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왜 그렇게 되는데?”
최지혁은 당황한 얼굴로 내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친절하게 최지혁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2번 골랐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랑 인터뷰랑 무슨 상관,”
“하하, 지혁지혁, 넌 그것도 모르냐?”
최지혁의 말을 리온이 받아치며 말했다.
“원래 왕이 되려면 유명세를 얻고 여론을 얻어야 하는 법이다. 인간들 중에 그것 때문에 내게 영혼을 팔아 패가망신한 경우 많이 봤지!”
준우는 그런 리온의 말에 입을 쩍 벌리고 내게 물었다.
“영혼……? 영혼을 왜…….”
리온이 고개를 준우 쪽으로 홱 돌린 후에, 악마답게 입을 쫙 찢어 웃으며 말했다.
“난 대악마 리카르디온이니까!”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리온의 얼굴을 가렸다. 준우는 그런 리온의 얼굴을 보고 살짝 겁을 먹나 싶었지만 곧 짧은 한숨을 쉬며 체념한 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래, 뭐. 집채만 한 괴물도 있는데 악마라고, 뭐……. 그래서 인터뷰는 어떻게 하려고, 유라야?”
그 순간 얼빠진 표정으로 날 쳐다보던 최지혁의 시선이 날카롭게 준우에게 꽂혔다. 아무래도 리온보다 최지혁의 인상이 훨씬 더 더러운 편이라 준우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인터뷰 안 해.”
최지혁의 까칠한 답변에 나는 빤히 최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별로인데.”
그에 최지혁이 크게 움찔거리며 변명하듯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인터뷰한다고 했냐고! 난 저 기자 새끼들 싫다고! 맨날 날조 기사나 써재끼고,”
나는 황급하게 최지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드론 날아다니는데 기자 새끼라니!
“최지혁은 애새끼야? 맨날 마스터한테 찡찡대,”
“리온, 조용히 하자.”
준우가 리온의 입을 막고 뒤로 질질 끌었다.
“웁우우우웁!”
리온은 억울하다는 듯 팔을 붕붕붕 흔들었고, 나는 차분하게 최지혁을 설득했다.
“최지혁 씨, 정치인들 못 봤어요? 어차피 이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발언권도 강해지고, 제약도 줄 거 아니에요. 최지혁 씨도 모르는 거 아니면서. 그래서 예전에 길드들한테 많이 당했던 거고.”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하지?”
“……자꾸 꼬아서 들을래요?”
최지혁은 내 말에 입을 댓 발 내밀고 결국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자들이 우리에게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BBS 데이비드 킴입니다. 방금 처치하신 몬스터가 한국에서 최초로 터진 A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데, 어떻게 상대하셨습니까!”
“KSB 김선율 기자입니다! 각성자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미디어 늘봄입니다! 불안에 떨고 있을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기 시작했고, 나와 준우는 얼굴을 가린 채로 널따란 최지혁의 등 뒤로 숨었다.
그리고 나는 최지혁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대충 멋있는 말 한마디만 하고 튀어요. 알겠죠?”
그에 최지혁이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흘끗 쳐다보다가 곧 한숨을 푹 내쉬고 피곤하다는 얼굴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준비하세요. 분열은, 멸망을 더 앞당길 뿐입니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턱 붙잡고 아까까지 우리가 타고 왔던 스포츠카로 걸어가더니, 대충 차 안을 뒤적거려 안에서 명함을 뽑아 근처에 있던 군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차주에 대한 피해보상은, 나라에서 하는 걸로.”
그리고 가차 없이 나를 붙잡은 채로 기자들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어, 형 어디 가요!”
“준우쓰, 그냥 눈치껏 따라가라.”
***
최지혁은 똥 씹은 표정으로 마룻바닥에 앉아서 준우가 가져온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았다.
“학생들, 과일 좀 줄까?”
일단 급하기 때문에 가까운 준우 집으로 무작정 쳐들어 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최대한 예의 바르게 웃으며 준우네 어머니께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어머니! 저희 물이면 돼요.”
“그래도, 준우 친구들인데. 수박 잘라줄게. 앉아 있어.”
저저저, 예의 가출한 최지혁, 또 그냥 뚱하니 앉아 있지.
나는 최지혁의 옆구리를 발로 쿡쿡 찔렀고, 최지혁은 그제야 도대체 왜 찌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저거 정말 몰라서 저딴 식으로 쳐다보는 건가? 나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웃으며 최지혁에게 눈치를 줬고, 최지혁은 그제야,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더니 겨우 자리에 일어서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
누가 보면 협박하는 줄 알겠다. 나는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이 오빠가 표정이 원래 좀 이래요.”
“괜찮아, 괜찮아. 학생들 앉아 있어. 금방 수박 줄게. 제철이라 되게 달더라구. 준우야. 포크 좀 가져다 놔.”
“넵. 일단 보고 계세요.”
준우는 포크를 가지러 일어났고, 뚱하니 일어나 있던 최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다시 털썩 주저앉아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각성자 커뮤니티였다.
‘종로구 A급 게이트 붕괴, 근처에 있던 각성자 파티에 의해 무사 진압.’
└‘ㅁㅊ A급 우리나라에 처음 터지지 않음?’
