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3/145)

“유라야, 그게 무슨 소리야? 물에 무조건 들어갈 상황이 생긴다고?”

“그게 아니고서야 친절하게 수중호흡 아이템을 3개씩이나 줄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아니면 어떡해?”

“아니면 아닌 거지, 뭐.”

준우는 내 단순 명료한 답변에 살짝 얼이 빠진 듯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니면 아니지, 뭐.”

최지혁은 착잡한 얼굴로 계속해서 선원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왜요, 뭐 걸리는 거 있어?”

“아니.”

대답과는 다르게 영 찝찝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형. 이거 카메라랑 마이크 방수예요?”

“몰라.”

준우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건드려보며 기능을 확인했다.

“준우야. 쓸데없는 거 확인하지 말고 선실이나 살펴보자.”

“어? 그래!”

“리온. 다시 작아지도록 해.”

“……내 위엄 다 떨어졌다, 마스터.”

리온은 입을 삐쭉 내밀며 다시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주군의 말에 토 달지 마라, 악마.”

“예예, 충성심이 아주 잘나셨어요.”

리온의 말에 에르켈이 열 받았는지 내 발밑에 빙빙 돌고 있는 빛으로 된 하얀 원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내 머리 위에 있는 리온을 집어 준우의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둘 다 조용히 해, 좀.”

“마스터는 나만 미워해!”

***

초조했다. 이렇게 조마조마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몬스터가 맵에 바로바로 표시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제야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당연히 우리 파티에는 탱커가 없었기 때문에 유일한 딜러이자 그나마 제일 튼튼한 최지혁이 공격이란 공격은 다 받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굉장히 걱정이 되었다.

“최지혁, 괜찮아? 아씨, 나쁜 새끼들. 얼굴에 상처 났잖아!”

“유라야, 형이 방금 열 마리나 죽였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 아닐까?”

“양호하긴 뭐가 양호해! 내가 다치지 말라고 몇 번 말했어요.”

나는 최지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피며 우악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준우가 독으로 다 녹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걸 왜 굳이 확인사살 하겠다고 근처에 가서 한 대 맞고 오냐고!”

“어차피 힐 몇 번이면 나아, 유라야. 나 아직 마력 많이 남았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까 못 봤어? 잘못하면 눈 다칠 뻔했다고!”

회귀 전 최지혁과 지금의 최지혁은 꽤 많이 달라졌다.

사실 지금도 괜히 뻘짓하다가 다친 게 아니고, 선원의 시체에서 발견한 마나석을 얻으려다가 다친 거였다.

안 그래도 되는데 유독 아이템 획득에 집착했다.

준우는 격양된 나를 말리려 옆에서 애썼고, 최지혁은 그냥 가만히 내게 양 뺨을 붙잡힌 채 나를 쳐다보았다.

“뭘 빤히 보고 있어요. 말 안 해요? 할 말 없어?”

“아직 에르켈 레벨 낮잖아. 마나석은 있을 때 먹어둬야 해. 잘못한 거 없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준우의 머리 위에 있던 리온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지혁지혁은 마스터가 기껏 걱정해 줬는데 기회를 발로 차냐. 바보냐?”

“…….”

굳이 리온의 말에 부정하지는 않았다. 최지혁이 걱정돼서 화낸 게 맞으니까.

그런데 기회는 뭔 기회?

나는 어이가 없어 리온을 쳐다보고 다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의 얼굴은 시뻘게져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형, 형!”

준우가 급하게 최지혁을 흔들었고, 그제야 굳어있던 최지혁의 목이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저거! 저거! 의심스럽지 않나요!”

준우는 티 나게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아무 곳이나 가리켰다.

그리고 가리킨 아무 곳에는 진짜 뭔가 있었다.

부서진 벽 아래, 의도적으로 감춰놓은 듯한 손바닥만 한 조각상 하나가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준우는 빠르게 최지혁에게 힐을 걸었고, 최지혁은 준우가 가리킨 쪽으로 다가가 검으로 조각상을 덮고 있는 천을 휙 걷었다.

그러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조각상 5개가 보였다.

물에 반쯤 잠겨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안 보였다.

“리온, 저거 들어봐.”

내 말에 리온이 촉수로 조각상 5개를 들고 위로 올렸다.

기괴하게 생긴 사람 모양 조각상이었다.

여자 2명에 남자 3명.

조각상 표면에는 이끼가 껴있었고, 재질은 그냥 평범한 돌같이 생겼다.

조금 특이한 점은 전부 상의는 벗고 있고, 등 쪽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

핸드폰 화면에 문양을 담아봤지만 특별히 바뀌는 건 없었다.

글자가 아닌가? 아니면 문자에 뜻이 없다는 건가? 조합해야 하나?

“중요한 물건 같긴 한데…….”

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물에 잠긴 선실을 보았다.

안에 해초가 많이 자랐는지 바닥이 시커멨다.

“우리 바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내 말에 최지혁과 준우가 반사적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유라야, 우리는 숲속으로 안 들어가?”

준우가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 숲속에 들어간다고 방법이 나올까? 리온, 에르켈, 숲 안에 뭐 특이한 거 있었어? 인간의 흔적이라든가, 뭐 그런 거.”

내 말에 머리 위에 있는 에르켈이 대답했다.

“해초 숲 한가운데에 사당처럼 보이는 건물 하나만 있었다. 주군.”

에르켈의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사당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조각상 가지고?”

나는 핸드폰을 요리조리 만져보며 말했다.

“보니까 아이템으로 인식은 안 되는 것 같은데. 일단 여기 다 둘러보고 가면 안 돼요? 어차피 우리는 날아서 가면 되잖아요. 비행형 몬스터도 없는 것 같고.”

“채유라. 여기를 들어가게?”

최지혁이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잠긴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지 말까?”

최지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해초도 많이 껴있고,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의외였다.

“일단 선박 밖으로 나가서 선체 안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입구를 찾아야겠어요. 저쪽은 앞이 안 보여서 좀 위험할 것 같으니까.”

나는 최지혁과 준우의 손목을 잡고 선박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해변에 우리가 안 보이게 돌려놓은 후 말했다.

“어,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이제 바다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여기다가 잠시 카메라 좀 두고 갈게요.”

“유라야. 진짜 가게?”

“응. 한 번만 쓱 보고 가자.”

아무래도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되긴 했다.

물론 그 전에 아이템들은 빵빵하게 들고 들어가야 했다.

“일단 최지혁 무기.”

“…….”

최지혁의 머리 위로 작살류의 창 무기가 10개 정도 쏟아졌다.

“준우 너는 방어구.”

그리고 준우의 머리 위로 액세서리들이 쏟아졌다.

“최지혁 너도 방어구.”

“…….”

수중에서 저항력을 최소로 감소시켜주는 아이템들이었다. 좀 가격이 센 편이었다. 다 합해서 한 30만 원 정도?

그래도 이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나도 주섬주섬 액세서리류를 장착했다.

[ITEM 히포캄푸스의 지느러미 (S)]

- 고대 그리스의 전설 속 동물, 히포캄푸스의 지느러미입니다.

- 효과: 장착 시 수중에서 이동이 원활해지며 이동속도가 5배 상승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