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다며. 네 죄가 있는데 시키는 대로, 웁!”
오랜만에 단체로 지성준을 만났다.
그리고 역시 한 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또 싸웠다.
역시 성격 비슷하면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이 맞는 건가?
최지혁은 지성준의 입을 막고 죽여버릴 듯 노려보았고, 지성준은 열 받아 하면서 몸을 크게 뒤틀었다.
그리고 소리를 빽 질렀다.
“뭔데!”
“함부로 입 놀리지 마.”
“내 입으로 내가 말하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네 개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니까 문제지.”
“야, 한판 붙고 싶냐? 붙어?”
“붙든가.”
관리청 복도에 두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바리톤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쪽팔렸다…….
“유라야. 저대로 놔둬도 돼……?”
“난 몰라. 진짜 공공기관에서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고 슬금슬금 최지혁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지성준 쟤는 최초 S급 타이틀 달고 관리청 팀장까지 꿰찼으면서 최지혁이랑 똑같이 놀면 어쩌자는 거야!
“유라야……. 진짜 붙을 것 같은데. 형 무기 꺼냈어.”
환장하겠다.
“야, 최지혁, 미쳤어?”
내 말에 최지혁은 아차 싶었는지, 들고 있던 무기를 집어넣……지 않고 지성준한테 왜 겨눠!
“야야야야야! 최지혁!”
결국 최지혁의 허리를 안고 질질질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와중에 지성준은 제 단검을 치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저 자식이 먼저!”
“아오, 당연히 너한테 뭐라 그래야지 그럼 내가 저 아무 생각 없는 인간한테 뭐라 그래요? 남인데?”
내 말에 최지혁은 납득한 듯 작은 탄식과 함께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남녀가 쌍으로 나 멕이냐, 지금?”
“저기요, 지성준 씨. 당신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민원 넣을 거예요! 민원!”
내 말에 지성준이 인상을 빡 쓰고 나를 째려보았다.
“저, 이 씨…….”
“씨? 말 똑바로 해라.”
최지혁은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지성준을 노려보았고, 이러다가는 또 한판 붙을 것 같아서, 냅다 까치발을 들고 최지혁의 입을 가려버렸다.
“좀, 좀! 진짜 내가 민망해서 못살아. 복도에 사람들 없어서 망정이지.”
내 말에 준우가 미간을 짚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최지혁이 어지간히 억울했는지 저도 까치발을 들어 제 입을 가린 내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내가 뭐!”
“형,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최지혁의 말에 준우가 진지하게 물었고, 최지혁은 곧장 입을 닫았다.
그리고 열심히 ‘나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뭐가 억울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지성준 씨, 미팅이라는 거 빨리빨리 좀 하면 안 되나요.”
“안 그래도 하려고 하는데 저 자식이!”
“부탁하는 주제에 말이 많냐?”
“야, 부탁이라니, 내가 진짜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
“채유라, 집에 가.”
나는 뒤에 목을 잡고 살짝 아득해진 채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속이 순식간에 들끓어 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 인간들처럼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기 때문에 차분하고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말했다.
“둘 다 작작 하죠?”
“…….”
순식간에 복도에 침묵이 맴돌았다.
“초딩이야? 유딩이야? 미취학 아동이야? 아니지. 말하는 꼬라지 보면 중2병인가?”
이 인간들이 도대체 어떻게 헌터 랭킹 1, 2위를 다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지? 어쩌면 좋지?
곧 있을 S급 게이트. 이대로 괜찮은 거 맞겠지?
“아, 갑자기 두통이…….”
“유라야. 괜찮아?”
준우는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하며 대충 회의실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준우야. 두통약 있니.”
“인벤토리에 상시 구비되어 있지.”
***
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저 성질을 참고 공무원 생활을 자처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이 청년들이 날 돕겠다 자처한 친구들이라고?”
“예. 뭐. 따지고 보면 뭐. 예.”
“거기, 지 헌터, 후보님께 말버릇이 그게!”
“왜. 불만 있습니까?”
나는 최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 최지혁은 갑자기 본인을 왜 쳐다보냐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그냥 둘이 하는 짓이 똑같아서 쳐다본 건데.
찔리나 보다.
“크흠……!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에서…….”
“아. 이민 갈까…….”
“…….”
지성준은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입을 다물렸다.
“자, 쓸데없는 잡담은 거기까지 하고. 거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꼰대질인가?”
“후, 후보님!”
안영표 후보는 혀를 대충 끌끌 차더니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나라사랑당 그쪽 정책은 말이야, 헌터들한테 유리할 게 하나 없는 허풍선이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가만히 높으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물론 어차피 내 세계 정치인도 아니라 딱히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과연 이 사람을 뽑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그냥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문제는 다른 후보들도 똑같다는 거지만.
뭐, 근데 어차피 정치라는 게 항상 차악을 선택하는 거니까 그런 걸 고려해보면 나름 괜찮긴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우리 쪽 조건은 간단합니다. 의원님 선거를 도와주는 대신, 각성자 관리에 대한 권한은 다 제게 넘겨주시는 겁니다.”
