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45)

분위기가 별로 좋지 못했다.

리온을 따라서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심장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생명체의 기척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바람 소리도,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정적.

오로지 우리 셋의 발자국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까 리온이 왜 혼란스러워했는지 매우 이해가 갔다.

이대로 간다면 완전히 분위기가 더 다운이 될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Abysswold in the building.”

나지막한 내레이션 소리가 울리자 최지혁과 준우의 걸음이 멈췄다.

-“HEY! 이건 너를 위한 신세계! New wold, New wold! 너는 마치 Chocolate, 나는 너의 Chef, Chef! 궁금해 궁금해 마치 Wolf, Wolf, Wolf!”

“…….”

“…….”

시끌벅적한 비트 덕분에 숨 막히던 정적이 깨졌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왜 그렇게 봐요?”

내 말에 최지혁은 낮게 탄식을 내뱉더니 허허 하고 웃었다.

“왜 그러냐니까요?”

내가 최지혁에게 따지듯 묻자 옆에 있던 준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 유라야. 곡 선택 멋있다.”

준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DUDUDUDUDU! 나의 건샷에 맞아 넌 기절! 새로 태어나는 New Born!”

노래 가사의 의미가 혼란스러운 게이트 사태에 대해 용기를 북돋아 주고 같이 헤쳐나가자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고 그저께 주간명곡에서 봤다.

“너무 조용해서 켜봤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또 그 애비스인지 뭔지냐?”

“……애비 아니고 어비스! 그리고 그냥 어비스 아니고 어비스월드! 아니, 근데 어떻게 어비스가 애비가 돼요?”

“그게 그거지. 내가 그것까지 알아야 해?”

최지혁은 똥 씹은 표정으로 열심히 내 선곡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흥, 지는 맨날 칙칙한 노래만 들으면서 훈수는.

내 게 훨씬 좋구만.

“하하하, 이제 좀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네요.”

준우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만 티격태격하라는 뜻 같았다.

나는 준우의 돌려 말하기 기술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잠자코 노래를 감상했다.

하지만 최지혁은 정말 남의 이야기 따위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 투덜댔다.

“그 말라비틀어진 새끼들 뭐가 좋다고 난리야.”

리온은 우리가 떠들건 말건 유유자적 앞을 향해 계속 날아갔다.

말로는 괜찮아진 척하는데 아직 안 괜찮은 것 같았다.

평소라면 벌써 뒤를 돌아보고 최지혁의 말에 토를 달았을 텐데 안 그러는 걸 보니 뻔했다.

“형, 그래도 유라가 좋아하는 아이돌 같은데 말라비틀어진 건 좀…….”

“그럼 허수아비 같은 놈들 보고 말라 비틀어졌다고 하지 뭐라고 하는데?”

나는 못 들은 척 ‘번쩍번쩍 기력회복 막대사탕 오렌지맛’을 구매한 뒤 최지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정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지도 몇 개월 전까지 허수아비였으면서 어이가 없다, 어이가.

“시끄럽고 빨리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나 생각해 봐요. 좀.”

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최지혁의 등급을 올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살짝 망한 것 같다.

아니 대차게 망했을지도.

던전이 이렇게 이상해진 게 나 때문인지 리온 때문인지는 몰라도, 클리어 조건 자체가 없으니 상황이 나쁘게 흘러간다면 여기 아예 갇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유라야. 그런데 쟤 어디 가는 거야?”

준우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가만히 리온의 뒤꽁무니를 쳐다보았다.

리온은 길을 알기는 하는 모양인지 자꾸 어딘가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저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인 것 같았다.

정신이 살짝 아득해져 왔다.

엄청 멀어 보이는데 설마 저기를 올라갈 생각인가?

등산은 딱 질색인데.

“음……. 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조용히 하고 따라가는 게 어떨까? 뭔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넉넉하게 줘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기가 좀 그렇네.”

내 말에 최지혁이 어이없다는 듯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빼고 날 쳐다보며 말했다.

“쟤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배려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동료한테 이 정도 배려는 해요. 최지혁 씨.”

“맞아요, 형.”

“…….”

최지혁은 분한 듯 열심히 나를 째려보며 다시 사탕을 빨기 시작했다.

흥. 그렇게 쳐다봐도 안 무섭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눈 좀 착하게 뜨면 안 돼요?”

“내 눈이 뭐.”

“누가 보면 지리겠어요.”

“…….”

내 말에 최지혁은 샐쭉한 눈을 씰룩거리며 내 부탁에 응하는 듯싶었다.

물론 그런다고 착한 눈이 되는 건 아니지만 노력은 참 가상하다.

