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145)

“……유라야. 이거 진짜야?”

준우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입만 앙다물었다.

왜 최지혁이 자꾸 곤란한 상황일 때 입을 다무는지 알겠다.

때로는 침묵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열!애!설! 최지혁과 채유라 헌터, 서로 애인 사이인가! 오늘 한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한 장의 사진! 크으! 유라 양하고 지혁 군하고 인기 많네, 많어!”

도경 아저씨가 기사를 읽으시며 껄껄 웃으셨다.

“……사실무근이니 명예훼손 처리하죠.”

최지혁의 말에 오늘 첫 출근이신 이영 변호사님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로 명예훼손 처리 잘 안 됩니다. 심지어 최초 유포자가 미성년자라면서요.”

“…….”

이영 변호사님은 우리가 유명해지자마자 깔끔하게 사무실을 우리 사무실로 옮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사무실을 이쪽으로 옮기는 게 일이 더 적을 것 같아서라고.

딱 우리만 전담 마크하겠다 이 소리였다.

“기사 내려야 하는데…….”

내가 중얼거리자 도경 아저씨가 박수를 짝, 치며 내게 말했다.

“자,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들어오시오!”

사무실 안쪽 방에서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또 뵙네요. 하하.”

“……!”

최지혁이 경악한 듯이 표정을 구기고 등장한 인물을 쏘아보았다.

“그때 경황이 없어서……. 나중에 제대로, 정식으로 공고 보고 연락드렸고, 채용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선우라고 합니다!”

썬이었다. 당혹스러운 썬의 등장에 준우가 애써 웃으며 박수를 쳤고, 나도 따라 박수를 쳤다.

“거, 유라 양이 나더러 알아서 하라길래. 애초에 공고 지원했는데 이쪽 관련된 사람이 선우 군밖에 없더라고? 뭐, 유라 양도 좋아하고 하니까 내가 바로 그냥 확! 뽑았지. 어때. 잘했지?”

“계약 기간 이미 끝났고, 연예계 생활 하면서 기자님들 연락처도 많이 알아 놨어요!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에 최지혁이 대놓고 정색하며 도경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지금 상황에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전문가 없어?”

그에 도경 아저씨가 또 시작이라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취업공고 좀 살피라 했잖어. 지원 들어온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이 썬뿐이라니까?”

도경 아저씨의 말에 옆에 있던 썬이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을 정정해 주었다.

“이제 썬이 아니라, 이선우……입니다. 계약 기간 강제 종료거든요. 회사가 부도나서.”

“…….”

썬의 말에 나는 급하게 썬의 회사를 검색해 보았다.

정말이었다.

“아, 저희 회사 말고도 망한 회사 많아서 괜찮습니다.”

“……괜찮은 거 맞아요?”

그 옆에 있던 준우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 상황이 마음에 영 안 드는 모양이었다.

“아, 물론 저희 회사 사람들에겐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전 취업했으니까! 정식 채용 맞죠?”

썬이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에 도경 아저씨가 감탄하며 말했다.

“거, 실세를 금방금방 찾는구만?”

“실세 같은 소리…….”

최지혁이 열 받는다는 듯 들고 있던 패드를 소파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내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무심코 비싼 패드 집어 던져서 혼날까 봐 내 기분을 살피는 게 분명했다.

꼭 한 소리 들을 거 알면서 저래.

“이거 기사 그냥 놔두면 안 되겠죠……?”

내 말에 썬이 방긋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신경 안 쓰시면 그대로 내버려 두셔도 되고, 절대 아니다! 싶으면 내리면 되고요. 물론 돈하고 희생양이 필요하긴 하지만, 제가 잘 찾아볼게요. 친하게 지내는 연예부 기자 누나 있는데 한번 부탁해 볼까요?”

최지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썬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나더러 뭐라고 해보라는 듯 날 쳐다보았지만…….

사람 잘 뽑은 것 같은데?

“일단 뭐라도 해봐. 딱 보면 둘 다 열애설에 불만인 것처럼 보이는데. 맞지?”

도경 아저씨의 말에 썬은 방긋방긋 웃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굽신굽신하더니 영양가 있는 말을 한마디 툭 던졌다.

“오늘 오후에 회사 측에서 정정기사 작성해서 넘기면 될 것 같구요, 그리고 애초에 별거 아니라 금방 넘어갈 것 같습니다!”

“오! 해결 방안이 나름 그럴듯한데!”

도경 아저씨는 뿌듯한 듯 박수를 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있어 보였다.

“자, 그럼 오전 9시까지 출근이지만 거의 자유 근무라고 생각하면 되고……. 어떻게, 인사부터? 본격적으로?”

도경 아저씨의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며 썬에게 손을 내밀었다.

“채유라라고 해요! 같이 일하게 돼서 영광이에요! 썬, 아니 선우 씨.”

“저도 영광입니다. 유라 씨.”

***

생각보다 회사는 얼렁뚱땅 잘 굴러갔다. 열애설 정정 기사는 이미 나갔고, 생각 외로 사람들 반응이 웃겼다.

‘가온, 최지혁 채유라 마트 데이트 포착. 열애 중? 가온 측 사실무근.’

