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45)

최지혁이 팔에 있는 대로 힘을 쥐고는 그대로 허공에 검을 그었다.

그러니 사방에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공기가 일렁였다.

그리고는 믹서기처럼 목표물을 동시다발적으로 갈아 버렸다.

최지혁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내게로 달려오는 적들을 베었다.

“에르켈, 방어!”

“알겠다, 주군!”

에르켈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우리를 감쌌고, 그 덕에 최지혁은 날아다녔다.

준우는 본인이 직접 제조한 독을 뿌리며 적들을 살살 녹여갔다.

나 빼고 최지혁이랑 둘이서 던전을 꽤 돈 것 같더라니.

굉장히 전투에 능숙해져 있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여자를 내게 바쳐라-!”

순식간에 하늘에서 검은색 기둥이 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에르켈은 새하얀 검으로 검은색 기둥을 막았고, 옆에 있던 리온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색은 내 아이덴티티라고!”

그리고 붉은 눈을 빛내며 날개를 펄럭여 검은 기운을 날려 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아무래도 나를 콕 집어 한 말이라 신경이 쓰이나 보다.

나는 눈을 도르륵 굴리며 꽤 비장한 척 대사를 읊었다.

“백성을 저버리고 타락한 신에게는 소멸뿐! 그러니 내, 너를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유라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내 말에 준우가 옆에서 뭐라고 그랬으나 최지혁이 냉정하게 잘라버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저 새끼들 막아!”

최지혁은 바닥에 떨어진 돌로 내게로 오는 다른 헌터들의 머리를 맞혔다.

뻑 소리와 함께 돌을 맞은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었고, 최지혁은 진짜 다 죽여버릴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건드리면 죽여버릴 거니까 오기만 해.”

“…….”

“방해되니까 눈치껏 꺼져 있으라고!”

그에 준우도 살짝 싸늘해진 표정으로 손에 쥔 주사기 밀대를 건드리며 놈들을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목에 꽂아버린다는 듯이 말이다.

뭐야, 얘까지 왜 이래?

나는 경악한 얼굴로 준우를 쳐다보았고, 준우는 활짝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마취 주사야.”

“아하.”

다행히 반 협박이 통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최지혁의 기술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회귀 전의 스킬들이 돌아오는 모양이라 다행이었다.

최지혁은 휘날리는 장미들이 거슬린다는 듯 손으로 휘휘 쳐내더니 검은 실루엣처럼 허공에 아른거리는 존재에게 말했다.

“작작 하고 면상이나 좀 보이지? 내가 너 같은 잡몹한테 할애할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는 살짝 섬뜩한 눈빛을 하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뭐 해? 그 노래인지 뭔지 계속 불러.”

뭔가 이쪽이 악당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대사가 그랬다. 하지만 뭐, 이렇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저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바로 다시 섬뜩한 악상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겁을 잔뜩 먹은 눈치였고, 악사들의 호흡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여기저기서 바람 빠진 불협화음이 들렸다.

다행히 이럴 것 같아서 내가 미리미리 녹음을 좀 해뒀다.

‘[대왕 선전용 캔디 확성기]’

나는 대충 아이템을 구매해 핸드폰 스피커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미리 녹음 해둔 음악을 켜며 외쳤다.

“다들 노래는 그만하시오! 내 대신 하겠소!”

-“곱이 곱이옵서, 상제님 곱이 옵소서, 노여움을 풀고 세상의 빛이 되어 돌아옵소서. 온갖 백성 제물로 바쳐 귀복하니 옵소서 옵소서 어서 옵소서.”

확성기에서 섬찟한 노래가 울려 퍼지며 허공에 알록달록한 사탕을 뿌렸다.

“오, 분위기 다 망가진다, 마스터.”

나는 허공에서 감탄하고 있는 리온에게 소리쳤다.

“리온, 가만히 있지 말고 최지혁 도와야지!”

“쳇.”

“당장 안 튀어가?”

최지혁은 무난하게 포션을 마시며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저러면서 도대체 뭐가 걱정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널 산 채로 집어삼켜주마!”

상제의 말에 나는 상큼하게 확성기에다 대고 소리쳐줬다.

“너만 에코 넣을 수 있는 줄 아냐! 나도 넣을 수 있다! 쫌생이처럼 숨어 있지 말고 튀어나와라! 한판 붙자!”

“용서하지 않겠다!”

아, 좀 너무했나? 화난 것 같다. 나는 슬쩍 옆에 있는 준우의 눈치를 봤다.

