봤는데, 당연히 걱정하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뭐야, 최지혁!”

“……그래도 이상하잖아! 네가 날 왜 좋아하는데!”

갑자기 열불이 확 올랐다. 지금 결투 신청하는 건가?

“야! 그럼 너는 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입술 부비고 옷 벗기고, 우읍!”

최지혁이 당황한 듯 제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나는 최지혁의 손을 치워버리며 말했다.

“갑자기는 개뿔이 갑자기. 네가 먼저 시작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난……!”

최지혁어를 대충 해석해 보면 이런 것 같았다.

‘왜 그동안 게이트에 못 들어가게 싸고돌았어? 내가 걱정돼서? 왜 네가 날 걱정하는 건데?’

하기야, 최지혁 입장에서는 모순적일지도 몰랐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최지혁은 내가 위험천만한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그랬다.

최지혁이 그 위험한 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