그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 사람이 보면 볼수록 겉과 속이 다르단 말이지.

“……비웃지 마, 채유라.”

“이게 어떻게 비웃은 거예요? 미소 지은 거지! 진짜 어이없어. 안 그래, 준우야?”

“응. 조금……?”

***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던전 수백 수천이야. 체력 길러.”

“헉, 네!”

최지혁과 준우는 꽤 잘 맞았다. 준우는 나름 최지혁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나한테 최지혁이 멋있다고 한 적도 있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최지혁은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헌터라는 직업으로 보면 솔직히 멋있긴 했다.

절대 최지혁이 내 편이라 그런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얼굴 사납게 잘생겼지. 성격 더럽지. 본인 일에 열정적이지.

‘아…… 아닌가? 안 멋있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마스터.”

“응?”

리온이 드디어 1시간 20분 만에 입을 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최대한 다정하게 대답했고, 리온은 착잡한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말했다.

“거의 다 왔어. 헤카트리온의 심장부.”

리온의 길쭉한 손가락이 산꼭대기를 향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무슨 헛소리야.”

당연히 최지혁은 리온이 가리킨 민둥산만 덜렁 있는 꼭대기를 보고 필터를 전혀 거치지 않은 사실만을 말했다.

그에 리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직 천사놈들이 걸어놓은 결계가 작동하는 모양이야. 이건 깨면 돼.”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최지혁의 검을 뺏어 내게 넘겨주었다.

최지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리온을 깡패 보듯 쳐다보았으나 리온은 신경도 안 쓰는지 그냥 태연하게 내게 말했다.

“마스터면 그냥 깰 수 있을 것 같은데. 저기 균열 같은 거 안 보여?”

리온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정말 커다란 나무 구석쯤에서 황금빛이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최지혁의 검을 그 균열에 쿡 찔렀다.

“채유라, 그게 뭔 줄 알고 막 찌르는데!”

그때였다. 바로 코앞에서 쩌정! 하고 투명한 무언가가 갈라졌다.

최지혁은 급하게 내 허리를 낚아채 뒤로 확 끌어당겼다.

나는 멍하니 앞을 쳐다보았다.

“미친…….”

준우가 어울리지 않는 험한 말을 내뱉었다. 그럴 만했다.

왜냐면 리온의 말대로 그 결계라는 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마치 거대 LED스크린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조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봤지? 마스터는 별 무리 없이 깰 것 같았다고.”

나는 최지혁에게 허리를 안긴 채로 멍하니 리온을 쳐다보았다.

나라면 무리 없이 깰 것 같았다니? 도대체 저게 뭔 뜻이야?

“강준우.”

“……네?”

최지혁이 진지하게 준우에게 말했다.

“여기서 본 거, 들은 거, 다 비밀로 하는 거 알지?”

“아, 당연하죠.”

“무덤까지 닥치고 있어라.”

나는 아직까지 뭐가 뭔지 파악이 안 돼서 머리만 팽팽 굴렸다.

아까 리온의 목에 걸려 있는 사슬도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못 봤다.

나한테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건가? 이상한 핸드폰을 제외하고도?

“저게 헤카트리온의 심장이다, 마스터. 뭐, 이제 아무 의미 없긴 하겠지만.”

결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리온이 가리킨 산꼭대기에는 아주 커다란 죽은 나무 뒤로 무너진 신전 같은 게 보였다.

“……분명 빌어먹을 천사놈들이라면 뭔가 숨겨놨을 게 분명해. 일이 이렇게까지 된 단서라든가. 아니면…….”

리온이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 붉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최지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인상을 빡 쓰고 내가 들고 있던 제 검을 앗아갔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잡은 채 죽은 나무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 해, 안 따라오고.”

나는 최지혁에게 질질 끌려 걸음을 옮겼다. 곧 최지혁이 답답했는지 나를 번쩍 둘러업고 죽은 나무가 있는 곳으로 펄쩍펄쩍 뛰어갔다.

“형, 잠깐만요!”

“빨리 올라와.”

최지혁은 순식간에 산꼭대기까지 뛰어 올라와, 나를 나무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내게 바짝 다가와서 말했다.

“채유라.”

“…….”

나는 익숙하지 않은 최지혁의 진지한 분위기에 조금 어색해서 괜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최지혁은 뒤로 물러나는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네 특성이 뭔지 영원히 숨기지는 못 할 테니까 이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최지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짜증 내는 건 아니고, 좀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어떻게요?”

최지혁은 잠깐 고민하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그냥, 스킬 같은 거 얻었다고 해. 그리고 만약에라도 의심받을 일 있으면 무조건 다 내가 한 걸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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