└‘인터뷰 한 저사람 개멋있네. 포스 ㄷㄷ.’
└‘와.꾸.존.잘’
└‘ㅋㅋㅋㅋㅋ근데 왜 저 남자 빼고 다 숨어있음?ㅋㅋㅋㅋ뒤에 있는 애들 넘 귀욥 ㅠㅠ 햄찌같아ㅠㅠㅠ’
└‘모에화 자제 좀;;’
최지혁은 첨부 기사 링크를 탁, 눌러 연결된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그 영상에는 필사적으로 최지혁 뒤에 숨는 나와 준우가 보였고, 아무 생각 없는 리온이 최지혁의 뒤에서 살벌하게 빙긋빙긋 웃고 있었다.
다행히 최지혁은 내 예상대로 아주 멋있게 나왔다.
└‘각성자관리법안채결,,,,,,,,,한국만. 늦다! 저런 훌륭한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인데 정부는,,,,,뭐하고있나!’
└‘저 각성자의 말이 맞습니다. 분열은 더 상황을 악화시킬뿐. 국민 여러분. 힘을 합쳐 어려운 이 시국을 해쳐 나가야 합니다.’
└‘언론들……저 급한 상황에……드론을 띄우다니……. 최소한의 양심은 지킵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국 청년들……참 훌륭하네요.’
여론도 좋은 편이었다. 최지혁이 좀 싸가지 없게 생기기는 했어도 잘생겼기 때문에 나쁜 말이 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칫하면 종로에 있던 사람들 다 죽을 뻔했는데, 거기서 짠 하고 나타난 최지혁은 히어로나 다름없었다.
와중에 아주 조금 걸리는 게 있다면, 공중파로 무단 송출된 전투장면이 굉장히 좀, 조잡…….
“형, 수박 먹어요. 유라야. 여기 포크.”
준우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게 포크를 건네주었다.
“아주머니,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천천히 이야기하다가 가!”
“넵넵!”
저저저, 최지혁 또 감사합니다, 안 하지. 나는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최지혁이랑 같이 다니는 거, 내가 최지혁 몫까지 사회생활 하지, 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열심히 인터넷을 살피는 최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의욕은 있어 보였다.
“채유라. 네 계획이 뭔데.”
최지혁이 제 이마를 짚으며 내게 물었고, 그에 리온과 준우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현실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내가 여태까지 봐 온 최지혁과 길드의 관계, 그리고 정부의 간섭.
“각자 원대한 목표 하나씩 말해봐요. 준우 너부터.”
내 말에 준우가 슬쩍 최지혁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음……. 일단 돈…… 벌고…… 또…… 그냥 안 죽고…… 오래 살기?”
“준우쓰, 말 좀 빨리빨리 해라. 속 터진다.”
나는 최지혁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말 안 해도 아는 것 같은 눈치였다.
“하, 좋아. 그 빌어먹을 세계 멸망 저지 어쩌고저쩌고로 목표 잡아. 그래서 뭐 어쩌자고.”
“어쩌긴요. 우리가 짱 먹고 멸망 저지해야죠. 우리 말고 할 사람 있어요?”
내 말에 준우의 안색이 아주 살짝 파리해졌다. 물론 그건 준우네 어머님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저게 뭔 멍멍이 소리냐는 듯 하던 일을 멈추시고 우리 쪽을 쳐다보셨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 그러니까. 게이트는 무슨 수를 쓰지 않는 이상 계속 열릴 거고, 지금 게이트 등급 올라가는 추이 보면 나중에는 분명 저것보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가 엄청 많이 생길 거야. 그거 다 터지면 답 없어.”
“……그러니까, 유라야, 네 뜻은 음…….”
“꿈은 크게 꾸는 거랬어. 회사 만들 거고, 각성자들이 차린 회사 중에 제일 영향력 큰 회사로 키울 거야. 물론 특별히 최지혁 맞춤 서비스로 각성자들은 소수정예만 들일 거고.”
최지혁이 내 말에 왼쪽 눈썹을 쓱 들어 올렸다. 저도 찔리는 모양이었다.
최지혁 성격상 각성자 동료는 조금만 받는 게 맞았다. 꼭 필요한 존재들로만 말이다.
“어차피 상황은 더 악화될 거고, 그렇게 되는 이상 각성자들의 발언권이나 권력이 세지는 건 순식간이야. 다시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거고.”
나는 최지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건 최지혁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화면 밖에서도 줄곧 그래왔고, 지금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상 혼자 사는 거 아니잖아. 각성자가 아닌 사람들도 분명 세상에 존재하고 집단의 힘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아니야. 역사가 그래왔으니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그건 달라지지 않아. 그래서 최지혁도 너한테 하던 공부 계속 하라는 거고.”
최지혁이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꾹 씹었다. 무언가 내게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일단 가만히 최지혁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최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먹만 꽉 쥐었다.
“……그럼 지금 세계정복이라도 하자는 얘기야?”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준우였다. 그리고, 최지혁은 나 대신 준우에게 답했다.
“앞으로 인류는 두 가지로 나뉠 거다. 첫 번째, 힘이 있는 자. 두 번째, 이용당하는 자.”
“…….”
“하……. 채유라 말이 맞아. 힘이 없고, 뒷배가 없으면 이용만 당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