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어쩐지 공기가 이상하더라, 이상해!”
도경 아저씨는 앉아서 최지혁을 향해 박수를 쳐주셨다.
아주머니는 귀신이었다. 아주머니의 ‘어머나’ 한마디로 방 안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티를 내더니 드디어 해냈구만. 축하해, 최 헌터!”
최지혁의 얼굴은 이미 시뻘게져 있었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눈치챘다.
심지어 선우 씨도 말이다.
심지어 준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형. 진짜 축하해요.”
최지혁은 이번에는 진짜 죽으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정리해 줬다.
“일단 내일 가서 얘기해요, 저희.”
그리고 환자분 소원대로 병실에 굳이 남아줬다.
“됐지?”
하지만 성에 안 차는지 진짜 죽고 싶다는 표정으로 제 커다란 손에 얼굴을 묻었다.
민망한가 보다.
“야. 너넨 왜 안 가?”
최지혁의 말에 공중에 둥둥 떠다니던 리온이 말했다.
“우리는 마스터의 외로움을 달래줄 의무가 있는데?”
“맞다. 최지혁.”
에르켈은 그래도 최지혁이 지혁지혁이라는 호칭을 싫어하니 최지혁이라고 기꺼이 불러주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 와중에 최지혁은 저게 무슨 말이냐는 듯 나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아니, 뭐 그냥…… 혼자 집에 있기 무서워서.”
내 말에 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최지혁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리고 이제 리온이랑 에르켈 소환해놓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괜찮아.”
나는 또 최지혁의 머리칼을 쓱쓱 만져 주었다.
그러니 최지혁은 인상을 쓰며 몸을 배배 꼬았다.
“아주 좋아 죽네, 지혁지혁. 도대체 어떻게 참았대?”
“인간은 가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고는 한다, 악마.”
“닥쳐.”
나는 허허 웃으며 대충 에르켈과 리온을 돌려보냈다.
최지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다가 옆에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나는 그런 최지혁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제 어떡하지.
사실 아까는 너무 충동적이긴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돌이킬 수도 없다.
최지혁이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은 100퍼센트였다.
나도 최지혁이 좋다.
그건 사실 문제가 안 됐다.
제일 큰 문제는…….
여태까지 최지혁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부정해왔던 이유.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언젠간 돌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최지혁의 잘생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사실, 최지혁이 반쯤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많이 고민했다.
나, 집에 돌아갈 수 있긴 할까?
사실 나는 이미 그날 트럭에 치여서 죽은 건데 아직 안 죽었다고 정신 승리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
만약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최지혁과 내 관계는 이제 어떻게 될까?
아니면 만약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만약에 최지혁이랑 헤어지면 어색해서 어떡하지?
“최지혁.”
“…….”
이런 문제는 미루지 말고 미리미리 상의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최지혁의 손을 붙잡고 진지하게 물어봤다.
“네 생각에, 내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에 최지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곧 착잡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돌려보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거짓말 아니야.”
“누가 뭐래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최지혁에게 또 물어봤다.
“근데 나 좋아하면서 왜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어요?”
내 물음에 최지혁이 인상을 팍 구겼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게 물었다.
“내가 언제부터 널 좋아했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설마 강준우 그 자식이 입 털,”
나는 최지혁의 입술을 엄지로 꾹 누르며 열심히 째려봐 주었다.
애먼 사람을 왜 잡아?
“얼굴에 티 다 났는데.”
“…….”
“정확한 시기는 네가 나 지켜준다고 피떡 돼서 왔을 때? 왜, 나 몰래 준우랑 단둘이서 던전 돌 때.”
“……그걸.”
“근데 그때까지는 확신 못 했죠. 말을 안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말에 최지혁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생각 좀 해봤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별 감정이 없었으면 귀신 숲에서 게이트 닫히는 거 뻔히 보고도, 돌아가는 걸 포기하면서까지 나한테 왔을까 싶고……. 사실 이번 게이트에서도…….”
S급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까 코끝이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음, 아무튼 그렇다구요. 그래서 내가 한 질문에는 대답 안 해줄 거야?”
내 말에 최지혁이 우물우물 대답했다.
“……네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황당했다.
뭐, 예상 못 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최지혁은 좀 어이없게도 내가 원하면 뭐든 다 해주려고 했다.
솔직히 처음 원룸에서 살 때만 해도, 최지혁은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최지혁은 아무데서나 잘 잤으니까.
노숙도 잘했고, 회귀 전에도 그 좁아터진 원룸에서 잘만 살았다.
오죽하면 내가 미션으로 ‘이사 가기’를 걸었겠어?
지금은 나 신경 쓴다고 좋은 집으로 고르고 또 골랐다.
