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45)

“뭔 소리야, 채유라! 위험하니까 근처에 오지 말라고!”

“최지혁, 시끄러!”

준우는 달달달 떨며 열심히 주문을 읊었다.

최지혁은 방금 날 신경 쓰다가 보스몹에게 날아간 걸 벌써 잊었는지 시선이 내 쪽으로 아예 고정이 되어 있었다.

“나 쳐다보지 말고 네 할 일 하시라구요, 최지혁!”

“내가 널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최지혁의 말에 리온이 답지 않게 신경질을 내며 소리를 빽 질렀다.

“에이씨, 거기 최지혁, 구애는 나중에 하고 저 미물 더듬이나 썰어라!”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최지혁이 다시 한번 검격을 날렸다. 화려한 꽃잎이 사방으로 훅 휘날렸다.

“츠즛, 츠츠츳!”

다행히 크리티컬이 터졌는지 핸드폰 화면 속 몬스터의 체력 바가 한꺼번에 크게 깎였다.

문제는 우리 보스 몬스터님께서 그것 때문에 화가 났는지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거다.

“키에에에엑!”

보스 몬스터는 제 머리 위를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방송용 드론을 향해 앞다리를 휘둘렀고, 최지혁은 그 틈을 타 칼로 놈의 더듬이를 싹둑 잘라 버렸다.

“최지혁, 조심해요! 앞에!”

“조심하고 있어!”

더듬이가 잘린 보스몹은 미쳐 날뛰기 시작하며 앞에 있는 동상이고 건물이고 다 부숴대기 시작했다.

음, 건물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학생들 학사일정 꼬이는 소리 같았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등교는 어려울 것 같다.

친구들, 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는걸?

아무튼, 최지혁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 피하며 깔짝깔짝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놈의 뒤꽁무니를 지져 버릴 타이밍이었다. 나는 공중에 있는 리온에게 소리쳤다.

“리온! 내가 신호하면 나랑 준우 붙잡고 건물 옥상으로 올려!”

“뭔 개소리냐, 마스터!”

“하라면 해!”

준우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열심히 보스 몬스터의 방어력을 깠다.

그리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쿠와아아아! 미친 듯한 열기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당연히 뒤꽁무니가 지져진 보스몹은 발작을 하며 뒤를 홱 돌아보았다.

“리온! 지금!”

그리고 무시무시한 다리를 확! 내가 있던 자리에 내리꽂았지만 이미 나는 리온에게 달랑 들려 학교 옥상에 금방 안착해 버렸다.

“최지혁! 쟤 똥꼬 짤라요!”

“……똥꼬가 뭐야, 똥꼬가!”

“아씨, 지금 그게 중요해!”

최지혁은 울상을 지으며 결국 내 말대로 자리에서 번쩍 뛰어올라 놈의 시커멓게 탄 꽁무니 표피 사이에 검을 박아 넣었다.

“키에에에엑!”

당연히 놈은 뒤에 올라탄 최지혁을 떨어트리려 야단법석을 떨었고, 나는 곧장 리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온, 저 새끼 묶어!”

“음……. 마스터, 입이 험해졌,”

“안 가?”

“우씨. 간다, 가!”

리온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등 뒤에서 검은색 촉수로 몬스터의 다리를 단단히 잡았다.

물론 등급 차이가 워낙 심하게 나 역부족이긴 했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A급 힐러가 있었다.

준우는 집중하는 듯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스태프를 옥상 바닥에 곧게 세운 채로 주문을 읊었고, 리온과 최지혁의 몸에 엷은 초록계열의 보호막 같은 게 생겨났다.

“새끼 더럽게 질기네!”

“지혁지혁, 빨리빨리 해라! 잡고 있기 힘들다!”

최지혁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몸무게를 실어 그대로 산만 한 놈의 꽁무니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푸슉!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내장이 픽, 터져버렸고, 최지혁은 진짜 세상 사람들 다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으로 기어코 몬스터의 꽁무니를 싹 잘라버렸다.

“키에에에에엑!”

당연히 몬스터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지도 않고 최지혁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파바바박! 여섯 개의 다리가 최지혁을 향해 꽂혔고, 다행히 놈의 공격은 준우가 만들어둔 초록 막에 미끄러져 내렸다.

하지만 준우가 아무리 A급이라고 해도 장시간 동안 스킬을 유지하기는 힘든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아윽, 유라야. 더 이상 못 버티겠……우우우웁!”

나는 재빠르게 기력회복 포션을 구입해 준우의 입에 처박았다. 그러자 강제로 준우의 혈색이 돌아왔다.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핸드폰에 몬스터를 잡자 드디어 약점이라 할 만한 것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놈의 정수리에 붉은색 느낌표가 붙었고,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최지혁! 저놈 대가리 쑤셔요! 대가리 약점!”

“아니, 대가리라니!”

“아, 토 달지 말고 빨리!”

저게 진짜, 본인은 온갖 욕 다 하면서 나한테만 저런단 말이지.

최지혁은 잔뜩 썩은 얼굴로 리온의 손을 잡고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는 칼을 똑바로 세운 채 그대로 밑으로 추락하며 몬스터의 면상에 검을 콱! 박아버렸다.

“키이이익!”

놈은 제 얼굴에 들러붙은 최지혁을 떼어 내려 제 다리를 면상으로 확 처박았고, 최지혁은 쯧, 혀를 차고는 그대로 검을 놓고 아래로 떨어졌다.

