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45)

“어……. 에르켈, 안녕. 나는 채유라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일단 웃으며 에르켈에게 손을 내밀었고, 분홍 머리의 천사 에르켈은 경계하듯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내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촤악! 날개가 펄럭이며 깃털이 나풀나풀 날렸다.

오우, 어제 대청소했는데. 안 그래도 조만간 집 비워야 해서 진짜 깨끗하게 치웠는데.

“오, 마스터 표정 안 좋다.”

나는 머쓱하게 악수하자고 내민 손을 거뒀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럼그럼, 나는 이해해.”

그때였다. 에르켈이 굉장히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성좌. 넌 정체가 뭐지? 성좌라고 하기에는 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응? 나?”

나는 갑작스러운 자아성찰 질문에 당황해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다행히 그에 대한 대답은 리온이 대신 해주었다.

“넌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걱정 마, 마스터도 모르거든.”

“…….”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묘하게 기분이 좀…….

“그럼 넌 아는 게 뭐지?”

“음, 저기 친구. 초면부터 아는 게 뭐냐고 묻는 건 조금 기분이 이상하네?”

내 말에 에르켈은 날개를 또 펄럭……. 아니, 날개 펄럭이면 깃털 떨어지니까 좀 가만히 뒀으면 하는데.

환장하겠다.

“야. 그딴 식으로 할 거면 꺼져.”

그때였다. 최지혁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에르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최지혁의 말에 에르켈이 크게 움찔거렸다. 리온의 말대로 서번트 계약을 해지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맞나 보다.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아마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죽겠지?

그 세계는 소각 처리된다고 했으니까.

“봤지? 고집 피우지 말라니까.”

리온은 소파에 늘어져서 에르켈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태연하게 감자칩까지 주워 먹었다.

내가 소파에 누워서 뭐 처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또 저런다.

“리온, 부스러기 네가 치울 거야?”

“……크흠. 아무튼 에르켈. 적당히 하고 포기하라니까? 이미 끝났다고.”

리온은 소파에서 제대로 일어나 진지하게 말했다.

그에 에르켈은 리온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의 세계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악마놈 따위가 무엇을 안다는 것이냐.”

“오, 자신 있으면 서번트 계약 해지하든가. 마스터, 얘 집에 간대. 보내주자. 나도 천사 별로.”

리온이 내 쪽으로 뛰어와 내 팔을 잡고 붕붕 흔들며 말했다.

“사특한 악마 같으니!”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에르켈에게 말했다.

“빨리빨리 정하자, 우리. 선택지 줄게. 1번, 남는다, 2번, 계약 해지.”

내 말에 에르켈은 억울한 듯 표정을 씰룩이더니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번으로 하겠다.”

물론 나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에르켈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그래! 잘했어!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보자!”

핸드폰이 준 정보에 따르면 에르켈은 방어형 서번트였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긴 했으나, 잘만 하면 던전 안에 들어갔을 때 최지혁이 더 이상 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능력이었다.

최지혁은 안타깝게도 나를 너무 신경 썼다.

그대로 두면 계속 있을 레이드에서 분명 문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악마놈과는 함께할 수 없다.”

에르켈의 말에 최지혁이 열 받는다는 투로 말했다.

“까라면 까. 피곤하게 하지 말고.”

“…….”

진짜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했지만 효과는 있는 것 같았다.

에르켈은 침울한 표정으로 내게 무릎을 꿇었다.

뭔가 다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다.

“……나 대천사 에르켈 스트라빈스, 운명이 내린 계율에 따라 성좌의 숭배자로서 그대를 따르니.”

그리고 내 손을 가져가 입 맞추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피부에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뭔가, 분위기가 묘했다. 리온은 이런 거 안 했는데, 얜 뭐지……?

“마스터 눈빛이 이상하다.”

리온의 말에 최지혁이 황급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내 눈빛이 뭐가 어떻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는데.

“나의 주인이여.”

순간 이어지는 에르켈의 발언에 나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주인이라니, 미친 건가?

“워워워, 잠깐만. 주인은 좀 그런데, 호칭 좀 변경해줄래?”

“당신은 내 주인이다. 주인을 주인이라 하지 달리 무엇이라 하지?”

나는 어떻게 좀 해보라는 뜻으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세상에 불만이라는 불만은 홀로 다 품은 것처럼 꿈지럭대다가 못 참겠다는 듯 내 손목을 잡고 제 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주인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적당히 알아서 쳐 불러.”

“아오, 말 좀 예쁘게 하라니까?”

내 말에 최지혁이 씩씩대며 내게 물었다.

“넌 쟤가 용납이 돼? 지성준도 그렇고 리카르디온 저 자식도 그렇고 저 천사도 다 너 죽이려고 했는데 그게 용서가 되냐고.”

그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에게 속삭였다.

“나도 좋아서 이래요? 필요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난 괜찮으니까 걱정 그만해요.”

“뭐? 걱정? 하! 내가 언제 걱정을,”

“내숭 떨지 마요. 뭘 자꾸 아닌 척하고 있어.”

“…….”

나는 최지혁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참 정이 많은 것 같은데 꼭 저렇게 해서 듣는 사람 성질을 박박 긁어요.