도경 아저씨한테 다 들었다.
‘어휴, 최 헌터가 얼마나 까탈스럽게 굴던지. 귀찮아서 혼났어.’
또, 맛집 찾는 것도 평소 최지혁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쟤는 거의 미각이 없다시피 하니까.
회귀 전에 돈을 많이 벌고 나서도 하도 라면만 먹어서 내가 미션 걸고 요리 하기 퀘스트까지 주었다. 그제야 겨우겨우 제대로 챙겨 먹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야. 넌 내가 청와대 갖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줄 거예요?”
그에 최지혁이 망설임 없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1년만 기다려. 그때 되면 게이트 한참 터질 시기라 정부도 위태위태, 악!”
나는 결국 최지혁의 귀를 잡았다. 아니 얘가 진짜 미쳤나 봐.
“최지혁, 정신 차려! 너 왜 그래.”
“갖고 싶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그런 게 어딨어! 애초에 네 질문부터 이상하잖아. 집에 가고 싶은 거랑 청와대랑 무슨 상관인데?”
얼씨구? 최지혁은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귀를 잡고 씩씩댔다.
“그럼 최지혁. 나랑 사귀다가 내가 쏠랑 집에 가버려도 괜찮아요? 네 주관을 말해요. 네 생각!”
“……그걸 왜 벌써부터 생각하는데.”
“그럼. 벌써부터 생각해야지 나중 가서 생각하면 일 더 커지잖아요.”
최지혁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싶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 5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서 내게 물어봤다.
“넌 집에 갈 수 있으면 갈 거야?”
“아마……? 나도 잘 모르겠,”
내 말에 최지혁이 이를 악물며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럼 나한테 키스는 왜 했는데.”
“…….”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사실 좀 불안하긴 했다.
이 말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최지혁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철없게 굴어서…….”
“……거기서 미안해가 왜 나오는데.”
최지혁이 진짜 조금 화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래도, 나는, 너 좋아하니까…… 나도 모르게…… 미안해요.”
최지혁의 말대로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냥 참았어야 하는데 너무 충동적이었다.
“제기랄…….”
하지만 최지혁은 잠깐 화내는 듯싶다가 커다란 손으로 내 뺨을 쥐며 말했다.
“됐어. 그딴 거 상관없어.”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검지로 살짝살짝 만졌다.
“그 대신, 만약에.”
“…….”
“집에 못 가게 되면.”
최지혁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곧, 최지혁의 손이 내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나, 하나만, 용서해주고, 같이 있어.”
“……뭘 용서하는데요?”
내 물음에 최지혁이 불안한 듯 입술을 씹었다.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해. 그럼 네 맘대로 나한테 키스한 거 넘어갈게.”
“……정확히 말해서 내가 한 건 뽀뽀고 네가 한 게 키스,”
내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정정해주자 최지혁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난 참고 있었다고!”
최지혁이 진짜 분한 듯 씩씩댔다.
“상식적으로 네가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참는데.”
“……응?”
도대체 뭘 참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기로 최지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네가 도대체 뭘 참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분위기 때문에 입 꾹 닫고 있었다.
“몰라, 다 망했어. 제기랄.”
그리고 최지혁은 미치겠다는 듯이 제 머리를 헝클였다.
“꿈인 줄 알았는데, 다 망했다고.”
최지혁의 말에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꿈인 줄 알아서 입 맞췄다는 건가? 현실이었으면 안 했고?’
“채유라.”
“응?”
“네가, 시작했으니까, 싫증 내지 마.”
“엥?”
저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영 문맥 파악을 못 하고 최지혁을 쳐다보니, 최지혁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 싫증 내지 말라고.”
너무 이상한 요구라 딱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지혁은 불안한 표정으로 내 손가락 하나를 겨우 잡으며 말했다.
“……나 이제 너 좋아해도 되는 거지?”
“그게 뭔 질문이야?”
“……나, 너 좋아한다.”
“언제는 안 좋아했어요?”
“네가 허락한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 내 손가락만 겨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덥석 손을 잡아줬더니 또 몸을 바들바들 떨며 죽으려고 했다.
그러더니 최지혁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머뭇머뭇하며 내 손을 꽉 잡았다가 내 손목, 그리고 팔뚝을 잡았다.
“네가, 허락한 거라고.”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하겠으나, 일단 좋다는 것 같았다.
아까 그 복잡 미묘한 표정은 또 어디 가고 나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내 귓가에 계속 입을 맞췄다.
“응, 네가 허락했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싫으면 말해.”
“안 싫은데. 그리고 어차피 이미 하고 있으면서 뭘 말하래.”
“…….”
최지혁이 다시 내 입술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