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45)

“……저 개자식이 미쳤나.”

최지혁이 열 받은 듯 이를 뿌득뿌득 갈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핼쑥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있는 저스틴 최한테 다가가 놈의 멱살을 콱 잡았다.

“워워워! 거기 남자분 진정하세요!”

앞에 있던 경찰 아저씨들이 당황해서 최지혁을 말리려 들었지만 최지혁의 기세가 워낙 매서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옆에서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굴렀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뭐? 바이퍼 길드?”

최지혁이 잡아 죽일 것처럼 놈에게 묻자 저스틴 최 씨는 손사래를 치며 변명하듯 말했다.

“하하하, 최지혁 각성자님, 상황이 조금 꼬인 것 같은데, 저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최지혁은 놈을 있는 힘껏 밀치고 옆에 있는 경찰 한 분에게 잔뜩 열이 오른 목소리로 명령하듯 말했다.

“각성자 관리법에 따르면 정부 허락 없는 국내 각성자 타국 스카우팅은 불법입니다. 게이트 특별 관리국 핫라인 없습니까?”

최지혁의 말에 저스틴 최 씨는 화들짝 놀라며 최지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급하게 말했다.

“가, 각성자님! 하하하, 같은 최씨끼리 빡빡하게 왜 그러십니까. 네? 저는 스카우트, 뭐 이런 개념이 아니라 그냥 단지 팬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뭐래? 나는 친절하게 저스틴 씨에게 사실을 정정해 주었다.

“뭐래요. 방금 준우한테도 사람 찾아왔다고 연락 왔는데. 완전 계획적으로 사람 보냈던데?”

내 말에 벙쪄있던 경찰분들이 황급하게 문서를 뒤지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최지혁이 말한 그 특별 관리국 어쩌고인 것 같았다.

“네네, 연수 경찰서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스틴 최 씨는 망했다는 얼굴로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최지혁은 아직도 열 받는다는 듯한 얼굴로 놈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머리 굴리는 거 다 보이는데. 유감이네.”

그리고는 소매를 쓱 걷어 올렸다. 그에 리온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지혁지혁 또 쥐어패려고 그러나 봐, 마스터.”

나는 리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누구 조져 버리기 일보 직전일 때 나오는 표정과 자세였고, 나는 최지혁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스틴 최 씨는 일이 커진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놈은 당장 최지혁에게 무기라도 겨눌 듯 비장해진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 수틀리면 공격하고 튀겠다 이건가?

하기야, 바이퍼 길드라면 미국 주요 길드 중 하나다.

그런 단체에서 우리를 스카우트하려 보낸 사람이면 아무래도 힘 좀 쓰는 각성자일 게 뻔했다.

“Fuxk you, idiot!”

내 예상대로 놈은 에너지를 풀풀 풍기며 제 가운뎃손가락을 날려준 채 밖으로 달아나려 들었다.

하지만 욕먹고 가만히 있을 최지혁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옆에 있던 경찰 로고가 박힌 도자기로 된 연필꽂이를 냅다 놈의 대가리에 던져버렸다.

“으악!”

뻑! 소리와 함께 놈은 뒤로 넘어져 버렸고, 최지혁은 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영어 쓰지 마, 개자식아.”

“오, 최지혁 씨 나이스샷!”

놈은 열이 받았는지 이를 악물고 그대로 최지혁에게 달려들었다.

최지혁은 그대로 옆에 있던 의자를 놈의 머리에 친절하게 또 집어 던져 주었다.

“억!”

저스틴 최 씨는 다시 한번 보기 좋게 바닥으로 엎어지셨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허공에서 표창 두 개를 꺼내 최지혁 쪽으로 던졌다.

슉! 놈이 던진 표창이 총알처럼 이쪽으로 날아왔다.

물론 가만히 당하고 있을 최지혁은 아니기 때문에 인벤토리에서 곧장 검을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놈의 공격을 걷어냈다.

검에 부딪힌 표창에서 튀기는 스파크 소리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당황한 경찰들은 급하게 가스총을 꺼내 저스틴 최에게 겨눴고, 최지혁은 정말정말 짜증 난다는 듯 경찰서 바닥에 검을 콱! 박아 넣으며 말했다.

“야.”

“…….”

“다칠 뻔했잖아.”

사방에서 가스총을 꺼내 든 경찰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놈은 움직임을 멈췄고, 개 망했다는 얼굴로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망했지, 완전히 망했지.

이미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린 덕에 한국 언론에서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벌써부터 기사 제목이 예상이 갔다.

‘서에서 난동 부린 재미교포, 알고 보니 미국 바이퍼 길드 소속.’

‘길드란 무엇인가.’

‘韓정부가 美에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안 봐도 VR이지, 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던 담당 경찰분에게 말했다.

“음, 저희 이만 가봐도 될까요? 저희가 지금 좀 바빠서…….”

