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45)

Chapter. 6

“요즘에는 각성자 말고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사냥하는 사람들더러 헌터라고 하던데. 자, 우리 헌터님들께서 요구하신 아이템 가격 27억 8천9백만 원, 깔끔하게 30억 맞춰 왔지. 어때.”

박도경 아저씨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최지혁이 심드렁한 얼굴로 한마디 툭 던졌다.

“지금 시기면 40억은 받았을 텐데. 10억은 공중분해 됐군.”

최지혁의 말에 아저씨의 얼굴이 싸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아저씨는 금방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참, 젊은 사람이 빡빡하게. 이거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 가져다 파는 거 나라에 걸리면 큰일 나는 거 알지? 원래대로라면 정부한테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 싹 다 반납이라고, 반납. 거, 그리고 거래 도중에 사람들도 쓰고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지 않나. 엉?”

“뭐, 크게 바라지도 않았어.”

최지혁의 말에 아저씨가 억울한지 제 팔을 확 걷으며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상처를 보여주며 말했다.

“마, 내가 엉? 칼빵도 맞았다니까? 거, 최헌터 양반. 중국 애들이 어찌나 설치던지, 나도 내가 아는 인맥 싹 다 동원해서 싱가포르까지 가서 팔아 가지고 왔어! 게다가 이거 다 현금으로 바꿔 오는 데에도 애먹었다고.”

아저씨는 진짜 억울한지 표정을 잔뜩 구겼다가 곧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쫙 펼쳐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게다가 40억은 무슨, 딱 34억 받고 팔았어! 34억. 뭐, 중간중간 브로커들 쓰면서 4억 날아가긴 했지만 아무튼 원금보다는 높게 쳐서 팔았다고. 봐, 여기 브로커들 계약서.”

아저씨가 저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뒷세계 일 하던 사람이었고, 이 정도 구라는 기본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주 구라는 아니었다.

일 처리를 3일 만에 하시는 바람에 브로커들 쓴다고 돈을 좀 펑펑 쓰시긴 한 것 같은데, 어쨌든 같이 일하기로 한 이상 기선 제압은 어느 정도 필요했다.

소액이긴 하지만 몰래 냠냠 하신 건 사실인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최지혁의 어깨를 톡톡 쳐주며 말했다.

“최지혁 씨, 저 잠깐만 요 앞에 편의점 좀 갔다 올게요.”

“마스터, 나도 같이 가자!”

기선 제압은 최지혁 전문이지. 암암.

“유라 학생……?”

“나중에 봬요. 아저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저씨에게 싱긋 웃으며 속삭였다.

“그리고,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끼리 거짓말은 좀 아니지. 안 그러니, 리온?”

“그럼그럼. 거짓은 미덕이 아니다, 인간.”

리온이 인간을 겁줄 때 늘 그렇듯 입이 쭉 찢어지자 박도경 아저씨가 삐질 땀을 흘렸다. 본인도 아, 망했다 싶은 모양이었다.

“최지혁 씨. 파이팅!”

“마스터가 제일 나쁘다.”

“조용히 해, 리온. 안 그러면 초코 쭈쭈바 안 사준다.”

“입 닥치고 있을게, 마스터!”

***

나는 대충 리온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편의점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마스터.”

“응?”

리온은 초코 쭈쭈바를 쪽쪽 빨며 테이블 위에 가부좌를 틀고 턱 앉더니 내게로 얼굴을 쭈우욱 들이밀며 말했다.

“나도 마스터랑 최지혁이 들고 다니는 핸드폰이란 거 사줘.”

“…….”

그리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도대체 왜! 그냥 말하면 될 걸 굳이 거기서 말하는 건데!

“안 내려와?”

리온은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입을 삐쭉 내밀며 털썩 내 옆에 주저앉아 편의점 앞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고양이처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쟤들도 다 있는데 나만 없다.”

“돈 생기면 사줄게.”

그리고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더니 곧 한숨을 폭 내쉬며 내게 물었다.

“마스터.”

“왜.”

“여기 인간들은 세상이 멸망 중인데 왜 이렇게 태평해?”

얘는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리온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리온이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세계의 인간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바로 멸, 커헉.”

나는 황급하게 리온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또 시작이었다.

리온의 목에 개목걸이처럼 기괴한 문양의 마법진이 철컥, 채워졌고 곧바로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야, 헛소리 하지 마!”

“헉, 마스터. 이거 너무 엿 같다. 뭔 말을 못 하냐.”

나는 리온의 턱을 잡아 입을 벌렸다. 저번처럼 혀에 기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환장하겠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리온의 레벨을 살폈다.

