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45)

황제라니 신기했다.

“상 제국의 황제 주훤이라 하오.”

황제는 아주아주 잘생겼다. 딱 동양 미인의 정석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보다 잘생긴 왕은 없는 걸로 알아서 매우매우 신기했다.

“송 장군에게 이야기를 들었소, 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신탁을 받고 내게 찾아왔다고.”

나는 최지혁의 팔을 툭 쳤다. 그에 최지혁이 나를 왜 치냐는 듯한 얼굴로 쳐다봤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네가 하는 거 아니었어?’

최지혁과 입 모양으로 의사를 주고받는 동안 준우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을 뱉었다.

“예. 폐하.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여쭐 수 있을까요.”

준우의 말에 황제의 옆에 있던 신하들이 발끈하며 말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됐소.”

황제는 신하들을 저지하며 곤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대들이 단칼에 삿된 자들을 처치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사실이오?”

황제의 말에 최지혁이 살짝 열 받은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굳이 확인한 사실 다시 확인해야 하오? 시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리고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저저, 버르장머리 또 튀어나왔다.

“폐하!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의 무엇을 믿고!”

“자네 말이 맞네. 제국은 시간이 없지.”

황제는 신하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상제가 어둠에 잡아먹혔고, 신성한 숲 주변의 백성들과 짐승들은 어둠에 잠식되어 살생을 하고 있소.”

최지혁은 여전히 짜증 난다는 얼굴로 삐딱하게 서서 황제를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본인이 황제인 줄 알겠다.

물론 최지혁은 왜, 굳이 던전 안 NPC 같은 존재들에게 예의를 차려야 하냐는 주의이긴 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십니까?”

나는 일단 최지혁의 앞으로 성큼 나가 황제에게 물었다.

“우리는 신탁을 받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어둠에 잠식되었다는 상제가 영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계신가 하여 이리 찾아왔습니다.”

내 말에 황제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곧 착잡하다는 듯 입을 뗐다.

“어둠은 예고 없이 찾아왔소.”

황제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훤한 대낮에 어둠이 드리웠고, 황궁 제사장이 급히 황제에게 찾아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발작을 하며 죽었다고 했다.

‘상제께서 패하셨다.’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일까 황제는 고민했고, 온 나라가 비상에 걸렸다.

상제를 모시던 사당이 있는 숲은 완전히 오염되었고, 그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싹 다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비단 상 제국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주신격 존재들이 거의 모두 타락했고, 작물이 자라지 않기 시작하고 날씨도 오락가락한다고 말했다.

황제의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끼리 의논할 곳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이 세계도 멸망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최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여기 신은 왜 유라를 찾는데요?”

준우의 말에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겠다.

나는 특별하고, 나로 인해서 던전의 조건들이 변화한다.

지성준의 정보에 따르면 이곳은 단순한 사냥 던전이었다.

그냥 몬스터 몇 잡고 나면 알아서 보스몬스터가 튀어 나온다 이 얘기였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는 일정량의 몬스터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숨어서 나오지 않고 나만 찾았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하나는 확실해졌네요. 게이트 안 세계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거. 맞죠?”

리온이 던전 안에서 나왔고, 필드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했다.

“됐어. 어차피 황제가 숲에 쳐 놓은 결계 부수고 보스 부른다 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된 거야.”

물론 최지혁은 전혀 잘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았다.

최지혁의 시선은 나를 떠날 생각을 안 했고, 나는 최지혁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날 제물로 바치라는 시스템의 말이 신경 쓰이는 게 뻔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최지혁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걱정 마요. 만약에 내가 심청이 되더라도 확실하게 상제 조지고 나올게요. 오케이? 왜, 심청이도 부활,”

“오케이는 무슨 오케이야. 심청이 그만하라니까?”

최지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어지간히 싫은가 보다.

“어휴, 알았어요. 알았어. 안 할 테니까 걱정 그만해요. 별일 없을 거예요.”

내가 최지혁의 등을 토닥여주자 최지혁은 금방 시뻘게진 얼굴로 웅얼거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에 준우가 대답했다.

“에이, 형. 유라 성격 알잖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저희는 딱 보스만 잡고 등급 올리고 집에 가면 돼요. 그렇지, 유라야?”

“역시 강준우 천재. 맞지맞지.”

나는 준우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줬고, 내 옆의 최지혁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처럼 해요. 평소처럼. 전보다 상황 괜찮잖아요? 지금은 리온이랑 에르켈도 있고, 또 전처럼 이 행성이 지금 당장 소멸한다는 얘기는 없잖아요.”

