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마스터, 망했다. 말이 안 통한다!”
리온은 꺄아악거리며 내 뒤로 냉큼 달려왔다.
그에 최지혁은 리온의 뒷덜미를 콱 잡아채며 내 등 뒤에서 제 앞으로 질질질 끌고 오며 소리쳤다.
“어디로 숨는 거야!”
“쟤가 나 보고 발작하는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 지혁지혁!”
환장하겠다. 이미 저 천사는 옅은 분홍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눈에서 빔 같은 걸 쏘아댔다.
“으악!”
나와 준우는 급하게 반대 방향으로 몸을 굴렸고, 그 덕에 리온의 장식장이 박살이 났다.
“저저저, 미친 천사!”
리온이 기겁을 하며 분노했고, 최지혁은 제 검을 빼 들고 내게 물었다.
“채유라, 말해. 죽여?”
“안 돼! 죽이면 안 돼요!”
나는 핸드폰을 들고 최지혁에게 말했다.
“내 핸드폰을 쟤가 손에 쥐어야 하는데!”
그에 최지혁이 침묵했다. 표정이 꼭 ‘저렇게 날뛰는 놈한테 무슨 수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지혁은 할 수 있다!
왜냐고?
최지혁이니까!
나는 내 핸드폰을 최지혁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최지혁 화이팅!”
그에 옆에서 눈치를 보던 준우가 최지혁을 보고 말했다.
“형 화이팅!”
“……제기랄.”
최지혁이 욕할 새도 없이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천사가 리온한테 꽂혔는지 리온만 노린다는 점이었다.
“왁! 마스터, 살려줘!”
“살려달라 하지 말고 쟤랑 대화를 해봐!”
내 말에 리온이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말이 안 통한다고 몇 번 말해, 마스터!”
“더 시도해 보라고!”
리온은 열심히 천사를 피해 도망치며 입을 놀렸다.
“에르켈! 어차피 우리 세상은 망했다! 체념하고 무릎을 꿇어라, 망할 천사야!”
나는 그냥 리온의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거기 계신 천사분? 우리 대화라는 걸 해보지 않을래요? 지금 상황이 많이 심각해서, 엄마야!”
천사는 내 쪽으로 검을 홱! 휘둘렀다.
“말하는데 공격하는 게 어디 있어!”
내 앞에 있던 리온이 나를 안고 옆으로 빠졌다.
준우는 후방에서 내게 말했다.
“유라야, 나 이거 한 번만 써 봐도 돼?”
그리고 허공에서 주사기를 빼 들었다.
최지혁은 그런 준우를 발견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아씨, 그런 거 묻지 말고 걍 던져!”
“네, 형!”
준우가 있는 힘껏 주사기를 천사에게 던졌다. 파파박! 천사의 몸뚱이에 주삿바늘이 꽂히자 순식간에 천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역시 A급!
“채유라, 그 자식들 오기까지 몇 분 남았어.”
최지혁의 물음에 나는 방어구로 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0분!”
내 말에 최지혁은 이를 악물고 날뛰는 천사의 주의를 끌었다.
“독으로 뒤지기 싫으면 의사소통 좀 하지? 반조류?”
이놈의 인간들, 다들 대화할 생각이 없다. 환장하겠다.
나는 최지혁에게서 내 핸드폰을 앗아 오며 천사를 향해 말했다.
“이봐요, 천사분! 당신 나랑 대화 안 하면 죽어요! 당신이 말하는 렘브란트 님이 우리한테 부탁한 것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죠!”
내 말에 천사가 공격을 멈췄다.
남자들은 내 말에 도대체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렘브란트 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봉인을 풀어달라고 했어요. 이 세계는 멸망했으니 당신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천사에게 다가갔다. 물론 최지혁이 기겁해서 내 손목을 붙들고 물었다.
“너 미쳤어?”
“가만있어 봐요, 좀.”
최지혁의 손을 뿌리치고 열심히 주둥이를 나불거렸다. 내 기가 막힌 구라가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나랑 손잡아요. 그러면 살 수 있어요.”
나는 세상 친절하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감히 하등한 인간 따위가.”
천사가 내 목을 틀어쥐고 허공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커헉!”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가 핑 돌았다. 난생처음으로 목을 졸려 보았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채유라!”
최지혁이 패닉이 된 얼굴을 하고 검을 똑바로 들어 당장이라도 천사의 목을 찔러 버리려고 달려들었지만 천사가 더 빨랐다.
“다가오면 이 인간 여자는 죽는다.”
숨이 막혔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최지혁은 천사의 말도 안 되는 협박에 얼어붙어 버렸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겐 계획이 있었다.
천사에게 목을 붙잡혀서 조금 괴롭긴 했지만 그 덕에 천사와 내 거리가 가까워졌다.
핸드폰을 굳이 손에 쥐여줄 필요가 있을까?
아니?
나는 곧장 핸드폰을 천사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우읍! 이가여즈!”
“커헉, 얌전히, 있, 허억!”
나는 공중에서 발을 버둥거리며 있는 힘껏 핸드폰을 더 깊숙이 처박았다.
