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45)

최지혁의 상태는 누가 봐도 비정상이었다.

눈은 생선 눈처럼 불투명해져 있었고, 목에 붙어있는 비늘들은 어느새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최지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쥔 채로 파들파들 떨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최지혁!”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최지혁은 그대로 검을 들고 보스 몬스터의 정수리 쪽으로 날아올랐다.

“쿠웨에에에에엑!”

그리고 푹, 찔러 넣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에르켈은 맥이 빠져서 겨우 서 있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미안, 하다, 주군……. 인간남자가 주군에게 달려가려 하는 걸 도저히 내 힘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사실 에르켈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최지혁. 최지혁이 더 이상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해야 했다.

‘쟤는 어쩌자고 저 꼴을 하고 보스몹한테 달려드는 건데!’

나는 이를 악물고 최지혁에게 날아오는 공격들을 전부 거둬 냈다.

짤랑거리는 이펙트가 최지혁의 근처에 미친 듯이 터져댔다.

“형!”

“미친, 지혁지혁 저기서 뭐 하냐!”

바닥에 처박혀 있던 리온과 준우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꾸역꾸역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준우야, 버프, 버프 넣어줘! 리온! 가서 최지혁 돕고! 에르켈, 방어!”

최지혁의 몸에서 온갖 이펙트가 뿜어져 나왔다.

목소리가 막 떨렸다. 쟤가 저기 있으면 안 되는데, 또 최지혁이 나서니까 보스의 체력 게이지가 금방 줄어들긴 했다.

그래도, 나서면 안 된다.

당장이라도 최지혁을 끌고 내려오고 싶었는데, 최지혁은…….

모르겠다. 미치겠다.

“최지혀억! 내려와!”

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지만 들리지도 않는지 그냥 보스 몬스터의 비늘을 잡고 심장께로 내려가 칼로 푹푹 찌르고만 있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같은데 안 들렸다.

그새 레이저빔의 재가동 시간이 찼는지 최지혁이 공격하고 있는 쪽으로 빔을 쏴댔다.

그러자 단단했던 외피가 조금 벗겨지면서, 놈의 심장이 드러났다.

최지혁은 망설임 없이 심장을 푹, 찔렀다.

그러자 반이나 남아 있던 체력 게이지가 한 방에 쑥, 사라졌다.

놈이 꽥!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최지혁은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심장에 손을 푹 집어넣어 휘적거렸다.

“최지혁!”

나는 일단 최지혁에게 휘청거리며 달려갔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당장 뛰어가야 하는데, 힘이 안 닿았다.

“주군. 안겨라.”

보다 못한 에르켈이 나를 안고 최지혁에게로 날아갔다. 그 사이 전방을 보니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최지혁의 옆으로 다가가 최지혁의 뺨을 잡고 무작정 그의 안색을 살폈다.

“최지혁, 정신 들어? 응?”

하지만 최지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지혁의 몸은 정말 이러다가 죽을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지혁은 씨익 웃으며 뒤에 있는 에르켈에게 피범벅이 된 손으로 무언가를 먹였다.

그리고는 막 제 몸에 손을 닦았다. 아마 피를 지우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잠시 나를 보고, 제 손을 보더니 안 되겠는지 표정을 찌푸리며 그냥 내게 제 고개를 툭, 묻었다.

“다행…….”

뭐? 다행?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다가 심장이 흥분으로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 보태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숨을 꼭 삼키고 펑, 터지듯 울분을 토해냈다.

“다행은 뭐가 다행이야, 이 나쁜 놈아!”

눈물이 찔끔 났다.

“마스터!”

“유라야!”

나는 최지혁을 꽉 껴안으며 리온과 준우에게 부탁했다.

“사람들, 사람들 데리고 여기서 나가자.”

***

최지혁은 굉장히 긴 꿈을 꿨다. 대충 지난 과거에 대한 꿈이었다.

부모가 한 번 더 죽고, 동생이 또 죽고, 그의 성좌가 그를 배신하고, 사지가 찢겼다가 다시 붙고, 또……보스를 잡고…….

그냥 작정하고 죽고 싶단 생각을 하게끔 그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그의 꿈속에서 행복한 기억은 찾을 수 없었다. 중간에 끼어든 이상한 목소리만 아니었으면 그냥 죽고 싶다 생각하고 영영 안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잖아. 일어날 수 있는 거 맞아, 준우야? 제발 교수님한테 한 번만 더 자세히 봐 달라고 하면 안 돼?’

‘최지혁 왜 안 일어나는데! 나는 3일 만에 일어났는데 넌 벌써 일주일 다 되도록 왜 안 일어나냐고!’

채유라, 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그는 S급 보스 몬스터에게 당해 병실에 누워 있는 상태라고.

그리고 다행히 그때부터는 끔찍한 꿈은 꾸지 않았다.

다만 꿈에 유라가 나왔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안 나왔는데 말이다.

꿈속의 유라는 다정했다.

현실 속 유라도 다정하긴 하지만, 꿈속의 유라는…… 그러니까 뭔가 달랐다.

“왜? 또 무슨 생각 하는데?”

그러니까, 최지혁은 이게 현실이 아닌 걸 알긴 알았다.

유라가 다정하게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와중에도 잠깐잠깐 의식 너머로, 분노한 유라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응.”

지혁은 대충 꿈속의 유라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유라가 걱정할 텐데.

유라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다. 이제 최지혁은 그걸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안 다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망했다는 느낌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일단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생각하고 싶었다.

