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저희 인터뷰 안 해요. 죄송해요.”
사무실 앞에 기자들이 깔렸다.
대한민국 첫 공식 길드.
정확히 말하면 ‘GA-ON(가온) corporation’.
이름의 유래는 별거 없다. 그냥 인터넷 뒤져서 제일 예쁜 이름으로 했다.
“OCB 강석훈 기자입니다. 딱 10분만 해주세요. 네? 저희 이상한 얘기는 안 내보냅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가, 죄송하지만 정부 지침이라 당장은 인터뷰 어려워요. 죄송합니다.”
음, 생각보다 사업은 어려웠다. 최지혁은 뭘 그딴 걸 일일이 받아주고 있냐는 듯 특유의 살벌한 얼굴을 하고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나는 그에 몰려오신 기자분들에게 아련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세요~.”
준우는 프린트된 게이트 목록을 들고 소파에 축 늘어진 채로 말했다.
“근데 저희 이거 진짜 다 돌아요?”
“다 돌겠냐? 적당한 거 골라서 돌 거야.”
다행히 지성준이 앞으로 열릴 게이트 몇 개를 뽑아 주었다.
지금은 과거 최지혁의 활동 시기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게이트가 열릴지 아직 몰랐다.
대신 지성준은 달랐다. 애초부터 S급으로 각성한 데다가, 초창기 때부터 던전을 돌아서 정보가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각성 등급이 높아서 굳이 던전을 돌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우리랑 다르게.
그래서 최지혁은 저 정보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형, 근데 일본에 S급 게이트 열리는 건 어떻게 아는 거예요?”
“지성준 그 자식 미래안 스킬 있어.”
오, 최지혁의 그럴듯한 떠넘기기 스킬에 나는 박수를 쳤다.
“와, 그 사람 되게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대단하긴 개뿔.”
최지혁이 열 받는다는 듯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내가 볼 때는 둘이 천생연분인데 지성준 얘기할 때마다 꼭 저렇게 부들부들 떨더라.
“형, 근데 그 사람이랑은 어떻게 친한 거예요? 정부 쪽이랑 줄도 있어요? 와, 저는 인생 살면서 이렇게 큰일 해볼 줄 몰랐어요.”
준우의 말에 최지혁은 닥치라는 듯 표정을 구기며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랑은 관계없어.”
“아, 참. 형, 그런데 저희는 아이템 수급 안 해도 돼요? 헌터 커뮤니티 보니까 던전 안에 있는 아이템 싹 긁어서 제작도 하고 그러던데.”
나는 준우의 말에 허허 웃었다.
우리야 그냥 필요할 때마다 내가 사서 주면 되니까 그렇게 열심히 던전을 돌 필요는 없었다.
이미 최지혁이 그날, 나 몰래 던전을 돌다가 구라 친 게 걸렸을 때 여태까지 얻은 아이템을 다 토해냈기 때문에 돈은 차고 넘쳤다.
“던전 아이템 수집하고 싶으면 하든가.”
“음, 근데 유라가 주는 게 더 등급이 높아서.”
“그럼 그냥 닥치고 있어.”
“옙.”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게이트 종류가 적혀있는 종이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제 슬슬 다들 길드 등록하겠죠? 그러면 게이트 독차지하기도 힘들어질 거고. 음…….”
곤란했다. 전에야 우리끼리 쏙 들어가서 해결하고 오면 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던전 안에 있는 아이템들의 가치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오늘 지성준의 정보로는 드디어 아이템 공식 거래소가 열렸다고 했다.
물론 정산비율은 최지혁의 말대로 무시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질의 아이템은 현금으로 환산 시 억대를 오갔다.
충분히 목숨을 걸고 게이트에 들어갈 만큼 남는 장사라 이 말이었다.
“채유라, 저번에도 말했지만 남들 눈에 띄면 안 돼.”
“아오, 알았어요. 알았어. 어차피 다른 길드랑 들어가도 따로 움직일 건데요, 뭐. 조심할게요. 알았죠? 약속?”
“…….”
내가 대뜸 손을 들이밀자 최지혁이 가만히 내 손을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제 손을 내밀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눈치 보듯 날 슬쩍 올려다봤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찍었다.
그에 준우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근데 유라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최지혁은 준우의 말에 인상을 빡 쓰고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열심히 준우를 노려봤다.
그래서 나는 한 손으로 최지혁의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물어봐, 물어봐. 최지혁 신경 쓰지 말고.”
“채유라, 뭔데? 안 치워?”
“사람 좀 그만 노려봐요.”
“……내가 언제 노려봤다고!”
준우는 앙탈부리는 최지혁을 흘끗 쳐다보고 허허 웃으며 물었다.
“근데 아이템은 무슨 돈으로 사는 거야?”
“네가 그게 왜 궁금한데.”
나는 최지혁의 입술을 검지로 살포시 눌러주며 미리 준비해 둔 말을 했다.
“응, 성좌 계약이라고 있거든? 내 성좌가 좀 부자야.”
그에 최지혁이 내 손을 조심스레 붙들며 제 입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나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야, 강준우. 너 성좌 계약 하지 마라.”