“예, 예? 아, 그러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경찰서 문 밖, 주차장으로 시커먼 세단 세 대가 저돌적으로 들어왔다.

최지혁은 정면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제기랄.”

솔직히 말해서 나도 최지혁과 정확히 같은 말을 육성으로 내뱉어 주고 싶었다. 왜냐고?

검은색 세단에서 길쭉한 남자 한 명이 내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얼굴의 남자 말이다.

놈은 선글라스를 태연하게 벗고 뚜벅뚜벅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굉장히 반갑다는 듯 활짝 웃으며 최지혁이 아닌 내게 인사했다.

“오! 최지혁 여자친구, 안녕.”

“…….”

한국 최초의 S급 각성자, 그리고 최지혁의 앙숙이자 동갑내기 라이벌.

그리고 최지혁 못지않은 미친 또라이.

지성준!

나는 입을 막은 채로 내 쪽을 쳐다보고 있는 지성준을 마주 보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와 최지혁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엥? 마스터, 언제 지혁지혁이랑 사랑을, 웁!”

빠르게 리온의 입을 틀어막았다. 저게 또 헛소리야!

“하하하, 저희가 진짜 일이 있어서 그런데 가봐도 될까요?”

나는 리온의 팔을 옆구리에 끼고 최지혁의 손목을 잡은 채로 어서 경찰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지성준은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내게 다가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씁, 왜 모르는 척하실까.”

그리고는 내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다행히 최지혁에게 저지되었다.

“피해자 진술 끝났고 조서도 이미 썼으니 이만 가보죠.”

최지혁은 내게 잡힌 제 손목을 풀고 반대로 내 손목을 탁 잡으며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물론, 거기에다 대고 가만히 있을 지성준은 아니었다.

“아, 잠깐잠깐. 어딜 가? 우리 서로 볼일 있는 사이 아닌가?”

“…….”

최지혁이 나를 제 등 뒤로 쓱 숨기고는 짜증을 최대한 참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 구 신 지.”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지성준이 순간 제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최지혁에게 쓱 건네며 말했다.

“게이트 특별 관리국 지성준입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종로시 A급 게이트 진압의 주인공분들에게 특별히 면담을 요청하고 싶어서요.”

물론 최지혁도 거기에다 대고 가만히 있을 인간은 아니었다.

“거절하죠.”

최지혁은 시니컬하게 웃더니 곧장 정색하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지성준이 그 앞을 막아섰다.

“유감이지만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닌데요.”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꽤 공손하게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채유라 씨. 어떻게, 저와 대화라는 것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에 최지혁이 특유의 개빡친다는 얼굴을 하고 지성준에게 바짝 달라붙어 협박하듯 속삭였다.

“무슨 개수작이야.”

“개수작이라니, 말이 좀 그렇네. 자자, 일단 저 미국인은 우리가 데려가는 걸로 하고.”

그때였다.

최지혁한테 맞아서 벌벌 기던 저스틴 최 씨가 이를 악물고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Fxcking Koreans!”

상당히 열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성준은 놈이 검을 들고 달려오건 말건 태연하게 옆에 있던 난 화분을 냅다 집어 던졌다.

“영어 쓰지 마세요. 개자식아.”

“악!”

쨍그랑, 화분이 깨지며 놈이 완전히 뒤로 벌러덩 넘어졌고, 우리 근처에 있던 중년의 경찰 한 분이 조그만 목소리로 신음하셨다.

“안 돼, 케빈……!”

아무래도 방금 지성준이 던진 화분이 저분 건가 보다.

지성준은 그에 유감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울적해하는 경찰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청구는 게이트 특별 관리부서로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뜻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거기, 함지욱 씨, 멍하니 계시지 말고. 빨리빨리 차로 이송해 주세요.”

“……네! 팀장님!”

순간 최지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꼭, ‘네가 팀장이라고?’라고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자, 유라 씨, 지난 민망스러운 일은 잊고 저희 대화라는 것을 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최지혁 씨는 볼일 없으니까 꺼지시고.”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

“저 개자식이,”

“오호, 제대로 된 개자식은 너지. 나도 한 양심 없는 편인데 넌 좀 정도가 과해.”

“양심? 네가 양심 논할 자격이 있어?”

“너보단 있는 편이거든?”

“난 적어도 네놈처럼 사람은 안 죽였,”

나는 빠르게 최지혁의 입을 막았다.

얘가 뭐라는 거야. 본인 회귀했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나!

“하하하하! 우리 공무원분들 공무 집행 방해하지 말고 좀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할까요?”

그리고 경찰서 안을 쓱 둘러보았다.

난장판이었다.

“뭔 얘기를 해, 채유라.”

여전히 최지혁은 경계 어린 눈초리로 지성준을 노려보았다.

지성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보았다.

“나랑 얘기 안 해주면 앞에 있는 이 새끼 특성 언론에다가 다 불어버릴 건데. 자신 있으면 이대로 가도 좋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