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45)

리온을 소환하는 건 최지혁이 너무 불안해하기에 조금 더 미루기로 했고,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 상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래서 차원 관리자가 뭔데? 그게 왜 나타나는데?”

“그게 문제예요. 왜 나타나는지 모르겠고,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아는 거 진짜 없어요? 일단 나는 아는 거 없어요.”

최지혁은 당당하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살짝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뻐끔거리더니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없어. 몰라!”

참내. 발끈하기는.

‘최근 던전에서 얻은 단서와 차원 관리자.’

나는 쥐고 있던 볼펜을 까딱거리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생각 좀 해봐요.”

그에 최지혁은 내가 써 놓은 글씨를 짚으며 말했다.

“직관적으로 해석해 보면 차원을 관리하는 새끼들 아니야?”

거참, 새끼들이라니.

내가 최지혁을 흘끗 째려보자 최지혁은 내 눈치를 쓱 보며 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존재들 아니야?”

“오.”

“……이게 왜 오야.”

“그럴듯한걸?”

“그러니까 뭐가 그럴듯한 건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최지혁이 말한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음, 그러니까 차원 관리자는 차원을 관리하는 존재고, 얘네들이 차원을 정리할 계획이라는 걸 우리가 알아서 나타났어요. 맞죠?”

“그거야 모르지. 네 핸드폰에 ‘때문에’라는 말은 없었잖아. 출몰에 대비하라고만 했지.”

“아……. 그건 또 그렇네.”

나는 열심히 끙끙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핸드폰 알림은 최지혁이 게이트 안 던전들이 대부분 멸망 중인, 혹은 멸망한 세계라고 말했을 때 나타났다.

그렇다면 최지혁의 말은 사실이라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닌 던전도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고?

“……다른 건 모르겠고. 이건 확실해.”

최지혁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요?”

내 물음에 최지혁은 조금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더니 제 손을 내 손 근처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특별하다는 거.”

“…….”

어감과 어조가 굉장히 이상했다.

나도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하필이면 단둘이 있을 때 저토록 진지하게 말할 일인가 싶었다.

“아, 하하. 네. 나 특별하죠. 하하.”

나는 괜히 어색해져서 웃고 말았다. 하지만 최지혁은 거기서 한마디를 더 얹었다.

“채유라.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야.”

추가로 내 손도 덥석 잡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손까지 잡고 강조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장난으로 안 받아들였는데…….”

“넌 각성자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성좌야. 알아?”

“……알긴 아는데. 그래도 노골적으로 성좌라고 강조는 좀……. 어감이 그렇지 않아요?”

내 말에 최지혁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괜히 나는 변명하듯 최지혁에게 주절댔다.

“내가 다 말해줬잖아요. 나는 신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네가 방송으로 보였다니까? 나는 처음에는 진짜 게임인 줄 알았어요. 물론, 얼마 안 가서 게임 아닌 거 알긴 했는데…….”

내 말에 최지혁이 잡고 있는 내 손을 제 쪽으로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내 성좌였다는 사실이 달라져?”

“……음, 그건 아닌데. 그래도, 성좌는 보통 신이라면서요. 나는 신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

“채유라. 지금 그게 중요해?”

최지혁이 자꾸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팍 구겼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

최지혁이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물론 그 와중에 내 손을 놓아주지는 않았다.

왜 손잡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볼 분위기 아니니까 참아야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뭔가 알 것 같아요?”

나는 최지혁의 곁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붙이며 물었다.

“응?”

내가 얼굴을 최지혁에게 들이밀며 묻자 최지혁은 제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대답했다.

“저번에도 내가 말했듯이 성좌들은 신이야. 그리고 후원하던 화신이 강해지면 그 몸으로 강림하려 들지.”

“헐, 강림? 말도 안 돼!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처음 듣는 얘기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그에 최지혁은 잠깐 놀란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성준.”

“지성준이 그렇게 말했어요?”

“……회귀 전에 그놈 성좌가 강림하려고 했대.”

최지혁은 엄지로 내 손등을 살짝살짝 문지르며 대답했다.

“헐…….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대?”

나는 잠시 최지혁의 몸에 내가 강림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음, 그러면 일단 키는 확실히 커지고, 얼굴도 잘생겨지고 또 없던 게 생…….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얘 내가 자기 몸 뺏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최지혁의 손을 뿌리치고 내 몸을 엑스자로 가리며 외쳤다.

“나는 네 몸 뺏을 생각 없어요! 내 몸이랑 안 바꿔!”

“……채유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난, 난 싫어!”

내가 최지혁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자 최지혁이 쓱 제 몸을 훑었다.

