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45)

“마계로 가면 봉인된 건 어쩌고!”

“마계로 갔다가 시간 맞춰서 올라오면 된다, 마스터. 몇 분 남았다고?”

“12분!”

“마나석도 충분히 먹었으니까 이 정도는 완전 가능하지.”

리온의 눈이 순식간에 까뒤집어졌다. 그리고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자, 따라오시지. 다들.”

리온은 우리가 짚고 있는 바닥에 검붉은색 포털을 만들어 냈고, 우리는 그 안으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채유라, 꽉 잡아.”

“준우야, 내 손 잡아!”

우리 셋은 최지혁에게 꽉 달라붙은 채 포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친, 리카르디온 이 개자식아!”

“우왁! 세 명은 무리다!”

문제는 리온이 포털을 허공에 열어버렸다는 거다.

우리는 리온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미친 듯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추락하면 100퍼센트 죽음이다.

“포털을 허공에 열면 어떡해!”

“인간들은 날지 못하는 걸 깜빡했다, 마스터!”

“그게 말이야 방구야, 이 바보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최지혁의 품에 안겨 핸드폰을 켰다.

제발 뭐라도 나와라!

“채유라, 핸드폰 떨어져!”

“찾았다!”

‘[앨리배마산 양탄자.(알리바바 아님)]’

펄럭, 커다란 양탄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준우가 손을 뻗어 양탄자를 잡았고, 우리는 양탄자 위로 올라타 미친 듯이 헉헉댔다.

뒤질 뻔했다. 진짜로.

“마스터, 이게 뭐냐?”

리온이 신기하다는 듯 내게 말했고, 나는 커다란 양탄자 위에 뻗은 채로 최지혁에게 부탁했다.

“쟤 한 대만 때려요.”

“악! 마스터!”

나는 정신이 혼미해진 채 핸드폰으로 남은 시간을 살폈다.

“유라야, 괜찮아?”

“응. 아마도…….”

문제의 씨앗이 깨어나기까지는 정확히 8분 남았다. 시간 한번 더럽게 안 간다.

“리온, 그래서 어디로 숨을 거야.”

내 말에 리온이 최지혁한테 한 대 맞은 이마를 부여잡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집. 근데 마스터. 도대체 우릴 쫓아오던 그 미친놈들의 정체가 뭐냐?”

리온의 말에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원 관리자라. 정말 처음 듣는 존재들이었다.

그건 최지혁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내가 망설이자 최지혁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가 절대 상대 못하는 놈들인 거.”

도저히 상대할 엄두도 안 나는 존재들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쫓아올지도 몰랐다.

빨리 숨어야 했다.

“마스터. 저기다.”

리온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커다란 성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가. 장난칠 때 아니니까.”

최지혁이 리온의 말에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리온은 억울해했다.

“지혁지혁이랑 다르게 나는 마계 최고 부자다! 저거 내 집 맞다고!”

“……이게 근데,”

나는 발끈하는 최지혁의 손목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리온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천계로는 어떻게 올라가? 또 포털 만들 수 있는 거야?”

“……음. 글쎄, 마스터. 평소대로라면 지나가던 천사 한 마리 잡고 날개를 쭉 뜯으면 포털 슉슉 여는데 천사가 없네.”

“……망했어.”

준우가 절망한 얼굴로 리온을 쳐다보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얘를 믿은 내가 등신이지.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이제 어떡하지 싶었다.

최지혁 말대로 던전에 들어오지 말 걸 그랬나.

음, 생각해 보니까 그건 더 몹쓸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지혁 옆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하, 경험치도 못 먹고 뒤지게 생겼네.”

“최지혁. 말 좀 예쁘게 안 해요?”

“……와, 술래잡기 재밌겠다. 제기랄.”

최지혁의 말에 옆에서 가만히 있던 준우가 최지혁에게 물었다.

“……예쁘게 말한 거 맞아요, 형?”

최지혁은 대충 기분이 거지같다는 표정으로 제 머리에 달린 슈비슈비룬 헤어핀을 내 머리에 달며 구시렁댔다.

“내 편은 아무도 없네, 젠장.”

“최지혁. 지금 내 머리에 단 거 원위치로 안 돌려놔요?”

“……쪽팔리게 이걸 어떻게 하고 다녀!”

나는 가만히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이 인간이 이 상황에 폼 따질 때야?

그에 최지혁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진짜 진짜 짜증 난다는 얼굴로 머리핀을 도로 제 머리에 달며 말했다.

“빌어먹을.”

***

3분 남았다.

리온은 대충 본인의 집에 와서 신나는지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도 제 의상 및 무기 컬렉션들을 최지혁에게 열심히 던졌다.

“지혁지혁, 이것도 챙겨라. 바르세 비늘로 만든 외투다.”

“…….”

최지혁은 당연히 열 받아서 펑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유라야, 우리 이러고 있어도 돼?”

와중에 준우가 최지혁의 눈치를 쓰윽 보며 내게 물었다.