“……형. 앞뒤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고 명령하시는 건 어떨까요?”
준우는 짜게 식은 얼굴을 하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짜증 난다는 듯 에이씨, 어쩌고저쩌고 열심히 궁시렁거리더니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너 그거 잘못 계약하면 집어삼켜지니까 하지 말라고. 운 나쁘면 성좌가 네 몸 먹어 치울 수 있다 이 얘기야.”
“……예?”
최지혁이 마른세수를 하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너는 채유라가 알아서 아이템 주니까 할 필요 없다고. 다른 인간들이야 거지니까 성좌가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게 맞는데 나중에는 끊고 싶어도 끊기 힘들어. 거의 못 끊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참 말 한번 작살나게 한다. 하지만 최지혁이 틀린 얘기를 한 건 아니니까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음……. 성좌가 각성자 몸에 빙의라도 한다는 얘기예요……?”
최지혁은 과감하게 준우에게 정보를 확 풀어버렸다.
“정확히는 강림이지. 아직 안 풀린 정보니까 입조심하고.”
나 몰래 둘이 던전 돌고 나오더니 나름 정이라도 붙은 건가? 그거 하나는 다행이었다.
“근시안적으로 본다면 당장은 후원도 해주고 스킬도 전수해주고 좋을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애써 강하게 키워놓은 화신체 앗아가기밖에 안 되지.”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지성준이 알려줬어.”
준우는 살짝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럼 신내림이랑 뭐가 달라……?”
그에 최지혁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신내림 같은 소리. 신내림은 정신이라도 말짱하지. 성좌한테 삼켜지면 영혼까지 먹힌다니까?”
“……근데 그게 진짜면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전에, 유라는요? 너 위험한 거 아니야?”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조금 당황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채유라는 수를 써놨으니 괜찮고, 지금 그 정보 풀어봤자 사람들이 믿을 것 같냐? 그리고 그건 지성준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알 바 아니야.”
최지혁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가 떠들어봤자 사람들이 믿겠어? 우리가 공신력 있는 집단도 아니고 그냥 좀 유명한 일개 헌터 집단일 뿐인데.
“오.”
“거기서 또 뭘 오 하고 있어. 아무튼 우리끼리 하는 말은 다 외부 유출 금지다.”
“어우, 당연하죠.”
나는 최지혁을 좀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네가 알 거 없어. 신경 꺼. 뭔 상관인데.’ 3연타 때렸을 텐데.
“왜 웃어, 채유라.”
“왜요. 웃으면 안 돼요?”
“…….”
내가 톡 쏘듯 말하자 최지혁이 또 말이 없어졌다. 정말 장난을 다큐로 받는단 말이지.
나는 그런 최지혁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장난이에요.”
***
우리가 고른 던전은 몬스터가 많이 나오고 딱 등급 올리기 좋은 A급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던전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A급 던전이라니까 좀 많이 몰려든 편이었다.
“와, 근데 지성준도 대단해요. 이걸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지?”
내가 최지혁의 옆에서 감탄하고 있으니 최지혁이 열 받은 듯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나도 알아, 채유라.”
“오, 그래요?”
준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 옆에 있던 리온이 친절하게 에르켈에게 설명해 주었다.
“원래 저런다.”
“안 물어봤다. 악마.”
“……빌어먹을 천사. 친절을 베풀어도 받아먹을 생각을 못 해요. 제기랄.”
아무튼 이번 공략에는 우리 포함 총 3팀이 참가했다.
음, 아직 이름을 보면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최지혁이 알겠지, 뭐.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공중파를 탔던 우리 쪽으로 쏠렸다.
최지혁은 나와 준우를 제 등 뒤로 가렸고, 같이 들어가게 된 헌터들 중 몇 명은 좀 아니꼬운 얼굴을 하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길드 첫 출범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우리가 국가 관할 기업으로 스타트를 끊어 놔서 매우 불만인 모양이었다.
하기사, 다른 나라는 다 사기업이니까 그럴 만하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걸 어떡해.
“거, 안녕하쇼.”
그때였다. 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갑옷을 입은 아저씨 하나가 최지혁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당연히 최지혁은 쓱, 쳐다보고 가뿐하게 무시했다.
“최지혁. 카메라.”
그에 나는 까치발을 들고 최지혁에게 속삭여주었다.
A급 게이트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아 보통 취재진들이 많이 깔려서 조심해줘야 했다.
“……예.”
최지혁은 결국 짜증 난다는 얼굴로 대꾸를 해줬다.
“범길드의 김창범이라 하네.”
“예.”
“…….”
김창범 씨는 최지혁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이 자식 뭐지?’ 하는 표정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거, 사람이 통성명을 하면 반응을 좀 보이는 게 예의 아닌가?”
음, 사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인지…….
게다가 방금까지 띠꺼운 표정으로 노려봤으면서.
나는 준우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준우도 나랑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유라야.”
준우는 나보고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나를 불렀고, 결국 나는 최지혁의 뒤에서 튀어나와 하하하 웃으며 아저씨 손을 덥석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채유라라고 해요! 이번에 게이트 같이 들어가시는 분이시죠? 범길드 많이 들어봤어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