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매우 거지 같아졌다.
“유, 유라야.”
“마지막 코어야.”
최지혁은 괜찮을 거다.
놈이 내 서번트가 된 이상 내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으니, 놈이 말한 최지혁의 상태도 진실일 것이다.
분명 최지혁이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그랬다.
최지혁이 정신계 공격에 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최지혁은 그렇게 나약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지켜주겠다고 휘청거리며 난리를 쳤으니까, 그게 진심이라면 괜찮을 거다.
그래야만 했다.
“…….”
라탄은 만신창이였다.
내가 최지혁이 산 걸로 추정되는 탱커 전용 어그로 아이템을 그에게 씌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조금 과하긴 했다.
대충 추측해 본 결과, 라탄이라는 황태자는 무너져가는 세상을 지키려 홀로 아등바등하던 인물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불쌍했다.
평소의 나였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동정의 손길을 뻗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자식은…….
모르겠다. 그냥 미친 듯이 미웠다.
“끄으, 으으으으으!”
마지막 코어를 지키고 있던 연구원이 꺽꺽거리며 우리에게로 돌진했고, 라탄은 괴로운 표정으로 몬스터에게 말했다.
“테니아……. 제기랄!”
“끄으, 으으으으!”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걸 보니 알던 사이 같았다.
놈의 눈빛이 사뭇 애틋해 보였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리온.”
“알겠다, 마스터. 마지막 하나까지 이 대악마 리카르디온이,”
“빨리 해.”
“칫.”
리온은 내가 준 망치로 있는 힘껏 코어를 부쉈다.
“제발, 테니아! 정신 차려! 잠깐만이라도!”
와중에 옆에서는 뭐라고 지지고 볶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해버렸다.
“마스터, 피해라!”
웅웅웅!
우리 셋 중에 가장 공격력이 강한 리온이 온갖 버프를 받은 후 깡딜로 마지막 코어를 후려쳤다.
파앗! 보랏빛의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오며 절삭기처럼 주변 벽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쿠르릉, 방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나는 준우의 손목을 잡고 자리를 피했다.
“리온, 역소환! 그리고 다시 내 옆으로!”
리온이 사라졌다가 바로 내 옆에 나타났다.
“젠장, 마스터! 여기 무너질 것 같다!”
“준우야. 이불 덮어.”
“응!”
리온이 붙잡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인원의 수는 성인 남성 2명이 한계이다.
저 빌어먹을 황태자까지 데리고 이 탑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리온, 만약에 서번트가 죽으면 난 어떻게 돼?”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유라야, 설마 계약 해지하게?”
준우가 물었고,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을 수는 없잖아? 일단 보고. 죽을 것 같으면 해지해야지. 알림 기능 있으니까.”
어차피 나쁜 놈이었다.
최지혁의 세상이 내 세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저놈은 본인들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최지혁의 세상을 침략하고자 했던 거니까.
굳이 동정할 필요 없었다.
“리온, 가자.”
“오케이, 마스터!”
리온은 이미 금이 간 외벽을 발로 뻥 차버리고는 나와 준우를 확 감싸 올렸다.
“용서하지 않아!”
건물 안에 남겨진 황태자는 분노에 찬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도 그에 똑같이 돌려주었다.
“용서? 정작 화내야 할 게 누군데. 누굴 나쁜 년 만들려고?”
“트레탄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최지혁이나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이 나쁜 새끼야!”
속에서 애써 참고 있던 열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유라야, 형 괜찮을 거니까 일단 진정, 으악!”
그때였다. 보스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크게 비틀었다.
뚫린 천장 위에서 물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짜, 도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아이템을 사 널브러져 있는 헌터 무리들에게 공기 방울을 씌웠다.
“마스터, 망한 것 같은데.”
리온이 황망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시뻘건 색으로 변해버린 눈동자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
온갖 편법이란 편법은 다 끌어 모아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건 돈과 잔머리밖에 없었으니까.
“리온, 할 수 있지?”
“마스터, 나만 믿어라! 나도 지혁지혁 못지않다고!”
지금 리온의 레벨은 117.
최지혁이 몬스터한테서 나오는 마력석인지 마정석인지를 열심히 먹인 덕에 본래 힘의 반절 정도 회복했다.
나는 화면에 다시 보스 몬스터를 담았다.
[아우트론]
방어: 80%
회피: 40.2%
중독: 36.7%
출혈: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