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하긴 뭘 조용히 해.”
“마스터, 큰일 났다. 지혁지혁 개빡쳤다.”
리온은 그저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깔깔깔 웃어댔다.
나는 슬그머니 최지혁 쪽으로 다가가서 웃으며 말했다.
“나 걱정했어요? 응?”
“지금 나랑 장난해? 한 시간 전까지 나한테 무모한 짓 하지 말라고 네가 말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나는 빠르게 에르켈의 품에 숨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에이, 그거랑 이거랑 같나.”
“형, 유라야. 지금 그게 중요한 거 아니니까 언성은 사무실 가서 높이자!”
준우가 최지혁의 팔을 포박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강준우, 이거 놔.”
“아오, 형 어차피 놔도 아무것도 못 할 거잖아요.”
“오, 준우준우 정곡을 찔렀는걸?”
리온의 말이 진짜인지 최지혁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내로남불이야. 채유라.”
“아니, 몬스터 시선 분산 안 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최지혁 네가 아이템 쓸 거 아니잖아. 안 그래요?”
나는 아래를 보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바닷속 상황은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에르켈의 품에서 최지혁 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팔을 붙잡고 뾰루퉁해 있는 최지혁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난 너랑 다르게 안 다쳤잖아요.”
“넌 나랑 다르게 한 대 맞으면 끝이라고 몇 번 말해.”
“안 다쳤다니까? 에르켈 보호 스킬도 나한테 몰빵으로 둘렀는데?”
“쟬 어떻게 믿는데? 아무리 서번트라고 해도 너한테 완전히 복종 안 하는 거 지나가는 개도 알아.”
최지혁의 말에 리온이 정정했다.
“지나가는 똥강아지는 그런 거 모른다, 지혁지혁.”
“리온, 조용히 해!”
준우가 리온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나는 급하게 에르켈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 얘는 애 면전에다 두고 뭐라는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르켈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알았어요. 내가 미안해요. 다음부터 상의할게요. 마음이 급해서 못 했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뭐가 또 불만인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 갑자기 우울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술까지 꾹 깨물고, 주먹도 꽉 쥐었다. 그리고 겨우 한마디 했다.
“왜 네가 사과를 해?”
그에 준우가 최지혁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형, 시비를 걸면 어떡해요.”
준우의 말이 맞았다. 최지혁의 억양은 충분히 시비조였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아니, 네가 화났으니까 사과를 하죠.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뭘 잘못했는데?”
준우는 그냥 얌전히 허탈하게 웃으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 방금 말했잖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니까?”
“그러니까 왜 그게 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냐고!”
나는 생각했다.
‘쟤가 나랑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 거지?’
일단 최지혁이 딴죽을 건 포인트는 사과였다.
그러니까 쟤는 지금 내가 사과할 일이 아닌데 사과를 해서 화가 난 걸까?
포인트 한번 기깔나게 이상했다.
뭐 어쩌라는 거야?
“인간 남자 최지혁. 주군께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해라.”
에르켈의 말에 최지혁이 뜨끔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에르켈이 이렇게 나서서 일침한 건 처음이었다.
“주군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다, 인간 남자 최지혁.”
“저기, 에르켈, 최지혁이 인간 남자인 거 너도 나도 다 아니까 호칭 좀 정정해주면 안 될까?”
“지혁지혁이라 부르면 인간 남자 최지혁이 발작하지 않나?”
맞는 말이라 일단 입을 닫았다. 최지혁은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에르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준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공중에 매달려서 이런 영양가 없는 다툼 하는 거 굉장히 멋없어 보이는 건 알죠, 다들?”
실제로 모양새가 굉장히 웃겼다.
“지금 카메라 벌써 이쪽으로 날아왔거든요?”
준우가 저 멀리 해안에 처박아 뒀던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열심히 수면 위로 나온 우리를 찍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멀리 있어서 음성은 안 들어가긴 했을 것 같았다.
“리온 촉수에 매달려서 왁왁대는 거 다 찍혔을 것 같은데.”
준우는 정말 걱정이라는 듯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유라야. 이미지 관리 다 망한 것 같아.”
나는 최지혁을 째려보았다. 우씨, 이게 다 쟤 때문이다!
의미 모를 헛소리를 해서 내가 말려든 거 아니야!
아직도 이해가 안 갔다. 아니,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에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하냐니.
뭔 소리야, 그게!
“됐고, 다시 들어가. 최지혁 너는 이따가 내 호텔방에서 단둘이 봐요.”
“저……. 유라야. 네 호텔방에서 단둘이 보면 큰일 나지 않을까. 파파라치 붙을 텐데?”
준우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 말을 잘못했다.
최지혁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쯧쯧. 준우준우, 봐라. 마스터랑 지혁지혁이랑 같이 다니는 이유가 있다니까? 둘 다 뇌에 아주 똑같은,”
“시끄럽다, 악마.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아오, 저 비둘기가 사사건건이 태클이야! 이게 어떻게 모욕이냐? 사실 적시지.”
“뭐? 비둘기? 박쥐 주제에 감히 나의 날개를 욕보이다니!”
