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145)

“…….”

다짐했던 것과 달리 나는 최지혁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최지혁을 쳐다만 보았다.

최지혁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오늘 던전에서도 저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이마가 찢어지고, 입술은 죄 터져서 딱지가 겨우 맺혀 있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최지혁이 다친 건 이미 화면에서 여러 번 보았다.

원래 자기 몸 생각 안 하고 덤비고 보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다친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고, 눈앞에 다가온 상처 입은 최지혁은…….

나는 그냥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와, 인간 남자 피딱지가 인상적이군.”

옆에서 리온이 또 헛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나는 최지혁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최지혁이 지레 찔렸는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설명하는 게 좋을 거예요.”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그리고 잘 해결됐으니 신경 꺼도 돼.”

“말 계속 그딴 식으로 해요.”

내 싸늘하게 식은 말투에 최지혁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겨우 낮은 목소리로 아주 작게, 내게 말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어.”

“…….”

말도 안 돼. 거짓말이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게 틀림이 없었다.

“너 몰래 찾아간 적 있어. 그때, 그냥 알게 된 거야.”

나는 고민했다. 이걸 따지고 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을지.

“일단 앉아요.”

나는 식탁 의자에 최지혁을 앉혔다.

그리고 착잡한 마음으로 구급상자를 꺼냈다.

사실 얼굴에 상처쯤이야 포션 쓰면 나았다.

하지만 괘씸했다.

이 인간이 뭐가 예쁘다고 비싼 포션까지 써서 치료를 해줘.

준우를 부르면 금방 해결되지만 밤이 늦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오려면 시간도 오래 걸렸다.

“얼굴 봐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최지혁의 턱을 쥐고는 요리조리 그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병원 갈 만큼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다.

그래도 최지혁은 E급 각성자였고, 이쯤 되는 상처는 응급처치만 하면 금방 나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약을 그대로 최지혁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아아아! 채유라, 아파, 악!”

“엄살 부리지 말죠?”

“감정, 감정 담겨 있, 악!”

“내가 감정이 안 실리게 생겼어요?”

화를 안 내려고 했는데 결국 나는 들고 있던 소독약을 식탁에 소리 나게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최지혁의 뒤에 있던 리온은 내 화난 모습이 매우 흥미로운지 날개를 펼쳐 들고 푸르르 떨었다.

“리온, 정신 사나워, 날개 접어.”

“내 아름다운 날개가 정신 사납다니! 마스터, 미적 감각은 증발한 것인가?”

나는 살포시 리온의 입에 어제 먹다 남은 꽈배기를 찔러 넣어주며 최지혁을 노려보았다.

“아니, 혼자 오란다고 진짜 혼자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반어법 몰라요, 최지혁 씨?”

“……그래서 리온 데려왔잖아.”

“하! 그래서 리온 데려왔잖아? 지금 그게 말이에요, 방귀예요?”

최지혁도 제 죄가 뭔지 알긴 하는 모양이다.

그는 눈치 보는 미어캣처럼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며 우물우물 대답했다.

“다른 사람 데려올 시간 없었어.”

목이 바짝바짝 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옆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최지혁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경찰을 부르든가! 아니면 나랑 같이 던전으로 피신이라도 하든가!”

“잘 해결됐으니 끝난 거 아니야?”

“끝나긴 뭐가 끝나, 이 웬수야!”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쥐어 터지고 온 주제에 말이 많아, 진짜.”

대리석 벽에 부딪혀서 물먹은 솜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던 최지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안 쥐어 터졌거든? 그리고 아직 초기라 그렇지 원래 내가 그 새끼보다 세,”

“아니 최지혁 씨 초딩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더 센 게 중요해요?”

나는 이마를 짚으며 최지혁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리고 이게 쥐어 터진 거지 안 쥐어 터지긴 뭐가 안 쥐어 터져!”

내가 소독약으로 최지혁의 상처를 쿡쿡 찌르니 최지혁이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참았다.

“미친놈이 사람 얼굴을 아주 아작을 내놨어, 진짜.”

