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혁은 딱 5층까지 올라간 후 깔끔하게 본인의 욕심을 접었다.
리온에게도 드디어 몬스터를 잡아 죽일 기회를 선사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가 뭐래요?”
“인간 남자의 세상에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최지혁이 전직 헌터 랭킹 1위라고 해도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층을 돌파하는 건 체력적으로 좀 힘든 일이긴 했다.
“저 자식이 약해 빠지면 안 되니까 양보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최지혁의 옷자락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자, 아무도 뭐라고 안 했으니까, 둘이 그만 싸우고 그 빌어먹을 황실의 흔적이니 뭔지나 좀 찾아봐요.”
“인간 남자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거지 나는 싸우지 않았는데, 마스터.”
나는 리온의 입에 체력 향상 핫도그를 꽂아 넣어주었다.
제발 둘 다 좀 조용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지혁은 리온을 잡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곧 화내봤자 본인 손해라는 걸 깨달았는지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길목에 있는 유골들을 발로 치웠다.
“…….”
나는 그런 최지혁의 팔을 붙잡고 지도를 보며 굳게 닫혀있는 방문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몇몇 유골들은 천장에 목만 대롱대롱 매달려있었고, 또 다른 유골들은 삼삼오오 둥글게 모여 먼지 쌓인 유리병 여러 개와 함께 쓰러져 있기도 했다.
꼭 집단으로 목숨을 끊기라도 한 것처럼.
게다가 보스 몬스터도 대부분 무언가를 관리하던 사람들이었다.
지하 1층은 간수, 1층은 기사, 2층은 주방장, 3층은 시종장, 4층은 시녀장.
“이 패턴대로면 꼭대기 층이 보스 방 아니에요?”
내 말에 최지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아직 초기 단계라 그럴 수도 있지만 던전에 규칙성이 어디 있어? 때마다 다른 거 알잖아.”
최지혁의 말이 맞긴 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듯 던전도 똑같았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각성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거였다.
“아, 진짜 힌트만 있었으면 그냥 지르는 건데.”
“힌트?”
최지혁이 무슨 말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고, 그건 리온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왜, 내가 맨날 공략법 알려줬었잖아요. 3만 원에 파는 거 있었는데 이젠 없더라고요.”
“…….”
최지혁이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 돈도 엄청 모아서 지금 쓰면 딱인데.”
“채유라.”
최지혁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나는 그에 조금 놀라 최지혁을 바로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불러요?”
“너, 그거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야 하는 거 알지?”
“당근 빠따죠.”
최지혁은 내 말에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뒤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리온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게 제 키를 맞추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 말은 저 새끼 포함,”
“왁!”
그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최지혁을 밀쳐버렸다.
미친놈이 갑자기 귓속말은 왜 하는데?
“뭔데! 왜 밀어!”
“왜 갑자기 안 하던 짓 해요!”
“내가? 내가 뭐 했는데!”
나는 내 귀를 꾹 막고 말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쓸데없이 목소리는 좋고 난리야.
“아니 그냥 조용히 말하면 되지 왜 귀에다가 바람을 불어요!”
“내가 언제 바람을 불었다고?”
“아무튼 귓속말하지 마요!”
“아니, 너도 저번에, 아니, 너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뭐야!”
“넌 너고 난 나고!”
“그딴 게 어딨어!”
“여기!”
최지혁이 어이없어 죽겠다는 듯 헛바람만 들이켰고, 나는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서 리온의 등 뒤로 쏙 숨어버렸다.
우씨, 안 그래도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서 나름 경계 중인데 저런 식으로 다가오면 좀 곤란하단 말이지.
“쯧쯧. 인간 남자, 그러게 감당도 못 할 짓은 왜 하남?”
* * *
최지혁은 나를 업고 계단 위로 휙 올라갔고, 리온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하며 눈앞에 있는 몬스터에게 공격을 가했다.
[크르세르스 재상(E)]
방어: 30%
회피: 3%
중독: 100%
출혈: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