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45)

“내가 뭐 어쨌다고…….”

“아까부터 진짜 궁시렁궁시렁! 궁시렁 압수예요.”

최지혁은 입술을 쭉 내민 채 박도경의 집 앞에 양아치처럼 삐딱하게 서서 애꿎은 신발 코만 괴롭혔다.

누가 보면 돈 뜯으러 온 줄 알겠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현재 박도경은 본인 밑에서 일하던 양아치1에게 회사를 빼앗긴 상태다. 보아하니 빚도 좀 있는 모양이고.

“최지혁 씨, 이번에는 진짜 협박하지 말아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스카우트 제의하러 온 거니까. 알겠어요?”

“스카우트할 사람이 없어서 저딴 인간을 스카우트해?”

나는 가만히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이 인간이 아까까지 알겠다고 고개 끄덕끄덕하더니 또 딴소리야?

“그럼, 최지혁 씨가 직접 발로 뛰면서 아이템 거래하고 다닐 거예요? 보니까 미국도 가고 중국도 가고 유럽도 갔다 와야 하는 것 같던데. 아니면 아는 사람 있어요?”

내 말에 최지혁이 또 입을 댓 발 내밀고 삐진 듯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없다는 얘기였다.

“이사 가야 할 거 아니에요. 최대한 감언이설로 우리 편으로 꼬셔야 해요. 알잖아요. 백호길드에서 박도경이 자금 마련 어떻게 했는지 본인이 나한테 말해줬으면서 왜 또 삐딱해?”

“알았어. 누가 뭐래?”

“방금까지 뭐라고 했다, 지혁지혁. 본인을 좀 되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깜?”

“…….”

최지혁은 결국 침묵하며 내 뒤에 얌전히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자꾸 튕긴단 말이지.

초인종 소리가 채 끊기기 전에 덜컥 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그러자 틈새로 박도경의 수척한 얼굴이 드러났다.

턱에는 시퍼런 수염이 올라와 있었고, 술이라도 마셨는지 알코올 냄새가 훅 풍겼다.

“……학생들 뭐야?”

나는 애써 방긋 웃으며 덥석, 박도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봬요, 사장님.”

내 말에 박도경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짜증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학생. 도대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는데, 나 이제 사장 아니야. 그러니까 가 봐.”

그리고는 문을 확 닫으려고 했다. 물론 최지혁이 그렇게 두지는 않았다.

워낙 힘이 세기 때문에 가볍게 문틈을 잡고서 활짝 벌렸고, 그 때문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박도경은 얼떨결에 엉거주춤 현관 밖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 사장님. 그러지 말고 잠깐 이야기 나눠 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그, 뭐라고 해야 하지. 미팅 제의라고 하죠?”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박도경의 집안 사정이 훤히 보였다.

온갖 데 차압 딱지가 붙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자고 있는 7살 정도 되는 여자애 하나와 수척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30대 후반 정도 되는 듯한 여자가 보였다.

아내분인가?

“혜성 아빠, 누구야?”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박도경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골치 아프다는 듯 내게 말했다.

“어, 별거 아니야. 금방 갈 거야.”

“헐, 금방 안 갈 건데요. 혹시 안에 계신 분이 부인분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나는 리온이 들고 있는 홍삼 상자를 뺏어 들고 무작정 박도경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아니, 학생, 뭐 해!”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 딱 30분만 이야기해요. 알았죠?”

***

결국 우리는 박도경의 식탁에 둘러앉았다. 박도경은 곤란하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며 우리가 들고 온 홍삼 상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학생들 지금 내 상황 안 보여?”

“이재겸? 그 인간한테서 들었는데. 당신 배신당해서 회사에서 쫓겨났다며?”

최지혁이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말을 툭 던졌다. 그에 박도경의 옆에 있던 부인분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우리가 당신 사무실까지 찾아갔는데 없더라고. 그래서 집 주소 좀 알아왔지. 뭐, 직접 찾아와도 태도가 그딴 식인데 전화로 만나자고 하면 만나기나 했겠어?”

“……아니 근데 거기 남학생, 지난번부터 자꾸 반말을 찍찍,”

나는 빠르게 최지혁의 허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하하 웃었다.

“이 오빠가 존댓말을 잘 몰라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스타트업 회사를 하나 차리려고 하는데요, 여러모로 아저씨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스타트업인데 내가 왜 필요한가, 학생?”

박도경은 정말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최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을 식탁에 우르르르 쏟았다.

“저희가 이걸 좀 팔아야 해서요.”

