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었다. 석판이 가리고 있던 통로로 들어가자마자 마법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사라졌다.
우리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오자 우르르 쾅쾅 소리가 통로 안을 가득 채웠다.
“아니, 다른 사람들 아직 소식 없어요? 왜 안 와!”
“나도 모르겠어, 유라야. 연락 다 무시하는 것 같은데…….”
준우는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일단 우리는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고 나갈 거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
자칫해서 혼자만 안전한 곳으로 내뺐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없었다.
“다시 해 봐!”
준우가 다시 통신기를 들고 말했다.
“해저도시로 가는 입구 발견했으니까 그놈의 샘 그만 찾고 오라고!”
그에 통신기가 삐빅거리더니 곧 불어가 들려왔다.
- “저들만 살겠다고 내뺀 주제에 뭘 믿고!”
어이가 없었다. 뭔 소리야? 준우도 계속되는 무시에 열 받았는지 소리를 빽 질렀다.
“니들이 아이템 서리하러 갔을 때 우리는 섬 조사했거든? 그래서 지금 알려 주잖아! 당장 그놈 상대 못하니까 오라고, 이 바보들아!”
뚜뚜뚜.
신호가 끊겼다. 정신이 좀 아득해졌다.
아니, 왜? 도대체 왜? 어차피 지금 보스한테는 아무리 S급 헌터들이 있다고 해봤자 공격 자체가 들어가지 않았다.
본인들도 알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제기랄, 뒤지라 그래.”
최지혁이 휘청이며 말했다. 나는 급하게 최지혁을 부축하며 얼굴을 살폈다.
준우가 계속 힐을 준 덕에 큰 상처는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빨리 몸 상태 말해요. 거짓말하면 죽어요.”
“형, 봐봐요.”
준우가 최지혁의 팔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최지혁의 쇄골 쪽을 만져 보고 곧 경악한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형, 미쳤어요? 지금 쇄골 나갔는데 이걸 왜 참아요!”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저 인간이. 또 센 척했다.
진짜 미치겠다.
나는 우선 입구 위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입구는 닫혀 있었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여기서 무슨 상식을 찾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아니긴 뭘 아무것도 아니야, 이 웬수야!”
“악! 채유라, 귀, 귀!”
나는 최지혁의 귓바퀴를 잡아당겼다.
“내가 아프면 좀 바로바로 말하라고 몇 번 말해! 그걸 왜 참아! 옆에 의사 있잖아!”
준우가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라야, 나 아직 의사 아닌데.”
“의사나 힐러나!”
준우는 일단 최지혁의 몸을 면밀히 살피더니 이상한 부위를 딱딱 짚어서 스킬을 시전했다.
“이거 말 안 하고 넘어가서 덧나면 어떻게 책임질 건데?”
내 말에 최지혁이 뾰루퉁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 몸인데 내가 책임을 왜 져야 하는데.”
“네 몸이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지! 이제 보험도 110세까지 나오는데 몸 그렇게 함부로 쓰고 바로바로 안 고쳐서 삐걱대는 몸으로 100년 살 거야?”
내 말에 준우가 격하게 동의했다.
“맞아요. 형. 아프면 진료를 받아야죠.”
준우가 다 됐다는 듯이 최지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빨리 말해요. 아픈 데 더 없어? 그나마 안전할 때 다 봐두고 갈 거니까 빼지 마요.”
내 물음에 최지혁이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얼굴이나 신경 써.”
그리고는 엄지로 쓱 내 뺨을 훑었다.
“지혁지혁은 도대체 왜 걱정을 마스터 기분 더럽게 그딴 식으로 하냐?”
리온의 말에 최지혁이 멈칫하며 내게서 떨어져 뒤로 물러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의 옷깃을 잡고 내 쪽으로 도로 끌어당겼다.
“그러게 말 좀 예쁘게 하라고 몇 번 말해요. 좀.”
“맞아요, 형.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잖아요.”
준우가 내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태연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다들 최지혁어에 적응했다.
리온이야 최지혁 놀려 먹으려고 자꾸 슬슬 건드리는 거고.
***
일단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준우는 계속해서 통신기로 신호를 보냈지만 다들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미묘하게 연락에서 광기 같은 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드문드문 소음으로 ‘추종’ 비슷한 단어가 들렸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을까?
“미치겠네.”
나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통로는 문명의 흔적처럼 정교하게 깎여 있었다.
100퍼센트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였다.
와중에 최지혁은 가장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고, 긴장되어서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잠깐이었지만, 보스의 공격을 체감해 봤고, 지금은 전의 최지혁과 달리 압도적으로 힘이 센 것도 아니니까.
