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했다.
최지혁은 이런 자리를 많이 와봐서 그런 건지 몰라도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나와 준우는 좀 달랐다. 아무래도 각국에서 못해도 A~S급은 되는 헌터들이 집결해서인지 다들 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표정도 다들 묘하게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우리야, 최지혁도 그렇고 지성준도 그렇고 어떤 던전이 열릴지, 공략법은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미친 듯이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아마 그럴 거다.
“뭐야. 왜 통역사가 우리밖에 없어요?”
준우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고, 그에 지성준이 짜증 난다는 듯 대답했다.
“나라에서 통역 아이템 마련해줬나 보지, 뭐.”
“저희는 없어요?”
준우가 조금 당황한 눈치로 지성준에게 물었다.
그리고 지성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통역사 쓰면 되는데 그 비싼 걸 우리나라에서 해주겠냐?”
“지성준 씨. 왜 반말해요?”
내 말에 지성준이 잠깐 얼어있다가 표정을 확 구기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 걸 참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욕을 참는 것 같았다.
메롱이다.
“후, 통역사분 계시니까, 우리는 통역사분 쓰면 되고, 어차피 다른 나라 인간들하고는 의사소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채유라 헌터님.”
“오, 그런데 내가 안 물어보고 준우가 물어봤는데.”
“……지금 나랑 장난,”
지성준이 발끈하자 최지혁이 살벌한 얼굴로 지성준을 쳐다보았다.
“계속 그딴 식으로 나오면 다시 한국 가고.”
“…….”
나는 최지혁의 뒤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하여간 지성준 저 인간은 마음에 안 든다.
“지 팀장님, 헌터님들, 이제 회의 들어가셔야 합니다.”
옆에 계시던 함께 온 공무원분들이 분주하게 웅성거렸고, 지성준은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금방 표정을 갈무리하고 안내해주시는 분을 따라 앞으로 향했다.
“들어가면 일단 닥치고 있으세요. 다들. 알겠습니까?”
“모셔온 주제에 닥쳐라?”
최지혁의 말에 지성준이 진짜 진짜 짜증 난다는 듯 이를 악물고 빈정대는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지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신기했다. 나나 준우한테는 찍소리도 못 하는데.
꼭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거나 강한 인간이 누르려고 들면 이 악물고 개긴단 말이지.
이게 바로 약약강강인가?
하여간 성격 참 특이하다.
“왜 웃어, 채유라.”
“……엥? 안 웃었는데?”
최지혁의 말에 난 황급하게 표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준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는 산뜻한 얼굴로 최지혁에게 말했다.
“뭐, 웃을 수도 있죠. 빨리 가요, 우리.”
뭐야. 왜 저렇게 홀가분하고 상쾌한 표정이야? 괜히 준우의 반응에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쟤 왜 저래?
***
생각보다 회의실은 싸늘하고 살벌했다.
‘중국하고 우리나라는 게이트 터지는 순간 위험해지니까 강제 참여나 다름없지만 다른 나라는 S급 던전 아이템 때문에 오는 거나 다름없어. 아, 물론 멋있는 척도 하고.’
최지혁이 이렇게 말했었다.
실제로 그런 이유가 맞는지 서로 묘하게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서방 국가 말이다.
중국은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이곳에 참석한 나라 중에 S급 각성자가 가장 많았다.
일본은 뭐, 본인들 나라이니 있는 S급 각성자 싹 긁어서 왔고.
미국은 본인들이 무슨 세계의 경찰국이라느니 어쩌느니 해서 또 S급 한 명이 껴있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는 거의 A급 각성자들로 팀이 이루어져 있어서 S급들이 있는 저 3개국이 주체가 되어 회의가 흘러가고 있었다.
“왜 지 팀장님은 토벌에 참여 안 하시냐 묻습니다.”
무려 4개국어나 하시는 통역사분이 재빠르게 들어오는 질문들을 통역해 주셨다.
묘하게 질문에 우리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었다.
그에 지성준은 앞에 놓인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길드를 참여시켰는데 저까지 나가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엄청나게 당당했다. 그런 지성준의 태도를 보고 다른 헌터들이 표정을 구겼다.
아무래도 다들 통역 아이템을 구매해서 사용 중인데 우리나라만 안 쓰니까 하찮아 보이나 보다.
그래서 몰래 최지혁에게 속삭였다.
“혹시 몰라서 통역 아이템 미리 봐뒀는데 그냥 지금 쓸까요?”
내 말에 최지혁이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안 돼. 지금 관계자들 다 와 있잖아. 통역 아이템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라 지원 없이 개인이 산 거 들키면 일 커져.”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자존심 상했다.