“키에에엑! 키에에에에엑!”

최지혁을 어찌나 세게 공격하려 했는지 놈의 발이 대가리에 반쯤 박혔다. 놈은 이도 저도 못 한 채 뒤로 발랑 뒤집어졌다. 그리고는 남은 다리를 미친 듯이 휘적거렸다.

최지혁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제 머리를 위로 쓱 쓸어 올렸다.

“빡대가리 새끼.”

최지혁은 본인이 있던 자리에서 훌쩍 뛰어서 몬스터의 심장 부근에 칼을 박아 넣고 망설임 없이 쭉 갈라버렸다.

그러자 몬스터는 완전히 힘을 잃은 채 축 늘어졌고, 최지혁은 대충 공중에 떨어진 드론의 개수를 살피다가 열 받는다는 듯 이를 악물고는 리온을 불렀다.

아무래도 몰래 몬스터 핵을 먹이려는 것 같았다.

“아, 미쳤다. 진짜.”

일단 대충 끝난 것 같았다.

핸드폰이 웅웅 진동하며 리온의 레벨업 소식을 전했고, 나는 옥상 아래를 빤히 쳐다보았다. 커다란 소나무 외 기타 등등이 아주 활활 잘 타고 있었다.

준우는 황망한 얼굴로 옥상 난간에 매달려 불타고 있는 학교를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유라야. 이래도 되는 거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하.”

어차피 나중 되면 헌터들한테서 아이템 수수료 오지게 뜯어먹을 텐데 이쯤이야, 뭐……. 괜찮겠지?

“이 고철 파리는 뭐냐, 마스터?”

리온은 제게 들러붙는 드론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찍어 기어코 바닥으로 떨궜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날아와 준우와 날 바닥에 착지시켰다.

이제 두 명 정도 드는 건 거뜬해진 모양이었다.

“기자들 몰려오기 전에 튀자.”

나는 무릎을 툭툭 털며 말했고, 준우는 답지 않게 인상을 찌푸리며 담장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미 온 것 같은데…….”

“아오, 저 미친.”

최지혁은 준우가 가리킨 곳을 보고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다가 진짜 이 나간다고 조언해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비켜주십시오!”

“각성자분!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BBS 성시훈입니다!”

“각성자님! ESB에서 나왔습니다!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KKB입니다! 세계 최초로 A급 게이트가 한국에 터졌는데요, 보스 몬스터 공략에 어떻게 성공하셨나요!”

학교 안으로 소방차가 급하게 들어왔고, 방금 싸울 때까지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경찰과 군인들이 몰려와 열심히 기자들을 막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최지혁을 살폈다. 다행히 준우가 미친 듯이 힐을 해 준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다. 물론, 머리카락은 피떡이 됐고, 옷은 몬스터 사체에서 튀긴 진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긴 했지만…….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크로스백에서 물티슈를 꺼내 최지혁의 손가락을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어?”

방금까지 짜증 내던 최지혁은 어디 가고 바보같이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튼 물티슈를 가지고 다니길 잘한 것 같다.

“아오. 진짜 옹골차게도 튀었네.”

나는 티슈로 조심스럽게 최지혁의 얼굴을 닦은 후 슬쩍 기자들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웅성웅성 난리가 났다.

“근데, 어떡해요? 기자들 인터뷰 따러 몰려왔는데?”

내 말에 얼어있던 최지혁이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한국에서 A급 게이트 터진 거 최초야. 몰려올 수밖에 없지.”

“헐. 형, 이거 봐요.”

준우가 우리에게로 제 핸드폰을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뉴스 특보로 내 얼굴이 모자이크 된 채로 무언가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 “XXX, 쟤 똥꼬 짤라요!”

나는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이래서 최지혁이 나한테 뭐라고 자꾸 핀잔을 줬구만. 제길.

“……와, 아주 지들 맘대로 찍어서 송출하는구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기자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과거, 그러니까 지금 시기에서는 미래지? 아무튼 그때 최지혁의 여론은 안 좋은 편이었다.

당연했다. 악마처럼 인성질 하고 다니고 아이템만 쏙쏙 빼먹고 보스 몬스터 독점하고 다른 헌터들 뒤통수도 많이 치고 다녔으니까.

“근데 다들…… 겁이 없으시네요. 방금까지 몬스터가 활개치고 다녔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올 생각을 하지?”

준우의 말에 최지혁이 대놓고 기자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거지. 아직 뒤질 뻔한 적이 없어서 그래.”

생각해 보니까 최지혁이 혼자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저러는데 누가 같이 다녀?

“오…….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 인터뷰 안 해.”

나는 최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네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되고 싶다면 평판은 매우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최지혁.”

“……불안하게 왜.”

“선택지를 줄게요. 골라줘요.”

“…….”

“마스터, 또 뭐 하려고.”

리온이 덩달아 불안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1번,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데만 중점을 두자.”

“…….”

“2번, 굵직하게 세계 랭킹 1위 찍고 짱 먹자.”

최지혁이 인상을 팍 찌푸렸고, 리온이 옆에서 방방 뛰며 말했다.

“당연히 2번이지, 마스터!”

“……왜 선택해야 하는데?”

“빨리 대답해요.”

내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최지혁은 떨떠름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2번…….”

역시 최지혁.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나는 최지혁의 등을 장하다는 듯 톡톡 쳐주며 말했다.

“자, 다들 인터뷰 준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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