“유라야…….”

“좀, 심했니……?”

“좀?”

“채유라, 잡담하지 말고 뒤로 빠져!”

그때였다. 최지혁의 칼이 휘리릭 날아와 내 눈앞으로 떨어진 몬스터의 목에 박혔다.

준우는 꿈틀거리는 몬스터의 머리를 스태프로 콱 찍었다.

그에 나도 잠시 고민했다.

무기를 사야 하나……?

나는 슬쩍 머리에 꽂혀있는 은장도를 꺼내 들었고, 그러자마자 최지혁이 귀신같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채유라! 위험하니까 칼 치워!”

쿵쿵쿵쿵, 최지혁의 뒤로 3미터는 되어 보이는 머리 세 개 달린 몬스터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최지혁, 뒤!”

내 말에 최지혁은 뒤를 돌아보았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꺅!”

“큭, 크윽, 살려, 크윽!”

방금까지 멀쩡하게 서 있던 시녀였다.

“유라야!”

옆에 있던 준우가 내게 달려오려고 했지만 준우가 밟고 있던 땅에서 나무줄기가 휙, 하고 올라와 준우를 옭아맸다.

“크헉!”

“준우야!”

에르켈은 들고 있던 검으로 날 붙잡은 시녀의 얼굴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준우를 묶고 있던 나무뿌리를 잘라내고 방어진을 다시 펼쳤다.

“젠장, 채유라, 저 미친 천사가, 돌았나! 채유라, 잊어. 잊으라고!”

살짝 멍해졌다.

방금까지 나랑 말을 섞었던 시녀가 죽었다.

내 앞에서 에르켈의 검에 얼굴을 찔려 죽었다.

나는 내 옷을 흘끗 쳐다보았다.

피가, 피가 묻어있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음, 어차피 최지혁은 늘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이런 세상에서 살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최지혁에게는 최대한 지양하라고 하긴 했지만, 적들을 다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적응해야 했다.

최지혁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거 어디 있겠어?

나는 괜찮다.

“채유라, 괜찮으니까 일단 안전하게, 젠장, 다 죽여버리든가 해야……. 아니, 유라야, 강준우 어떻게 좀 해봐!”

최지혁은 저를 향해 무섭게 주먹을 휘두르는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계속 내게 무어라무어라 말을 걸려고 했다.

“유, 유라야. 괜찮, 괜찮아?”

하지만 준우도 상태가 이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내가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이런 걸로 흔들리지 말자!

나는 최지혁을 향해 말했다.

“최지혁! 나 괜찮으니까 네 걱정이나, 엄마야!”

하지만 그때였다. 순간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위로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마스터!”

“주군!”

에르켈을 곧장 나를 감싸 안았고, 최지혁은 제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몬스터들을 뿌리치며 내게로 달려왔다.

“얌전히 나에게 오라.”

리온은 빠르게 내게로 날아와 에르켈과 똑같이 나를 날개로 감쌌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인당수 강제 납치 같았다.

나는 우선 에르켈과 리온의 손을 꽉 붙들었다.

그리고 얼굴이 시퍼레진 채 내게로 오려고 발악하는 최지혁에게 말했다.

“나 괜찮아요!”

“채유라, 괜찮긴 뭐가 괜찮아! 제기랄! 개자식아, 당장 나오라고! 내놔! 유라야!”

검은색 연기가 나를 삼켰다. 왠지 이걸 마시면 큰일 날 것 같았다.

-[SSS급 간지작살 방독 마스크]-

-[쌍방향 어린이용 매직 삐삐]-

그래서 나는 빠르게 마지막 선물을 구매해 최지혁에게 던졌다.

그리고 빠르게 에르켈과 리온에게 씌운 후 나도 썼다.

“준우 줘요!”

“채유라!”

순간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내가 떨어진 곳은 무슨 지옥처럼 생긴 기이한 공간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에르켈과 리온이 내 곁에 있어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최지혁이 없어서 조금 불안해졌다.

다행히 이 타이밍에 킹메이커 업데이트 알림이 떴고, 나는 망설임 없이 업데이트를 구매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는 킹메이커라는 어플이 제일 쓸 만하기 때문이었다.

[알림]

KING MAKER VER.4

- 앞으로 해당 기기는 절대 손상되지 않습니다.

- 서번트 기능이 추가 개방됩니다.

- 잠금 시스템이 해제되었습니다.

* 기기 외형 변경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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