“대답을 안 해줘, 최지혁.”

“응.”

꿈이지만 좋았다.

그는 유라를 껴안고 있었고, 적어도 꿈속의 채유라는 그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영영 떠날 일 없는, 항상 곁에 있는 사람 말이다.

심지어 애정 어린 눈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서 좋아 죽을 것 같았다.

“최지혁. 더워.”

“안 더워.”

“아니, 이것 좀 놔, 진짜 내가 못 살아.”

그냥, 이대로 꿈속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꿈속의 유라는,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이유도 없고, 그가 한 거짓말에 분노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영영 깨어나지 못해도 유라는 잠깐 힘들어하고 말 거다.

원래 남의 죽음이라는 게 그렇다.

최지혁은 완전한 남이었고, 유라도 그에게 남이었으니까.

물론 최지혁은 유라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거나 죽어버린다면 잠깐만 힘들어할 자신은 없었지만, 유라랑 그는 좀 다르니까.

유라는 마음이 그보다 훨씬 건강해서 그따위는 금방 잊어버리고 잘 살 거다.

어차피, 그가 유라에게 한 짓을 알면 미움받을 텐데. 그냥 이대로 영영 말 안 하고 꿈속에 갇혀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곳의 유라는 적어도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니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다정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유라가 알면 화내겠지만…….

“왜, 뭐가 부족한데. 뽀뽀라도 해줘?”

“응.”

제길. 천하의 쓰레기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사고를 멈출 수는 없었다.

좀, 마약 같았다.

꿈속의 유라는 달콤했다. 그가 원하는 꿈이 현실이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최지혁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가, 죽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일부러 잠깐 그가 원하는 행복을 보여준 것이라고.

환상 속 새하얀 방의 침대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흐트러진 모양새의 유라가 그의 앞에서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당연한 거였다. 원래, 아예 없었던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손에 한 번 쥐었던 것을 놓는 게 더 어려운 법이었다.

“네가 날 이 세상에 끌고 왔잖아.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꿈속의 유라가 말라가고 있었다.

“널 원망해.”

“응.”

“넌 개새끼야. 세상에서 네가 제일 싫어.”

“……응.”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안 일어나면 죽여버릴 거야.’

이번에는 다른 사람 목소리도 들렸다.

‘유라야, 형 몸에는 아무 이상 없고, 지금 정신과 쪽 교수님이 방법 찾아보신다고 했어. 오늘 해외 의사분들하고 회의도 들어간다고 하셨으니까 조금만 더 참자. 응?’

‘최지혁 이대로 영영 안 일어나는 거 아니지? 진짜 아니지?’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울면 안 되는데.

“……망할 성좌 계집.”

그때였다. 꿈속의 비쩍 마른 유라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여자는 널 원망할 거야. 그러니까 헛된 희망 품지 마.”

그리고 꿈속 존재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준우야, 나 어떡해? 나 때문이야? 내가, 최지혁한테 S급 들어가지 말자고 했었어야 하는데, 나 때문인 거야?’

하지만 놈의 목소리 따위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된 게 왜 너 때문이야?’

아니라고 말해줘야겠다.

“널 원망할 거야. 넌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어서 포기해.”

‘최지혁 진짜 안 일어나면 시위할 거야.’

‘마스터, 지혁지혁 일주일 내로 안 일어나면 내가 발로 깨울게. 걱정 마!’

뭔가 함정이 껴있는 것 같지만 최지혁은 그냥 꿈에서 깨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쟬 잡아 죽이면 되는 건가?

“그렇다고 안 일어나도 원망할 것 같으니까 일어나야겠는데.”

이미 그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유라의 얼굴도 아니었다. 놈은 온몸에 비늘이 돋아난 사람의 형태로 입만 뻐끔거렸다.

대충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 그를 골려 주려고 한 것 같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미 저것보다 훨씬 징그럽고, 무서운 몬스터들은 많이 봤었다.

직접 목을 따주기도 했는걸.

그래서 최지혁은 이번에도 맨손으로 직접 놈의 머리를 따 주었다.

그러자 자연히 눈이 뜨였는데, 최지혁은 그대로 낮게 욕을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덜 깼나 보다.

유라는 주사기가 꽂혀 있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최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꿈에서 깨어날 방법을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비록 환영이긴 했지만, 대충 유라를 그의 곁에 곱게 눕혀 준 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암전이었다.

그런데, 좀, 행복했던 것 같았다.

품 안이 따뜻하고, 조그마한 꼼지락거림이 배 아래를 간질거렸다.

그냥 이대로 기절해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최지혁?”

아까보다 배는 달콤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품 안에 있는 존재를 더 꽉 껴안았다.

그와 똑같은 제품의 샴푸 냄새가 풍겨 왔다.

그가 대충 껴안고 있는 사람이 유라인 것 같았다.

배 속이 간질거렸다.

“우응……유라야…….”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뺨에 닿는 촉감이 꼭 진짜 같았다.

제기랄. 빨리 일어나야 할 텐데,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또 거기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최지혁, 정신이 들어? 응?”

음, 갑자기 꼬집는 건 좀 예상 밖인데.

그래도 좋았다. 그는 뺨을 꼬집힌 상태로 다시 유라를 끌어안았다.

빨리 깨어날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데, 진짜 힘들었다.

깨어나는 방법은 10분만 기다렸다가 찾아도 되지 않을까?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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