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45)

“야!”

나는 최지혁의 팔을 붙잡고 짤짤짤 흔들 수밖에 없었다.

“죽이면 어떡해! 아직 나가는 방법 모르잖아요!”

“……쟬 붙잡고 있는다 해서 알아낼 수 있어?”

“아니, 시도도 안 해보고 이 사람이 진짜!”

얼탱이가 없었다.

도대체 최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영 감이 안 왔다.

이럴 거면 날 왜 구하러 온 거야?

그냥 옆에 있어주려고?

뭐 그것도 눈물 나게 고마운 건 맞는데 아무튼 지금 상황이 매우 곤란한 것도 맞았다.

“어떡해요. 시스템은 왜 아무것도 안 띄워! 보스 잡았으니까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최지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한참 전에 던전 클리어 완료했다니까?”

“……왜 이렇게 태연해?”

나는 넋이 나간 얼굴로 뻔뻔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진짜 태연해 보였다.

얘는 걱정이 안 되는 건가?

“우리, 집 가야죠. 집! 이거 나만 심각한 문제예요? 걱정 안 돼요? 여기 갇히면 어쩌려고 그래!”

“집? 어차피 월세방…….”

나는 있는 힘껏 최지혁을 째려봤다.

지금 자기 집 아니고 남의 집이라고 꼽주는 거야? 나한테?

“지금 월세 내는 사람들 무시해요? 월세는 집 아니야?”

“…….”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최지혁한테 화내면 안 된다.

최지혁은 게이트가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날 구하겠다고 여기까지 굳이 쳐들어온 대단한 인간이다.

그러니까 화내면 안 되는데 진짜 상제는 왜 죽인 거야!

“빨리 뭔 생각이 있어서 죽인 거라고 해요.”

“더 알아봤자 곤란해져. 죽이는 게 맞았어.”

최지혁은 다시 내 눈을 가리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에 조금 착잡해졌다.

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 자체가 최지혁은 이미 이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런데 이 와중에도 내 눈을 가린 걸 보니 내 생각을 좀 많이 하는 것 같긴 했다.

아까도 내 눈앞에서 죽어버리는 시녀를 보고 살짝 패닉이 왔었는데, 아마 그걸 신경 쓴 것 같다.

아, 정말 이 주제는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이다.

어쩌면 좋지.

나는 일단 내 얼굴을 가린 최지혁의 손을 치우고 그를 질질 끌고 다른 방으로 향했다.

“왜.”

“뭘 왜긴 왜야. 보스 시체랑 회의하게요? 얘기 좀 해요.”

나는 옆방 문을 드르륵 열고 침대에 최지혁을 앉히고 물었다.

“아는 대로 다 말해봐요. 성좌에 대해서 더 아는 거 없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신들이라고 했잖아. 그게 던전 안 세계의 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신의 몸으로 강림한다면서요. 왜 강림하는 건지는 알아요?”

“……걔네 심리를 내가 어떻게 아는데?”

“아 쫌, 지금부터 이해해 보도록 노력해봐요.”

“…….”

최지혁은 지금 상황이 굉장히 불만스럽다는 듯이 나를 뚱하니 쳐다보았다.

“몰라. 부활이라도 하고 싶은가 보지.”

나는 최지혁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곰곰이 고민해봤다.

“부활? 그럼 신들이 한번 죽었던 존재인 거예요?”

“내가 어떻게 알아.”

“큰일 났네. 상제는 내가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했고, 아이템 썼으니까 그건 사실이라는 얘기인데…….”

“채유라.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최지혁이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넌 그냥 너야. 멸망 그딴 거 신경 쓰지 말라고.”

나는 그의 말에 눈만 깜빡였다. 멸망을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이 좀 이상했다.

만약에 최지혁의 세상이 멸망하게 된다면 다 죽는 거 아닌가?

“멸망이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요?”

내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으니 최지혁은 조금 거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네가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존재라면 사람들이 널 어떻게 대하겠어.”

최지혁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내가 만약, 상제가 말한 대로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단서라면, 사람들이 날 가만히 두지는 않을 거다.

아니, 그런데 얘는 본인 세상이 멸망 중이라는데 왜.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입장 바꿔서 생각해봤다.

만약에 내 세상이 멸망한다.

곧 다 죽는다.

그런데 내 친구를 희생시키면 다 살지도 모른다.

물론 그 희생이 죽음의 형태인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런데 자칫하면 다 죽을지도 모르는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오로지 그 친구를 위해서 멸망을 막을 유일한 단서를 숨긴다?

“최지혁.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왜.”

“나 왜 찾아왔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왜 찾아왔냐니까?”

“…….”

“준우랑 같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나한테 왔어요? 나한테 오면 여기 갇히는데?”

최지혁은 열심히 내 시선을 피했다.

저렇게 회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집요하게 최지혁을 쳐다보자 결국 최지혁은 갑자기 엄청나게 차가워진 어투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넌, 내 성좌니까 널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야. 괜한 착각 하지 마.”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저래?

“착각? 갑자기 착각이란 단어가 왜 나와?”

