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뭔데 감히 닥치라 마라야. 이 개자식아.”
지성준은 욕을 씹어뱉으며 최지혁의 멱살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네가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너 아직 F급 아니야?”
그리고 그대로 최지혁을 반대편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최지혁!”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최지혁은 벽에 던져진 채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벽이 움푹 파였다.
그리고 최지혁도, 머리에 피가…….
“너 뭐야.”
나는 핸드폰을 쥐고 지성준에게 말했다.
주의를 끌어야 했다.
핸드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리온을 부를 수 있다.
리온이 지성준을 붙잡고 있으면 최지혁을 업고, 여기서 도망치면 된다.
도망친다고 해서 다시 안 잡힐 확률은 드물었지만, 일단 도망쳐야 했다.
지금 저놈은 못 이긴다.
“마스터, 안녕.”
하지만 그때였다.
허공에서 무언가가 쑥 내려와 나를 단단하게 붙들었고, 최지혁은 머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나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혼자 안 왔어. 채유라.”
순간 감동 받을 뻔했으나, 안타깝게도 이어진 그의 말 덕분에 다 망해버렸다.
“채유라 데리고 도망가.”
“알았다, 인간 남자! 잘해봐~!”
최지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온이 내 허리를 껴안고 날개를 쫙 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는 최지혁을 향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야, 이 미친놈아-!”
* * *
최지혁은 눈앞에 있는 지성준을 보며 억지로 웃었다.
뇌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자칫하면 채유라에게 들킬 뻔했다.
자신이, 채유라를 이 세계로 소환한 범인이라는 것을.
“오랜만이야.”
“……지랄? 오랜만? 장난하냐?”
지성준은 열 받고 어이없다는 듯 헛바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에, 최지혁은 마른 입술을 축이며 불안에 떨었다.
‘제길, 저 녀석까지 넘어왔다고는 생각 못 했는데.’
사실, 그의 성좌인 채유라가 사라지고 최지혁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쳐가는 세상 속에서, 최지혁은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직까지 죽음은 그에게 한없이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최지혁은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을 무언가로 달래야 했고, 그건 자연스럽게 무책임하게 그를 버리고 사라진 성좌에 대한 분노로 향했다.
물론 지금, 그에 대해서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날 배신한 결과가 겨우 이거야?”
그는 말 같지도 않은 복수심에 불타있었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의 파멸 따위,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
희망으로 그를 젖게 만들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의 성좌를 잡아 끌어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못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왜 답이 없어, 개자식아.”
최지혁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그는 지성준의 말처럼 개자식이였고,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그런 추악한 모습을 채유라에게 들키지 않으려 그녀를 멀리 보내버리지 않았는가.
명백하게 당시 최지혁의 선택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전설급 아이템 엘드리치의 소원 향로는 이렇게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당장 S급 던전, 아니 그보다 한참 아득히 높은 난도의 던전을 깰 때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으니까.
세계 헌터 조합에서는 정예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레이드 팀을 창설했고, 그곳에는 당연히 한국의 S급 헌터인 최지혁와 지성준도 포함되었다.
“그 지랄을 해서 이뤄낸 게 고작 이거냐고 묻잖아, 이 개자식아!”
“……결과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 잘된 일,”
퍽. 소리와 함께 최지혁의 고개가 돌아갔다.
입 안으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들어 쳐다본 지성준은 시퍼런 얼굴을 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잘되긴 뭐가 잘돼, 개자식아. 너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엘드리치 던전에서 살아남은 S급 헌터는 최지혁과 지성준 딱 둘뿐이었다.
초반만 해도 서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죽이려고 했던 사이지만, 세상이 점점 붕괴되어 갈수록 그런 시시한 싸움 따위를 할 여유조차 사라져갔다.
어느새 그들은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어있었고, 지성준은 꽤 괜찮은 동료였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칼을 꽂은 건 최지혁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성준이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틈을 타, 아이템을 독점했다.
“……네놈 때문에 20년을 넘게 빌어먹을 과거에 갇혔어. 알아?”
“그 점은, 내가 사과하지.”
“새끼야, 뭐? 사과? 너, 양심이 있긴 하냐?”
최지혁은 입을 꾹 다물고 차분하게 생각했다.
지성준이 유라가 모르는 미래의 일들을 나불대서는 안 됐다.
여기서 살아 나갈 자신은 있었다.
지성준이 이제야 그를 찾은 걸 보면, 과거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렇게 치를 떨던 성좌와 또다시 계약한 것이겠지.
아마 성좌 계약 후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회귀 전에 성좌에게 잡아먹힐 뻔했으니까 지금 당장 벗어나고 싶겠지.’