슬슬 버티고 있기 힘들어졌다.
-“서번트 등록,”
다행히 내 예상대로 핸드폰은 안내 음성을 내뱉었고, 나는 핸드폰의 안내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해!”
리온과 계약을 맺을 때와 동일했다.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시야가 흐려지긴 했지만 사방에서 푸른빛 사슬이 쏟아져 나오며 철컥, 천사의 목에 걸리는 게 보였다.
나는 직감했다. 곧 기절 각이다.
“최지혁, 나 기절!”
“……젠장, 채유라!”
천사는 힘없이 나를 놓쳤고, 최지혁은 내게로 뛰어오며 허공에서 떨어지는 나를 받아냈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웅웅 울렸다. 제발 저게 던전 클리어 알람이었으면 좋겠다.
“채유라, 정신 차려, 유라야, 제발!”
눈이 막 감겼다. 안 뒤지니까 호들갑 그만 떨라고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이 새카매졌다.
***
“형, 교수님이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 없다니까 일단 좀 쉬어요.”
“…….”
“그래, 최 헌터. 안 그래도 집에서 밥 좀 해왔으니까 그거 먹고 눈 좀 붙여. 거, 준우 군 교수님께서 유라 양 괜찮다잖아.”
주변이 시끄럽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됐습니다. 제가 볼 테니 다들 나가시죠.”
잘 들어보니까 최지혁이랑 준우랑 도경 아저씨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리온 목소리가 안 들리지?
“형, 잠도 안 자고 거기서 벌써 3일째예요……. 그러다가 유라 일어나면 혼나요.”
“허, 답답하긴.”
사람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어코 쫓아낸 모양이었다.
눈을 떠야 하는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최지혁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손가락을 스치듯 건드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뭘 안다고.”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최지혁은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채유라, 빨리 일어나,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까 일어나라고.”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일단 빨리 일어나라는 것 같아서 최대한 벌떡 일어나 보려고 노력해봤다.
그런데 진짜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갔다.
신음이라도 흘러보려고 끙끙댔으나 목소리도 안 나왔다.
“유라야……. 눈 좀 떠봐.”
당황했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와 어조였다. 지금 쟤 울려고 하는 거 맞지?
“무슨 말이라도 해봐, 제발.”
설마 했는데 진짜로 내 손끝에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그에 나는 기겁해서 옆에 있던 최지혁의 손을 탁, 잡아버렸다.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진짜 진짜 죽을힘을 다해 말했다.
“나 안 뒤졌…….”
그에 최지혁이 덥석 나를 안았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뭐라고 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최지혁은 그냥 가만히 나를 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정신이 혼미해서 아직도 눈은 안 뜨였다.
그래서 나도 최지혁이랑 똑같이 축 늘어진 채로 가만히 있어 주었다.
어차피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말이다.
나를 안고 파들파들 떠는 최지혁에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뭔데 애틋하고 난리야.
나 진짜 안 죽었는데, 꼭 죽다 살아난 사람 영접하듯 구는 최지혁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를 최지혁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내게 중얼거렸다.
“……정신 못 차리는 줄 알았어.”
그리고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얘는 환자를 너무 막 다루는 경향이 있다.
기력이 생기면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유라야…….”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 최지혁에게서 떨어지고 싶었다.
얘 왜 아까부터 자꾸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 난리니?
오글거리게!
나는 안 나오는 목소리를 다시 한번 쥐어짜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설명……. 리온…….”
그에 최지혁이 빳빳하게 굳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리온은 어디 가고 나밖에 없냐고?”
최지혁은 나를 껴안은 채로 조금 황당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시 자리에 눕혀줬으면 싶다.
좀 힘들다. 최지혁.
다행히 최지혁은 나를 도로 침대에 뉘어 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내가 왜 누워있는지. 리온은 어디 갔는지.
“……너 기절하고 3일 동안 못 일어났어. 의사들은 네가 왜 기절했는지도 모르고.”
“…….”
최지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자조적으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네가 왜 일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고.”
최지혁이 내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거참 쓸데없는 거에 미안해하네. 어이가 없었다.
의사도 모르는 걸 네가 뭔 수로 아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빌어먹을 천사를 서번트로 삼자마자 리온도 천사랑 같이 사라졌어. 넌 보다시피 기절해서 못 일어났고, 나는…….”
나는 그만 궁상떨라는 의미로 최지혁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서번트를 계속 소환하고 있었던 게 문제가 됐던 것 같은데, 나는 정말 네가 특별하니까 그게 일반적인 일인 줄 알았어.”
슬슬 기운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겨우 눈을 뜨고 최지혁을 잠깐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세상에. 꼴이 저게 뭐야.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수척해져 있었다.
지금 저 인간이 나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최지혁……. 설마, 밥 안 챙겨 먹었…….”
제기랄. 목소리가 안 나왔다.
“뭐? 밥? 배고파?”
나는 있는 힘껏 최지혁의 손등을 꼬집었다. 그리고 끙끙대며 말했다.
“……밥 먹어, 이 밥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