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청라 A급 던전, 또 살인 모의.’
└ ‘??? 가온 저번에도 살인 협박 당하지 않음?’
└ ‘다른 길드들 가온에 앙심 품을 만 함. 따지고 보면 가온이 업계 망친거 맞잖아.’
└ ‘그래도 살인은 좀; 솔직히 가온이 뭐 잘못 한 거 있음? 헌터 커뮤에서는 욕처먹고 있어도 크게 보면 다른 나라처럼 따로노는 것 보다 나라에 관리당하는 게 낫지. 솔직히 헬조선헬조선 거려도 OECD중에 우리나라가 지금 게이트 방어 제일 잘하고 있잖씀.’
└‘우리한테 떼가는 세금 생각해; 안 억울함? ’
└‘그거랑 이거랑 별개지. 그리고 아이템 수수료랑 세금은 다른 선진국들도 그만큼 떼. 그리고 세상 우리만 사는 거 아니잖아.’
└‘ㅋㅋㅋㅋ그래서 그게 정당하다는 거임? 우리는 목숨걸고 게이트 들어가서 수수료 40퍼 이상 떼가면서 돈 다 뜯기는데? 민간인 이해 할 시간에 네 밥그릇 좀 걱정하세요 ^^’
└ ‘고소미 엔딩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헌터 커뮤니티를 살피니 헌터들 사이의 여론은 여전히 안 좋았으나, 결론적으로 해결은 또 잘 된 모양이었다.
확실히 돈이 최고다.
이영 변호사님한테 맡기니까 일사천리였다.
원래 녹음만으로 처벌은 어렵긴 했지만 대충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서 결국 징계까지 때렸다.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미리미리 잘 보여둬야 여러모로 인생 살아가는 데 편하다니까?
“아저씨. 앞으로도 우리 변호사 쓸 일 많으니까, 이영 변호사님 로펌에 전속 계약 좀 제안해 보고 그러면 안 돼요?”
내 말에 옆에 있던 도경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쯤이야 껌이지.”
“아, 그리고 아주머니한테 마늘장아찌 너무너무 잘 먹었다고 말씀 좀 해주세요. 매번 신세지는 것 같아서 어떡하죠? 아니다. 제가 따로 전화 드릴게요.”
내 말에 최지혁이 똥 씹은 표정으로 나와 도경 아저씨 사이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저번에 시킨 건.”
“아, 그거?”
최지혁의 말에 도경 아저씨가 패드를 꺼내 화면에 무언가를 띄웠다.
자세히 보니 무슨 관계도 같은 거였다.
“자. 세계 각국 주요 헌터 길드 목록이야, 유라 양.”
“엥?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지혁 군이 정리해서 유라 양 주라던데?”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네가 남 신경 좀 쓰라며.”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뭐, 내가 그 말을 한 건 맞는데……, 그거랑 이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나는 꽤 오래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최지혁의 의도를 파악했다.
남을 생각하라는 내 말은 그에겐 적이 되는 세력을 파악해보라는 말로 전해졌구나!
의미 전달은 살짝 이상하게 된 것 같지만 아무튼 내 말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뭔가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애써 묘한 기분을 무시하고 도경 아저씨가 내민 패드를 보았다.
“그런데 지혁 군하고 유라 양 목표가 뭔지 물어봐도 될랑가?”
도경 아저씨의 말에 최지혁이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없어.”
“그런데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나? 왜, 솔직히 대한민국 헌터 무리들 중에 우리가 제일 열심히 움직이고 있지 않아?”
“다른 놈들이 게으른 거겠지.”
“…….”
도경 아저씨는 대화할 의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허허 웃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일단, 저랑 최지혁이랑 대화할 게 좀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먼저 들어가 보셔도 돼요!”
“그래그래.”
“들어가세요!”
도경 아저씨를 보내고 나는 다시 집중해서 패드 화면을 보았다.
아무래도 앞으로 있을 S급 게이트에 어떤 세력들이 참여하는지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도경 아저씨더러 구해오라고 한 거겠지?
“그래서 곧 있을 일본 S급 게이트에서는 어느어느 길드가 오는데요?”
내 말에 나를 보며 멍때리던 최지혁이 황급하게 후다닥거리며 내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대답했다.
“미국 바이퍼, 중국 명, 프랑스 슈에뜨. 영국 벨벳.”
“뭐야. 왜 옆에 있다가 그리로 가요?”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최지혁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최지혁은 오란다고 또 슬금슬금 다가와 다시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음, 그렇게까지 붙으라고는 안 했는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우리나라는 우리만 가기로 결정 난 거예요? 다른 S급 헌터 집단은 없어요?”
“아직 없어. 네가 날 처음 발견했던 그 시점은 넘어가야 S급도 좀 더 나오는 편이야.”
나는 최지혁이 방금 말한 나라들을 살펴보았다.
대충 봐도 굵직굵직한 나라들이다.
영국, 프랑스, 중국, 미국.
“그런데 왜 다른 나라는 안 와요?”
“유럽 S급 때문에 직격타 맞아서.”
“그래도 중동도 있고, 동남아 쪽도 있고, 남미도 있고.”
“본인 나라 신경 쓰기 바쁜데 오겠어? 여유 있는 놈들만 오는 거야. 한국도 일본이니까 갔지 유럽이나 아프리카 같은 데면 안 갔어. 그 먼 데를 쓸데없이 왜 가? 못 막는다고 한국에 타격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눈을 반짝이며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역시, 최지혁. 머리를 안 써서 그렇지 은근히 똑똑하단 말이야?
