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45)

“준우야, 괜찮은 거 맞지? 별 이상 없는 거 맞지? 응? 일본 애들이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너무 불안해서 리온과 에르켈의 소환을 해지하지도 못했다.

“유라야. 일단 의료진들 붙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준우가 에둘러 말하는 게 눈에 보였다. 상태가 안 좋은 게 분명했다.

“준우야. 나, 필요한 아이템 다 제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거 써서라도 낫게 해주면 안 돼?”

내가 거의 애원하듯 준우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하자, 준우는 조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알아내 볼게.”

“아니, 준우야. 그거 말고. 최지혁 죽는 거 아니지? 응? 최지혁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하는데, 더 늦어지면 안 되는데…….”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리온이 나를 애써 준우에게서 떼어내며 말했다.

“마스터. 정신 좀 차려라. 지혁지혁 닮아가냐?”

“너는 걱정 안 돼? 애가 비늘이 어깨까지 돋아나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데, 내가 이상한 거야? 응? 내가 이상한 거냐고! 아, 어떡해, 진짜.”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헌터들 상태 살핀다고 면회도 안 된다.

의료진들만 들어가서 최지혁과 다른 헌터들의 진료를 보고 있었고, 아우트론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지혁의 목에 있는 비늘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지혁은 내가 응급처치라고 이것저것 아이템을 들려준 덕에 남들보다 조금 나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딱 거기까지였다.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라탄, 그 새끼 부를까? 국정원에 넘길까? 응? 아니야. 이건 다른 나라 헌터들도 걸려있는 문제니까 국제기관 같은 데 넘겨서 어떻게 협박이라도 하면……!”

내 말에 준우가 내 어깨를 꽉 붙잡고 말했다.

“유라야. 형이 너 특별한 거 꼭 숨겨야 한다고 했잖아.”

꽤 이성적인 말을 하고 있는 준우 역시 정작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버텨보자. 아직까지는 비밀로 하고, 딱 한 달만. 한 달만 버티고 그때도 안 되면 그렇게 하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게 왜 중요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형이 너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도 알잖아, 유라야.”

그리고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최지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안다고?

“…….”

그래.

최지혁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지경이 되어서도 기어코 날 지키려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주군.”

에르켈이 조금 머뭇거리며 내 어깨를 감쌌다.

욕이 절로 나왔다.

연예인은 개뿔.

아이돌은 빌어먹을 아이돌.

누가 자꾸 심장이랑 머리를 망치로 후드려 패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최지혁을 좋아하는 게 구오빠를 좋아하던 거랑 똑같은 개념이라고?

진짜 그거야말로 개소리였다.

애초에 구오빠가 왜 구오빠가 됐는데.

다 최지혁 때문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쭉 좋아했던 아이돌도, 최지혁이 나타나고 다 뒷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았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팬심, 애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마스터, 울지 마라…….”

내가 울기 시작하자 준우도 못 참겠는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오씨, 준우준우 너는 또 왜 우냐.”

사실, 아까 헌터 한 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의사들이 급하게 달려가는 걸 봤다.

게이트는 무사히 닫혔고, 이미 병원 앞에는 기자들이 쫙 깔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다른 헌터들의 가족 또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대기실의 분위기는 초상집 그 자체였다.

불안했다.

미친 듯이 불안했다.

“유라야. 그냥 지금 가자.”

그때였다. 준우가 내 손목을 살포시 잡으며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준우를 쳐다보았고, 준우는 나를 애써 일으켰다.

“형, 나 구하려다가 저렇게 된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 해. 여기 의사들 못 믿어. 우리 형 데리고 지금 한국 가자.”

“…….”

“라탄 그 자식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비행기 타도 문제없어.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잖아.”

나는 핸드폰을 꼭 쥐고 바로 지성준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지금 회의 중이라,”

“한국행 비행기 표 끊어줘요. 지금 당장.”

-“…….”

***

거의 19일 하고도 반나절이 지났다.

최지혁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

라탄에 대한 심문은 최지혁이 일어나면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지금 놈에게 최지혁의 치료 방법을 물어봤자 똑같은 대답만 나온다.

진실을 말하는 아이템을 먹이든 안 먹이든 똑같았다.

그냥 최지혁이 정신을 차려야 괜찮아진다고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지성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내 부탁은 다 들어줬다.

일단 기자들 출입을 모두 막고, 기사나 뉴스 보도도 최대한 자제시켰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대선은 치러졌다.

결과 발표가 나왔고, 계획대로 안영표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번 S급 던전을 우리가 잘 막았다는 게 선거 결과에 꽤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교수님, 최지혁 헌터가 처한 상황은 저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질환과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우가 문밖에서 정신과 교수님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협회나 연구소 같은 걸 만들려는 계획인 것 같았다.

앞으로 헌터들은 게이트에 들어가 많이 다쳐 올 거고, 힐러들의 능력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본 모양이다.