“음, 원래 저러니까 저럴 때는 그냥 못 본 척하고 있으면 된다.”

“……닥쳐, 악마새끼야.”

“지혁지혁은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 그런다. 만만한 게 나지?”

나는 그냥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응. 리온, 일단 저리 가고 에르켈, 너도 나중에 보자, 안녕.”

그러자 뿅뿅 둘이 공간에서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자, 봐요. 둘 다 소환해도 아무렇지도 않죠?”

나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고, 그에 최지혁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표정만 계속 구겼다.

“최지혁?”

계속 대답이 없어서 내가 그의 어깨를 쿡 찌르자 최지혁이 곤란해 죽겠다는 듯 얼굴을 쓱 쓸었다.

“……채유라. 너도 알잖아. S급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죠.”

순간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냥 최지혁한테 물어볼까?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냐고?

왜 자꾸 나를 떼어놓고 싶어 하냐고?

나는 최지혁의 새카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눈동자에 내가 딱 비쳤다.

“넌…… 네 세계로 돌아가야 해. 그렇지?”

“그렇죠?”

최지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간절해?”

나는 최지혁의 질문을 해석해 보려 애썼다.

“당연히 간절하죠?”

“넌 날 믿냐?”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날 믿냐니. 저건 또 무슨 신종 헛소리지?

“그럼 내가 여기서 믿을 사람이 최지혁, 너 빼고 누가 있어요……?”

“……그러니까 뭘 믿고 내 옆에 붙어있냐고.”

최지혁의 질문에 인상을 팍 찡그리며 대답했다.

“너 믿고요. 네가 같이 살자면서요.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고. 왜요, 나 짐 싸서 나가요? 역시 돈도 생기고, 나도 능력 생겼는데 동거는 이제 좀 그렇,”

순간 최지혁이 다급하게 내 옷자락을 붙들고 말했다.

“뭔 소리야. 내가 깜빡하고 아직 말 안 했는데, 이미 우리 노리고 있는 타국 길드 자식들 많아. 타국 길드 말고 다른 조직들도 있으니까 그건 아니야. 이왕이면 붙어있는 게 좋아.”

뭔가 말이 우다다 나오는 걸 보니 황급히 만들어 낸 변명 같았다.

나는 실눈을 뜨고 가만히 최지혁을 살펴보았다.

“최지혁.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지 마. 왜. 뭐 물어보려고.”

최지혁은 그에 내게서 황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왜 저런담.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

내 물음에 최지혁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아니, 나야 뭐. 기회 되면 내 세계로 돌아가면 되니까 상관없는데, 미래의 여자친구가 불편해하지 않을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최지혁이 소리를 빽 질렀다.

“네가 그걸 왜 걱정하는데!”

“……아니 충분히 걱정할 만한 것 같은데……. 최지혁 씨 회귀 전에도 여자친구 없,”

“없는 게 아니라 안 만든 거라고!”

거참. 이게 그렇게까지 발끈할 일인가 싶다. 그리고 없는 거나 안 만든 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

최지혁은 아주 씩씩대면서 내게 우다다 달려와 강조하듯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없어. 없다고. 알겠어? 그러니까 그딴 질문 하지 마!”

“없으면 없다 하면 되지 뭘 또 그렇게 신경질을 내요? 어이가 없네.”

“네가 없는 얘기 지어내니까 그렇지!”

“내가 언제 지어냈대? 나는 단순하게 물어본 거거든요?”

“그게 그거라고! 아무튼 이미 집 다 구해놨으니까 나갈 생각 하지 마.”

나는 최지혁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던전에는 같이 들어가지 마라, 그러면서 집은 같이 써야 한다. 솔직히 나랑 뭐 하자는 건지 나 잘 모르겠는데. 내가 비정상이에요?”

내 말에 최지혁은 한참 뭔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 어물거리며 내게 말했다.

“난, 나는 그러니까 네 화신으로서 널 지켜야 할 의무가…….”

“네? 그런 의무가 왜 있어요? 누가 그러는데요? 어차피 화신이랑 성좌는 만나지도 못하는 거 아니었어요?”

“…….”

최지혁이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망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난 최지혁 씨한테 지켜달라고 안 했는데.”

“……채유라, 그러니까.”

“그리고 그쪽 논리가 좀 잘못된 것 같은데 화신이 성좌를 지키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 아닌가? 내가 너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최지혁이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나 이제 지켜 줄 수 있어요. 에르켈이 방어형 서번트라고 했으니까, 나 신경 쓸 일도 줄 거예요. 내가 뒤에서 열심히 서포트 해줄게요. 또 다치면 곤란하잖아요.”

그리고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최지혁?”

“……나가. 나가서 밥 먹어.”

“갑자기요?”

최지혁이 내 손목을 잡고 현관 밖으로 끌었다.

“어제 먹고 싶다던 칼국수집 찾아놨어.”

최지혁의 말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헐. 어디요?”

“차 타고 가야 해.”

“그거 내가 진짜 어제 스치듯 말했는데 기억하네? 감동이야. 완전 대박.”

“옷이나 가져와. 에어컨 바람 차.”

“아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