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하겠다. 3일을 굶어? 미친놈인가?
“어, 유라야. 형이 완전 굶은 건 아니고…….”
“안 굶긴 뭘 안 굶어. 기껏 밥 챙겨 줬더니 아무것도 안 먹고 골골대더니 내 그럴 줄 알았어, 최 헌터.”
“……닥치시죠.”
도경 아저씨는 이미 최지혁에게 버르장머리를 기대하는 건 포기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최지혁의 그간 행적을 내게 열심히 일러바쳤다.
“거, 최 헌터가 유라 양을 굉장히 각별하게 생각하는 거 같으니까 많이는 혼내지 말고 적당히 혼내.”
“그냥 다 나가라고!”
“아, 왜 내쫓아요! 아저씨, 아주머니한테 반찬 잘 먹겠다고 꼭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뭘 바리바리 싸 오신 도경 아저씨에게 말했다.
“어휴, 이 정도는 기본이지, 기본.”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거의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했다.
도대체 내가 기절한 사이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준우의 얼굴이 핼쑥해진 걸 보니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또 네가 의사니까 나 깨우라고 난리난리 쳤겠지, 뭐.
“준우야,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내가 왜 기절했는지는 모르신대?”
내 물음에 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교수님도 잘 모르겠대. 아마 형 말대로 리온이 사라진 이유랑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이쪽으로 한번 알아볼게. 너무 걱정하지는 마.”
아까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는 리온과 새로 계약을 완료한 천사가 서번트 목록에 떠 있었다.
아마 리스트를 누르면 소환이 가능한 것 같았지만 최지혁이 지금은 절대 안 된다고 발악하는 바람에 눌러 보지는 못했다.
“퇴원은 언제 할 수 있대?”
“아마 영양제 맞고 내일이면 할 수 있을 거야.”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괜찮은데?”
내 말에 최지혁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채유라.”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최지혁이 깎아 놓은 사과를 집어 먹었다.
“음, 맛있다.”
“말 돌리지 마.”
“최지혁 사과 진짜 예쁘게 깎네요? 칼 쓰는 직업이라 그런가, 과도도 잘 쓰네?”
내 말에 준우가 아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라야, 그거 감자칼로 깎은 거야.”
“강준우 안 닥쳐?”
“넵.”
***
지성준의 말대로 정말 제네바에 S급 게이트가 열렸다.
당연히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유럽은 초토화가 됐고, S급 게이트 여파로 정부가 무너진 나라도 여럿이었다.
무려 스위스인데 게이트 진압에 실패하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S급 게이트가 위험하다는 소리겠지?
-“X친 최지혁, 아직도 저 등급에서 빌빌 기면 어쩌라고! 일본 S급까지 한 달 남았어, X친놈아!”
“X끼야. 등급이 뚝딱 오르는 줄 아냐? 답답하면 네가 발로 뛰든가. 안 그래도 한국에 등급 올릴 게이트도 안 열려서 환장하겠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출국 금지 때려놔서 해외도 못 도는 거 몰라? 일 제대로 하는 거 맞냐? 세금 먹고 일하면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개X끼야.”
-“……미친 노친네들, 그러니까 그걸 왜 막고 X랄이야!”
“그걸 네가 알아야지 왜 나한테 묻고 X랄인데.”
그리고 내 옆에서도 온갖 육두문자가 왔다갔다 난리가 났다.
나는 도경 아저씨 부인분이 주신 오미자에이드를 마시며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퇴원한 후 내 몸은 아무 이상 없이 건강했고, 리온을 다시 소환해도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최지혁이 난리를 쳐서 일주일 동안 둘이서 지내는 중이었다.
깐족대던 리온이 없으니까 솔직히 좀 심심했다.
“최지혁, 우리도 슬슬 게이트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최지혁의 옷자락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묻자 최지혁은 인상을 빡 쓰며 내게 말했다.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던전을 또 가.”
“일주일!”
“안 돼.”
“아, 왜요. 나 진짜 멀쩡하다니까? 내가 왜 쓰러졌는지는 리온 소환하고 물어보면 되잖아요. 응?”
최지혁은 환장하겠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핸드폰에다 대고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다.
“끊어. 바빠.”
-“백수놈이 바쁘긴 뭘 바빠, X끼야.”
“민원 넣는다, 개X끼야.”
-“X이나 먹어라, 개X식아.”
“존대 안 하냐?”
-“X발, X발! XXXXXX!”
최지혁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육두문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똑같이 육두문자를 뱉어 주었다.
역시 성격 똑같은 놈들이라 잘 맞는다.
초딩인가, 진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새로 산 TV를 틀었다.
한국은 사상 초유의 멸망에 나름 잘 대비 중이었다.
지성준의 덕이 크겠지만 거의 유일하게 각성자들 정보 등록이 다 완료된 국가이며 게이트 관리도 체계적으로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 처리가 다른 나라보다 빨랐다.
게다가 최지혁의 출입 시 QR체크 아이디어도 누가 공문을 올렸는지 승인되었다고 오늘 오전에 기사도 떴다.
“아, 맞다. 아직 전화 끊지 마요! 나 할 말 있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날 쳐다보았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최지혁에게 바짝 붙어서 핸드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지성준!”
-“……뭐야, X발.”
역시 이쪽도 예의범절이 하와이 갔다. 하지만 익숙하니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채유라, 안 떨어져?”