그리고는 잠시 내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하나 싶더니 곧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내 몸이 어디가 어때서!”

“싫어! 꺅!”

나는 호다닥 거실로 도망갔다. 물론 발끈한 최지혁이 쫓아왔다.

“뭐가 싫은데!”

“왜 쫓아와요!”

내가 기겁하며 최지혁에게 묻자 그는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채유라, 내가 싫어?”

“뭐래!”

“내 몸이 왜 싫은데? 그 빌어먹을 멸치처럼 생겨야 좋다는 거야?”

쟤는 왜 또 헛소리야! 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난 네 몸에 빙의되기 싫다고! 아이 러브 마이 셀프!”

“네가 왜 내 몸에 들어오는데! 그리고 영어 쓰지 마……!”

“아, 네가 성좌들이 화신 몸으로 강림한다면서요! 난 싫다고!”

“누가 너보고 들어오래? 이리 안 와?”

결국 최지혁이 덥석 나를 잡아 번쩍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

거참, 자꾸 본인 힘 세졌다고 덥석덥석 들어 올리는데 뭔가 억울했다.

“이거 놔줘요! 강림 싫어!”

“강림 안 된다고! 네가 무슨 수로 내 몸에 들어올 건데!”

“아, 상상했어! 악!”

“……뭘 상상하는데.”

“으엉.”

내가 두 손에 내 얼굴을 묻고 울상을 짓고 있으니 최지혁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섰다.

그리고 한 10초인가 후에 경악했는지 나를 거실 소파에 내려놓으며 소리를 질렀다.

“……채, 채유라. 너 미쳤어? 도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최지혁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최지혁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 생각 안 했는데.”

“……거짓말 치지 마!”

***

나는 정말정말 리온을 소환하고 싶었지만 결국 일주일이나 더 미뤄졌다.

그리고 나는 강제 감금령에 처해졌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쉬란다.

“…….”

최지혁 딴에는 내가 3일이나 기절했던 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나 보다.

내가 그냥 당장 소환해 보자고 몇 번 말했지만 양보는 절대 없었다.

진짜 진지하게 안 된다고 했다. 눈까지 부릅뜨면서.

나도 거기에다 대고 고집부릴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최지혁이 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는 게 이상했다.

준우 말로는 내가 쓰러진 3일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내 병실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내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도 정신을 못 차리니까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았다.

아직 각성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병에 관련한 의료체계가 정리된 것도 아니고, 최지혁이 그쪽으로 전문가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같이 지내던 사람이 아프면 걱정할 수 있다.

당연한 거다.

그런데 3일 내내 밤을 새우고 밥도 안 먹을 정도로 우리가 가까운 사이냐 이거지.

최지혁은 우리 아빠가 아니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우리 삼촌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모부도 아니고 이모부도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최지혁과 나는 완전히 남이란 이야기다.

남이 기절했다고 3일 밤낮을 새워가며 간호하고 아직까지 내가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최지혁이 정이 많고 순둥순둥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객관적으로 따지고 봤을 때 최지혁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만약에 반대 상황이었어도 나도 최지혁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순간 예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날, 내가 최지혁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고, 스트리밍 방송에 들어오지 않은 날.

최지혁이 반쯤 죽어서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나는 최지혁의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던 옷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최지혁. 또 뭔 짓 하고 다니는 거야.”

그냥 청소한다고 설치지 말 걸 그랬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라니까 이상하게 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 같았다.

“……미치겠네.”

숨길 거면 제대로 숨기든가.

이리저리 찢긴 채로 피에 푹 절어있는 남자 셔츠를 쥐고 나는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누가 봐도 최지혁 거다.

어쩐지 요즘 들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밖으로 나가더라.

‘박도경이 할 얘기 있대. 돈 가져올게.’

‘집이랑 사무실 좀 알아보고 올게.’

‘지성준 호출.’

친하지도 않은 지성준 핑계까지 대면서 말이다.

마음이 매우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통화로 지성준과 이야기하던 게 떠올랐다.

일본에서 열리는 S급 던전. 결국에는 갈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최지혁의 등급으로 S급 던전은 아직 무리였다.

그러니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결국 아무 던전이나 들어가 닥치는 대로 등급을 올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여유 있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최지혁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설마, 내가 쉬는 동안 몰래 혼자 던전이라도 돈 건 아니겠지?’

생각할 것도 없이 100%다. 나 몰래 던전을 돌지 않는 이상 피범벅인 셔츠가 침대 밑에 왜 있겠어.

나는 최지혁의 방에서 쪼그려 앉아 빳빳해진 셔츠를 만지작거렸다.

왜, 말 안 했을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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