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45)

나는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굳이 본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인터넷만 봐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필리핀 S급 던전 발생.’

‘북한 A급 게이트 공략 실패. DMZ까지 내려오나.’

‘유럽 S급 사태 여파로 벌써 7개 국가 무정부 사태 돌입.’

멸망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경제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최지혁이 비교적 경제적 타격을 덜 받는 헌터 업종이라 피부에 바로 와 닿지는 않았지만 대충 밖을 돌아다녀도 건물이 텅텅 비었다.

뉴스에서는 계속 앓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 헌터로 전직하는 각성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회사 전화기도 쉴 새가 없었다.

이름이 알려져서인지 입사 문의 전화가 잦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도경 아저씨와 선우 씨만 고생이었다.

‘가온, S급 여파가 컸나? 2주째 활동 전무’

나는 마지막 기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최지혁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내가 일부러 정신없게 만들었지만.

나는 최지혁이 어떻게 하면 정신이 팔리는지 요 근래에 완전히 파악해 버려서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던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할 것 같았으니까.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뭐 해.”

최지혁이 대충 눈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나는 대충 최지혁의 눈을 도로 감겨주며 말했다.

“핸드폰. 더 자.”

최지혁은 내 말에 앓는 소리를 내며 나를 꽉 껴안았다.

좀 덥긴 했지만 일단 잠자코 붙들려 있었다.

언제까지 얌전하게 있을지 모르긴 했지만 일단 붙잡아 놓기로 했다.

내가 붙잡아 놓는다고 얼마나 가겠느냐마는.

“…….”

나는 몸을 돌려 최지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또 마음이 심란해졌다.

세상은 착실하게 멸망 중이었다.

아무리 지성준과 최지혁이 회귀자라고 해도, 아직까지도 멸망을 막을 만한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얻은 단서라고는 내가 특별하다는 것뿐.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게이트 안의 존재들은 나를 탐냈고, 내가 멸망을 막을 수도 있는 존재라고 했다.

만약, 이게 세상에 알려진다면 나는 위험해질 것이다.

멸망을 막을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사람들은 개미 똥구멍만 한 단서라도 찾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왜 자꾸 봐.”

“잘생겨서?”

“…….”

나는 최지혁의 시뻘게진 귀를 만져주며 생각했다.

최지혁 성격상,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를 지키려고 들 게 분명했다.

지금도 충분히 행동으로 보여줬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무조건 힘을 키워야 한다.

힘을 키우려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야 하고.

일종의 딜레마였다. 안전해지고 싶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머리가 조금 아파 왔다.

내 솔직한 마음은 최지혁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S급 게이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니까.

헌터 생활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병실에 누워있는 최지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최지혁이 깨어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같이 들어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하는 동안 너무 불안했다.

내가 여태까지 하고 있었던 생각들이 전부 휘발되고 딱 하나만 남은 기분이었다.

‘나는 최지혁이 위험해지는 게 싫다. 그리고 그게 나 때문이라면 더 싫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씻고 올래.”

최지혁은 커다란 몸을 내 품에 억지로 밀고 들어와 얼굴을 부빗거리며 말했다.

“아이구. 그래요? 씻고 올 거예요?”

“응.”

나는 최지혁의 양 볼을 꼬집어 주며 열심히 예뻐해 주었고, 최지혁은 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참 반응이 일관적이라 좋았다.

또, 특유의 나른한 표정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런 최지혁의 얼굴을 아주 뿌듯하게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이 우웅, 울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가볍게 핸드폰 벨소리를 무시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바쁘니까!

하지만 곧이어 최지혁의 폰이 우웅, 울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최지혁도 무시했다.

문제는, 이번엔 집 전화가 울렸다는 거다.

최지혁의 미간이 바로 찌푸려졌다.

“……뭐야.”

최지혁은 미적미적하다가 결국 시끄럽게 울려대는 벨소리에 열이 받았는지, 나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나는 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지혁은 힘이 세니까 무의식적으로 들어 올린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최지혁은 불만이 그득그득한 얼굴을 하고 인터폰을 받았다.

“여보세,”

-“더럽게 늦게 받네. 반갑다, 이 개자식아.”

나는 최지혁에게 안긴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지?

최지혁은 곧바로 욕을 박으려다가 이제야 내가 제 품에 안겨있는 걸 깨달았는지 아차 하고 입을 꼭 다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본인한테 안겨있는 걸 까먹을 수 있는 거지?

정말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 S급 초입이라 힘이 무식하게 강해져서 내가 깃털처럼 느껴진다는 저 입에 발린 말을 믿기로 했다.

딴죽 걸어봤자 얻는 것도 없는걸?

나는 대충 한숨을 쉬며 인터폰에다 대고 말했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시면 곤란해요. 끊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끊으려는 순간 인터폰 너머로 신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웁! 웁웁!”

