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45)

사실 실시간 브로드캐스트는 조금 악수이긴 했다.

일본 측에서 방영권을 가지고 촬영해 송출하자니 본인들 유리한 쪽으로만 촬영할까 봐 결국 각국의 주요방송사에서 방영권을 다 따갔다.

그래서 진짜 진짜 곤란하게 됐다.

“우리 쪽 카메라를 그냥 부숴버릴까요? 나 아이템 마음대로 못 쓰는 거 별로인데.”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게 더 의심스러워.”

“아니면 형, 몬스터한테 일부러 촬영장비 망가트리게 하면 어때요?”

“S급 게이트 안 몬스터야. 여태까지 상대한 놈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최지혁은 걱정이 태산인 듯 나와 준우를 보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혼자가 좋다! 당장 집에 가라!’라고 했을 테지만 참는 걸 보니 생각이 좀 바뀐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며 최지혁의 소매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아이템도 미리미리 빵빵하게 사놨고, 에르켈이랑 리온도 레벨 많이 올랐어요.”

“맞아요. 형. 그리고 유라가 체력이 약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저희 셋 중에 제일 세지 않아요?”

“도대체 어떤 면에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건데?”

최지혁이 준우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붙였고, 준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제 무기도 유라가 사준 거고 형 무기도 유라가 사준 거고, 옷도 유라가 사준 거고 또 스킬도 유라가 사준 거고…….”

“일단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넹.”

아무튼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어떻게 아이템을 몰래 쓰느냐였다.

“나라에서 통역기 지원 안 해주는 대신 우리한테 아이템 몰빵해줬다고 말하면 안 되나?”

내가 최지혁에게 묻자 최지혁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럼 정부에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걔들은 지원 안 해줬는데.”

“지성준이 개별적으로 줬다고……?”

“그럼 지성준한테는.”

최지혁의 말에 나는 대충 주먹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더러 지금 그 자식 때려눕히라고?”

“에이. 그렇게 과격한 방법은 좀 지양하고. 뭐, 남자들끼리 몸으로 대화 잘 하니까 그냥 가벼운?”

“유라야, 몸의 대화라니 말이 좀 이상해.”

내 말에 준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표현이 좀 그런가?

“어차피 지금쯤이면 다들 성좌 계약 할 때 됐어. 만약에라도 걸려서 물고 늘어지면 성좌 핑계 대.”

최지혁이 흘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음, 최지혁의 성좌가 나니까 일단 구라는 아니었다.

“그럼 아이템 막 써요? 아, 그리고 나도 공격해도 되는 거예요?”

내 물음에 준우가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물었다.

“공격? 유라야. 너 공격도 가능해?”

그에 최지혁이 준우와 내 사이를 가로막고 골 때린다는 듯 말했다.

“제발 하나씩만 물어보고 채유라 너는 공격하지 말고 뒤에 있으라고!”

“아, 왜! 너 또 던전 안에 들어가면 나 신경 쓰느라 또 깨질 거잖아요!”

“맞아. 형은 좀 심해요.”

“…….”

최지혁은 대화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살짝 기가 빨린 듯한 얼굴로 소파에 축 늘어져서 허탈하게 웃었다.

“미치겠네.”

“미치지 말고, 이번에는 나도 공격할래요. 나 완전 초필살기 있는데. 뭔지 궁금하지 않아요?”

“필살……. 그래 필살기…….”

사실 이번에 S급 게이트에 들어가면 ‘코인폭탄’을 쓸 예정이다. 집에서 다 확인해 봤다.

핸드폰의 외형을 총으로 변형하면 저격 위치도 자동으로 잡히고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S급이니까 최지혁이 나를 보호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번 목표는 보스 잡고 게이트 닫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사냥할 거예요. 내가 엄호할게!”

내 말에 최지혁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참, 저렇게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드러나기도 힘든데.

“걱정 너만 되는 거 아니니까, 티 그만 내고. 그리고 이거 통보예요. 알겠어요?”

“…….”

최지혁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바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 준우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봐요, 형. 유라가 제일 세다니까요?”

“……조용히 안 하냐?”

“그렇지, 유라야?”

“아마?”

“…….”

***

“마스터. 도대체 며칠을 가둬 놓은 거냐. 계절이 바뀌었다.”

“겨우 일주일 가지고 계절 드립이야.”

최지혁이 특유의 무서운 얼굴로 리온을 쳐다보며 말했고, 리온은 신경도 안 쓰고 내게 투덜거렸다.

“어차피 역소환돼도 상관은 없는데 마스터, 조금 서운하다.”

“명령에 따라라, 악마. 말이 많다.”

“흥, 마스터와 유대감 따위 없는 천사는 이 감정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지!”

“유대감? 감히 악마 따위가 내게 유대감을 논한다?”

“하! 뭐, 내가 유대감 논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냐, 천사!”

나는 일단 리온의 입에 사과를 집어넣어 주었다.

“웁, 마스텋! 뭐 하는 거냐!”

“정신 사나워. 조용히 좀 해봐.”