지원 안 해주는 건 이해한다. 지성준과 최지혁이 해당 S급 게이트 안 던전이 어떤 형식으로 열리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세금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리가 들어갈 던전은 미로형 던전이고, 빠져나가는 루트는 지성준이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그 게이트를 지성준이 들어갔다가 나왔으니까.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에 우리를 빵빵하게 지원할 수 있는 자금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이트 사태 때문에 전 세계 경기도 불황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내부 상황을 잘 막고 있지만,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보면…….
아무튼 정리하자면 개당 현찰로 100억 가까이 하는 S급 아이템 여러 개를 지원해 줄 여유는 없다 이 얘기다.
“게다가 그렇게 따지면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성준이 영국과 프랑스 쪽을 쓰윽 쳐다보며 일본 쪽 대표에게 말했다.
“왜 저희한테만 그러시는지?”
그에 일본 쪽 대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했다.
아니, 그런데 통역 아이템이면 알아듣는 거랑 전달이랑 둘 다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일방통행인데?
알 수가 없다, 참.
“한국은 주변국으로서 상황이 다르지 않냐 묻습니다.”
“주변국이라 원래 안 와도 되는 저까지 와 있는 거 아닙니까. 도와주러 왔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뭐, 대한민국과 원만한 외교 관계를 원하지 않는 걸로 간주하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
그에 준우가 좀 찝찝한 표정으로 최지혁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거 저런 식으로 나가도 돼요? 중요한 회담 아니에요?”
그에 최지혁이 짜증 난다는 듯 지성준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뭐 어쩔 거야. 당장 S급 던전 터졌는데 한국 빠지면 쟤들도 곤란해.”
그리고는 세상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패드를 만지작거리며 한 마디 더 뱉었다.
“도와주러 왔는데 저딴 식으로 꼽주면 열 받지.”
맞다, 맞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하게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하긴, 그건 그래요?”
준우는 최지혁을 따라 심드렁하게 회견장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조금 길어진 회의에 지루해진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 어떤 형식의 게이트가 열릴지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고, 대비책 회의라고 해봤자, 할 게 없었다.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개별 플레이다.
S급 게이트 안에는 보통 난이도에 걸맞은 S급 아이템이 존재한다. 아마 다들 그거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다.
우리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아무 생각 없을걸?
아, 물론 생각 말고 목적은 있었다.
바로, S급 게이트의 보스몬스터를 잡아, 게이트가 터져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 최지혁의 등급을 S급으로 올리는 것.
지금 최지혁의 등급은 A급 한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S급까지 올라가려면 S급 게이트 몬스터 한 마리 정도는 잡아줘야 했다.
A급 던전의 몬스터로는 한계가 있었다.
“와중에 중국하고 미국은 쌍방향 통역기인가 봐요. 통역 안 해도 무슨 소리인지 들리네요. 신기하다.”
준우가 순수하게 감탄하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 뭐라뭐라 하는 걸 집중해 들었다.
사실 나도 신기했다.
“저 팀 통역기가 조금 더 비싼가 봐.”
내 말에 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게. 확실히 인구가 많아서 뭐가 다른가?”
그에 최지혁이 준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회의 내용이나 들어.”
“형. 형이 회의 내용 쓸모없다고 한 시간 전에 말했는데요.”
“…….”
사실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았다.
“S급 게이트이다 보니, 통신장비 각국에 하나씩 착용하고, 전략팀에서 전략 세운 대로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사실 각국의 군 사령탑에서 전략을 세운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지성준이 중간에서 어떻게 간섭했는지 몰라도 잘 자른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효율 면에서 보면 일본 쪽에서 게이트 파훼 플랜을 짜오고 그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게 좋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일 시 외교적으로 모양새가 매우 이상해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민간인들도 알 권리는 있지만 S급 게이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공포감만 조성할 겁니다!]”
프랑스 측에서 게이트 방송 송출 건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그에 중국 쪽에서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일본 측 결정이지 않습니까? 원하지 않다면 송출하지 않으면 될 텐데요.]”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됩니까? 일본에서 방영되는 순간 인터넷으로 노출이 되지 않습니까.]”
그에 영국 측에서 반발했고, 미국 측에서 대답했다.
“[어차피 인터넷에 던전 안의 실체는 유명 사이트에 업로드된 상태입니다. 민간인들이라고 던전 안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민간인들은 헌터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너무 이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에 준우가 옆에서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게 미국 의견은 아닌 것 같지?”
사실 저 말을 한 건 미국 측 대표가 아닌 바이퍼 길드 대표였다.
바이퍼 길드의 S급 각성자이자 광범위 화속성 마술사 아이삭 켐벨.
“그런 것 같아.”
뉴욕 최초의 멸망 때 각성해서 크게 활약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세계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내가 알 정도면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다.
“근데 되게 흑화 직전 빌런 같은 대사다. 그렇지?”
내가 중얼대자 옆에 있던 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악당 같은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네. 신기하다.”
그에 옆에 있던 지성준이 대답했다.
“난 니네 대화 맥락이 더 궁금하네요. 갑자기 빌런이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