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45)

“준우야, 안녕.”

“유라야! 형!”

준우가 헉헉대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에 최지혁이 옆에서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각성등급 그냥 지네 동네에서 검사하면 될 걸 굳이 따라오고 지랄,”

“지혁지혁. 그러다가 마스터한테 한 대 맞는다. 그만 투덜대라.”

지성준의 말대로 얼마 안 가서 전국적으로 각성등급 검사가 이루어졌다.

물론 나는 어차피 등급 검사를 해봐도 일반인으로 나올 게 뻔했고, 최지혁 또한 지금 등급은 아직 낮았기 때문에 지성준이 관리하고 있는 특별 게이트 관리청으로 와서 시간이나 때우는 중이었다.

일단 검사를 했다는 증거는 남겨두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해요……?”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미 했는데.”

“네? 엥? 벌써요? 저 딱 3분 늦었는데!”

준우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최지혁을 쳐다보았고, 최지혁은 똥 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빨리 끝나니까 대충 하고 와. 오늘 게이트 돌 거니까.”

“네? 형, 분명히 오늘은 각성등급 검사만 한다고…….”

“핸드폰 안 보고 사냐?”

최지혁의 말에 준우는 황급히 제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뜨헉 소리를 내며 말했다.

“A급 게이트가 또…….”

“1분 전에 열렸어. 그거 우리가 독점해.”

나는 최지혁의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수도 높아졌고, 고등급 게이트의 개수도 확실히 높아졌다.

물론 각성자의 숫자도 늘었지만 아무리 힘을 각성했다고 해도 누가 죽을지도 모르는 게이트 안으로 쉽게 들어가겠어.

군에서 게이트를 진압하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였다.

최지혁은 짜증 난다는 듯 준우의 핸드폰을 탁 뺏어가더니 앱 하나를 설치했다.

“각성자, 그러니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헌터 전용앱이니까 푸시 알림 켜놓고 있어.”

뭔가 최지혁이 푸시 알림 타령하니까 이상했다.

준우는 황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등급검사실로 향했고, 나는 물끄러미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왜요. 쳐다보면 안 돼요?”

내 말에 최지혁은 티 나게 내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오늘 게이트 들어갈 거예요?”

나는 착잡한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사실, 닥치는 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등급을 높이는 게 맞았다.

리온의 레벨도 높여야 했고. 분명 리온이 이 세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했으니까.

나는 리온의 목에 걸린 금제를 누가 걸었고, 그 금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등급 올려야 해. 어쩔 수 없어. 뭐라고 하지 마.”

“아니,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요?”

최지혁의 반응에 어이가 없어졌다. 누가 보면 내가 맨날 구박만 하는 줄 알겠다.

애초에 내가 최지혁한테 뭘 했다고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남들한테는 잘도 명령질하고 인성질하면서 꼭 나한테만 저런 식으로 굴었다.

내가 성좌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는 다른 성좌들과 다르게 너무나 일반인이다.

아니면 내가 물주라서?

하지만 내가 여태껏 봐 온 최지혁은 아무리 상대방이 갑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고분고분하게 굴어준 적은 없었다.

되레 갑질하는 인간들더러 엿이나 까 잡수라며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리던 게 일상이었지.

최지혁은 내가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어물어물하며 열심히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어차피 이 세계는 얼마 안 가 멸망하기 시작할 거고, 항상 말했듯이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하니까, 이 정도 위험쯤은…….”

최지혁의 말에 옆에 있던 리온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지혁지혁, 똥 마렵나? 마스터 가만히 있는데 뭘 자꾸 혼자 중얼거려?”

“…….”

나는 그냥 살포시 리온의 입을 가려주었다. 참, 얘도 눈치 안 보고 막말한단 말이지.

***

게이트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헌터 여러분, 우선 뒤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최지혁은 팔짱을 끼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우리에게 말했다.

“제기랄, 조건 걸려있는 게이트인 것 같은데.”

최지혁의 말대로 간혹 가다 입장 조건이 제한된 게이트가 있었다.

조건은 말도 안 될 만큼 다양했다.

만약 단순히 입장 인원 제한이라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예를 들어 ‘착한 사람만 입장 가능’, ‘살인을 해 본 자만 입장 가능’ 같은 기괴한 조건이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게이트는 게이트 안에서 닫는 게 제일 안전하다.

게이트가 터져버리면 밖에 있는 민간인들까지 위험에 빠지니까.

일단 최지혁은 게이트 입장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군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허, 헌터님, 위험하니 뒤로……!”

“……설마 종로 A급 보스 토벌,”

“아……!”

최지혁은 안타깝게도 공중파 3사 뉴스에 얼굴이 까발려진 상태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그를 알아봤다.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왜냐면 최지혁은 잘생겼으니까!

맨날 추리닝만 입던 전과는 다르게 내가 알뜰살뜰하게 모은 돈으로 산 비싼 옷 입혀놔서 더 빛이 났다.

물론 성격은 그대로긴 하지만.

“눈치껏 비키죠.”

나는 이마를 짚었다. 공무원들에게는 좀 친절히 대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존댓말 한다고 예의 바른 게 아니라고!

나와 준우는 급하게 최지혁의 뒤에서 미리 챙겨온 음료수 몇 개를 군인분들께 쥐여주었다.

“수고가 많으세요, 하하하.”

“수고하십니다. 하하하.”

이미 언론을 타 버린 이상 사람들은 사사건건 우리 행동에 시비를 걸 게 뻔했다.

그러니 문제는 사전에 방지하는 편이 좋은데…… 저 인간은 내가 이런 생각 하는 걸 알긴 할까?

“채유라. 3인 던전이야. 갈 수 있어.”

최지혁의 시스템창이 보였다.

[알림]

- 입장이 제한된 던전입니다.

(3인 중 A급 각성자 1명 이상 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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