사실 평소처럼 리온이나 에르켈을 소환해 놓고 있어도 나는 상관이 없었다.

최지혁이 문제였지.

또 기절하면 어떡하냐고 왁왁대서 일단 소환은 게이트 들어갈 때만 하는 걸로 합의 보고 있었다.

“일단 먼저 알려줄 게 있어.”

나는 사과를 와작거리는 리온을 한번 보고 불만스러운 표정의 에르켈을 보며 말했다.

“첫째. 다른 사람이 말 걸면 절대 대답하지 않기.”

“엥? 왜!”

리온이 딱 봐도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주군의 명을 따라라, 악마.”

“네가 무슨 조선시대 대장군이냐? 아, 맞다. 너는 마스터가 소환 안 해두고 살아서 이 세계에 대해 모르지?”

리온은 어느새 날개를 펼치고 사과를 와작와작 씹으며 마음껏 에르켈을 약 올렸다.

물론 에르켈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로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명대로 하겠다.”

“음, 명 아니고 부탁이라고 해줄래? 명령은 조금 부담스럽네.”

“알겠다, 주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리온의 뒷덜미를 잡아채 바닥으로 끌어 내리면서 리온의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아오, 지금 너한테 하는 말이잖아. 뭔 남 일 보듯이 굴고 있어! 안 내려와?”

“…….”

그에 최지혁이 마음껏 비웃으며 말했다.

“꼴좋네.”

“왁! 지혁지혁 복수할 거다! 처웃지 마라!”

그에 나는 옆에 있던 바나나를 껍질도 안 까고 리온의 입에 고이 넣어 주었다.

“입 열지 말라니까?”

“퉷! 떫어! 마스터 진짜 나한테 너무해!”

리온의 말에 준우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오, 사실 잘 몰랐는데 진짜 매를 버는 타입이네.”

“……준우준우 마스터 옆에 있다가 드디어 각성했냐? 갑자기 왜 공격해?”

“엥? 아니? 각성은 진작에 했는데?”

“…….”

리온이 드물게 입을 다물었다.

“아오, 둘째 아직도 말 못 했네. 둘째도 있어, 잘 들어.”

“듣고 있다, 주군.”

“마스터는 나만 미워해.”

“둘. 째.”

“…….”

나는 자꾸 딴소리하는 리온을 째려보며 말했다.

“나한테도 평소처럼 대하지 않기. 에르켈처럼 행동해, 리온.”

내 말에 리온이 진짜 충격먹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마스터? 제정신이냐?”

그에 최지혁이 리온의 정강이를 발로 건드리며 말했다.

“말 똑바로 안 해?”

“악! 아프다, 지혁지혁! 왜 때리냐!”

리온은 진짜 억울하다는 듯 내게 와다다 말을 뱉었다.

“내가 왜 천사를 따라 해야 하는데? 마스터? 내가 뭐 잘못했나? 아니잖아! 싫어! 내가 왜 그딴 격 떨어지는 짓을! 으악!”

그때였다. 에르켈이 있는 힘껏 리온의 머리채를 당기며 말했다.

“주군의 명에 반박하는 건가?”

“제기랄, 너는 충성심도 없는 주제에 왜 충성심 오지는 척하냐고! 이거 안 놔!”

“결투면 친히 받아들이지. 유감이군.”

“그래, 한판 붙어!”

성질이 확 올라왔다. 아, 이 비인간들을 어쩌면 좋지.

“……날개 접어, 둘 다.”

“마스터, 이 닭이 먼저 건드렸다!”

“박쥐 주제에 감히!”

“뭐? 박쥐? 나의 고귀한 날개에 지금 박쥐!”

결국 나는 크게 점프하며 둘의 귓바퀴를 있는 힘껏 잡았다.

“아아악! 마스터, 아프다!”

“주, 주군!”

“둘 다 닥치고 따라!”

내가 있는 힘껏 소리치자 최지혁은 왜 본인이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게서 한 걸음 물러나 슬쩍 준우 뒤로 숨었다.

준우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리온과 에르켈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웬만하면 이미지 관리를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말을, 하면, 들으라고, 이 악마야!”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그럼 내가 가만히 있던 에르켈한테 뭐라 그러리? 이미지 관리 해달라고 하잖아! 그 공포의 조동아리 작작 놀리라고!”

“내 조동아리가 왜 공포인데! 마스터 너무해!”

어이가 없었다. 리온은 정말 서운하다는 듯 쭈그려 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에 옆에 있던 에르켈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악마의 눈물이다. 주군.”

“……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천사.”

리온은 고개를 퍼뜩 들고 에르켈을 째려보았다.

“나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간사한 악마.”

“마스터. 딱 말해. 나야, 쟤야?”

안 되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에게로 다가가 그의 등짝을 밀어 리온의 앞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했다.

“최지혁. 파이팅!”

“……뭐?”

최지혁은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며 나를 쳐다보았고, 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리온은 형이 잘 잡지. 형, 파이팅!”

“야, 지금 뭐라는…….”

최지혁은 그제야 내 뜻을 이해했는지,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10분 안에 끝내고 갈게.”

“10분 있다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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