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145)

“싹 다 고소해버릴 거야. 진짜 고소할 거야…….”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도대체 나를 왜 제물로 바치려는 거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A급 던전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크게 목숨의 위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애꿎은 사람 제물로 바칠 결심을 할 만큼 던전이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고소고 나발이고 싹 다 가둬 버렸어야 했어. 묻어 버렸어야 했다고!”

최지혁이 진짜 열 받아서 돌아버리겠다는 듯이 숨을 거칠게 쉬었다.

“……아, 좀 환멸 나는데. 아니 어떻게 사고가 그렇게 튀지? 제물이라니. 이게 말이 돼요?”

준우가 최지혁의 옆에서 제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우리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에 나는 씩씩대며 말을 얹었다.

“잘됐네요. 원래 범죄자들 모아서 던전 청소 시키잖아. 나라에 이바지하라고 해요. 비전 없는 사람들이 비전 있는 삶도 살고. 좋네!”

열 받았다. 안 받으면 보살이다. 나는 인상을 팍팍 찌푸렸다.

도대체 왜 나를 제물로 바치라는 걸까?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리온도, 에르켈도 내가 성좌라는 사실을 던전 안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제물로 바치라는 존재도 내가 성좌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를 원하는 건가? 너무 추측뿐인 가정이라 증거가 필요했다.

나는 진지하게 최지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제물로 가볼까요? 인당수 한번 가 봐? 입구만 좀 구경…….”

“너 미쳤어?”

그에 최지혁이 진짜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건 준우도 마찬가지였다.

“유라야……. 그건 좀 아닌데.”

“응, 알았어. 그냥 해본 말이야.”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면 좋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여기 있는 것들 다 잡아 죽이다 보면 나오겠지.”

최지혁이 골치 아픈 듯 검지로 미간을 몇 번 문지르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강조하듯 말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채유라.”

“이상한 생각 안 하는데?”

내 말에 위에 있던 리온이 말했다.

“거짓말이다. 맨날 이상한 생각만 하잖아, 마스터.”

“크흠, 에르켈.”

내 말에 에르켈이 기다렸다는 듯 검을 빼 들고 리온에게 말했다.

“감히 주군을 능멸하다니. 결투다, 악마.”

“내가 언제! 마스터는 나만 미워해! 악!”

나는 난리가 난 윗동네를 뒤로하고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하죠? 사람들은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고. 보스는 당최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내 말에 준우가 대답했다.

“네가 목표면 널 잡으려고 어떻게든 나오지 않을까? 노숙은 별로지만…… 아무튼 버티다 보면 알아서 나올 것 같아.”

“강준우 말이 맞아. 버틸 체력 되니까 인당수 얘기 꺼내지 마. 알았어?”

최지혁이 방금 내 인당수 발언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손가락까지 치켜세워가며 강조에 또 강조를 했다.

“에이. 장난으로 하는 소리를 또 진지하게 받아, 진짜. 어차피 여기 바다 같은 거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인당수가 어디……. 어? 잠깐만.”

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리온을 쳐다보았다.

분명 저번 던전에서, 리온은 필드를 벗어나서 마계로 향했었다.

그러면 이 숲도 빠져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우리 여기 나갈까요?”

“……뭐?”

내 말에 준우와 최지혁이 나를 쳐다보았다.

“왜, 여기 ‘상’ 제국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여기서 끙끙대고 있을 게 아니라, 숲 밖으로 나가서 물어보면 되지!”

“그러니까 지금 필드 밖으로 나가자고?”

준우가 당황한 듯 내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건 뭐야? 여긴 아직 멸망하지 않은 세상이고 분명 시스템도 ‘상’ 제국의 금지된 숲이랬어. 그러면 이곳을 통제하는 집단이 있다는 얘기 아니야?”

최지혁이 내 말에 피식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까짓거, 가. 만약, 사람 사는 곳이 있다면 여기보다 거기가 더 안전하겠지.”

“맞지, 맞지!”

나는 최지혁의 말에 열심히 맞장구쳤고, 내 말에 리온과 에르켈의 표정이 아득해졌다.

“마스터, 설마 날아서 가냐?”

“리온, 준우랑 최지혁 들어. 나는 에르켈한테 안겨서 갈게.”

“…….”

나는 에르켈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알겠다, 주군.”

에르켈은 나를 번쩍 안아 들었고 리온은 울상을 지으며 촉수로 준우와 최지혁의 허리를 감았다.

“에이씨, 더럽게 무겁다!”

“리온 궁시렁 압수! 가자!”

***

준우는 날아가는 내내 최지혁에게 물었다.

“형, 진짜 던전 이렇게 깨는 거 맞아요?”

“아니라고 몇 번 말해.”

“…….”

쟤는 왜 자꾸 공략법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깨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어! 저기 보인다, 성!”

나는 건너편의 불빛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행히 저 숲에는 비행형 몬스터가 없어서 무난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성 근처 마을 거리는 텅텅 비었다.

분명 사람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오늘 낮에 떠다 놓은 것 같은 물동이도 있었고, 빨랫줄에 옷가지들도 걸려있었다.