내 물음에 최지혁은 더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널 찾아온 이유 생각보다 별거 없으니까 그만 물어보라고. 너도 알잖아? 나 이기적인 놈인 거.”

황당했다.

“뭔 소리예요? 난 최지혁 씨 이기적인 사람인 거 잘 모르겠던데.”

“…….”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다고 쳐요. 평가는 주관적인 거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최지혁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그에 대한 문제는 미뤄두기로 결정했다.

내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최지혁 말대로 나는 성좌니까, 최지혁을 후원해줄 수 있는 유용한 사람이니까 목숨 걸고 날 구하러 온 걸 수도 있다.

여전히 납득은 잘 가지 않았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별 수 있나.

게다가 그 편이 솔직히 내게도 편했다.

“채유라, 그러니까, 내 말뜻은 널 무시한 게 아니라,”

“누가 뭐래요? 쓸데없는 거 그만 물어볼 테니까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부터 생각해 보자구요.”

최지혁은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지 마른세수를 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핸드폰이라도 살펴볼까요?”

내 말에 최지혁이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할 말 있어요?”

“응.”

최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꼼지락대던 손가락으로 내 손을 잡더니 곧 내게 뭘 쥐여 주었다.

무슨 조그만 공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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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멍하니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이걸 왜 지금 줘?”

내 말에 최지혁이 찔리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상제 죽이니까 나왔어.”

“…….”

“돌아가기 전에 아무도 없는 데서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이라고 언질은 줘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움이고 나발이고 그냥 싸울까 싶었다.

“됐으니까 이제 집에 가.”

“집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이 똥강아지야!”

***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린 듯한 준우가 달려왔다.

“유라야!”

“준우야. 나는 먼저 갈 테니…… 너라도 남아서 최지혁을 응징해줘.”

나는 급하게 차 뒷좌석에 대자로 뻗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다.”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앙칼지게 내게 말했다.

“앞에 안 타?”

“구라쟁이하고는 말 안 섞을래요.”

“……내가 왜 구라쟁이야!”

“날 기만했어! 최지혁!”

내 말에 준우가 하하하 웃으며 제 할 말을 했다.

“일단 형이 말한 대로 고소는 다 했고요, 빠져나와서 진짜 다행이에요.”

“역시 강준우 짱.”

나는 헤헤 웃으며 준우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줬고, 최지혁은 뭐가 또 불만인지 내 엄지를 굳이 접어주었다.

“유라야. 힐 해줄까?”

준우의 다정한 말에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최지혁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준우는 조수석에 앉아 주문을 읊었다.

그러자 찌뿌둥한 몸이 금방 괜찮아졌다.

“아, 유라야. 같이 들어간 사람들 고소는 성주호 때 그 변호사님께 의뢰 맡겼어. 그 와중에 알게 됐는데, 성주호 석방됐대.”

준우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앞좌석으로 쑥 들이밀었다.

“뭐? 성주호? 뭐야. 지성준 일 처리 똑바로 안 한대? 최지혁! 성주호가 왜 나와요?”

내 말에 최지혁이 짜증 난다는 듯 내게 말했다.

“어차피 게이트 관리청 산하 헌터 단체로 잡혀갔겠지. 그리고 그 인간이 석방된 걸 내가 어떻게 아는데?”

“지성준이랑 친한 네가 알지 그럼 내가 알아요?”

“그 자식이랑 안 친하다고.”

“그럼 전화기 줘봐요. 더 안 친한 내가 물어보지, 뭐. 성주호 그 인간 성격에 분명히 복수하겠다고 날뛸 게 분명하니까!”

내 말에 최지혁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미쳤어?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또 뭐라 하려고?”

“얼씨구? 누가 보면 지성준이 내 전남친인 줄 알겠어? 난 누구와 달리 쌈닭이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거거든요?”

최지혁은 운전대를 잡고 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걔가 왜 전남친이야!”

“비유 몰라요? 비유!”

“비유할 게 따로 있지 전남친이 왜 나오냐고!”

“내 맘이다! 내 입으로 내 맘대로 비유도 못 해?”

“그러니까 그 비유가 왜 하필이면 그건데!”

나와 최지혁이 열심히 왈왈대고 있으니 준우가 조용히 제 귀를 막았다.

그리고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닥치라는 것 같았다.

-“현재 상황이 전례 없는 사태이기 때문에, 저희 당에서는 앞으로 있을 헌터, 그러니까 더 나아가서는 각성자분들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또…….”

준우가 튼 라디오에서는 전화 연결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 관련한 방송 같았다.

평소라면 이런 건 안 듣고 그냥 넘겼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최지혁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쉿.”

지성준이 흘린 정보로는 우리가 지지해야 할 사람은 원래 대통령이 되었어야 하는 나라사랑당의 김국선이 아니라, 그 반대파.

그러니까 지금의 야당 대표인 상록애국당의 안영표였다.

“유라야, 그런데 우리도 선거운동 해?”

“모르겠어. 지성준 쪽에서 얘기해주지 않을까?”

내 말에 최지혁이 앞에서 투덜거렸다.

정치 하는 어르신들이 영 싫은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당한 게 얼마나 많은데.

좋아하면 변태지. 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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