조금 비관적인 생각이긴 해도 만약에 잘못되면 전멸이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 통로가 괜히 나타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나는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사실 조금 전부터 자꾸 통신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와서 분위기가 우중충해졌다.
- “그분……추종……치이익-.”
- “삶……치익-, 돌아가, 으아악!”
퍽, 푸식, 빠각.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저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차렸다.
충분히 동요되고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준우는 체념한 듯 괜찮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제일 큰 문제는 나였다.
최지혁은 이미 이런 죽음에 익숙해졌고, 준우는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대생이다.
사람의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
반면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물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고, 일단 정신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처져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반드시 동요하기 마련이다.
정신 똑바로 챙겨야 했다.
솔직히, 여기서 내가 정신 똑바로 못 차리면 최지혁이 다친다.
우리 일행의 유일한 무력은 최지혁이었고, 탱커도 없는 지금 전투 상황이 벌어진다면 최지혁 혼자 다 공격을 뒤집어쓸 게 뻔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편법의 편법의 편법을 사용해서 돌아 돌아 클리어해야 했다.
“제기랄, 강준우. 통신기 꺼.”
“형, 그래도 돼요?”
“분위기 흐리니까 통신기 끄라고. 분명히 우리는 경고했어. 안으로 들어오라고. 개무시한 건 그쪽이야.”
최지혁의 말에 준우는 얌전히 통신기를 껐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에르켈, 방어 스킬 쓰고 있지?”
“이미 최대치로 사용 중이다. 하지만 방금 그 존재의 공격이라면 일격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맵을 살펴보았다.
대충 규격을 보니 입구 끝자락에 커다란 원 모양의 도시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대충 섬의 지도와 비교해 보니 어째 모양새가 비슷해 보였다.
“도대체…….”
그때였다.
최지혁이 눈앞에 있는 해초들을 칼로 치우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전방을 쳐다보았다.
“저게 도대체 다 뭐야…….”
웅웅웅-. 엔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이한 건물들로 가득 차 있는 거대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건물들의 벽면에 홈으로 파인 문양에서는 푸른색과 보라색의 중간 계열의 빛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잘 닦인 모자이크 타일로 된 화려한 길 사이의 가로등처럼 생긴 물체에서는 전구 대신 수정이 빛나며 거리를 밝혔다.
우리는 던전과 영 동떨어진 듯한 배경의 도시에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푸른색 계열의 마모된 유리조각들로 만든 것만 같은 타일 길 끝에는 거대한 분수가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그 분수에 시선을 두었다.
“저건 또 뭐야.”
최지혁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람인데요……?”
준우가 말했다. 분수 밑에는 정말 누군가 있었다.
“얼굴이 시퍼런데 저게 어떻게 사람이야?”
“형, 형, 그거 인종차별 발언 아니에요?”
“얼굴 시퍼런 인간이 어딨는데? 대가리에 악어나 개구리 달려있어도 인종차별이냐?”
“이세계 인종차별 아닐까요.”
“…….”
나는 대충 조용히 해 보라는 의미로 준우와 최지혁의 입에 스태미나 향상 왕젤리를 집어 넣어주었다.
“말 걸러 갈 거니까 다들 헛소리하지 마요. 특히 최지혁 너.”
“내가 뭐.”
최지혁은 툴툴대며 입을 오물거렸다.
“피부가 시퍼레서 인간이 아니니 뭐니 하지 말라고요.”
“피부만 시퍼런 게 아니라 잘 보면 귀도 뾰족,”
“지금 내 말의 핵심 포인트가 그거예요?”
“인간 아닌 자식한테 인간 아니라고 하는 게 뭐 어때서.”
최지혁이 입을 삐쭉거렸다. 나는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까치발을 들어 최지혁의 머리를 마구 헝클며 있는 힘껏 그를 째려보았다.
“쉿. 오케이?”
“…….”
최지혁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까딱였고, 나는 그대로 준우와 최지혁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최지혁의 말대로 분수대 밑에 쓰러져 있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존재는 푸른색의 투명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귀는 뾰족했고, 깨끗한 피부에는 드문드문 기이한 문양으로 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봐요. 저기요.”
나는 대충 리온에게 손짓하며 말을 걸었다.
리온은 내 신호를 알아들은 모양인지 촉수로 쓰러져 있는 ‘존재’를 툭툭 건드렸다.
“준우야, 혹시 힐 조금만 넣어 줄 수 있어?”
“응!”
최지혁은 혹시 모르니 들고 있는 무기를 더 단단히 쥐었다.
준우의 스킬이 발동되기가 무섭게 눈을 감고 쓰러져 있던 ‘존재’가 번쩍 눈을 떴다.
푸른 눈꺼풀 아래 가려져 있던 샛노란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찰나의 시선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