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45)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성준과 최지혁은 아는 사이다.

그리고 함께 회귀했다.

그렇다면 최지혁이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저놈은 이미 알고 있다는 소리다.

이 시점에서 최지혁의 능력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

최지혁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실을 안다면 분명 사방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아내려고 난리가 날 거다.

회귀 전에야, 최지혁이 전 세계 각성자 랭킹 1위를 달성하고 나서야 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지혁이 아무리 여태까지 굴러온 짬밥으로 동일 랭크 각성자들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고 하지만, 아직 그의 랭크는 겨우 D등급 초입이다.

나는 급하게 최지혁의 앞으로 나가 지성준에게 대답했다.

“해요. 그 대화.”

“채유라!”

나는 검지로 최지혁의 입술을 지그시 눌러 주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반말하지? 보아하니 이제 공무원인 것 같은데……. 시민에게 친절하셔야지. 안 그래요?”

“……와, 최지혁보다 더 골 때리네.”

“아무렴.”

지성준은 짜증 난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니 곧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내게 친절한 척 말했다.

“좋아. 이왕 새 삶 살기로 한 거 친절해지면 좋지. 자, 모시겠습니다. 최지혁 여자친구.”

***

“지혁지혁은 어차피 마스터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주제에 불평은 왜 하냐?”

“닥쳐…….”

최지혁은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얼음까지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 듯 앞에 앉아 있는 지성준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야. 경계 좀 풀지? 내가 니 여친 잡아먹냐?”

“시민에게 친절해지자고 마음먹었다며. 나도 엄연한 시민인데. 민원 넣기 전에 공손하게 굴지?”

“……아니, 근데 이 자식이,”

나는 한숨을 쉬었고, 리온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마스터. 저 인간 남자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는데 정정 안 해주냐?”

“조용히 해.”

“마스터는 맨날 나보고 조용히 하래.”

아무튼 나는 최지혁의 팔뚝을 토닥여 주며 진정시켰다. 지성준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내가 얌전히 있는 동안 전국구 슈퍼스타가 되셨더라고요.”

지성준은 손에 낀 찡이 박혀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최지혁에게 고정시킨 채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쪽이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각성자셨대?”

곧 쓱 내 옆에 있는 리온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에 리온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뭘 꼬라보냐. 인간.”

“…….”

이번에는 리온의 입을 막지 않았다. 사실 나도 저놈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당신이 나 납치한 거 아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거든?”

“그거야, 당신 남자친구가 나한테 지은 죄가 있어서.”

지성준이 고소하다는 듯 최지혁을 흘끗 보며 키득거렸다.

그에 최지혁은 뭔가 찔리는 거라도 있는지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닥쳐.”

“아, 네 여친은 모르는구나? 내가, 웁웁웁!”

최지혁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로 지성준에게 달려들어 강하게 놈의 입을 막았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어차피 지성준하고 최지혁하고 회귀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뭘 숨기려고…….

‘아. 여기 카페구나!’

남들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최지혁의 의외의 모습에 조금 감탄하며 나는 가만히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주 둘이 비비적거리고 난리가 났다.

음, 남들 신경 쓴다는 말은 취소다.

민망해 죽겠다.

“푸하! 이 새끼가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황희 정승으로 보이냐!”

“그냥 정승이겠지, 빡대가리야.”

황희 정승도 아니고 그냥 정승도 아니고 가마니가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 그런 거 헷갈릴 수도 있지. 그럼그럼.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둘 다 앉아요. 경찰 부르기 전에.”

“…….”

내 말에 최지혁은 여전히 씩씩대면서 겨우 지성준에게서 떨어져 내 옆에 얌전히 앉았다.

그에 리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혁지혁 참, 마스터 말 잘 들어.”

“닥쳐…….”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미간을 짚었다.

“빨리 본론부터 말해요.”

“아씨, 남녀가 쌍으로 열 받게…….”

“그쪽이 나 납치했던 거 나도 언론에 풀까요? 충분히 가능한데. 내가 인간불신이라 맨날 녹음기를 켜놓고 다니거든요. 그거 모르세요? 게이트 안 살인미수 사건?”

“…….”

“그거 내가 찌른 건데. 그것도 지성준 씨한테 납치당한 당일에.”

내 말에 지성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평판 같은 거 신경 안 쓰게 생겨서, 저도 사람이긴 한지 내 말에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물론, 녹음기 얘기는 개뻥이었다.