“……알았어.”

최지혁의 손이 내 옷자락 근처에서 머뭇거렸다.

그에 나는 대충 웃어주었다.

“진짜 괜찮아요. 이래서 S급 던전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 그래요, 진짜.”

“…….”

솔직히 말해서 최지혁은 내가 곧 있을 S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히 못마땅해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뭐 어쩔 거야, 가야지. 안 그래?

***

좀 일이 많이 커진 것 같긴 하지만 최지혁의 말을 인용하자면 어차피 일은 이미 커져 있었기 때문에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황제는 이상한 제복을 입은 사람 수천을 끌고 와 숲의 입구 앞에 빙 둘러앉아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봉인 해제의식이란다.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난리가 났다.

“진짜 이렇게 하면 나오긴 나오는 거야, 유라야?”

준우가 미심쩍은 듯이 내게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무당같이 생긴 여자가 갑자기 커다란 장작 쌓아 놓은 것의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천을 북북 찢으며 무어라무어라 노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곡조가 기이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가사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소?”

나는 궁금한 건 못 참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시녀로 보이는 여자가 당황했는지 급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내게 말했다.

“곱이 곱이옵서, 상제님 곱이 옵소서, 노여움을 풀고 세상의 빛이 되어 돌아옵소서. 온갖 백성 제물로 바쳐 귀복하니 옵소서 옵소서 어서 옵소서……입니다.”

저 노래 가사를 일반 시녀가 외우고 있다니 매우 신기했다.

그거랑 별개로 가사가 좀 섬뜩했다.

왜 또 제물 타령이야?

꽹꽹거리는 소리가 점점점 커지고 노랫소리가 거의 비명과도 같게 들릴 때쯤.

삐이이이-!

귀가 째지는 소리와 함께 숲은 심장처럼 두근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화악! 숲이 새카만 연기를 토해내듯, 검은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북소리는 더더 거세졌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노랫말을 읊었다.

“옵소서 옵소서 어서 옵소서.”

그리고 그 가운데로 금색 용포를 입은 황제가 등장해 무릎을 꿇고 무슨 끈적거리는 붉은 액체를 주변에 뿌리며 똑같이 노래했다.

“높으신 하늘님, 어서 옵소서. 수많은 목숨으로 빚은 제물 드시고 어서 옵소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가사가 왜 저래? 목숨으로 제물을 왜 빚는데?

“형, 저거 설마 피예요……?”

“……몰라, 제기랄.”

최지혁이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치마를 찢을 준비를 했다.

쿵, 쿵, 쿵!

산이 검은 기운을 여러 번 토해내고 이제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검은 기운이 하늘로 끝도 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늘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식되었고, 나는 이때다 싶어 좀 그럴듯한 대사와 함께 조명 아이템을 풀었다.

“와! 빛이여! 하하하!”

솔직히 좀 오글거렸다.

순식간에 수천 개의 빛무리들이 야구장 조명처럼 내 주변을 환히 비추었다.

그리고 그때쯤이었다.

숲 밖으로 말소리가 삐죽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포지션 잡으세요!”

“으아아악! 이대로면 다 죽을 거야! 괜히 들어왔다고!”

“이게 다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해서 받는 업보라고! 나는 동의 안 했어!”

“무슨 소리야, 그 여자가 제물이 되지 않아서 이 꼴 난 거 아니야!”

“닥치고 공격 포지션 잡으라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지도 않고 잘도 숲 밖으로 삐져나온 모양이었다.

“강준우 준비해.”

최지혁이 말했다.

“네.”

준우는 전투태세를 잡았고 나도 리온과 에르켈을 소환해 두었다.

“……뭐야.”

숲의 입구 밖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름도 기억 잘 안 나는 흰 머리의 남자는 피떡이 되어 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다.

“모두 준비하라!”

황제의 외침과 함께 함께 온 병사들이 불을 붙인 화살의 시위를 당겼다.

피유! 소리와 함께 수천, 수만 발의 화살이 숲을 향해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마른 나뭇가지들 사이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최지혁이 짜증 나 하는 에코 빵빵히 넣은 소름끼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배은망덕한 백성들이여, 고개를 들어 너희의 원죄를 보아라!”

“키에에에엑!”

“크르르르!”

“사아아아아!”

최지혁이 칼을 뱅그르 돌리며 살짝 긴장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숲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들이 정확히 나를 향해 매섭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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