└‘망붕랜즈 on.’

└‘저것도 쇼겠짘ㅋㅋㅋㅋ믿는 사람 있음?’

└‘행보 ㅈㄴ 이상하네 또 정치 어그로임? 100퍼 상록에 돈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그로 성공했네.’

“다행히, 아무도 안 믿네요.”

준우는 허허 웃으며 최지혁 옆에서 깐족거렸다.

“하긴, 저희가 어그로를 이상한 쪽으로 끌긴 했죠?”

“조용히 해. 심기 불편하니까.”

“별로 안 불편해 보이는……. 일단 오케이~.”

일단 둘이 열심히 꽁냥대는 동안 나는 아이템을 샀다.

‘[서약 반지]’

비밀 유지 아이템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슬슬 S급 게이트에 대해 이야기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준우는 어차피 들어갈 예정이라 별 상관 없었지만 회사의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반인이었으니까.

“자자, 열애설은 대충 넘어가고요. 저희 지금부터 엄청 중요한 얘기 할 거예요.”

나는 구매한 반지를 내밀며 말했다.

“서약 반지라고, 기한은 정확히 3주. 강제로 특정 정보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게 하는 아이템이에요.”

도경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지를 가져가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이거 금인가?”

“지금 금이 포인트가 아닐 텐데요.”

도경 아저씨의 말에 이영 변호사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선우 씨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지금 곧 있을 프로젝트 때문에 비밀유지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내 말에 이영 변호사님이 다리를 꼬고 나를 쳐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만약, 이 반지를 착용하기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에 최지혁이 대답했다.

“나가든가.”

“오,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겠다…….”

이영 변호사님이 필기하던 볼펜으로 입술을 두 번 톡톡 치고는 내게 말했다.

“일단 발상은 좋았어요. 미리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반지를 채워 비밀 서약을 맺는다.”

나는 이영 변호사님의 말에 눈을 크게 떴고, 변호사님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여기서 문제점이 있죠?”

이영 변호사님은 태연하게 반지를 검지에 끼우며 최지혁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첫째. 반강제다. 둘째. 신규 법률상, 헌터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은 정부의 공식 허가 없이는 일반인에게 배포가 금지된다. 알고 있었어요?”

그에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변호사님을 쳐다보았다.

몰랐다. 뭐야. 그런 법 언제 생겼는데?

“입법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 걱정은 말아요. 이런 거 알려주려고 내가 있는 거니까.”

최지혁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변호사님을 쳐다보았고, 변호사님은 그런 최지혁을 산뜻하게 무시하고 내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뉴스는 꼬박꼬박 보라고요. 그냥, 본격적인 회의 들어가기 전에 말해주고 싶었어요. 요즘 보면 아예 사무실에 고가의 아이템을 늘어놓던데, 우리 중 하나가 이걸 빌미로 협박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오, 역시 한국대 나온 변호사라 뭐가 다르긴 다르구만?”

옆에서 도경 아저씨가 감탄하며 박수를 치셨다.

“확실히 유라 양이 사람 보는 눈이 있긴 해.”

도경 아저씨의 말에 이영 변호사님이 우리를 쓱 훑어보더니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길드에 비하면 훨씬 체계적인 편이고 본격적이죠.”

그리고는 방긋 웃어주셨다.

“그래서, 그 조심해야 할 비밀이 뭐죠?”

그에 나는 잠시 멍을 때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최지혁을 툭툭 쳤다.

“……S급 게이트.”

최지혁의 말에 다들 눈이 커졌다. 당혹스럽다는 눈치였다.

“어디에?”

도경 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일단 서약부터 진행해요. 최지혁.”

귀속 아이템 같은 경우에는 사용자를 나로 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지혁이 사용자가 되어 아이템을 사용해야만 했다.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발설한 모든 내용은 한 달간 외부 유출 금지입니다. 그 이후는 발설이 자유로워지기는 하나, 이왕이면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최지혁의 말에 반지에서 붉은색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뭔가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0일 후에 일본에서 S급 던전 터집니다.”

최지혁은 나더러 설명하라는 듯 날 빤히 쳐다보았고 나는 산뜻하게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유럽 S급 던전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슨 국민의 알 권리니 뭐니 해서 게이트 안에 카메라도 들어갈 거예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여?”

도경 아저씨가 당황한 듯 말하자 옆에 있던 선우 씨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요. 그, 특수 아이템 사면 던전 안에서도 원격으로 통신 가능하다고…….”

최지혁이 생각만 해도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그딴 거지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아무래도 지금은 S급 게이트가 아주 큰 이슈이니 세계 각국에서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들어가는 듯싶었다.

게이트 원격 통신 아이템은 비싸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에 아마 각 나라당 몇 개씩 구비해 놓았을 거다.

그리고 각자 전략팀이 붙어서 군대처럼 움직일 예정인 것 같았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아마 전 세계에서 스트리밍 방송으로 S급 게이트 현장 상황 취재할 거고, 우리 상황이 적나라하게 방영될 거란 말이죠.”

내 말에 선우 씨가 특유의 스누피처럼 처진 눈을 찡긋거리며 대답했다.

“여론전 대비?”

“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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