“뭐?”

그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쓰며 절그럭거리는 액세서리들을 쓱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앗, 함부로 만지시면 안 돼요. 하나에 10억 정도 되는 거라. 맞죠, 최지혁 씨?”

“27억 8천9백만 원.”

“…….”

최지혁의 말에 박도경은 조심히 들고 있던 액세서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와 최지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이게 뭔데……. 그리고 이 많은 게 허공에서 왜…….”

그에 나는 아주 친절하게 대답했다.

“각성자에게 꼭 필요한 장비들이에요. 예를 들어, 요 앞에 있는 물약 같은 경우는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워요. 던전 안에서 크게 다쳤을 때 쓰거나, 혹은 일반인에게 사용할 수도 있죠.”

그리고는 안타까운 얼굴로 박도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직 없어서. 제값을 받으려면 전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야 한단 말이죠?”

“……그래서 나더러 이걸 팔아라?”

“오, 척하면 척이네요?”

박도경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학생들. 이런 장난 재미없어.”

“장난 아닌데요?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좀 바빠서요.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각성자들이 게이트 문 닫느라 얼마나 바쁜데요. 그리고 이런 특별한 아이템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거의 다 회수해 가는 것도 아시지 않아요?”

내 말에 박도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야 내가 뭘 원하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 학생, 내가 지금 학생들도 알다시피 배신을 당해서 당장 갚아야 할 빚이 4억이야.”

“네! 그래서 최지혁 씨가 말했잖아요. 못 들으셨어요? 지금 눈앞에 있는 목걸이 하나에 27억이라니까요? 물론 제값에 잘 팔았을 경우긴 하지만.”

나는 방긋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음, 저희가 아까 아저씨 사무실에 가봤는데 그 이름 모를 양아치 아저씨는 영 신뢰가 안 가서요. 아저씨. 그 빚 보니까 제2금융 같던데. 저희가 먼저 갚아드릴 테니까 우리랑 일해 주시면 안 돼요?”

어차피 그깟 4억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돈이야 이제 숨 쉬면 그냥 벌 텐데, 뭐.

게다가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현금은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 투자에 돈 아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

“아저씨도 사업하셨던 분이니까 아시잖아요. 이쪽 블루 오션이에요. 어느 업계건 시장 선점이 중요한 것도 당연히 아실 테고. 안 그래요?”

내 말에 박도경은 고민하는 듯 머리를 붙잡고 연신 끙끙대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내게 물었다.

“지금 내가 학생들이 무슨 얘기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거든? 그래, 이 아이템이라는 걸 불법 거래해서 자금 마련하자는 건 알겠어. 그런데 거기 스타트업이 왜 나오는겨?”

그의 말에 최지혁이 입을 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상 각성자들이 권력을 쥘 테고, 그건 곧 이성이 아닌 힘이 세상의 권력이 된다는 뜻이지. 당연히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분명 서열은 생길 거다. 힘에 의한 서열.”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에이전시 하나 만드는 거예요. 길드라고 하죠?”

박도경과 그의 부인분은 우리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잠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우리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학생들. 내가 이거 들고 튀면 어떡하려고?”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어디 해 보든가.”

최지혁이 피식 웃으며 다리를 척 꼬았다. 그리고 나는 최지혁의 무례한 태도를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각성자를 상대로 사기 치면 끝이 좋지는 않을 텐데.”

“맞아요. 비단 저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등쳐먹으면 큰일 나세요. 얘네들이 던전 들어가서 아무거나 막 때려잡다 보니까 인간 목숨을 파리로 목숨으로 아는 애들이 엄청 많아서 진짜 조심하셔야 해요.”

내 말에 박도경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달달달 떨었다. 그도 그럴 게 최지혁이 벌써 협박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공포 스킬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저런 스킬은 언제 얻었담.

“봐요. 민간인한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스킬 쓰잖아요. 당장 스킬 안 꺼요?”

내가 최지혁을 쓰윽 째려보자 최지혁은 금세 움찔거리며 스킬 사용을 거뒀다. 대충 이 정도면 상황파악이 완전히 끝났겠지?

박도경은 결국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런데, 학생들. 사업자는 내고 날 찾아온 거야?”

“아니요?”

“……사무실은?”

“이제 계약하러 가야죠.”

“……사업할 자금은 있고?”

“그거 여태까지 설명드렸는데.”

“이걸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겠다?”

“네.”

그리고 박도경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거, 사업이 그렇게 얼렁뚱땅 되는 줄 알아,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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