순진하게 안 생겼는데 이걸 속네. 역시 사람은 외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럼그럼.

지성준은 분한 듯 부들부들 떨며 내게 말했다.

“하…….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최지혁 네놈 말대로 협업이라는 걸 하자고요.”

그리고는 곧 답답한지 깔끔하게 맨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머리를 쓱 넘겼다.

“엿 같게 노친네들이 누울 자리도 안 보고 발을 쭉쭉 뻗어대서 좀 빡치거든, 내가.”

최지혁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나도 너한테 엿 같긴 마찬가지일 텐데.”

그에 지성준이 썩소를 지으며 나를 가리켰다.

“나 너랑 대화하러 온 거 아니라니까? 네 여친이랑 대화하러 왔다고. 보다시피 대화가 조금 통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넌 빠지지.”

“민간인 협박으로 민원 넣는다, 개자식아. 존대 안 하냐?”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나는 친절하게 최지혁의 입에 마카롱을 집어넣어 주며 입을 막았다.

옆에서 ‘웩, 달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최지혁을 제쳐두고 나는 진지하게 지성준에게 물었다.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까 만나자고 한 거 아니에요? 말해봐요. 목적이 뭔데?”

내 말에 지성준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는 곧 진지하게 운을 띄웠다.

“뭐, 최지혁 여자친구께서는 모르겠지만. 얼마 안 가서 지구는 멸망합니다.”

“…….”

최지혁이 불안한 듯 곁눈질로 나를 쓱 쳐다보았다.

“난 그걸 막아야겠거든? 뒤지기 싫으니까.”

지성준은 목이 타는 듯 앞에 있는 레몬에이드의 빨대를 빼고 그대로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탁상에 소리가 나게 컵을 탁,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없는 정치질 하느라 일을 망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뭐, 이 점은 최지혁이 제일 잘 알겠지.”

놈의 말에 최지혁을 쳐다보니 그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1년만 지나도 길드의 수는 미친 듯이 증가하고 서로 파벌을 나눠서 게이트 독점에, 아이템 빼돌리기에, 등쳐먹기에…….

“뭐, 전 세계까지는 내가 어떻게 못 하고, 국내라도 잡으려고. 그런데 짜증 나게 윗대가리들이 말썽이네…….”

“그래서 나보고 널 도우라는 거야, 뭐야.”

최지혁이 매섭게 끼어들었다. 그에 지성준이 최지혁을 비웃으며 대답했다.

“오, 웬일로 말귀를 알아듣냐.”

“싫다면.”

“너한테 부탁하는 거 아니라니까? 말귀 못 알아처먹었네. 칭찬 취소.”

“……이 새끼가.”

그에 리온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옆에서 중얼거렸다.

“마스터가 분명히 열 받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맞지?”

“내가 최지혁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눈앞에 있는 저 인간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

최지혁이 내 말에 억울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는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고는 열심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참는 것 같았다.

아니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은데 참는다든가.

“통일 시킬 겁니다. 세력 통일.”

“그런데 우리가 왜 필요한데요?”

내 물음에 지성준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쪽 유명해진 건 알죠? 한국에서 최초로 터진 A급 게이트를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진압한 각성자 파티.”

지성준이 소지하고 있는 패드를 내게 쓱 내밀며 말했고, 그 안에는 나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XXX, 쟤 똥꼬 짤라요!”

나는 미간을 짚었다. 하필이면 보여줘도 이 장면을 보여주는 거지? 엿 먹으라는 건가?

“그래서요.”

“화제성도 있겠다. 어차피 최지혁도 멸망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근데 최지혁 여자친구.”

순간 지성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쪽으로 고개를 쓱 내밀었다.

물론 최지혁이 손바닥으로 놈의 이마를 도로 쭉 밀쳤다.

“야. 너 뭐 하냐.”

“집적대지 마.”

“…….”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최지혁이 차단한 것 같았다.

지성준은 상당히 무안해진 표정으로 제 이마를 짚은 최지혁의 손을 강하게 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이 상황이 상당히 어이없다는 듯 하하하 몇 번 웃고는 다시 분위기를 잡으며 내게 말했다.

“아무튼 최지혁 여자친구님. 넌, 뭔데 내가 멸망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는데 안 놀라세요?”

“…….”

순간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최지혁하고 상의된 바가 없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허, 대답 못 하네? 너 뭐 있지?”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거 내가 말해줬는데.”

리온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지성준을 향해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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