“……왜 그렇게 봐.”
“왜요. 내 눈으로 내가 보겠다는데. 불만이에요?”
“아니.”
최지혁은 내 말에 머쓱하게 내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그 던전은 언제 열리는데요?”
“…….”
최지혁이 입을 앙다물었다. 음, 왜 또 저럴까.
그에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집요하게 최지혁의 눈을 쳐다보았다.
“왜요. 또. 말 안 해줄 거예요? 말해 주기 싫으면 말아요. 지성준 전화번호 이제 아는데. 전화해보지, 뭐.”
내 말에 최지혁이 또 기겁하며 더듬거리며 황급하게 내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걔한테 전화를 왜 해!”
“아, 그럼 빨리 말해줘요.”
“……너 진짜 따라 들어올 거야?”
최지혁이 진짜 진짜 싫다는 얼굴을 하고 내게 물었다.
그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 없이 살아남을 자신 있어요?”
“…….”
최지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나도 너 걱정돼서 따라가는 거니까 내 호의를 좀 받아 줬으면 해요.”
“……넌, 아무한테나 친절하지?”
나는 최지혁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받고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이 대화에서 저 질문이 왜 튀어나오는 거지.
최지혁도 본인의 질문이 이상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다.
“음,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
“그런데 아무한테나 친절하지는 않을걸요? 나도 나름대로 선이 있는 사람이라구요.”
최지혁이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기로 결심했다.
“뭐, 최지혁 너야……. 오래 봤으니까. 혹시 내 행동 막 부담스럽고 그래요?”
내 말에 최지혁이 기겁하며 움찔거렸다.
“뭔 소리야.”
“아니면 됐어요. 그런데 왜 물어보는 거예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너무 격 없이 굴어요?”
설마 해서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에게 물어봤다.
그에 최지혁이 내 눈치를 흘끔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뭐야. 그럼 왜 물어봤어?”
“하……. 그러니까 내 말은.”
최지혁은 곤란하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내 말은?”
내가 최지혁의 옷자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되묻자 최지혁이 착잡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음, 왜 저렇게 보는 거지.
“채유라.”
“응?”
“……만약에.”
“만약에?”
최지혁은 가만히 날 보고 있다가 입술을 열듯 말듯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너한테…… 큰 잘못을 했어.”
“그런데요?”
“……용서할 거야?”
뭐야. 뭐 또 이상한 짓 했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잘못이 뭐냐에 따라서 다르겠죠? 설마 또 뭔 짓 했어요?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요.”
내 말에 최지혁이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말 안 해요?”
“……너.”
“나 뭐! 빨리빨리 말해요.”
최지혁은 살짝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왜 아무렇지도 않아?”
“뭐래.”
앗.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바로 튀어나왔다.
“언제 얘기 하는 거예요?”
“……내가 히든 보스 잡으러 간다고 하는 바람에, 핸드폰 보다가 차에 치일 뻔했다면서.”
최지혁의 말에 아차 싶었다. 설마 저걸 아직까지 신경 쓰고 있었단 말이야?
어쩐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더라.
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얼씨구?”
“…….”
“그걸 왜 이제 물어보는데요? 한참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말에 최지혁이 대역죄인처럼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저럴 거면 왜 물어봤담.
하지만 저 질문으로 인해 최지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충 파악이 됐다.
쟤도 사람이라면 본인 때문에 죽을 뻔한 내게 동정심 정도는 샘솟아 나겠지.
뭐 적당한 책임감도 생긴 것 같고.
조금 기분이 거시기했으나 괜찮았다.
어쨌든 그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상관없어요.”
“…….”
“게다가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횡단보도에서 핸드폰 본 건 내 잘못이고. 물론 원인은 너지만.”
나는 얼어있는 최지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무모한 짓 좀 하지 마요. 내가 진짜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데.”
“…….”
“대답 안 해요?”
“알았어.”
그러다가 물끄러미 최지혁의 머리통에 시선을 던졌다.
이상했다.
괜히 기죽어 있는 최지혁을 보고 있자니 저 머리를 한껏 헝클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이지.
손가락이 꿈틀댔다.
뭔가, 꼭, 만져보고 싶었다. 이상하다. 왜지? 왜 만져보고 싶은 거지?
에라이,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하고 싶은 건 해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매우 충동적으로 냅다 최지혁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에 최지혁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허허 웃으면서 최지혁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래서 S급 던전은 언제 열리는지나 말해요.”
최지혁의 시선이 내 손을 물끄러미 따라왔다.
“최지혁?”
“…….”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괜히 만졌다.
최지혁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
큰일 났다.
아, 진짜 괜히 만진 것 같다. 쟤는 왜 내가 머리 만지는데 가만히 있고 난리야!
평소처럼 기겁할 줄 알았는데 순종적으로 나왔다.
거기다 숨은 또 왜 참는데?
‘안 돼, 채유라. 뭔진 몰라도 생각 멈춰!’
나는 하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한 달이면 얼마 안 남았네. 하하하하! 망했네. 하하하하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하하하하하, 뭘 안 가요. 이미 가기로 되어 있는데!”
“무르면 돼.”
최지혁의 눈빛이 이상했다. 무슨 그런 책임감 없는 말을 세상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하는지, 원.
괜히 사람 마음 싱숭생숭해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