“뭐? 박쥐? 하! 박쥐라 했냐!”
리온과 에르켈의 날개가 마구 퍼덕였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악마, 너에게는 신분도 없지 않은가? 멍청하긴.”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주군이 보는 드라마에서 봤다.”
“아오! 그럼 기자한테 제보할 거다!”
“해라. 악마인 네게 더 유리할지 천사인 내게 더 유리할지는 그때 가서 보도록 하지.”
나는 결국 에르켈과 리온의 뒷덜미를 쥐고 명령했다.
“일동 주둥이 닫고 바닷속으로.”
“…….”
“…….”
***
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직 죽지 않은 몬스터 열댓이 우리 쪽으로 돌진했다.
바다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고, 알 수 없이 뿌연 액체가 이곳저곳 섞이지 않고 머물러 있는 걸 보면 시체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 ‘제기랄, 꺼져!’
최지혁은 있는 힘껏 창을 휘둘러 줄을 지어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쑤셔 넣었다.
콰가가각! 기다란 창이 몬스터 4마리의 복부를 한 번에 꿰었다.
- ‘리온! 잡아!’
- ‘아, 왜 나는 잡는 것밖에 안 하냐!’
리온이 툴툴대며 최지혁의 등 쪽으로 돌진하는 몬스터 두 마리를 꽉 붙들었다.
그러자 최지혁은 뒤를 홱 돌아서 양손에 새로운 창 두 자루를 동시에 들고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 ‘에르켈, 너도 잡아.’
- ‘알겠다, 주군.’
에르켈의 검신이 새하얗게 빛나자, 몬스터들의 주변으로 빛으로 된 사슬이 철컹거리며 놈들의 몸을 휘어 감았다.
최지혁은 아무 말 없이 공격만 했다.
숨통이 꽤 질겨서 완전히 죽여버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준우가 기력회복 스킬을 열심히 읊기 시작했고, 나는 준우의 입에 마력 포션을 물려주었다.
- ‘근데 아무리 최지혁이 딜러라고 해도 몬스터들이 왜 최지혁만 공격하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준우에게 물었고, 준우도 아무 생각 없이 내게 말했다.
- ‘아까 형이 포인트로 뭐 사는 것 같던데?’
나는 침묵했다. 최지혁이 몬스터 잡고 던전 클리어해서 얻은 포인트야,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을 듯해서 내가 관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로 아이템을 샀다?
안 봐도 뻔했다. 탱커용 몬스터 도발 아이템이겠지.
얼씨구, 그런 주제에 나한테 성질을 내셨겠다? 기도 안 찬다, 정말.
- ‘리온, 에르켈. 남은 세 마리 너희들이 죽여.’
- ‘아싸!’
내 말에 최지혁이 당황한 듯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 ‘언제까지 혼자 몬스터 독점할 거예요? 적당히 하고 와요.’
내 말에 최지혁은 잠시 벙쪄있다가 쭈뼛쭈뼛 내 옆으로 와 얌전히 섰다.
에르켈과 리온은 서로 한 대씩 때리려고 열심히 스킬을 펼쳤다.
나름 호흡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감히 미개한 생물 따위가 이 대악마 리카르디온 님께 반항하다니. 죽어라!’
- ‘쓸데없는 행동 하지 말고 깔끔하게 죽여라, 악마.’
- ‘야, 시비 걸지 말지?’
리온은 놈들의 목을 촉수로 졸라맸고, 에르켈이 새하얀 검신으로 몬스터의 머리를 푹푹 찔렀다.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말이다.
- ‘야! 킬은 내 거야!’
- ‘현재 내 레벨은 박쥐 너보다 한참 낮다. 주군은 내 레벨을 먼저 올리는 것이 맞다 판단하였던 것 같은데, 주군에게 반항하는 것인가?’
- ‘말 안 통하는 비둘기 새끼.’
- ‘지능은 박쥐가 더 낮지.’
- ‘뭔 소리야, 새대가리가 더 빡대가리지.’
- ‘입 닫고 주군의 명령이나 따라라, 박쥐.’
- ‘아오, 저게! 이씨!’
리온은 열 받은 얼굴로 위로 홱 솟아오르더니 에르켈이 죽이려 했던 마지막 몬스터의 심장을 기어코 파내고 나서야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헹! 막타는 내가 쳤지롱, 망할 비둘기…….’
그리고 그때였다.
구오오오! 소리와 함께 다시금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 사이로 아까 그 고래같이 생긴 거대 생물이 입을 쩍 벌렸다.
- ‘피해!’
최지혁이 나와 준우의 손을 잡고 반대편으로 미친 듯이 헤엄쳤다.
고래같이 생긴 몬스터는 리온이 마지막 몬스터를 죽이기가 무섭게 미친 속도로 시체들을 제 입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제기랄! 리온, 에르켈! 강준우 잡고 헤엄쳐!’
최지혁은 준우를 에르켈과 리온에게 넘기고 나를 꽉 안아 들었다.
- ‘가만히 있어.’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바람 속성의 검을 꺼내 들고 그대로 검격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