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145)

S급 게이트가 열리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굉장히 바빠졌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게이트 안 던전을 어떻게 돌파할지 상의해 봐야 했다.

단독으로 움직이고 싶어도 이건 나라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와, 나 이런 데 처음 와봐요.”

나는 순전히 놀라운 마음으로 최지혁에게 말했고, 그 옆에서 지성준이 나를 대놓고 비웃었다.

“하! 최지혁 가짜 여자친구. 벌써부터 이런 걸로 놀라고 그러면 안 될 텐데.”

나와 최지혁의 열애설 정정 보도기사가 난 직후부터 매우 심기가 안 좋은 모양이었다.

뭔가 본인이 아는 사실과 다르게 기사가 나니까 속은 기분이라도 드는 건가? 아니면 최지혁이 엿 먹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잘 넘어가서 억울한 건가.

아마 후자일 것 같았다.

나는 최지혁이 발끈하기 전에 대놓고 표정을 구기며 대답해 주었다.

“이응쌍지읒.”

“…….”

지성준은 내 태도에 적지 않게 충격받았는지 할 말을 삼켰고, 나는 태연하게 긴장한 준우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유라야. 나도 긴장돼서 토할 것 같…….”

“얘는 던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 애가 긴장하는 포인트가 이상하단 말이야. 안 그래요, 최지혁?”

“토할 거면 화장실 가서 토해.”

참, 말 한번 기깔나게 한다.

“형, 그 정도는 아니에요.”

다행히 준우도 이제 최지혁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정색하고 멀쩡하게 돌아왔다.

“엄살이냐?”

“장난이죠.”

“…….”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 있을 S급 게이트에 대해서 지성준이 이미 상부에 말을 잘 해 놓은 모양이다.

참 안 그럴 것같이 생겨서 일 열심히 한다.

이 부분은 최지혁도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알 수 없는 밀실로 초대되었다.

비밀기지인가? 마냥 신기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기지에……!

지성준은 친절하게 회의실까지 우리를 데려왔고, 그곳에는 나이 지긋하신 분 몇 명이 미리 앉아 있었다.

“가온입니다. 인사하죠. 대통령님이십니다.”

어쩐지 5초 정도 친절한 척하더라. 대통령을 만날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도착할 줄 알았나 본데 아닌가 보다.

역시, 등급 높은 헌터는 귀하다 이건가?

“아, 그리 격식 차릴 것 있나. 앉게.”

화면에서만 보던 이 세계의 대통령이었다.

음, 나는 어차피 내 세계가 아니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준우는 아니었나 보다.

손이 달달달 떨리는 게 보였다.

나는 최지혁의 팔을 툭툭 쳤고, 최지혁은 ‘뭐.’라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다가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알아들은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준우의 등을 살짝 쓰다듬고는 고개를 까딱 숙였다.

“최지혁이라고 합니다.”

“채유라입니다.”

“강준우입니다!”

그리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어차피 지성준과 최지혁은 서로 정보 공유가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에 정보를 크게 풀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냥 간단하게 일본 쪽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정도만 설명이 완료된 상태였다.

“간단합니다. 이후 있을 레이드 참여국과 상의 후, 공략해 나갈 예정입니다. 저희 목표는 게이트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고 한국까지 몬스터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는 것, 하나뿐입니다.”

우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됐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예의상 만나서 한 번 더 말하는 거니까 말이다.

애초에 정보가 풀린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오늘 아침에서야 협력 요청이 온 상태라고 했다.

“움직임을 보니, 프랑스, 영국, 미국, 중국의 주요 길드 정도가 참여할 예정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온만 가는 건가? 자네는?”

대통령의 말에 지성준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현재 한국에서 제일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길드는 가온뿐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S급 각성자는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전에도 상의한 바와 같이 최후의 수단으로 한국에 남아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됩니다.”

좀 멋있었다. 지성준은 의외로 말을 잘하는 타입인가 보다.

아닌가? 닥치니까 그냥 하는 건가? 아무튼 신기했다.

“가온 쪽에서는 할 말 없나?

대통령의 시선이 최지혁에게 향했다. 최지혁은 그에 심드렁한 얼굴로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사실 궁금해서 말이야. 일본 S급 게이트 토벌에 왜 지원했지? 단순히 지 팀장과의 의리는 아닐 거고……. 목숨을 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묘한 사투리 억양으로 빈정거리는 듯한 질문이 최지혁의 성질을 긁은 모양이었다.

최지혁의 눈썹이 씰룩였다.

“지 팀장님께서 우리가 안 가면 대한민국이 박살 난다는데. 뭐, 마음에 안 드신다면 저희는 안 가도 상관없습니다만.”

