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45)

어이가 없었다. 나 왜 잔소리 듣고 있는 거지?

말이 잔소리지 박도경, 그러니까 아저씨는 대충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더니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일단 제일 큰 문제인 개인 빚 청산 건이 해결되니 매우 행복한 모양이었다.

“뭐. 일단 내가 아는 인맥 총동원해서 물건은 팔아 보도록 하겠어. 루트 한번 뚫으면 일사천리야, 일사천리.”

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저씨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아저씨, 그거 들고 날면 안 돼요.”

“어허, 유라 양, 날 뭘로 보고! 내가 말이야, 처자식이 있는 몸이야! 엉? 이 시국에 내가 뭐, 나가서 창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 말대로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일이 있나! 허허!”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열심히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돌렸고, 대충 통화를 몇 번 하더니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3일! 내가 3일 안에 현금으로 만들어 오지. 보아하니 거기 지혁 군도 빚 좀 있더만.”

“…….”

빚 얘기에 최지혁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아무리 내가 최지혁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굳이 내 앞에서 빚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게 못내 불편한 듯싶었다.

최지혁은 본인의 과거 사정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으니 말이다.

“빚 청산은 내가 전문이지. 내가 이쪽 업자들을 잘 알아요. 물론 나도 이재겸 그 자식이 배신 때리는 바람에 사채를 쓰기는 했는데, 뭐 그거야…… 금방 갚을 수 있걸랑.”

“……내 뒷조사라도 하셨나 봐?”

그에 최지혁이 살벌하게 목소리를 낮게 깔고 뭐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거, 최지혁 군. 원래 의뢰자 신상파악 정도는 다 해두는 게 기본 아니겠어? 하! 하!”

“신상파악은 얼어 뒤질 신상파악.”

아저씨의 말에 최지혁은 당장이라도 의자에서 튀어나가 멱살을 잡을 듯이 굴었다.

최지혁이 열 받은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최지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쫌!”

“내가 뭐.”

“좀. 참아요. 협력하러 온 거잖아요. 아니야?”

“…….”

결국 최지혁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고, 그 뒤에 있던 리온은 쌤통이라는 듯 열심히 최지혁을 비웃어 주었다.

얼씨구? 저러다 또 한 대 맞지.

“악! 왜 때리는데!”

“쪼개지 마.”

“에이씨, 내 맘대로 웃지도 못하냐, 지혁지혁! 나보다 네가 더 악마 같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투닥거리는 최지혁과 리온을 뒤로하고 아저씨에게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일주일이면 가능할까요?”

“에이, 3일이면 가능하다니까? 이런 건 금방금방 해야지 또 질질 끌고 그러면 못 쓴다고.”

은근히 자신만만한 아저씨의 말에 조금 놀랐다.

“좋아요. 그러면 원금 다 가져오시면 정산해 드릴게요. 최지혁. 보통 불법 아이템 거래 수수료가 얼마 정도 하죠?”

내 말에 최지혁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부 공식 아이템 거래 수수료 41.5%. 불법 거래 평균 수수료 건당 균일하게 1억씩. 대신 수사 적발되면 의뢰자가 벌금 전액 납부. 책임도 의뢰자가. 해외로 몰래 돌리면 제일 싼 필리핀이 수수료 13%. 대신 걸리면 벌금.”

최지혁의 말에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벌써 아나? 아직 뉴스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걸 벌써, 몰랐으면 내가 당신한테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최지혁의 말에 아저씨가 한참 고민하는 듯 끙끙대다가 물었다.

“들어 보니, 불법 거래 쪽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리스크가 큰 것 같고…… 거, 벌금 얼마씩 때린다는 건 들은 바 없고?”

“거래 아이템 몰수당하든가, 아이템 가격의 두 배 물어내든가.”

“그럼 해외로 돌리는 건?”

“적당히 공신력 있고 경제력 있는 국가들은 한국하고 수수료 비슷해. 대신 그 밑에 국가들로 돌리면 10%대지만 사기나 장물이 많지.”

나는 빙긋 웃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정산비율은 적당히 15% 어때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인 것 같은데. 물론 일만 확실히 해주신다면 고정적으로 보험이나 보너스 챙겨 드릴 거고. 일하다가 문제 생기면 저희 쪽에서 책임도 질 생각이에요.”

내 말에 아저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손익 계산 중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아무런 정보가 풀리지 않았으니 우리 말을 믿어도 될지 안 될지 헷갈리겠지?

“대신, 전속계약이에요. 저희하고만 계약하셔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진짜 저희랑 하시는 게 제일 좋을걸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너도나도 길드 설립해서 양아치 짓 할 거예요.”

그에 아저씨가 결정했다는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걱정 마, 걱정 마. 유라 양이 그 망할 이재겸네 따까리들도 처리해줬는데 이 정도라고 못 할까.”

아저씨는 흘끗 잠들어 있는 아이를 쳐다보더니 조금 쓰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가봐. 내가 계속 상황 보고하도록 할 테니까.”

아무래도 아이가 있어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저 아저씨가 왜 이렇게 순순히 우리에게 협조하나 싶었다. 하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세계는 확연하게 무너져 가고 있다.

아직까지 게이트 사태의 초반이라 내가 알던 것보다 피해가 미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사건이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주요 도심지가 다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전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렇기에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는 각성자들과의 인맥을 일반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들과 달리 각성자들은 멸망에 맞서 싸울 수 있으니까.

본인들을 지켜줄 수 있으니까.

“넵. 그럼 나중에 연락해주세요.”

그래서 저 아저씨가 우리 아이템 중 일부를 들고 튈 것 같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최지혁에게 들은 ‘박도경’이라는 인물은 적어도 바보는 아니었다.