“……일단 아직까지 그 차원 관리자인지 뭔지가 안 나타났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결론적으로 리온의 선택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차원 관리자는 따돌렸다. 하지만, 천계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이대로라면 1시간 안에 이곳이 완전히 소각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음. 준우야. 만약에 여기가 완전히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내 말에 준우가 턱을 붙잡고 고민하더니 곧 정상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행성 성질에 따라서 다르지만 아까 용암이 나오던 걸 보면 분명 이 행성은 틀림없이 내핵을 가지고 있어. 내가 이쪽으로는 지식이 없어서 단언은 할 수 없지만 예로 들어보면…….”

“아무튼 소멸되면 죽는다는 거지?”

“응!”

다분히 이과적인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에 우주선을 검색해 보았다.

음, 없군. 망했네.

“리온, 일단 네 물건은 그만 챙기고 천계로 다시 올라갈 방법이나 떠올려 보지 않으련.”

내 말에 리온은 최지혁에게 제 물건을 던지는 것을 멈추고 곰곰이 고민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최지혁의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지혁지혁! 아까 그 검 챙겼지?”

“야. 이거 안 놔?”

“검 좀 보자!”

최지혁은 리온의 말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매섭게 말했다.

“왜.”

“빨리 내놔라!”

“그 검은 내 거야. 빌어먹을 악마.”

나는 이마를 짚었다. 지금 네 거 내 거 따질 때냐, 인간아.

“최지혁. 달라면 좀 줘요. 잠깐 준다고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진짜.”

내 말에 최지혁이 발끈하며 내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아니, 저 자식이 아까부터 나한테 뭐 맡겨 놓은 것처럼 굴잖아!”

“빨리 줘요.”

“채유라!”

“5, 4, 3.”

“아씨, 주면 되잖아! 준다고!”

“2.”

“숫자 그만 세!”

결국 최지혁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리온에게 검을 넘겨주었다.

설마 삐졌나?

나는 준우의 옆에서 슬쩍 최지혁의 눈치를 살폈다.

삐졌다. 100퍼센트 삐졌다.

진짜 초딩인가.

“흐음. 마스터, 굳이 천계로 안 가도 될 것 같다.”

리온은 검을 제 책상에 올려놓은 채로 말했다.

“몇 분 남았남, 마스터?”

“……1분.”

그때였다.

리온이 책상에 올려놓은 검이 우우우웅, 우우우웅, 진동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삐져 있던 최지혁은 그에 깜짝 놀라 재빠르게 내 앞을 제 널따란 등으로 가로막았다.

“채유라. 뒤로 가. 강준우 너도.”

최지혁의 말에 준우가 나를 뒤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묘한 긴장감에 대비라도 하려는 듯 제 스태프를 빼 들고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운이 좋네, 마스터. 찾은 것 같다. 봉인했던 물건.”

“리온, 그게 무슨 소리야?”

“대놓고 봉인을 풀어달라고 한 수준이네. 저거다. 대천사가 숨겨 놓은 씨앗.”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10초 남았음을 알렸다.

추가로 빌어먹을 차원 관리자가 15분 이내에 이곳으로 도착한다는 아주 친절한 메시지까지 말이다.

“최지혁. 15분 안에 해결해야 해요.”

“왜 또.”

“아까 본 걔들……. 차원 관리자가 여기로…….”

“제기랄.”

나는 기억을 더듬어 리온과 서번트 계약을 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분명 리온이 호기심에 내 핸드폰을 주워들었다가 강제로 계약 당해 버렸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 씨앗이라는 게 깨어나면 내 핸드폰을 잡게 하면 된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간단한 거 맞겠지?

그때였다. 책상에 눕혀져 있던 검이 순식간에 꼿꼿이 세로로 섰다.

그리고는 빠가각,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검에서 사람의 손이 튀어나왔다.

다음은 팔, 머리, 그리고 새하얀 날개까지.

굽이치는 결 좋은 핑크색 염색모에 투명한 피부,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색 눈동자.

아니지, 염색모가 아닌가?

“……네 녀석은……리카르디온 폰 카르테!”

순간 언급된 리온의 풀네임에 나는 깜짝 놀라 리온을 쳐다보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리온은 천사로 추정되는 인물을 마주하고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오, 렘브란트가 봉인한 게 너였나? 에르켈.”

“감히 이 세계를 등지고 비겁하게 도망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뭔 소리야? 니들이 죽으라고 날 인간계에 떨어트려 놨잖아. 그리고 멸망은 네놈들이 자초했고. 그러게 누가 멸망에 대한 예언을 너희들만 알고 꽁꽁 숨겨놓으래, 미친놈들아?”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망했다. 잡담할 시간 없는데.

나는 리온을 향해 대충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수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리온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허허, 거기까지 하고. 네 봉인을 푼 건 나야. 그러니까 우리 좋게좋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렘브란트 님을 죽이고 나를 봉인에서 해제시키다니! 나는 이 세계를 구원할 의무가 있다!”

“저기, 네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걔 내가 안 죽였거든?”

리온은 생뚱맞은 말에 당황한 듯 여자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우리랑 좋게좋게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망했다.

13분 남았다. 저 여자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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