“…….”
지성준은 상당히 뻔뻔한 얼굴로 안영표라는 후보 할아버지에게 요구했고, 안영표 후보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정작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건가?”
“되게 만들어야죠. 나는 김국선 그 꼰대 마음에 안 들거든.”
“나는 꼰대 아닌가?”
지성준의 말에 안영표 후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에 지성준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왜. 후보님도 우리 벗겨 먹으려고?”
지성준의 말에 최지혁이 나른하게 회의실 의자에 늘어진 채로 안영표 후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쪽 눈썹을 쓱 들어 올렸다.
역시 험악하게 생겨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어도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음, 물론 말은 안 해야 했다.
쟤는 입 열면 좀 깨.
아무튼 최지혁의 아우라에 눌렸는지 후보님께서는 잠깐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니다만……. 그래도 자네 요구가 좀 터무니없는 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 터무니없는 거 들어달라고 이러는 거잖아. 대통령 하기 싫으세요?”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진짜 지성준 저 인간도 대화와 협상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생각을 해 봐요. 후보님 지지 세력 달리잖아? 그런데 우리가 밀어주겠다고. 헌터들이 쟤들 싫어한다 쳐도 그 사람들 표 꼴랑 몇 개 된다고. 어차피 국민들은 쟤들 좋아한단 말이죠. 왜냐면 쟤들만 열심히 게이트 돌거든.”
우리가? 싶었지만 뭐, 맞는 말이었다.
준우는 한국대 의대생이지. 최지혁은 잘생겼지.
솔직히 나도 눈에 띈다.
천사와 악마가 서번트라니. 은근히 컨셉질하기 딱 좋단 말이지.
게다가 우리가 여태까지 한 일을 나열해 보면 종로 A급 게이트 수습 사건에, 헌터 기업들 국영화에.
민간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했다.
물론 아직까지 신비주의 컨셉 때문에 언론 노출은 많이 안 됐지만.
“딱, 하나만 해주면 됩니다. 헌터들 관리 권한 나한테 넘기고 협조하세요.”
“……만약 내가 싫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안영표 후보의 말에 지성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주아주 살벌하게 말이다.
“당신들, 각성자들 힘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자세하게 모르지?”
지성준의 등 뒤로 검붉은색 아우라가 훅 끼쳤다. 그건 최지혁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다들 민간인한테 뭐 하는 짓이야?
나는 준우에게 작게 속삭였다.
“준우야. 너도 저거 할 수 있어?”
“아니?”
좀 신기하긴 했다.
“어차피 게이트 사태가 지속되는 이상 헌터들이 권력을 잡는 건 순식간이겠고…… 내가 굳이 그쪽들 불러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
“우리 좋게 좋게 해결하자고. 나는 적어도 우리나라가 최소한 멀쩡히는 굴러갔으면 좋겠거든.”
“지금, 나더러 쿠데타라도 일으킬 거라고 협박하는 건가?”
안영표 후보는 정색을 하며 지성준을 쳐다보았고, 지성준은 그에 하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뭐, 영 안 되겠다 싶으면? 그런데 꼭 헌터가 권력을 잡으면 그 밑의 것들이 날뛰더라.”
지성준의 말이 맞다. 헌터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부터 이 세상의 권력은 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흘러갔다.
“난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좋아요. 안 그러냐?”
지성준의 말에 최지혁이 살벌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날 쳐다보았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난 애초에 채유라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안 있었어.”
최지혁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아니, 얘는 갑자기 내 이야길 왜 해?
최지혁은 나를 쳐다보며 왼쪽 눈썹을 쓱 올렸다.
그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준우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준우야. 네가 말해, 네가.”
“아니, 왜 내가 말해, 유라야.”
“어른들 고학력자 좋아하잖아. 멋있는 척 좀 해봐.”
“……유라야. 내가 말하면 망해. 네가 해!”
결국 나는 준우에게 토스하려다 실패하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크흠, 그러니까요, 저도 지성준 헌터님의 말에 매우 동의하는 편입니다.”
내 말에 안영표 후보는 나를 좀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그쪽이 여기 진짜 수장인 것 같구만.”
“……예?”
순간 당황해서 표정관리가 안 됐다.
“보아하니, 최지혁 헌터도 그렇고, 강준우 헌터도 그렇고 채유라 헌터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나는 급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수평적인 회사라 그런 거 없습니다. 후보님.”
“뭐, 그런 걸로 치고. 최 헌터 말뜻은 본인을 이용하고 싶으면 채 헌터한테 허락을 맡아라 이건가?”
안영표 후보가 날카롭게 최지혁을 응시했다.
최지혁은 그에 아무렇지도 않게 똑같이 매서운 눈빛으로 안영표 후보를 쳐다보았다.
“후보님, 저희는 그런 거 없다니까요? 이 자리에 온 것도, 지성준 헌터와 협력하려고 결정한 것도 충분한 내부 회의를 거쳐 나온 결과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