“……도경 아저씨?”

뭔가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반항 그만하고. 그러니까 누가 이딴 회사에 입사하래?”

-“고소할, 웁!”

-“조용히 좀 하라니까.”

뒤로 이영 변호사님의 비명이 들려왔고, 내 핸드폰이 웅, 진동했다.

‘[Sunny_08_0904님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최지혁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고, 최지혁은 바로 인터폰을 꺼버렸다.

그리고 대충 나를 소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1분만 기다려.”

“…….”

“빨리 씻고 가서 저 새끼들 조져버릴 거니까.”

***

어이가 없었다.

사무실로 달려와 보니 성주호와 그 패거리들이 회사 사람들을 묶어 놓은 게 아닌가.

최지혁은 빌어먹을 성주호의 면상을 보자마자 슬리퍼로 놈들의 머리를 후려쳐 버렸다.

자칫하면 슬리퍼 찢어질 뻔했다.

“너 어떻게 나왔냐.”

최지혁은 슬리퍼를 쥐고 잔뜩 열이 오른 얼굴로 사무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놈을 죽어라 노려보았다.

“괜찮으세요, 다들?”

나는 일단 최지혁을 뒤로하고 사람들부터 살폈다.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선우 씨는 대충 사무실 풍경을 핸드폰에 담으며 대답했다.

흘끗 화면을 보니 라이브 방송의 채팅창이 마구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화면 뒤에서 최지혁에게 열심히 수신호를 보냈다.

‘착한 척, 착한 척!’

최지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다가 곧 선우 씨의 핸드폰을 보고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리고는 까치집이 얹힌 머리를 쓱 넘겨 올리더니 산뜻하게 웃었다.

말이 웃는 거지 남이 보면 열 받은 얼굴이긴 했으나, 일단 노력한 티는 났다.

나중에 칭찬해줘야지.

“이이익! 너 이 새끼, 폭력 행위야, 이거!”

“고소해보시죠. 우린 불법침입, 감금, 협박, 공갈죄로 고소할 테니까요.”

최지혁의 힘에 쫄아 바닥에 딱 붙어있던 성주호가 이영 변호사님의 말에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펄떡이기 시작했다.

“저, 미친년이 감히!”

“모욕죄 추가됐네요.”

이영 변호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주호를 쳐다보며 말했고, 옆에 있던 선우 씨가 한마디 보탰다.

“그럼 라방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언론에 제보해주신 분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핸드폰에 인터넷 메인 화면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이미 기사 다 나갔네요. 몰래 빠져나왔다면서요? 큰일 나셨네……. 얼굴 다 공개됐네요.”

묘하게 열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열 받았겠지. 방금까지 밧줄에 묶여서 협박당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선우 씨는 아이돌 출신이었기 때문에 기본으로 팔로워가 상당히 되었고 성주호가 우리 회사에서 깽판 놓은 거는 전 세계로 보란 듯이 퍼져나가 버렸다.

이미 기사도 쫙 뜬 거 보니까 재기는 그른 듯싶다.

“아니, 생각할수록 열 받네? 무슨 염치로 여길 찾아와서 깽판을 놔? 그것도 재활 기간에? 상도덕 어디 갔어요?”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성주호를 쳐다보았다.

주제에 또 뭐가 억울하기라도 한 듯 얼굴이 아주 붉으락푸르락 난리가 났다.

꼬라지가 너무 가소로워 헛웃음만 내뱉었다.

“아저씨, 일단 경찰분들은 위험하니까 오지 마시라 하고, 게이트 관리청 사람들부터 부르죠.”

도경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저 미친년이 내 인생을 다 망쳤어! X발X 죽여버릴 거야!”

갑작스러운 욕설에 깜짝 놀라 성주호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이어지는 최지혁의 행동에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뻑! 소리가 들리고 최지혁의 슬리퍼가 반 토막이 났다.

“유……라 양. 최지혁 군 말려야 하지 않겠어?”

성주호는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았는지 겁먹은 눈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최지혁은 아랑곳 않고, 무서운 얼굴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디 한 마디만 더 해봐.”

“…….”

순식간에 사무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도경 아저씨는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뭐라도 해보라는 듯 쳐다보았지만 일단 나는 잠자코 있었다.

최지혁도 생각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싶었다.

솔직히 나도 대놓고 나한테 욕 박은 사람을 위해서 최지혁을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라고.”

“……고, 고소를 너, 너만 할 수 있는 줄 아나 본데…….”

성주호는 최지혁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부들부들 떨며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최지혁은 그에 헛웃음을 피식 내뱉고는 거칠게 성주호의 멱살을 쥐고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해. 고소.”

“…….”

“그런데, 고소하려면 증거가 확실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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