이번 A급 보스 토벌도 그렇고, 저번 던전도 그렇고, 리온의 레벨은 상당히 오른 상태였다.

“미치겠네. 이게 뭐야.”

나는 내 머리를 한번 크게 헝클였다.

리온이 뭔가 알고 있는 건 틀림이 없었다.

리온을 마주 보며 가만히 머리를 굴려봤다. 리온은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를 끊임없이 내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방금도 그랬듯이, 말하려고 할 때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리온의 입을 막았고, 나는 그 힘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대체 뭔데?

왜?

“내 말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마스터……. 불안한데 일단 알겠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리온을 쳐다보며 물었다.

“넌 이 세계에 게이트가 왜 열리는지 알고 있어?”

“조금?”

내 말에 리온이 미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리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엥? 이건 또 되네?”

솔직히 나도 놀랐다. 뭐야? 이 허술한 금제는.

“네 입을 막는 것의 정체가 뭔지는 알아?”

내 말에 리온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나는 내 턱을 짚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캐낸다고 해서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성좌, 화신, 뭐 이런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 아직 성좌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잖아.”

“응!”

질문을 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답답했다.

“넌 분명히 네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그렇다면…….”

나는 리온이 하려다 만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 ‘멸’까지는 들었단 말이지?

“그 세계에서 네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거야?”

“아니.”

“그러면 그 세계가 위험해?”

“응.”

리온이 심각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

누군가 벤치에 앉아있는 내 옆에 쓱 다가와 그림자를 만들었다.

리온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내 앞을 가리고 내게 말을 건 사람을 향해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뭐야? 중요한 얘기 하는데.”

나는 리온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게 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았다.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 그리고 왜인지 조금 어눌했던 ‘안녕하세요’.

“채유라 각성자님 되시나요?”

“……누구세요?”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산뜻한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내게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바이퍼 길드의 저스틴 최라고 합니다.”

듣자마자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바이퍼 길드라고? 분명 들어봤다.

최지혁이 S급을 달성하자마자 귀신같이 찾아와서 스카우트 제의하던 놈들!

꼴랑 100억 제시하면서 은근히 한국인이라고 최지혁을 무시하던 걸 기억한다.

당연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열이 받았고, 그 자리에서 2천만 포인트를 그대로 투척해 준 기억이 있었다.

“저 종교 무교고, 제품 살 돈도 없어요. 수고하세요.”

나는 그대로 배꼽 인사를 하며 자리를 뜨려 했다.

저놈들이랑 엮여봤자 좋은 꼴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놈에게 손목을 잡혀버렸다.

리온은 이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일단 인상을 찌푸렸다.

“하하하, 유라 양,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제 이름 채유라 아닌데요. 그리고 이상한 사람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름도 모르면서 아는 척해요? 나 아세요?”

“…….”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를 떼며 생각했다. 도대체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놈도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리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상으로 봤습니다. 이쪽이 유라 양의 소환수 아닌가요?”

“헐. 아닌데요. 그리고 제 손목 놔 주실래요? 엄청 불쾌한데, 지금.”

내 말에 교포로 보이는 저스틴이라는 사람은 황급히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본인은 나에게 무해한 존재라는 사실을 어필이라도 하고 싶은지 양손을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유라 양.”

“아, 예. 가자.”

최지혁에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놈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다시 한번 몸이 강제로 돌아갔다.

“유, 유라 양! 잠시 대화할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유라 양이 충분히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바이퍼 길드는,”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니, 이 인간이 함부로 잡지 말라니까 정신 나갔나.

“하이, 박스비. 112에 전화해줘.”

-“112에 전화를 겁니다.”

“자, 잠시만요! 유라 양!”

핸드폰의 기계음과 함께 바로 신호가 가기 시작했고, 놈은 당황한 듯 내게서 핸드폰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야. 인간.”

물론 리온은 눈치껏 사악한 얼굴을 하고 놈의 양손을 붙잡아 버렸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놈의 손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하지 말라면 그만하고 꺼져야지, 왜 집적대?”

“윽!”

리온은 가차 없이 쥐고 있던 남자의 손목을 밀쳤다. 놈은 철푸덕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고, 핸드폰 스피커 너머로는 친절한 경찰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급 신고 112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어떤 남자가 갑자기 제 호구조사 하면서 억지로 대화하자고 하거든요?”

“유라 양, 진정하고 저랑 얘기부터!”

남자는 당황한 듯 내게 허겁지겁 달려오려 들었고, 리온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남자를 저지했다.

“그, 미국 바이퍼 길드에서 왔다는데…… 지금 친구가 저지하고 있긴 한데 자꾸 제 쪽으로 오려고 하네요?”

-“네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빨리 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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