준우는 대충 이야기를 끝냈는지 병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와 최지혁에게로 다가가며 내게 물었다.

“유라야. 형한테 계속 말했어?”

“응, 당장 안 일어나면, 죽여버린다고 했어.”

준우네 정신과 교수님이 말했다. 아직까지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까 계속 말이라도 걸어주라고.

꾸준하게 일어나라고 하면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고.

“음…….”

최지혁은 계속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이렇게 오래 자는 거지?

“아, 참. 유라야. 엄마가 과일 보내주셨어. 망고!”

“응. 계속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어제 전화 드렸는데. 또 드려야겠다.”

“아, 도경 아저씨랑, 이영 변호사님도 선우 씨 데리고 오늘 저녁에 오신대.”

“아, 그럼 저녁 뭐 먹지? 드시고 오시려나?”

“글쎄?”

심신이 매우 피곤했지만 나는 최지혁과 다르게 굶지 않고 밥을 꼬박꼬박 먹었다.

체할 것 같아도 먹었다.

옛날에, 우리 할아버지 아프셨을 때 할머니가 나한테 그러셨다.

병간호도 체력 싸움이라고.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밥이 들어가서 속이 든든해야 버티는 거라고.

“참, 유라야. 나 교수님이 부르셔서 잠깐 갔다 올게. 형이랑 있어.”

“응. 알았어.”

“근데 리온이랑 에르켈은 집에 있어?”

준우가 이상하다는 듯 병실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리온한테는 혹시라도 이상한 놈들 찾아갈까 봐 사무실 지키라고 했어. 에르켈은 이영 변호사님이랑 공부 중. 세상 공부 좀 하고 싶대.”

“그래? 그럼 이따가 저녁에 보자.”

“응.”

나는 최지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제발 좀 일어나줬으면 하는데.

아직까지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 중에 정신을 차린 사람은 없었다.

다들 고국으로 돌아가서 치료 중이었지만 벌써 3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나는 최지혁의 목에 자란 비늘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전보다 조금 늘긴 했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들처럼 전신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최지혁 진짜 안 일어나면 시위할 거야.”

나는 최지혁의 손을 잡은 채로 침대에 고개를 기댔다.

요즘 들어서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잠이 솔솔 왔다.

한 시간쯤은 자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뜨끈뜨끈한 무언가에 갇혀 있었다.

뺨에 밀착되어있는 무언가는 단단한 듯하면서 말랑말랑했는데 나름 느낌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눈앞에 있는 걸 콕콕 찔러봤다.

뭔가 남자 가슴 같…….

나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그곳에는 좀 뿌듯한 얼굴의 최지혁이 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뭐지?

지금 내가 꿈꾸나?

준우가 나를 여기다가 옮겨놨나?

아니다. 제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병실에서 졸고 있는 사람을 깨울지언정 환자 옆에 뉘어 놓지는 않는다.

“…….”

순간 심장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정자세로 누워 있던 최지혁이 조금 거시기한 자세이긴 하지만 나를 꽉 안고 있었다.

100퍼센트 이건 최지혁이 옮겨 놓은 거다. 그게 아닐 수가 없었다.

“최지혁?”

정신이 든 건가? 깨어난 건가?

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지혁은 배시시 웃더니 내 어깨에 제 뺨을 부빗거리며 말했다.

“우응……유라야…….”

뭔가 상태가 이상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최지혁의 양 뺨을 잡고 말했다.

“최지혁, 정신이 들어? 응?”

영 눈을 뜰 생각을 안 하길래 뺨까지 꼬집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지혁은 눈을 꼭 감은 채로 나를 더 꽉 안았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10분만…….”

세상에, 큰일 났다. 정신은 든 것 같은데 애 상태가 이상해!

“야!”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최지혁이 그제야 느리게 눈을 떴다.

그리고, 후두둑. 그의 몸에 있던 비늘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최지혁, 나 누군지 알겠어?”

최지혁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나를 다시 똑바로 껴안았다.

그리고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응. 유라. 채유라.”

미치겠다. 내가 꿈꾸고 있나 싶어서 내 뺨을 꼬집어 봤지만 정상이었다.

“최지혁. 한국의 수도는 어디?”

“서울.”

“6 곱하기 7은?”

“42.”

“내 전화번호.”

“010…… 유라야, 그거 말고 다른 얘기 해주면 안 돼?”

머리는 정상 같은데. 나는 최지혁의 이마를 짚었다. 열도 안 난다.

와중에 알 수 없는 소리도 중얼거렸다.

“딱 10분만 이러고 있다가 일어나 볼게. 조금만 기다려줘.”

“…….”

“조금만 이러고 있을래, 유라야.”

그냥 최지혁의 헛소리를 듣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 바보가 뭐라는 거야.

“이씨, 최지혁.”

“왜 울어…….”

최지혁은 엄지로 내 눈가를 문질렀고,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왜 이제 일어나,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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