최지혁의 회귀 전에도 망해가고 있는 세상에서 일반인으로서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해 백호길드에 붙어 업계에서 날아다니던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또 삐진 것 같은 최지혁의 손목을 붙잡고 박도경 아재의 집을 겨우 나왔다.

최지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에 타기 직전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인지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죽여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핸들을 척 잡았다.

“왜요, 또 뭐.”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표정인데. 내가 저를 모를 줄 아나. 어이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긴! 지혁지혁 가난한 거 들켜서 기분이 안 좋아?”

“…….”

리온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에 나는 한숨을 쉬며 리온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 주었다.

“예의 챙겨, 리온.”

“우씨! 마스터! 또 최지혁만 예뻐해.”

리온은 내게 한 대 얻어맞고도 가볍기 그지없는 주둥이를 계속 나불거렸다.

“흥, 원래 인간이란 족속들이 그렇지. 그깟 금화 덩어리가 뭐라고 그걸로 급을 매기고, 눈 까뒤집고 서로 뺏으려 든다니까?”

최지혁이 이를 악물었다.

리온이 최지혁의 기분이 저조한 이유를 정확히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최지혁에게 돈은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나는 일단 숨을 죽였다. 뭐라고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딴 거 신경 안 써.”

“에이. 거짓말하지 마라, 지혁지혁. 네가 밖에 나가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뭔지 나는 아는데. 보니까 누가 계속 따라오더라고.”

“……주둥이 닫아라.”

“나한테만 자꾸 뭘 숨긴다고 갈구지 말고 본인을 한번 돌아봐라, 지혁지혁. 너도 마스터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리온의 질문에 최지혁은 입을 꾹 닫았다. 이상했다. 딱히 대답하지 못할 질문은 아니었는데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저러고 있다.

나는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비밀 있을 수도 있지! 뭘 또 뚱해 있어요? 빨리 집에 가죠?”

“…….”

최지혁의 반응이 이상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최지혁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핸들을 꽈악, 움켜쥐었다.

잘못하면 부러지겠다 싶을 정도로, 세게.

나는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맨날 저런 식이었다. 사람한테 마음을 쉽게 안 열어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열심히 어르고 달래면 또 술술 말한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최지혁은 결국 체념한 듯 이를 꽉 깨물며 시동을 걸었다.

***

“형, 오랜만이에요!”

멀리서 준우가 손을 흔들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때까지 나는 최지혁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지혁 씨, 나랑 얘기 좀 할래요?’

‘피곤해.’

기껏 가서 달래주려고 말 걸었다가 퇴짜 맞았다. 뭐, 지가 싫다는데 어쩔 거야. 그러는 주제에 아침부터 안절부절, 저 모양이다.

“유라야, 안녕! 좋은…… 아침?”

물론 아침부터 싸늘한 분위기에 준우는 당황한 채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분위기가 개판이건 말건 개의치 않는 리온은 방긋방긋 웃으며 준우에게 말했다.

“준우준우, 좋은 아침이다~!”

나는 대충 시켜놓은 커피를 쭉 빨며 최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내가 화를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갈군 것도 아닌데 왜 기가 죽어있어?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저 인간하고 싸우자는 게 아니고 최지혁이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준 거다.

환장하겠네.

“준우, 안녕!”

준우는 뚱한 얼굴의 최지혁을 일단 뒤로하고 어색하게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한숨을 쉬며 최지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좀, 사람이 인사를 하면 반응을 하라고!

“……이번 주는 제대로 스케줄 빼놓은 거 맞아?”

최지혁이 삐딱하게 묻자 준우는 살짝 긴장한 어투로 대답했다.

“네! 네, 그 뭐냐……, 일단은 교수님이 편의 봐주셨어요.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학교 수업보다는 이쪽 일이 더 중요할 것 같아서요.”

“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쪽으로 붙어. 목적은 돈 아니야?”

최지혁이 다리를 척 꼬고 취조하듯이 준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준우는 그런 최지혁의 말에 정곡이라도 찔렸다는 듯 한껏 진지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죠.”

그에 최지혁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는 게 바보 아닌가? 네가 네 입으로 채유라한테 돈 필요하다고 말한 거 기억 안 나?”

“……아, 맞다.”

준우는 조금 머쓱해졌는지 뒷목을 긁적이며 주변을 휙휙 살피더니 곧 속삭이듯 물었다.

“근데 이 일 하면 얼마나 벌 수 있는 거예요? 나라에서 주는 천만 원보다는 더 받는 거죠?”

“던전 안에서 나오는 아이템 가져다 팔거나 던전 클리어 시 얻는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산 받거나.”

“오오오오. 그럼 얼마 정도 받아요……?”

“의사 연봉보다는 훨씬 많이 받겠지. 어차피 조만간 현금 가치는 폭락할 거고, 아이템 가격은 폭등할 텐데.”

최지혁의 말에 준우는 아주 조금 충격받은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연 1억보다 많이 벌어요……?”

“던전 하나 잘 얻어걸리면 일반적으로는 한 번 돌 때 3억 정도.”

“…….”

준우는 가만히 제 앞에 있는 얼음컵을 쳐다보았다. 하기야, 대학병원 의사 연봉이 1억 안팎이라고 들었다. 확실히 헌터가 되면 그것보다 더 벌 수 있으니까.

물론 강준우는 힐러라 굳이 헌터가 되지 않아도 각성자에 의사 타이틀만 달고 일반인들만 치료해도 그것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최지혁이 그걸 아주 친절하게 알려 줄 리가 없었다. 준우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몰라 당부하는데 우리랑 같이 일하고 싶으면 헌터 일이랑은 별개로 학교는 계속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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