놈은 저 대신 최지혁을 탐욕의 성좌에게 화신으로 붙여주고 본인은 빠져나갈 생각인 거다.
그러니 그를 죽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결정적으로 만약 지성준이 그를 탐욕의 성좌의 아가리에 밀어 넣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최지혁은 이미 성좌 계약을 했으니까.
성좌 계약이 되어있는 화신은 또 다른 성좌를 선택할 수 없다.
계약 파기 또한 이미 연결되어 있는 성좌가 원하지 않는 이상 불가하다.
“1분 남았어. 유언 남겨. 내가 그동안 쥐꼬리만큼 있었던 정을 생각해서 들어는 줄게.”
최지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지성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날 죽이면 이후 던전 클리어에 차질이 있을 텐데. 혼자서도 자신 있나 보지?”
그 말에 지성준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그와 달리 지성준은 지킬 것이 있었다.
유일하게 첫 재앙에서 살아남은 조카 아이.
“어차피 날 죽이긴커녕 네 성좌한테 넘길 생각이 아니었어?”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개자식.”
지성준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의 멱살을 거칠게 놓았다.
그에 최지혁은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널 넘기고 자유의 몸이 될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계약을 받아들여.”
“네 성좌를 지금 내게 넘기면 난 널 도울 수가 없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최지혁은 활짝 웃으며 지성준의 어께를 툭툭 털어주었다.
“알잖아? 내 성좌께서 어떤 선물을 주는지.”
“…….”
“그거 이미 받았거든. 그리고 내 성좌는 계약 파기 같은 거 안 해.”
지성준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다시 손잡아야지. 지성준. 너도 이 세상의 멸망을 바라는 건 아닐 거 아니야?”
“하하하하!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는데. 개자식아.”
“너도 봤잖아? 내가 회귀한 이유. 나도 이제 드디어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이유가 생겨서 말이지.”
“……입만 산 새끼.”
지성준은 이내 무기를 땅바닥에 털썩 떨구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고자인 줄 알았는데, 과거 한번 찬란하네. X발. 세기의 로맨티시스트 납셨어.”
최지혁은 드물게 당황했다.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억울했다. 그가 힘만 있었어도, 채유라가 지성준에게 납치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비굴하게 빌빌거릴 필요도 없었겠지.
당장 아무 던전이라도 가서 각성 등급을 올려야 했다.
“지랄, 세계 평화는 무슨. 어차피 다 뒈질 텐데 무슨 소용이야?”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최지혁은 최대한 여유롭게 말했다.
“처음부터 시작이잖아?”
그때였다.
최지혁의 눈앞에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시스템 창이 번쩍 떠올랐다.
-[성좌 ‘채유라’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습니다.]-
-[성좌 ‘채유라’가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놈아! 머리에 꽃이 가득 찼구나!]-
-[성좌 ‘채유라’가 ‘비상탈출 넘버원!’을 후원했습니다.]-
-[성좌 ‘채유라’가 당장 돌아오지 않는다면 당신의 아름다운 머리에 시크릿 쥬얼리를 달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황당한 메시지에 헛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녀에게 이런 기능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채유라는 화가 났다.
그 때문에.
“X발 그러니까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냐고. 네가 한 짓을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 채유라가 그에게 화를 낼 때마다, 최지혁은 묘한 떨림을 느꼈다.
‘변태도 아니고, 제길.’
사실, 채유라가 화를 내는 이유는 정해져 있었다.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걱정될 때.
애초에 그는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본 적이 드물어서, 그런 사소한 감정들이 매우 신경 쓰였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가 그 여자 하나 살리겠다고 미친 짓까지 했는데,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최지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채유라를 돌려보내려면, 엘드리치의 소원 향로가 필요했다.
다시, 돌려놔야 했다.
그의 잘못으로 이 빌어먹을 세상에 떨어졌으니, 다시 돌려보내는 게 맞았다.
채유라는 아무 죄도 없으니까.
이곳에서 죄인은 최지혁뿐이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일주일.”
지성준이 방긋 웃으며 최지혁에게 말했다.
“딱 일주일 생각해볼게. 널 죽일지 말지 말이야.”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최지혁은 똑같이 지성준에게 웃어주었다.
“지켜야지. 네 조카. 내가 없으면 1차 대붕괴 때 힘들 텐데. 안 그래?”
“……개자식이.”
지성준은 민감한 단어에 눈이 돌아가 다시 최지혁의 멱살을 쥐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채유라가 후원한 아이템을 쥐었다.
“잘 생각해봐. 날 죽이면 누구 손해인지.”
-[‘비상탈출 넘버원!’이 작동합니다!]-
그리고 곧 그의 시야가 뒤집혔다.