최지혁은 바짝 얼어붙은 채로 제 몸을 내게서 쭉 뺐다.
“나라에서 대학생 헌터들 무료 과외 해주는 정책 좀 추진해봐요! 우리 팀원 중에 의대생 한 명 있거든요? 서울 너무 멀어서 인천으로 거처를 좀 옮겼으면 해서!”
내 말에 수화기 너머의 지성준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내가 민원센터냐!”
“일주일 안에 좀 해줘요, 알겠죠? 우리가 한국대 의과대 교수님을 협박할 수는 없잖아요!”
-“…….”
“그런 걸로 알게요!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최지혁은 급하게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아, 왜 끊어요!”
“쟤랑 밥을 왜 먹어!”
최지혁의 얼탱이 없는 질문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왜 먹냐고!”
“……최지혁. 한국인 3대 인사 몰라요?”
“…….”
“언제 밥 한번 먹자, 식사하셨어요, 밥은 먹고 다니냐! 이 바보야!”
내 말에 최지혁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진짜 바보야? 왜 저래?
“……웃지 마, 채유라.”
“안 웃었는데.”
“거짓말 치지 마.”
“바보.”
나는 결국 배를 잡고 푸하하 웃었다. 진짜 가만 보면 웃긴 성격이다.
“웃지 말라고!”
“아씨, 웃긴데 어떡해! 누가 밥 한번 먹자는 얘기를 그렇게 받아들인대. 그리고 밥 한번 먹으면 어때서!”
내 말에 최지혁이 씩씩대며 대꾸했다.
“넌 그 자식이 납치하려고 한 거 벌써 까먹었어? 지금 그 소리가 나와?”
“나는 과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여자라 잘 모르겠네.”
“이제부터 신경 써.”
“싫은데.”
나는 최지혁에게 혀를 쭉 내빼고 내 방으로 도망갔다.
당연히 최지혁은 뿔난 얼굴로 내 방까지 따라 들어왔고 나는 깔깔깔 웃었다.
은근 귀엽단 말이지.
“알았어요. 알았어. 밥 안 먹으면 되잖아. 아오, 최지혁 완전 예민해.”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알았어요. 아, 배고프다. 오늘 뭐 먹지.”
나는 다시 최지혁에게 질질 끌려 나오며 핸드폰을 살폈다. 그리고 최지혁을 흘끗 쳐다보았다.
“근데, 최지혁.”
“리온 안 돼.”
“왜 말 끊어요.”
“소환하면 안 되냐고 물어볼 거잖아. 내가 몰라?”
최지혁은 잔뜩 삐진 표정으로 내게서 고개를 팩 돌리고 켜놓은 TV만 쳐다보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선거 방송 토론 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차 게이트 관련 정책 토론회의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김연진입니다. 오늘 토론회는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 후보들의 정책을 살펴보고 검증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라 최지혁에게 물었다.
“미친, 최지혁!”
“왜.”
“대통령 선거 해요? 이 시국에?”
“보면 몰라?”
최지혁은 여전히 뾰루퉁하게 내게 대답했다.
-“오늘 토론 주제는 게이트 발생 등 재난 대응책이라는 주제로 토론 진행하겠습니다.”
최지혁은 화면을 보며 시니컬하게 말했다.
“어차피 정부 무너지기까지 3년 남았는데 쇼를 하네.”
그에 나는 최지혁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왜 때려!”
“아주 무너지라고 고사를 지내요, 고사를! 기껏 회귀했는데 왜 또 정부를 무너트려!”
“어차피 정부 같은 거 아무 도움 안 돼. 허구한 날 쓸데없는 걸로 진 빼는데 있어봤자 방해만 된다고.”
환장하겠다.
“그래서 정부가 무너진 결과가 어땠는데요? 온갖 범죄가 판치고 공권력도 없고 시스템도 없으니까 헌터들 날뛰고!”
“왜 나한테 뭐라 그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최지혁에게 물었다.
“회귀 전에도 선거 했어요?”
“어.”
“누가 됐는데요.”
“몰라. 관심 없어.”
나는 순간 최지혁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칭찬을 받을지 고민했다.
“……채유라. 그만 째려봐.”
“후……. 최지혁, 빨리 누가 됐는지 기억해 내요.”
내 말에 최지혁이 입술을 쭉 내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라사랑당 김국선. 한국에 S급 던전 터지고 죽어. 어차피 누가 되든 의미 없다고.”
저거저거 또 알면서 모른다고 구라를 깠다.
나는 최지혁의 팔뚝을 열심히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어차피 안 아파해서 세게 때려도 상관없었다.
“네가 대통령 할 거 아니면 의미 타령 집어치워요. 진짜 헛소리하고 있어! 대통령이 왜 안 중요해!”
나는 머리를 감싸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졌다.
어떡하지?
이런 상황에 지도자는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의미가 없다는 건 진짜 헛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곳의 정치 상황을 잘 몰랐다. 만약 당선되는 사람이 최지혁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라보다 본인의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이너스이다.
그러니까, 이에 대해서 알아보긴 해야 했다.
갑자기 리온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걔가 있으면 맨날 헛소리해서 불안함을 정신 사나움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진짜 리온 부르면 안 돼요?”
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싫어. 너 또 기절하면 나더러 어쩌라고.”
나는 울상을 지으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해요. 평생 리온 부르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