“음. 리온, 에르켈, 일단 들어가 있어 봐.”

나는 우선 외양이 다른 리온과 에르켈을 보냈다.

건물들을 대충 보니 이곳은 동양계열 같았다. 동북아시아의 각종 양식을 다 섞어 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서 아까 본 사람형 몬스터들도 피부색만 병든 사람처럼 초록색이었지 이목구비는 동양인을 닮았다.

“일단 다들 뒤로 빠져요.”

나는 다급하게 의상을 구매했다.

이 상태로 갔다가는 될 협상도 안 될 것 같았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너무 현대 복식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이거 입어요.”

“뭔데?”

최지혁은 허공에서 떨어진 옷을 쥐어 들며 내게 물었고, 곧 옷을 펼쳐 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유라야. 이거 예쁘다.”

“이게 뭔데. 왜 주는 건데?”

나는 초가집 벽 뒤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입고 나가면 문제 생기지 않을까요. 사람들 사는 것 같던데.”

아무튼 우리는 대충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물론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복색이 많이 다를 수는 있었지만 일단 지금 입고 있는 옷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상점에 있는 입을 만한 옷도 한복밖에 없었고 말이다.

“아오, 최지혁. 옷 좀 똑바로 입어요.”

나는 최지혁의 저고리를 예쁘게 여며주며 고개를 저었다.

준우는 알아서 예쁘게 입었다.

“유라야. 짱 예쁘다!”

“그렇지! 나 어렸을 때 매일 한복만 입고 싶었는데 이걸 이렇게…….”

나는 쩝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남자들은 바지라 활동성이 좀 있어 보이지만 나는 치마라 상당히 불편했다.

어차피 밑에 바지 입었으니까 상관없으려나?

“어때요. 옛날 사람 같아요?”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답했다.

“전혀.”

“머리 똥으로 묶을까?”

“오, 유라야. 비녀도 있으면 완전 딱이겠는데?”

“비녀 그냥 똥에 꽂으면 되겠지?”

“응!”

나는 아이템 창에서 쓸 만한 아이템을 골랐다.

비녀처럼 생긴 은장도를 팔길래 바로 사서 머리에 꽂아 넣었다.

“뭐 어떻게 하려고.”

“일단 말 좀 맞춰요. 우리는 타국에서 금지된 숲에 대해 조사하러 나왔고, 임금이든 황제든 만나서 우리가 보스 조지겠다고 해요. 그럼 알아서 찾아주지 않을까요?”

내 말에 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우리 신분은 어떻게 말해?”

준우의 말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남장을 할 걸 그랬나?

만약 이곳이 옛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국가가 맞는다면…… 진짜 솔직히 말해서 여자가 금지된 숲의 귀신을 잡겠다고 설치면 어중이떠중이로 의심하고 내보낼 게 뻔했다.

“신탁 받고 찾아온 공주라 해. 나랑 강준우는 호위무사 겸 신하라고 하면 되겠네.”

최지혁의 말에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공주요?”

“옷도 공주 옷이네.”

그리고 내 옷을 살폈다. 좀 그런 것도 같다.

“형, 그러면 일이 좀 커지는 거 아닐까요?”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 커진 지 한참 됐는데 왜 이제 와서 그걸 걱정해?”

“아하!”

나는 마지막으로 적절한 무기를 사 최지혁에게 건네주었다.

‘[무사 무영의 영혼검. (S)]’

그리고 준우와 최지혁의 손을 잡고 끌었다.

제일 큰 집으로 가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저기 기와집으로 가보죠?”

“가서 뭐라 할 건데.”

최지혁의 말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리 오너라?”

“…….”

최지혁은 내 말에 침묵했고, 옆에 있던 준우만 조금 들뜬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 그거 드라마에서 봤어!”

“나도!”

그리고 최지혁은 조용히 나와 준우를 떨어트려 놓으며 말했다.

“여기가 민속촌이야?”

“그럼 노크 세 번?”

“…….”

최지혁은 말하기를 포기한 모양이었다.

흥, 맘에 안 들어도 어쩔 거야. 다른 방법 있나, 뭐.

“가서, 도대체 우리가 있던 곳이 왜 금지된 숲이고, 날 제물로 내놓으라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내야겠어요.”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게이트가 왜 열리는지, 던전이 왜 생기는지. 그리고 이 던전은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왜 게이트가 지구에 열리는지, 게이트 안 던전의 정체는 뭔지 단서도 좀 알아보고.”

내 말에 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밝히는 것은 모든 일에서 중요한 단계였다.

“못 먹어도 고. 최지혁. 인간들은 상대할 수 있죠? 만약에 포졸들이 우리더러 사기꾼이라면서 잡으려고 하면 튀어야 하거든요.”

내 말에 최지혁이 아득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튀어? 사람 죽이지 말라며. 그런데 어떻게 튀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네 말은 아무도 죽이지 말고 무사히 저 귀신 숲인지 뭔지로 도망가자? 만약에 위험해지면?”

“응!”

최지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맘대로 해.”

“그럼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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