최지혁의 말에 지성준이 살짝 당황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준우도 동일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재밌다는 듯 껄껄껄 웃으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참, 의욕과 야망이 충만해. 허허허.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구만.”

저건 또 뭔 소리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최지혁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대통령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S급 게이트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겠지. 지 팀장. 자네 목표가 뭔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성준은 대통령의 말에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제가 원하는 건 세계평화죠. 대통령님.”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지 팀장.”

옆에 있던 게이트 관리청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지성준을 향해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그에 지성준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뭐, 세계평화까지는 힘들고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화 정도만 지켜도 성공이라고 봅니다. 안 그렇습니까. 채유라 헌터님?”

지성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쏠렸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날 물고 늘어져?

“제 생각도 물론 지 헌터님과 동일합니다.”

나는 옆에 있는 준우의 팔을 툭툭 쳤다. 그에 준우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선, 이 땅에는 저희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자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범답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좀 불쾌하다는 눈치로 한마디를 툭 뱉었다.

“지 팀장. 비싸게 굴지 말고 다음 목표는 어딘지 말해보게나. 내가, 게이트 관리청장까지는 들은 것 같은데.”

대통령의 말에 옆에 있던 관리청장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 지성준을 쳐다보았다.

물론 지성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꼭 ‘이 새끼 봐라? 감히 날 건드려?’라고 하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오늘 만나 뵈어 이야기 나누고자 한 목적은 그게 아닐 텐데 말입니다. 대통령님.”

“아, 안영표,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되면 차기 대선에 자네라도 밀어 넣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세상이 이렇게 된 이상 자네같은 젊은이가 대선에 못 나가리란 법이 있나. 하지만, 권력은 그렇게 쉽게 따라오는 게 아니야. 지 팀장.”

큰일 났다. 지성준도 최지혁 못지않게 속에 화가 많은 인간이었다.

지성준의 표정이 슬슬 관리가 안 되기 시작했다.

“자네 같은 애송이가 어떻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어? 겨우 S급 토벌 한번 했다고 뭐 기성세대가 표라도 몰아줄 것 같나? 국민들은 그렇게 만만한 족속들이 아니,”

“내가 왜, 여기서 돈도 못 버는 하찮은 직책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봅니까?”

“대통령님께 그게 지금 무슨 말버릇인가, 자네!”

지성준이 결국 터졌다.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지성준의 목표는 놀라우리만치 건전했다.

앞으로 있을 멸망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정부를 만들어보겠다는 게 지성준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내가 겨우 5년짜리 대통령직 때문에 이러는 걸로 보입니까? 아주 착각을 크게 하시네.”

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발로 내 앞에 있는 최지혁의 다리를 건드렸다.

그에 최지혁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입 모양으로 열심히 내 의사를 피력했다.

‘말려!’

최지혁은 짜증 난다는 듯 지성준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한마디 했다.

“던전 안 세계는 멸망 중인 세계입니다.”

최지혁의 폭탄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최지혁에게로 집중되었다.

“유라야, 저거 말해도 돼?”

준우가 내게 속삭였고 나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 뭔 생각이 있겠지……?”

화난 지성준을 달래기에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지성준은 열 받은 표정을 지워버리고 금세 황당하다는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제가 얻은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최지혁 헌터?”

대통령의 말에 최지혁이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왜 게이트가 지구에 열린다고 생각하십니까.”

“…….”

“보통 게이트 안 존재들이 빠져나와 하는 행동은 하나로 정해져 있습니다. 인간부터 잡아 죽이는 것. 그 이유가 뭘까요.”

최지혁의 말에 구석에 있던 수행비서로 보이는 분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계층이기 때문, 헙!”

그리고 당황한 듯 입을 막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보통 일반인들은 대부분 던전에 대해 모르는 편이죠. 애초에 안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고.”

“……그게 무슨. 게이트 안의 존재들이 침략이라도 할 거란 말인가!”

게이트 관리청장 아저씨가 최지혁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에 최지혁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아무튼 이제 이해 가십니까? 왜. 우리가 거지 같은 페이에도 게이트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는지?”

최지혁이 이제 대놓고 놈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음, 뭔가 지성준의 급발진은 막은 것 같지만 최지혁의 급발진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데.

하지만 괜찮았다.

최지혁은 내가 막을 수 있다.

나는 황급하게 최지혁의 멘트를 가로챘다.

“저희는 지위, 돈, 명예를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최지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내게 말했다.

“……뭐, 알겠네. 일단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 만든 자리가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지.”

대통령의 말에 지성준이 여전히 짜증 난다는 어투로 말했다.

“예, 그러면 이후 있을 후쿠오카 회담에서 작전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살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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