나는 결국 울상을 지으며 최지혁의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최지혁을 째려봤다.

최지혁은 내게 지성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표정에서 다 드러났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모르는 사정 같은 게 있겠지.

말 안 하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여태까지 내가 봐 온 최지혁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할,”

“시끄러워요.”

착잡해졌다.

최지혁이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안 들었고, 이 상황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다.

짜증이 확 났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대로 문밖으로 나가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여기엔 우리 집이 없다.

평소처럼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엄마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기분이 급격히 저조해졌다.

내가 입을 꾹 다물자 순식간에 거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방으로 들어갈까 생각하던 찰나, 최지혁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더 안 물어봐?”

최지혁의 시선이 내게 똑바로 꽂혔다.

“더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예요?”

“…….”

최지혁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상처가 난 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망설이듯 내게 말했다.

“놈도 회귀했어.”

“와우.”

뒤에 얌전히 앉아 있던 리온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는 조금 멍하게 최지혁을 쳐다보았다.

저건 또 무슨 개소리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여기 와서 뭔들 이해 가는 일이 있긴 했나 싶긴 했다.

최지혁도, 지성준도, 그리고 나도 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이가 없었다.

“왜냐고 물어봐도 그쪽도 모르죠?”

내 말에 최지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곳에 온 순간부터 늘 그랬듯 이해하기를 가볍게 포기했다.

그게 심적으로 편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다.

괜히 고민해봤자 어차피 제자리일 것 같으면 깔끔하게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게 답이었다.

* * *

나는 내 머리 위로 비치는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생각했다.

이 세계는 곧 멸망한다.

4년 동안 최지혁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듯 보이지만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핸드폰을 쥐어 들었다.

그리고 빤히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내 핸드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핸드폰의 배터리는 항상 10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서번트 계약은 뭐고, 킹메이커 앱은 또 뭘까?

뭐 하나 명확한 게 없었다.

“짜증 나…….”

나는 결국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몸을 웅크렸다.

겨우겨우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꿈틀꿈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돌아갈 방법은 어떻게 찾아야 하지?

못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괜히 설움이 밀고 올라왔다.

엄마랑 아빠는 잘 있겠지? 설마 영영 못 보는 건 아니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진짜, 짜증 나…….”

나는 냅다 이불을 던져버렸다. 여기서 쭈그려 앉아서 울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해결 안 된다.

최지혁이 조만간 각성 등급 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던전에 들어가려면 각성등급 체크는 꼭 필요했다.

나는 끙끙거리며 이불이랑 같이 던져버린 핸드폰을 쥐고 인터넷 창을 켰다.

각성등급 검사는 초반에 해버리는 게 좋았다.

최지혁의 등급은 계속 올라갈 것이고, 최지혁 같은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니까, 힘을 숨길 수 있는 데까지는 숨겨야 했다.

회귀 전 최지혁이 선택한 방법도 그랬다.

괜히 이 시기에 눈에 띄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었다.

이 시기 높은 등급으로 각성한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정부의 개가 되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활동해야 했으니까.

물론 정부의 판단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개인 활동보다는 단체로 움직이는 게 유리하고 안정성 있으니.

하지만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었다.

만약에 정부에 발이 묶인다면 최지혁의 자유로운 활동은 물 건너간다.

그의 성미에도 맞지 않고. 솔직히 최지혁한테서 애국심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정부 측 헌터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

나는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누워서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최지혁의 세상은, 내가 보았던 웹소설 속 세상과 비슷하다.

이 세상 밖에서 그를 서포트하면서 나도 많이 알아봤다.

최지혁의 성격은 혼자 대 해 먹으려는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들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간은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결국 소설 속 평생 혼자 살 것만 같던 주인공들도 결말에는 동료들도 구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구한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최지혁 씨, 얘기 좀 해요.”

나는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알았다.

“……너 눈이 왜 그래?”

“드라마 봤어요.”

돌아가려면, 일단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최지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의지 넘치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랑 인생 계획 좀 세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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